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09] 노동자, 노동조합과 함께 답을 찾고 있습니다 / 김민옥

by 철폐연대 posted Sep 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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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노동자, 노동조합과 함께 답을 찾고 있습니다

김민옥 (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철폐연대 후원회원)

 

 

노무사입니다. 노무사세요?

 

20대에 직업을 찾을 때는 노무사라는 직업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노동법률을 다루는 일을 하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노동, 노동자, 노동조합, 민주노총이란 단어들은 언론이나 책에서 만나는 단어였고,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일 또는 사람들이라고만 느꼈지, 현실에서 직접 마주하리라고는 30대 중반까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궁금했던 “일이 도대체 뭐지? 내 노동의 가치는 얼마일까?”라는 막연하고 조금은 거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노동을 공부하고, 노동법률 전문가라는 노무사 시험에도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노무사 2년차, 만 1년을 갓 넘긴 아직도 파릇파릇한(?) 노무사라서, “김민옥 노무사입니다”라는 소개도, 명함을 건네는 일도 쑥스럽습니다. 누가 “노무사세요?”하면 긴장부터 하는 여전히 신입 노무사지만 좋은 노무사, 능력 있는 노무사, 괜찮은 노무사가 되고는 싶은데, 해결 가능한 일보다 해결 불가능 일들을 더 자주 만나면서 노동자, 노동조합과 함께 답을 찾아가는 중에 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나다

 

현재 민주노총 법률원 중에서도 금속노조 지역사무소, 창원에서 노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창원에서 첫 출근하는 날 남색 노동조합 조끼를 어색하게 입고, 남색 노동조합 조끼가 정말 잘 어울리는 금속노조 조합원들 앞에 서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남색 조끼를 입은 조합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때때로 사회적 비난에 직면하는 대기업 정규직 조합원도, 하청의 비정규직 조합원도 있고,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 참여했던 30년이 넘는 역사의 노동조합도, 이제 막 탄생한 새내기 노동조합도 있습니다.

 

당연히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어려움에 처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대한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보고, 보수언론의 억지 논리라고는 하지만 귀족노조·대기업노조에 대한 반감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만난 남색 조끼 조합원들 중 우리 사회가 그렇게 비난하는 귀조노조 조합원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1980년대 노동자 탄압을 뚫고 노조를 만들고 지금까지 우리 법에서 보장한 “사회적,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정당하게 활동한 사람들이고,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위해 늘 투쟁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100% 노동권을 인정받는 것도 아닙니다. 매번 정부와 회사의 불합리한 노동정책들과 싸우고 있는 보통의 노동조합이며, 연장·야간노동을 당연하게 하는 한국의 장시간 근로에 뼈빠지게 일하면서도 산업재해와 명예퇴직, 임금피크제를 걱정하는 보통의 노동자들입니다.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정부나 보수언론이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한다는 이유로 대기업 노동조합에 귀족노조라는 덫을 씌우고 불법파견, 불법하도급, 노동자 차별 등 노동법 위반이 일상인 회사의 책임은 면해주고 있다는 것을요. 그런데 이렇게 어떤 방식으로든 욕을 먹고 있으면서도 남색 조끼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연대 집회의 가장 앞자리에 앉아, 맏형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경남에 노동조합이 결성된 지 1년도 안 된 회사에서 1970년대에나 벌어질 일, 화장실 규제가 있었습니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명목 아래 화장실에 갈 때마다 관리자에게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일부 관리자들은 아예 화장실 앞에서 화장실 가는 횟수, 시간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여성 조합원 몇 명이 남성 관리자에게 화장실을 가겠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 결국 병원 치료까지 받게 되자, 노동조합은 회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습니다.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노동자들이 이렇게 신속하게 회사를 상대로 싸울 수 없었을 것이고, 함께 싸워 줄 다른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집회까지 열면서 싸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노동조합은 서로를 의지하며, 힘을 보태 주면서 법이 만든 노동권을 현실에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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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7.16. 금속노조 경남지부 대흥알앤티지회 기자회견 [출처: 금속노조 경남지부]

 

 

권리 찾기에 나선 보통의 노동자

 

민주노총 법률원은 조합원이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의 반 정도는 비조합원이고, 그들 대다수는 비정규직이자 소규모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입니다. 이들을 만날 때면 노동조합 상담 때보다 2배는 속상하고 답답해집니다.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 “부당하지만 위법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가능성은 있어요”, “혼자서 해결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법으로는 가능하지만…” - 을 하지만, 그 문장 속 어디에도 답은 없습니다. 노동법률 전문가라면 영화나 TV드라마에서처럼 명확하게 답하고 부당한 사건들을 화끈하게 해결해줘야 할 텐데 노동자들을 만날 때마다 하는 말들은 모호하고 불확실성 투성입니다.

 

법에서 당연히 정한 근로조건, 연차휴가, 연장근로, 최저임금, 불법파견 등을 위반할 때조차 시원하게 “법으로 해결하세요”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수습을 갓 넘겼을 때는 “노동청에 가시죠”라고 자주 말했지만, 이의 제기를 한 노동자에게 사용자가 주는 불이익이 어디까지일지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에, 회사에서 당장 그만두라고 하면 그 노동자의 생계는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물론 법으로는 부당한 해고이겠지만, 법으로 인정받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과 돈은 또 누가 보상해줄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됩니다. 어떤 때는, 아니 자주, 노동자들이 먼저 회사에 말할 수 없다고 하니, 저 또한 할 말을 잃게 됩니다.

 

현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노동자 1명이 사장을 상대로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설사 승리하더라도 그때부터는 또 다른 괴롭힘이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만화 <송곳>에서 그렇듯이 어렵고 힘든 한걸음을 더 떼려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조금은 적은 시간과 돈을 들일 수 있도록, 법이 그저 종이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알 수 있도록 오늘도 상담 노트를 펼쳐봅니다.

 

 

노동자의 질문에, 싸움에 옆에 있겠습니다

 

노무사로 일하기 전에 저 또한 10년 넘는 세월을 노동자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노동자로서 권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살아왔습니다. 주변에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했지만 한발 더 나아가 말 그대로 법이 보장한 권리 찾기를 위해 나서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제가 지키지 않았던 권리들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것이, 질문하면서 회사와 싸워가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왔던 보통의 노동자와 노동조합 덕분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질문, 작은 외침, 싸움과 투쟁 들이 모여서 노동자의 권리들이 지켜져 왔습니다. 그 덕분에 저 같은 다음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일터와 사회를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이제는 노무사로 단지 노동법을 다루는 기술자가 아니라 노동법을 통해 노동자의 삶을 좀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질문에 싸움에 옆에 있는 노무사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질문에 답답해하고 속상해하며, 느리게 변화는 우리 사회에 화를 내고, 그 많은 질문과 싸움 들은 보잘 것 없어서 역사에 기록되지도 못한다고 한탄하겠지만, 그 질문 하나가 없다면 세상은 더 나아질 수 없습니다.

 

노무사로서 첫 1년, 크게 성공한 일도 없고 어쩌면 실수와 실패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노무사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던 시간이기에, 남색 조끼를 만나면 반갑고 때로는 자랑스럽기까지 한 시간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부터 또 노동자, 노동조합과 함께 우리의 답을 찾는 길에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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