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09] 구미형 일자리, 추진 배경과 과제 / 천용길

by 철폐연대 posted Sep 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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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 포커스

 

구미형 일자리, 추진 배경과 과제

천용길 (<뉴스민> 편집장,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회원)

 

 

지난 7월 25일 경북 구미에서 ‘상생형 구미 일자리 투자 협약식’이 열렸다. 1월 광주형 일자리 협약이 이뤄진 후 첫 ‘지역 상생형 일자리’ 협약이었다. 광주형 일자리를 두고 노동계 내에서 논란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구미형 일자리뿐만 아니라 지역 이름을 달고 회자되는 사회통합형 일자리에 대한 노동계의 시선도 엇갈린다. 정부가 추진 중인 모든 사회 통합형 일자리는 반대해야 하는가? 연봉 2천 4백만 원 일자리가 넘쳐나는 곳에 3천 6백만 원 일자리 창출을 막는 것이 정답일까. 반대로 일자리가 창출되니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도 넘겨주고, 세금을 막 퍼줘도 되는가.

 

현재까지 나타난 모습만으로 구미형 일자리에 대한 해답은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구미는 계속해서 안정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제조업 기업은 늘어나지만, 노동자는 줄어들고 있다. 자영업 비율은 높아지고 있고,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경상북도, 구미시)는 왜 사회통합형 일자리를 추진하게 됐는지, 구미 지역 노동자들의 상황은 어떤지, 구미형 일자리가 주변 지역(대구, 포항 등)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살펴보고자 한다.

 

 

구미-군산이 지역 상생형 일자리 추진에 나선 까닭

‘울산형 일자리’가 없는 이유

 

올해 2월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 확산방안’을 발표했다. 목표는 한 가지, 일자리 창출이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대상이 ‘수도권 이외 지역’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목적을 제시했다. 지역 상생형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여러 지역이 있지만, ‘울산형 일자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없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임금노동자가 다수 존재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 광주에는 기아자동차 공장이 돌아가고 있다. 절반의 임금으로 현대자동차 공장을 짓는다는 구상에 금속노조가 반대하는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결국, ‘광주형 일자리’는 타결됐다. 노동운동, 특히 비정규직 노동운동에 중요한 과제를 한 가지 남겼다. 노동자 내부 임금 격차 해소라는 과제.

 

구미와 군산이 지역형 일자리에 애를 쓴 데는 공통점이 있다. 임금 수준으로는 상위에 자리하던, 산업으로 보면 최상단에 있던 대기업들이 산업 재편과 함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군산은 GM공장 폐쇄를 겪었다. 구미는 삼성 네트워크사업부가 수원으로 이전했다. 또, 2003년에는 LG디스플레이가 경기도 파주로 공장 절반을 이전했다. 지난해에는 LG디스플레이가 처음으로 1천여 명의 희망퇴직자를 받았다. 규모를 줄이는 작업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공장 내부에서는 ‘2차 희망퇴직이 곧 있다’, ‘정리해고되기 전에 희망퇴직금이라도 받고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경북 지역내총생산 1위 구미 제조업 몰락의 전조

제조업체는 늘고, 노동자는 줄어들어

자영업체, 중소기업은 계속 늘어나

 

구미가 처한 경제 상황을 한 번 살펴보자. 구미시는 경상북도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통계청의 2016년 자료를 기준으로 경상북도 GRDP(지역내총생산)은 99.4조 원으로 전국 시·도 가운데 5위다. 1인당 GRDP는 약 3천 7백만 원으로 전국에서 4위다. 대구광역시는 1인당 GRDP가 2천만 원으로 꼴찌다.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구미시의 1인당 GRDP는 6천 6백만 원으로 경북 23개 시·군 가운데 압도적인 1위다. 2위가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울진군(4천 6백만 원)이다. 또,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1인당 GRDP 1위인 울산광역시(6천 1백만 원)보다 구미시가 높다. 1인당 GRDP가 지역 경제 척도를 파악하는 유의미한 수치라는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구미가 산업도시로서 경상북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확인하자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높은 일자리가 많던 지역에 일자리가 줄어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각하자는 이야기다. 구미에서 일자리가 줄어들면 대구도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 경상북도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하자는 것이다.

 

구미는 2019년 7월 기준으로 경북에서 가장 젊은 도시(평균연령 38.13세)이자, 포항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구미시 인구는 2018년 42만 2천여 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가 현재(2019년 7월 기준) 42만 4백여 명으로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구미에서 가장 많은 고용을 담당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가 최근 LCD 생산 중단을 밝혔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구미·파주에서 약 2천여 명의 희망퇴직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추가적인 구조조정은 시간문제다. 이미 여러 공정을 줄였고,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하던 많은 수의 노동자들은 주간 근무로 바뀌었다. 이는 수당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또, 지난해 처음으로 성과금을 지급받지 못했다(기본급여의 2배 정도가 수당과 성과금이었다.). LG디스플레이에서 일하는 노동자 상당수는 구미가 고향이 아니다.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구미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통계가 하나 더 있다. 2016년 경제총조사에 따르면, 구미의 제조업체는 4,401곳으로 2012년 이후 꾸준히 늘었다. 2013년 3,728개, 2014년 4,025개, 2015년은 4,375개였다. 그런데 노동자 수는 2013년 101,833명, 2014년 100,984명, 2015년 99,670명, 2016년 94,992명으로 계속 줄었다. 도매 및 소매업체는 2012년 6,669개, 노동자 수는 16,359명에서 2016년 7,787개, 19,541명으로 계속 늘었다. 이를 단순화하면 작은 제조업체는 늘어나는데 고용은 줄어들고 있고, 자영업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천 명 이상 사업장은 2012년 10곳에서 2016년 8곳으로 줄었다. 노동자도 2012년 35,339명에서 2016년 27,656명으로 줄었다. 20인 미만 업체는 사업장 수와 노동자 수 모두 늘어났다. 2012년과 비교하면 2016년에 20인 미만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약 1만 8천 명이 늘어났다.

   

 

정부-여당이 구미형 일자리를 선택한 이유

 

언제 어디서나 ‘경제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구미시의 경제가 나빠졌다는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숫자들을 살펴본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구미시는 경제가 나빠지고 있다. 안정된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민선 6기 동안 자유한국당 시장을 뽑았던 구미시민들이 더불어민주당 장세용 후보를 선택한 이유였다. 대기업이 빠져나가는데도 역할을 하지 못한 이전 구미시장에 대한 심판이었고, 여당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LCD 공장을 정리한다고 일회용 장갑 사용까지 수량을 제한한다는 LG디스플레이 노동자들의 이야기였다.

 

제조업의 산업구조 개편, 대구경북 지역에서 가장 임금 수준이 높았던 구미의 추락. 이것이 구미시가 지역 상생형 일자리를 추진하게 된 배경이었다. 정부는 때마침 지역상생형 일자리에 대한 방안을 내어놓았다. 정부와 여당에 구미시는 대구경북의 중요한 교두보인 상황이다. 광주형 일자리 타결 이후, 지역 상생형 일자리 추진 방안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이전부터 내년도 총선 구미을 출마를 밝힌 김현권(비례) 국회의원과 장세용 구미시장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구미지역 행정·정치를 독점했던 정당이 하지 못했던 신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을 해내겠다는 게 분명한 목표였다.

 

특히, 구미 제5국가산업단지를 건설하고도 저조했던 분양률은 제조업 도시 구미의 몰락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올해 6월 기준으로 193만여㎡에 달하는 구미 제5국가산업단지 분양률은 22%에 불과했다. 떠나는 대기업을 잡아내고, 제5국가산업단지 입주 기업을 확보한다면 2020년 총선을 앞둔 여당에는 큰 성과가 된다.

 

지역 상생형 일자리를 함께 추진할 기업 물색이 과제였고, 빠르게 LG화학으로 가닥을 잡았다. LG화학은 전기차배터리 생산을 확대하고 있었다. 폴란드에 공장을 지었고, 유럽에 제2공장을 지을 계획도 갖고 있었다. 전기차 생산기업과 가까운 곳이어야 했기에 폴란드였다. 물량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다. 이 틈을 파고들었다.

지난 7월 협약식에서 구미시는 “핵심기술의 국외유출 가능성에 대비해 미래산업의 지속적 성장을 유도하기 위한 국가적 산업 방향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LG화학을 파트너로 삼을 수 있었던 주된 이유였다. 배터리 산업 분야는 자동차와 달리 임금을 깎는 방식으로 추진하지 않아도 됐다. 노사의 양보와 타협을 강조했던 상생형 일자리 전제 조건에서 민감할 수 있는 임금 문제가 생각보다 쉽게 풀린 것이다. 아직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임금 수준을 하락시킨다는 문제 제기를 받을 가능성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정치인들은 표를 보고 움직인다. 현재 드러난 것으로만 보면 LG화학은 구미에 2024년까지 약 5천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직접고용과 협력업체를 통한 고용까지 더해야 1천여 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떠나는 대기업을 잡아 왔다는 것, 새로운 산업의 씨앗을 뿌렸다는 점은 정치적인 성과가 될 것이다. 이미 5~6월부터 이런 분위기는 감지됐다.

 

6월 5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구미시를 방문해서 정부와 여당이 힘을 썼다는 걸 강조했다. 또 이날 열린 ‘지역혁신을 통한 구미 산업위기 극복방안 토론회’ 자리에는 여·야당 국회의원이 모두 참석했지만,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떠났다. 여당(김현권, 김부겸, 장세용) 관계자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물론, 한국노총 위원장과 LG전자노조 위원장을 지낸 자유한국당 장석춘 국회의원 역시 LG전자 출신인 자신이 구미형 일자리를 유치했다고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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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역 앞 故 김용균 추모분향소 [출처: 뉴스민]

 

 

故 김용균의 죽음이 남긴 노동운동·사회운동의 몫

 

정치적인 배경을 설명한 이유는 이렇다. 구미형 일자리의 목표는 일자리 창출이다. 그러나 추진 과정과 배경은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다는 이야기다. 정치인들은 자기 몫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은 개입하지 않고 있다. 언젠가는 개입해야 할 상황이 올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는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확실한 것은 일자리 문제는 계속 화두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故 김용균 씨의 죽음을 떠올려보자. 그의 죽음은 이윤 앞에 안전을 외면한 시스템, 정치, 노동조합 탓이었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면 구미가 고향인 그가 충남 태안화력발전소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도 답이 있어야 한다. 구미는 광주처럼 반값 일자리로 갈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단체협약 유예와 같은 노동 3권을 제한하는 조항이 포함될 수도 있다.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여기에 대한 답을 구해봐야 한다. 시민권으로서의 노동권을 지켜내는 것은 시민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