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12] 탈핵과 평등을 향한 부산 지역 활동 이야기 / 남영란

by 철폐연대 posted Dec 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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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탈핵과 평등을 향한 부산 지역 활동 이야기

남영란 (사회변혁노동자당 부산시당, 철폐연대 후원회원)

 

 

부산 지역 활동 이야기를 요청받고는 부산이라는 지역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활동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부산은 어떤 지역일까? 부산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우선 희망버스가 시작되었던 한진중공업 85크레인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한진중공업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열사를 떠올릴 것이다. 부산은 많은 이들에게 열사들의 이름과 역사로 기억되곤 하는데, 나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부산에 내려와서 한진중공업지회 최강서 열사의 죽음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염호석 열사의 죽음을 마주했으니까 말이다. 시간이 되지 않아 못 가보기 일쑤이지만 열사들의 기일 때면 진행되는 솥발산 묘소 참배는 부산경남울산 열사정신계승사업회만이 아니라 지역 동지들의 날적이에 적힌 일상이기도 하고, 한 해를 시작하면서 열사들 앞에 당신들의 뜻을 기억하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곳 또한 솥발산 묘역이다. 열사들의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지역,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게 하는 곳이 나에게 자리매김한 부산이라는 지역이다.

 

2012년 부산에 내려와서 보낸, 햇수로 8년을 돌아본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 부산 지역 노동시민사회의 힘들이 모였던 첫해부터, 최강서 열사투쟁, 장애등급제폐지·부양의무제폐지를 건 부산장차연의 노숙농성, 직접고용을 건 신라대 청소노동자들의 점거농성, 세월호 학살의 진실을 향한 투쟁, 생탁-택시노동자들의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고공농성, 박근혜 퇴진 투쟁까지 쉴 새 없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소위 촛불정권이라 불리는 정권이 들어섰다, 그리고 부산의 지방정권도 교체되었다. 시의회와 구의회의 다수를 더불어민주당이 석권하게 되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문재인 정권, ‘비정규직 제로시대’, ‘탈핵시대’를 선언한 문재인 정권 하에서 이전과 결코 다르지 않은 투쟁은 계속되었다.

 

 

누군가의 존재를 지우고,

누군가의 권리가 나중으로 미뤄지는 현실을 마주하다

 

2017년 말,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부산차제연) 출범을 준비하고 2018년 3월 공식 출범 기자회견을 하기도 전에 부산차제연은 해운대구청 앞 기자회견을 진행해야 했다. 다름 아니라 해운대구의회가 포괄적 차별금지 사유가 있던 인권조례를 개악하여 차별금지 사유 전체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조례 개정 절차들이 투명하게 진행되지 않으면서 이미 개악된 뒤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 뒤를 이어 수영구에서 동일한 내용으로 인권조례 개악이 시도되고 통과되었으며, 남구에서는 보수기독교 목사를 대표로 한 인권조례 폐지 청원 운동이 추진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를 점한 부산시의회에서는 인권조례 개정을 통해서 그동안 없었던 차별금지 사유를 포함시켰다. 부산차제연은 차별금지 사유가 제대로 적시된 인권조례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외쳤지만 결국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제외한 채로 개정되었다.

누군가는 이마저도 진전이 아니냐고 했지만, 이 사회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지우고 배제하는 차별금지 사유 적시가 과연 진전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산시의회는 물론 구․군의회의 의원들이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 뒤에 숨는 것은 단지 혐오세력들의 극심한 압력 탓이라기보다는 이들 스스로가 갖는 인권의식의 정도를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부산차제연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누군가의 존재를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지울 수 있는가? 누군가의 권리를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가?”라고 부산 지역사회에 계속해서 묻고 있다.

 

1 [출처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jpg[출처: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

 

 

배제된 이들(?)의 축제에는 광장을 열어줄 수 없다? 그렇다면!!

 

부산차제연을 결성한 이후 함께 모인 30여 개의 단체들은 누군가의 존재를 지우고, 누군가의 권리를 뒤로 미루려는 시도에 맞서는 것만이 아니라 모두의 인권이 살아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활동해왔다. 2017년 제1회 부산퀴어문화축제를 시작으로 2018년, 2019년 부산퀴어문화축제가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으며 준비되었다. 그러나 해운대구청은 단 한 번도 해운대 구남로 광장을 퀴어들에게 열어주지 않았다. 이에 2018년 제2회 부산퀴어문화축제에서는 축제에 이어 해운대구청 앞에서 ‘전국퀴어총궐기’를 열어 항의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또다시 광장을 불허했다. 해운대구청은 그 이유로 안전상의 문제와 공공성의 문제를 들었다.

부산차제연이 정보공개청구한 바에 따르면 해운대 구남로 도로점용허가 불허를 통보한 것은 부산퀴어문화축제가 유일하다. 또한 부산퀴어문화축제기획단과 그 가족들을 위협하는 행위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도 이에 대해서는 눈감은 채 공공성에 반한다며 불허 통보를 내리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3회 부산퀴어문화축제는 취소되었고, 제2회 전국퀴어총궐기가 축제의 장을 대신했다. 축제를 열기보다 총궐기로 항의의 뜻을 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차별과 배제, 혐오 없는 평등세상은 결코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부산차제연 결성 이후 지역에서 ‘아이다호 문화제’를 1년의 주요 행사로 만들어내고, 부산퀴어문화축제를 모두의 축제가 되도록 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차별과 배제 없는 세상을 향한 목소리들을 하나하나 모아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토론회를 열고, 부산 지역의 인권의 진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들을 나눠가고 있다. 이렇게 평등세상을 향한 밑거름은 비록 작지만 우리의 힘을 통해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핵발전소와 핵폐기물을 안고 사는 지역

 

고리 1호기를 영구정지시켰지만 부산 인근에는 7개의 핵발전소가 운영 중이고, 2개 핵발전소가 건설 중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지역경제활성화라는 이름하에 기장에 연구용 원자로가 추진 중이다. 탈핵부산시민연대는 기장 연구용 원자로를 11번째 핵시설로 규정한다. 문재인 정권이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핵시대를 선언한 이후 공론화위를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재개되었다. 탈핵은 60년 뒤로 미뤄졌다. 핵산업을 유지․강화하는 방안으로 핵발전소 수출 정책을 이어가면서 타국민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모순적인 탈핵정책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이 정권이다. 박근혜 정권 떄의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정책이 원칙적으로도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받아 문재인 정부에서 고준위핵폐기물 재검토준비단이 구성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합의도 이루어내지 못한 채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이하 재검토위원회)를 올해 5월 출범시켰고, 재검토준비단에 합류했던 환경단체들조차도 재검토위원회를 규탄하며 해체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재검토위원회는 어떤 의제와 지역도 논의를 시작하지 못한 채 전문가그룹을 출범시키는가 하면, 11월 21일에는 경주지역실행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월성핵발전소 저장시설이 포화가 되기 전에 임시저장시설을 지어 핵발전소의 가동 중단을 막겠다는 핵산업계의 이해는 산업부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지는 것임을 재검토준비단 과정을 통해서도 확인한 바 있다. 이것은 10만 년의 책임을 요하는 고준위핵폐기물에 대해 우리 사회가 성실히 논의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지역에 책임을 떠넘기고,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임시저장시설 논의를 추진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임시저장시설을 통해 핵발전소 가동 중단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탈핵시대를 열어가는 길이 아니라 핵발전소 중심의 정책을 이어나가는 길이다. 경주와 울산을 중심으로 많은 시민들이 “핵폐기물 답이 없다. 핵발전소 폐쇄하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없이 핵발전 중심의 정책은 ‘탈핵시대’라는 가짜 선언 뒤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탈핵부산시민연대는 지난 6개월여 간 부산시 16개 구군의 주요 거점을 돌면서 ‘임시저장시설도 핵쓰레기장이다, 임시저장시설 반대한다,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 해체하라’는 내용으로 플래시몹을 진행해왔다. 고리 1호기를 영구정지시키기 위한 수많은 부산 지역 시민사회의 힘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 과정을 거치면서 많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지속되어온 탈핵부산시민연대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고준위핵폐기물이 부산 지역의 의제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생명과 안전의 문제 앞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고준위핵폐기물에 대한 해법이 핵발전소 폐쇄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더 많은 이들과 공감할 수 있도록, 핵 없는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다시 크게 내딛을 수 있도록 탈핵운동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3 [출처 탈핵부산시민연대].jpg

[출처: 탈핵부산시민연대]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고민으로……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역의 의제에 착목하거나, 지역의 의제를 만들어내기 위해 나름 움직여왔다고 생각했지만 턱없이 부족하고, 역량의 한계를 실감하기도 한다. 최근 이미 존재했지만 지역의 현안으로 생각지 못했던 5인 미만 사업장의 문제가 그것이다.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제외 사업장인 5인 미만 사업체가 부산 지역에는 81.6%에 달한다.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숫자도 29.8%에 달해 전국 종사자수 27%(사업체수 평균 80.3%)를 넘는 수치이다. 100인 미만 산업별 종사자 수 규모는 77%에 해당되며, 30인 미만은 57%으로 부산 지역 산업별 종사자 2명 중 1명에 해당된다고 한다(2016년 ‘부산시의 산업별 종사자수 통계자료).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선택지가 되기에 쉽지 않은 조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역에서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한 움직임이 지속된다면 분명 노동조합이 노동자로서의 자존감과 권리를 찾기 위한 선택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부산 지역 녹산공단의 최근 노동조합 가입 움직임은, 성과 없이 보였던 지난 10여 년간의 녹산공단조직화대책위 활동이 쌓이고 쌓인 결과 아니겠는가? 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통해 기본적인 권리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이들과 손을 맞잡을 것인지 고민의 깊이와 활동의 폭을 더욱 넓혀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