[질라라비/201805] 다른 사회, 같은 이야기: 프랑스를 다녀오고 / 한상규

by 철폐연대 posted May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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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회, 같은 이야기: 프랑스를 다녀오고

한상규 (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지난 3월 29일부터 4월 7일까지 프랑스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제 짝꿍과의 10주년도 기념하기 위해 그동안 언젠가 한국 사회로부터 도망갈 때 쓰려고 아껴뒀던 마일리지 항공권을 발권하여 다녀왔지요.

   

다녀오고 보니, 프랑스는 분명 한국과 정말 다른 나라, 다른 사회였습니다. 저는 지인의 동성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제 지인은 한국 사람이고 파트너는 프랑스 사람이기 때문에 합법적인 동성 결혼으로 제 지인은 결혼 3년 후 프랑스 영주권을 갖게 됩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프랑스는 13번째로 동성혼이 합법화된 나라로, 2013년 5월 18일부터 시행이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국제결혼에 관한 영주권 취득도 동성혼까지 확장이 된 것이지요. 솔직히 신기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인과 그 파트너 그리고 주변 프랑스 사람들은 좀 다른 이야기를 하더군요. 왜 결혼하지 않은 동성 커플의 입양을 결혼을 한 동성 부부와 차별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차별 없이 자유롭게 사랑하고 자유롭게 가족을 구성하여 평등하게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사실 프랑스는 동성 간 ‘결혼’을 2013년에 합법화했지만, 이미 1999년부터 시행된 동거 커플들의 등록(신고)제도인 ‘빡스 PACS’(Pacte civil de solidarité;시민연대협약)를 통해 동성 ‘커플’을 합법적으로 인정해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빡스 동성 커플은 입양을 하고자 할 때 커플로서 입양을 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입양을 해서 함께 키우는 방식이죠. 그런데 합법적 결혼을 한 동성 커플은 커플로서 아이를 입양할 수 있습니다. ‘동성애의 합법화’ 쟁점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동지들은 잘 아시겠지만, 사랑의 ‘합법화’와 ‘결혼’이라는 틀로 커플 관계를 환원하는 운동 방식 자체가 ‘두 명의 보호자와 아이’라는 ‘핵가족 모델’에 대해서는 맹목적일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입양으로 가족을 꾸리고 싶다면 동성 커플들도 결혼을 하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들은 빡스가 결혼과 달리 프랑스 시민이 아닌 파트너는 취업(경제활동)을 하지 못 하고 파트너인 프랑스인에 종속된 외양을 띤 ‘파트너 비자’를 받고 갱신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에도 불만을 표했습니다. 듣고 보니 문제가 많아 보였습니다. 아마 한국도 동성 결혼이 합법화가 된다면 비슷한 문제들을 겪게 되겠죠.

 

이 밖에도 국회에서 사회주의자 의원과 공산주의자 의원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모습이 공영방송을 타고 방영이 되고, 이야기를 나눴던 프랑스인들로부터 등록금 걱정 같은 건 없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정말 다른 사회라는 게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프랑스도 한국과 같은 고민과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회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제가 가 있는 동안에도 프랑스는 파업 정국 속에 있었습니다. 현 프랑스 대통령인 마크롱과 그 정부가 대대적인 ‘노동개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노동자들이 핍박을 받고 싸워야만 하는 현실은 프랑스나 한국이나 같았습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프랑스는 한국보다 사정이 좋다는 통념이 존재할 텐데요. 아시겠지만, 마크롱은 지난 올랑드 대통령의 사회당 정권에서 경제부장관을 역임한 사회당 내에서도 우파였고, 당시 사회당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노동개악과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펼치려고 참으로 부단히 노력을 했던 양반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신생정당 ‘La République En Marche!(전진하는 공화국!)’를 창당하고 대통령이 된 후 프랑스 노동자들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요. 작년까지는 고용유연화와 해고조건 완화 그리고 법정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쟁점이었다면, 현재는 공무원 규모 축소 및 노동조건의 악화 그리고 공공기관 민영화 등이 포함된 노동개악이 쟁점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노동자들이 힘들다는 건 한국과 같은 이야기지만, 조금 다른 측면들도 있습니다. 저에게 이야기를 한 프랑스인들에 의하면 예전보다 그 강도가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여전히 프랑스 노동자들은 참 잘 싸우는 것 같았습니다. 철도파업으로 프랑스 국내는 물론 프랑스와 영국을 잇는 유로스타, 프랑스와 다른 유럽 국가들을 이어주는 열차들의 운행에도 큰 영향이 가서 마크롱 정부를 크게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출국할 때 에어프랑스를 이용했는데요, 제 출국일로부터 가까운 전후 일자에 에어프랑스의 총파업으로 인해 인천과 파리 간 결항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공무원 파업에 대한 연대와 더불어 마크롱 정부의 공공부문 민영화의 일환으로 자행되고 있는 파리 샤를드골 공항 민영화 확대에 저항하기 위한 관제탑 노동자들의 파업도 진행되어 수많은 항공기의 연착이 일어나기도 했었죠.

 

그리고 제가 만난 사람들의 ‘편향성’(?)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파업에 찬성하고 지지를 표했습니다. 한국이라면 시민의 불편함만을 강조하는 온갖 보도 같지 않은 보도들로 언론이 도배가 되었을 텐데, 이미 잘 아는 바와 같이 프랑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프랑스도 보수언론이 있기에 시민의 불편함에서부터 파업의 부당함과 마크롱 정부 정책의 정당함을 다루는 보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처럼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생떼를 쓰는 부류로만 취급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이야기를 나눈 프랑스인 중 대학생, 대학원생이 있었는데, 이들은 마크롱 정부가 평등주의에 기반한 대학교육체제(입시제도)에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악을 시도하고 있어서 대학 파업(수업 거부와 대학 점거)을 하고 있고, 노동자 파업에도 연대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한국인인 지인은 불통은 박근혜와, 막무가내로 밀어 붙이는 것은 이명박과, 친기업적이고 능력주의를 중시하려는 것은 안철수와 비슷하다며, 마크롱을 이 세 인물을 합쳐놓은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저에게 차라리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소통이 되고, 막무가내는 아니며, 무조건적인 친기업도 아니면서 어느 정도 노동을 중시하고 있지 않느냐 말했습니다. 이에 저는 지인에게 “한국에서 몇 년 나가서 살고 현재 프랑스 상황이 안 좋아서 그렇게 느낄 수 있겠지만, 대놓고 밀어붙이는 마크롱과 기만적으로 노동을 탄압하는 문재인이나 ‘자본을 위한 정부’를 자임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라고 답했습니다.

 

사실 대대적인 노동개악 공세라는 프랑스의 상황과 노동자 간의 경쟁과 분열을 조장하면서 기만적으로 노동을 공격하는 한국의 상황을 무조건적으로 같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프랑스 사회와 한국 사회의 노동운동 전통이나 경험, 경향 역시 다르고 운동이 서있는 조건의 역사와 현재도 다르겠죠. 하지만 싸워야할 때 뭉쳐서 제대로 싸우는 것과, 그렇게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불만이나 불편함을 표하는 게 아니라 같은 노동자로서 연대와 지지를 보내는 것은 조건과 경험의 차이에 기반한 자동적인 결과의 차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주체들의 의지와 역량의 차이라고 봅니다. 결국 권리는 요구하고 싸운 만큼 획득되는 것이고, 그러한 권리가 위협받을 때는 또 싸운 만큼 덜 뺏기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지금, 권리를 싸우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시혜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 나의 권리가 위협받지 않는다고 동료의 권리가 박탈당하는 것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나요? 나와 저 사람이 같은 처지라는 걸 망각하면서 상대방을 하대하고 무시하고 상대방의 권리 요구를 시끄럽다고, 정당하지 않다고 힐난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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