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806] 삼성중공업 해양플랜트 크레인 사고 1년, 살인기업을 바꿔야 한다 / 이김춘택

by 철폐연대 posted Jun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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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 해양플랜트 크레인 사고 1년, 살인기업을 바꿔야 한다

이김춘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2017년 5월 1일, 거제 삼성중공업 해양플랜트 작업현장에서 골리앗크레인과 지브형타워크레인이 충돌해 지브형타워크레인의 붐대와 와이어가 붕괴, 낙하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25명 이상의 노동자가 다쳤다. 또한 사고를 직접 목격한 수백 명의 노동자가 트라우마로 고통받았다. 그리고 사고가 난 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사고 이후 경찰과 노동부의 수사와 조사가 있었다. 삼성중공업은 사고 3개월 뒤인 2017년 8월 4일 ‘안전실천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그러나 경찰도, 노동부도, 삼성중공업도 모두 “왜 두 개의 크레인이 충돌했는가”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노동계는 사고 이후 줄곧 “왜 두 개의 크레인이 충돌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고통을 받아야 했는가?”를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것이 규명되고 제대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크레인 충돌 사고가 아닌 다른 사고가 발생했을 때, 또다시 대형 인명참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런 의미에서 사고의 이름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가 아니라 ‘삼성중공업 해양플랜트 사고’로 할 필요가 있다. 사고로 죽고 다친 노동자들은 크레인에서 일한 노동자가 아니라 해양플랜트에서 일한 노동자들이었고, 사고가 대형 인명 참사로 이어진 원인 역시 크레인 충돌이 아닌 조선소(해양플랜트)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있기 때문이다.

 

1 삼성중공업 해양플랜트 크레인 사고 1주기 ‘추모와 투쟁 주간’ [출처 지회].jpg

 삼성중공업 해양플랜트 크레인 사고 1주기 ‘추모와 투쟁 주간’ [출처: 지회]

 

“이대로는 또 사고난다”는 노동자의 증언

 

사고 며칠 뒤, 사고가 난 해양플랜트에서 일했다는 한 노동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후 그 노동자는 사무실로 직접 찾아와 사고가 난 작업현장이 어떤 조건에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이대로는 또 사고 난다 -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가 말하는 크레인 사고”, http://gnfeeltong.tistory.com/189 경남노동자민중행동 필통). 공기(工期)가 바쁘다고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노동자들을 투입해 일을 시키고,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작업이 진행되어도 누가 무슨 작업을 하는지 서로 알지 못하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제대로 된 안전조치 없이 작업이 이루어지고……. 그는 이 같은 무리한 공정 진행과 위험한 혼재작업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또 사고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평소에도 노동자들끼리 “여기서 불 나면 다 죽겠다”는 말을 해왔다는 얘기는 섬뜩했다.

사고 석 달 뒤인 2017년 7월 30일 삼성중공업에서 일하는 물량팀 노동자가 하청노조 홈페이지 익명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항시 마찬가지고 쭉 그렇게 일을 시키고 있지만, 급하면 단기 물량팀 엄청나게 집어넣고 아침 조회 끝나고 작업장 이동 시 통로는 좁고 사람은 넘쳐나 5미터 가기도 힘이 듭니다. 점심시간에는 밥 한 끼 먹으려고 그 더위 속에 10분 이상 사람들에게 시달려야 하고, 작업하는 데 있어서는 우린 항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지를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밑에서 작업하고 있으면 위에서는 파워작업으로 엄청난 소음과 먼지로 앞도 잘 안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런 작업환경에 대하여 불만을 표출하면 올 사람 많으니까 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말과 폭언을 듣기 일쑤입니다.”(“삼성중공업 이대로 가면 제2에 크레인 사고 난다”, http://cafe.daum.net/gtgu/e417/1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다음카페) 사고 3개월이 지났지만 조선소 작업 현장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노동자도 “삼성중공업 이대로 가면 제2에 크레인 사고 난다”고 썼다.

 

다단계하청 법으로 금지하라

 

2013년부터 2017년까지 300인 이상 조선소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 76명 중 66명(87%)이 하청노동자라는 사실은 ‘위험의 외주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조선업 300인이상 사업장 사망사고 현황자료 분석’. [보도자료] "올해 조선업 사망사고, 100% 하청노동자로 드러나" 2017.09.12. 정의당 이정미 의원실 홈페이지 http://leejm.co.kr/888?category=653442). 지난 4월 25일 ‘2018년 최악의 살인기업’에 1위~공동 5위로 선정된 8개 기업에서 2017년 산재사고로 사망한 37명의 노동자는 모두 하청노동자였다(‘[보도자료] 2018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민주노총 홈페이지 http://nodong.org/index.php?mid=statement&page=3&document_srl=7236919 ).

그런데 조선소에서 위험의 외주화는 ‘다단계 하청’이라는 고용구조를 통해 더욱 심화된다. 이번 사고의 경우에도 크레인 충돌에 초점을 맞춘 많은 언론은 충돌한 두 개의 크레인을 하나는 원청에서 하나는 하청업체에서 담당하고 있었던 사실을 많이 언급했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 것은 사고가 난 해양플랜트 작업현장의 다단계 하청 구조이다.

사고가 난 마틴링게 P모듈에서는 사고 당일 1,623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 삼성중공업 소속 정규직은 159명(9.8%)이고 나머지 1,464명(90.2%)는 사내/사외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이들 하청노동자 1,464명은 형식적으로는 15개 사내/사외 하청업체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또다시 수십 개의 재하청, 물량팀에 소속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5개 업체 중에 8개 업체 1,063명(72.6%)이 도장, 보온 업체 소속인데, 도장, 보온 업무는 조선소에서 특히 재하청 물량팀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직종이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사고로 죽고 다친 31명 노동자는 모두 하청노동자인데 그 중 17명(55%)이 재하청, 물량팀 노동자였다.

원청 조선소가 아무리 돈을 많이 투자하고 좋은 안전시스템과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재하청, 물량팀 등 다단계 하청노동자에게는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원청 조선소는 하청업체를 관리하는 협력회사운영팀도, 안전을 담당하는 HSE(Health‧Safety‧Environment)도 재하청, 물량팀의 규모와 실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오직 단기간에 최대한 많은 작업을 해야만 적자를 보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에서, 재하청, 물량팀에게 안전은 전혀 고려사항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정상적인 기업이라고 할 수 없는 영세한 재하청, 물량팀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한 안전관리의 주체로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조선소에서 다단계 하청 구조를 법으로 금지하지 않는 한 조선소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중대재해를 결코 막을 수 없다.

*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 보고서 역시 “조선업 중대재해 방지와 안전 확보를 위한 정책 제언”으로 “다단계 재하도급을 금지하고 필요한 경우 제한적 허용”할 것을 가장 우선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재해 노동자 트라우마 대책 시급히 마련하라

 

삼성중공업 해양플랜트 사고는 중대재해에 따른 노동자 트라우마 대책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분명히 알려주었다. 고용노동부는 사고현장에서 일하던 1,623명의 노동자 중에 사고를 직접 목격한 노동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 2017년 6월과 10월 두 차례 설문조사를 실시하였지만, 조사에 참여한 인원은 592명(36.5%)와 671명(45.8%)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 설문조사에서 사고를 목격한 사람은 394명이었고 그 중 목격 및 수습한 노동자가 61명이었다. 그러므로 1,623명 전체 노동자 중에 사고를 목격한 노동자의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한편 6월 설문조사에서 592명 중 161명(27.2%)이, 10월 설문조사에서 671명 중 115명(17.1%)이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161명의 위험군은 매우심각 13명, 심각 38명, 경도/중등 110명이었고, 10월 설문조사에서 115명의 위험군은 매우심각 17명, 심각 34명, 경도/중등 64명이었다. 이들 노동자에게는 심리상담-치료-산재요양으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트라우마 대책이 절실했다. 그러나 정부에는 트라우마 대책과 관련한 아무런 시스템이 없었고,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은 6월 설문조사 이후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노동자들을 그대로 방치했다. 사고 1년이 지나도록, 다행히 노동보건단체와 법률단체의 지원을 받아 산재 신청을 해 승인을 받은 노동자는 부상자 5명, 사고 목격자 7명 등 모두 12명뿐이다. 결국 대다수 노동자들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혼자 감당해야 했고, 지금도 그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17년 9월 11일 뒤늦게 산업재해 트라우마 관리프로그램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고용노동부 홈페이지 http://www.moel.go.kr/news/enews/report/enewsView.do?news_seq=8005).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해당 사업장에 트라우마 관리프로그램 시행을 지도․권고하고, 노동자에 대해서는 가까운 근로자건강센터를 방문하여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것이 전부다. 즉 기본적으로 책임을 기업에 떠넘기고 있으며, 단편적인 상담 이상의 체계적인 시스템은 전혀 없다. 중대재해의 피해자 대부분이 하청노동자인 현실에서 기업에 책임을 전가하는 대책은 전혀 실효성이 없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국가가 책임지고 ‘조속한 실태파악→상담→산재 신청 및 치료→완치 후 현장복귀’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트라우마 관리프로그램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작업중지기간 하청노동자 휴업수당 원청이 지급하라

 

사고 다음날 삼성중공업을 찾았을 때, 정문 앞에는 출근했다가 작업중지명령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고 나온 하청노동자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이들은 저마다 앞으로 먹고 살 일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재하청, 물량팀 노동자의 경우 휴업수당을 받은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업중지명령 기간 휴업수당을 받지 못한 많은 하청노동자들이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삼성중공업을 떠나야 했다.

사고 당시 삼성중공업에는 152개 하청업체에 30,698명의 하청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다. 이들 하청노동자는 작업중지명령으로 최소 4일~최대 31일 휴업을 하였으나, 휴업수당을 법적 기준에 따라 지급 받지 못했다. 삼성중공업은 협력회사협의회와의 협의를 통해 65.2억 원을 손실보상금으로 각 협력업체에 지급했으나 이는 하청노동자가 받아야 할 법적 기준에 따른 휴업수당에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은, 2017년 8월, 9월, 11월 세 차례 하청업체 휴업수당 미지급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그 결과 근로감독 대상이 된 14,853명 중 10,420명이 휴업수당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으며, 미지급 총액은 27억 4천만 원이 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으로 확인한 노동자(14,853명)는 휴업수당을 지급받아야 할 전체 하청노동자(30,698명)의 48.4%에 불과하다. 또한 근로감독에서 제외된 15,845명의 노동자들은 주로 재하청, 물량팀 노동자들인데 이들은 일당제나 직시급제 임금체계로 되어 있어 휴업수당 미지급금액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그러므로 실제적인 휴업수당 미지급 총액은 노동부가 근로감독을 통해 확인한 27억 4천만 원의 최소 두 배는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조선소 원하청 현실에서 중대재해로 인한 작업중지명령 기간의 휴업수당을 원청 조선소가 책임지지 않으면 하청노동자, 특히 재하청, 물량팀 노동자에게 휴업수당이 제대로 지급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는 현행법을 소극적으로 해석해서 하청노동자 휴업수당에 대한 지급책임을 원청에게 묻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비록 몇 명 뿐일지라도, 하청노동자가 원청 삼성중공업에 휴업수당을 직접 청구하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고용노동부와 검찰이 하청노동자 휴업수당 미지급에 대해 삼성중공업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재정신청을 하여 법률적 다툼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더 나아가 금속노조 소속 조선하청 3개 지회는 작업중지 기간 하청노동자 휴업수당에 대한 원청의 지급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및 하도급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금속노조 법률원과 함께 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개정안이 마련되면 국회 토론회를 열어 사회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정부와 국회에 법 개정을 요구할 것이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하라

 

검찰은 삼성중공업 해양플렌트 크레인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 15명을 기소했다. 그러나 그 중 회사 경영진은 조선소장 단 1명 뿐이다. 당시 삼성중공업의 최고 책임자였던 박대영 전 사장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렇게 기업의 최고경영인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 현실에서, 노동자의 죽음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17년 8월 17일 ‘중대산업재해 예방대책’을 발표하면서 “사망사고에 대한 책임자 제재 실효성 제고”를 위해 “현장책임자로 선임하도록 되어 있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역할을 대표자가 담당하도록 제도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2018년 2월 9일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에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는 기존과 같이 선임하고, 다만 대표이사에게 “매년 회사의 안전과 보건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여 이사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얻”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을 뿐이다.

노동계에서 이른바 ‘기업살인법’에 대한 논의를 해 온 지도 꽤 오래되었다. 2015년 7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가 출범하였고, 2017년 4월에는 노회찬 의원을 통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발의된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으며, 사회적 이슈에서도 한 발짝 물러난 느낌이다.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어 ‘중대재해 기업살인법’을 제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방안이 마련해야 한다.

 

이처럼 삼성중공업 해양플랜트 크레인 사고는 다단계 하청 구조, 중대재해 트라우마 대책, 작업중지 기간 하청노동자 휴업수당,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등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조선소를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이 문제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같은 문제의 해결은 사회여론에 호소하고, 정치권을 통해 제도를 바꾸려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소 생산의 70~80%를 차지하는 하청노동자들이 직접 현장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현장의 변화도, 법제도 개선도 실제로 가능할 것이다.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더 이상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기 위해서도, 노동조합을 통해 스스로 조직화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해결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