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801]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 스탭으로 활동하며 / 최은실

by 철폐연대 posted Jan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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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 스탭으로 활동하며

최은실 (철폐연대 법률위원장)

 

“죽고 싶습니다.”

“우울해요....”

“이래도 되는 건가요??”

“진정하면 사용자가 처벌될까요?? 어느 정도나 처벌되나요??”

“기사보고 들어왔는데... 어떻게 말해야 하나요??”

 

노무사로 8년차를 보냈다. 육아로 중간 중간 쉬기도 했지만,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노노모)의 일원이자 철폐연대 법률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다른 노무사보다는 그래도 노동현장을 ‘더’ 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직장갑질119’ 활동을 시작하면서, 노동의 현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노동현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참혹했다. 이 많은 노동자들이 그동안 어떻게 참아왔을까 싶을 만큼, ‘직장갑질119’ 오픈카톡방은 노동자들의 폭발적인 참여로 시작되었다.

‘직장갑질119’ 오픈카톡은 11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11월 한 달 동안 약 40,200여 개의 대화가 오가고, 연인원 5,634명이 찾았다고 한다. 그 중 1,330개의 갑질 제보가 있었다. 하루에 약 44건에 해당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의 오픈카톡 공식활동시간(카톡방은 24시간 열려있지만, 스탭들이 지원하는 시간은 12시간이다.)을 고려하면, 시간당 약 3.6건의 사건이 제보된 것이다. 이런 대략적인 통계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고민이나 억울함을 호소할 곳 없이 일해 왔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직장갑질119’가 시작된 후 약 3주 정도가 지나서 오픈카톡방 스탭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오픈카톡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참여에도 불구하고 아직 오픈카톡 스탭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일주일 중 하루 4시간을 담당했는데, 때때로 혹은 자주 담당자가 없거나 담당자에게 급한 사정이 생겨 담당자가 비고는 하였다. 그럴 때마다 시간을 쪼개서 다른 스탭들이 추가로 담당을 하고 있었다. 오픈카톡방을 찾아온 당사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이 직장 내에서 다양한 갑질을 당하고 있었다.

 

사진1 '직장갑질119' 오픈카톡방 상담창 [출처 철폐연대].jpg

'직장갑질119' 오픈카톡방 상담창 [출처: 철폐연대]

 

‘직장갑질119’ 오픈카톡방 스탭을 처음 시작하는 날, 30분 전부터 들어가서 분위기를 파악하였다. 가장 난감했던 것은 질문을 받아서 답변을 작성하는 사이 다른 사람들이 계속 질문을 하거나 답변을 하기 때문에 이 상황을 따라가기가 매우 힘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니, 모든 질문에 당장 답변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말라는 거였다.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보다 자세한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메일로 상담을 진행하도록 유도하라고 했다. 그래서 우선 마음을 비웠다.

노무사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질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법률적 문제점’이었다. 그러나 상담을 하는 사람들은 ‘법률적 해결책’에 대한 궁금함 이전에 온갖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때문에 상대방의 분노와 어려움에 공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오픈카톡 공간에서 스탭으로 활동하는 대부분이 노무사나 변호사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어떤 법률적인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대략적인 법률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식으로 상담이 진행된다. 하지만 오픈카톡방의 기본 모토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공감하는 것,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하는 것, 법률적 방법 외에도 회사 내에서 혼자 또는 동료들과 할 수 있는 대응활동이나 행동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첫날 카톡의 흐름을 따라 숨가쁘게 3시간가량 상담을 진행하고 나서, 오후 5시경 ‘제약회사영업사원’이라는 아이디로 한 노동자가 접속했다. 이 노동자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부인이 출산하는 날 한 병원장에게 전화가 왔다고 한다. 조용히 전화를 받아서 아내가 출산 중이라고 했더니 병원장은 욕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영업사원을 머슴 부리듯 하고 자신의 차를 대신 운전하게 시키는 등 황당한 짓을 하는 병원장들의 행태가 몰상식한 한두 명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것을 고발하며 죽고 싶다고 했다. 상담을 하던 나를 비롯해 채팅방에 있던 다른 분들은 함께 영업사원을 위로했다. 왜 죽냐고, 노동자가 왜 죽어야 하냐며 같이 화를 내고 위로를 했다. 상담시간이 다 되어 채팅방을 나온 후에도 머리가 멍했다.

   

그런데 이렇게 죽고 싶다는 상담이 한두 건이 아니었다. 우울증에 걸린 노동자들, 다친 몸을 이끌고 출근해야 하는 노동자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괴롭히는 직장 동료와 상사에게 일상적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 그런데도 실업급여도 못 받을까봐 퇴사도 못하는 노동자들, 퇴사를 결심했는데도 회사에서 다른 사람을 구할 때까지 잡아두고 괴롭혀서 퇴사가 가능한 날짜를 물어보는 노동자들……. 사연은 끝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런 억울한 사정들, 궁금한 사연들을 그동안 어디에도 터놓고 물어볼 데가 없었던 것이다. 회사 내에 노동조합이 없고 노사협의회도 없고, 있어도 활동이 없거나 이상한 곳이고.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을 알기 전까지 그들에게는 네이버가 최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주, 두 주가 흐르면서 법률상담실 형태로 진행되는 오픈채팅방의 한계가 명확하게 보였다. 개개인이 하소연하고, 법률적 조언을 받고, 감사하다며 그렇게 대화창에서 나가는 이런 수많은 사연들의 반복. 간혹 명확한 법률적 해결책을 듣고 용기를 얻어서 가지만, 결국 법률적 해결은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전제하는 것이며, 고용노동부와 노동위원회의 태도에 따라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처음 스탭으로 활동할 때의 원칙들을 되새기게 되었다. 공감할 것, 노동자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대책을 함께 고민할 것 그리고 또 하나,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볼 것.

오픈카톡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로운 답변과 질문이 쌍방향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오픈카톡 스탭뿐만 아니라 오픈카톡에 들어와 있는 비슷한 업종의 사람들이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답변이나 조언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비슷한 업종에서 비슷한 고민이나 문제상황 들이 다수 발견되고 논의되는 경우에는 이러한 업종의 사람들이 모여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이 공간에 대한 별도의 담당자를 정해서 법률적 지원을 지속하는 것 역시 ‘직장갑질119’의 목표였다.

이러한 목표 아래에서 12월 1일에는 한림성심병원 간호사들이 오픈카톡방과 독자밴드의 수순을 거쳐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그리고 이어서 제2호 밴드 ‘병원간호사직원모임’ 밴드가 결성되었고, 3호 밴드 ‘어린이집 갑질근절! 보육교사 모임’과 4호 밴드 ‘방송계갑질119’가 12월에 차례로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아직은 동일업종의 사람들이 모인 ‘모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노동자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내고 힘을 갖기 위해서는 결국 “노동조합”의 형태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으로 발전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겠다.

 

오픈카톡방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고맙다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그러나 사실 나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 와서 이렇게 이야기해줘서 고맙고, 내 말을 듣고 힘내줘서 고맙고, 척박한 이 나라에서 노동자로 살아주고 있어서 고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고맙다. 매주 3시간,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빈 시간을 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3시간을 집중해서 보내고 나면 머리는 띵하고 정신이 없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벅차다. 오늘 내가 상담한 노동자들이 내일은 밴드로 모이고, 결국 노동조합으로 모여서 자신의 목소리를 힘차게 낼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눈물 흘리는 노동자들이 내일은 웃으며 지난 시간을 회상하게 되기를 바란다.

 

 

 * 혹시 카카오톡 오픈카톡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직장갑질119’를 찾는 방법 

 

1) 포털에서 직장갑질 119로 검색하여 최상단의 블로그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들어가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결국은 카카오톡 오픈카톡을 찾아야 한다.

 

2) 카카오톡 페이지를 열면, 오른쪽 아래에 노란색 동그라미 안에 말풍선+가 있는데, 여기를 누르면 오픈채팅을 시작할 수 있다. 오픈채팅 홈에서 직장갑질 119를 쳐서 들어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