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03]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중심으로 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검토 / 박다혜

by 철폐연대 posted Mar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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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중심으로 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검토

박다혜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

 

 

서설 – ‘위험의 외주화’ 금지의 헌법적 근거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의 규율 방향은 위험원에 대한 지배력이 누구에게 있는지, 해당 위험으로 인한 이익의 향유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정립되어야 한다. 기업이 직접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 근로자파견, 용역, 도급, 위탁, 사내하청, 외주 등 다양한 형태의 간접고용을 통해 타인에게 고용된 노동자를 사용하면서 직접 고용 시 부담해야 할 각종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기존과 같이 근로계약의 형식에 한정된 규율로는 사업장에서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에 한정하여 사업주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위험을 통한 이익향유자가 그로 인한 불이익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형평의 원리에 비추어 타당하다. 무엇보다 산업재해의 위험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관리하는 주체를 찾는 것이 산업현장에서의 위험 축소에 대한 기여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렇다면 그간 계약의 형식에 기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느슨한 의무만을 지고 있었던 기업에게 일정부분 부담이 추가된다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은 헌법이 산안법을 비롯하여 노동법에 위임한 정책의무(헌법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한다(제32조 제3항). 근로조건은 원래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의 자유로운 합의에 따라 정하는 것이지만, 이를 당사자에게만 맡기지 않고 국가가 직접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그 최저기준을 법률로 정할 정책의무를 부담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국가는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을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으로 정해야 한다. 이 정책의무에 대응하는 입법으로서 근로기준법, 퇴직급여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재보험법 등이 있다(임종률, 노동법 14면).)인 바 이는 어디까지나 타당한 범위 내의 규율이다.

 

28년만의 산안법 전부개정안이 2019년 12월 29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은 정부가 연이어 발표한 ‘중대산업재해 예방대책’과 ‘사고성 산재사망 절반 감소대책’에 따른 입법안이었는데, 2018년 2월 9일 공개된 입법예고안은 입법방향은 바람직하나 여전히 미흡하고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조차도 경영계 의견수렴, 국무총리실 산하의 규제개혁위원회, 법제처 등을 거치면서 일부 내용이 완화, 삭제되어 2018년 11월 1일 국회에 제출되었고 이후 국회 논의를 거치면서 또 한 번 손질되었다. 입법 과정에서 경영계 및 일부 전문가들은 원청의 책임범위를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며 입법안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해왔는데, 발의 초기 단계 국회에서는 여·야 모두 법안 심의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고 故김용균님 사망 이후 산안법 개정안 통과가 핵심의제로 떠올랐음에도 여전히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절대 불가를 외치며 법안을 저지한 바 있다. 과연 개정 산안법이 담고 있는 새로운 규범이 무엇인지, 이를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인지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1 2019.01.31.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에 대한 평가와 향후 과제’ 토론회 현장 [출처 일과건강].JPG

2019.01.31.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에 대한 평가와 향후 과제’ 토론회 현장 [출처: 일과건강]

 

 

 

2. 원청의 책임 강화

 

○ 관련 정의 규정 신설

 

개정법은 ‘도급’, ‘도급인’, ‘수급인’, ‘관계수급인’ 등 관련 정의를 신설하여, 위험원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도급인을 산안법상 의무의 주체로 명문화하였다. 먼저 ‘도급’이란 명칭에 관계없이 물건의 제조·건설·수리 또는 서비스의 제공, 그 밖의 업무를 타인에게 맡기는 계약을 뜻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즉 업무를 타인에게 맡기는 계약이라면 계약의 명칭에 의해 제한받지 않고 도급의 범위를 넓게 보겠다는 것이다. 위 개정법의 문구를 근거로, 산안법상 도급의 범위를 위임을 포함하여 적극적으로 확대 적용할 수 있도록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관계수급인’ 개념을 신설하여, 다단계 하도급에서 최초 도급인인 원청의 책임을 명확히 하였다.

 

○ 원청의 책임 범위 및 안전보건조치 의무 확대

 

현행법에 따르면, 원청은 ① 도급이 사업 전체 중 일부에 해당되고(일부도급 요건), ② 원‧하청 노동자가 같은 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공동작업 내지 혼재작업 요건) 생기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 이때 원청은 하청노동자가 토사 등의 붕괴, 화재, 폭발, 추락 또는 낙하 위험이 있는 장소 등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산재발생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만 구체적인 조치의무를 진다.

 

그러나 개정법의 경우 원청의 책임 범위를, 사내(동일 사업장)는 물론이고 사외라 하더라도 원청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경우로서 원청이 지배·관리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를 포함하는 ‘도급인의 사업장’으로 확대하였다. 또한 현행법과 같이 원청이 조치의무를 지는 장소의 종류를 하위법령으로 특정하여 제한하지 않고, 또 원‧하청 노동자가 같은 장소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로 한정하지 않고, 하청(다단계하청 포함) 노동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모든’ 경우에는 원청이 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책임 범위가 확대되었다(원청의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하청이 원래의 사업주로서 책임 의무를 면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고 원‧하청 공동책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원청은 하청에게 안전·보건 정보를 제공하여야 하고 이에 따라 하청이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였는지를 확인할 의무가 부여되었다. 정보제공 의무까지는 현행법에도 규정되어 있으나, 해당 정보에 따른 관련 조치를 수행하였는지 확인할 의무까지 추가된 것이다. 그리고 하청이 안전·보건 정보 제공을 요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원청이 정보를 제공하지 아니하는 경우, 개정법에 따르면 하청은 해당 도급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있고 하청은 계약의 이행 지체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는다.

 

 

3. 도급 제한 강화

 

○ (일부) 유해·위험작업 도급 금지 등 제한

 

현행 산안법상 고용노동부의 인가를 득하면 도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일부 특정 유해·위험작업에 대해, 개정법은 아예 도급을 ‘금지’하도록 하였다. 산안법에 유해·위험 작업의 도급 금지 근거가 신설된 것이다. 다만 도급 금지 대상 작업은 도금작업, 수은, 납 또는 카드뮴을 제련, 주입, 가공 및 가열하는 작업, 제조하거나 사용할 때 산안법상 고용노동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대상물질을 제조하거나 사용하는 작업에 한정되고, 이마저도 일시·간헐작업의 경우와 수급인 보유 기술이 도급인 사업에 필수불가결한 경우로 고용노동부장관 승인 받은 경우는 도급 금지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개정법은 사업주는 자신의 사업장에서 유해·위험작업 중 급성 독성, 피부 부식성 등이 있는 물질의 취급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작업을 도급하려는 경우에는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는 사내도급에 한하는 제한으로써, 사외도급의 경우 위 일부 금지 대상 작업이 아닌 한 아무런 제한이 없는 것이다(단, 후술할 적격 수급인 선정 의무는 모든 도급의 경우 해당된다.). 그리고 고용노동부로부터 승인을 받은 도급이라 하더라도, 일단 법상 제한 범위에 포함되는 작업의 경우 하도급이 금지된다. 그 외 도급 금지 또는 승인 의무 위반 시 10억 원 이하의 과징금 부과규정이 신설되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개정법의 제한 범위는 산안법상 유해·위험작업으로 명시된 작업 중 극히 일부분의 작업(22개 사업장, 1,000여 명)만의 도급을 금지하거나 고용노동부 승인을 얻도록 한 것으로 위험의 외주화를 제한할 필요성과 시급성에 비해 지나치게 소극적인 수준이다. 산안법상 명시된 유해·위험작업의 경우, 적어도 그 해당 작업은 도급을 제한(금지 내지 승인 등)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3년 내지 5년을 주기로 다발적 산업재해 발생 등이 확인되는 작업을 선별하여 도급 제한 대상에 추가하는 등, 위험의 외주화를 통제하는 범위가 적정한지를 지속적으로 검토·확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개정법에서 도급 승인제도를 사내도급에만 한정하여 적용할 이유가 불분명하고 오히려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에서’라는 제한만 우회한 채 승인을 받지 않고 사외 공간에서 아무런 통제 없이 유해·위험작업을 외주화하여 진행할 우려가 상당하다. 따라서 설령 개정법과 같이 제한된 범위의 유해·위험작업 도급만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사내도급, 사외도급 불문하고 해당 작업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지 아니하면 도급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 적격 수급인 선정 의무 및 과징금 부과규정 신설

 

개정법은 사업주에게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다른 사업주에게 도급하여야 한다는, 적격 수급인 선정 의무 규정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적격 수급인의 자격 요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적격 수급인 선정 의무 불이행 시 제재 규정이 부재한 바, 사업주의 적격 수급인 선정 의무가 단순히 선언적 규정에 그칠 우려가 상당하다. 따라서 향후 법 개정을 통해 적격 수급인 자격 요건을 법령에서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사업주가 적격 수급인 자격 요건을 위반하여 능력과 기준을 갖추지 못한 자에게 도급한 경우에 대한 벌칙규정을 두어, 실질적 규율성이 담보되도록 해야 한다.

 

 

2 광화문광장 고김용균님 시민분향소 [출처: 철폐연대]

 

4. 원청의 법 위반에 대한 처벌 강화 내지 명확화

 

현행법상 사업주의 법상 조치의무(제23조)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법정형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데(제66조의2), 검찰, 경찰, 고용노동부 등 수사기관은 통상 이 규정을 직접적인 고용관계에 있는 소속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에 해당 사업주에게 적용하고 있을 뿐 하청노동자 사망에 대해 원청에 적용하는 규정으로 보지 않고 있다. 대신 하청노동자 사망에 대한 책임을 원청에 물을 수 있는 규정은 현행 산안법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원청에게 부과된 관련 조치의무(제29조) 위반의 벌칙만을 적용할 수 있는 실정이다(가령 제29조 제3항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 이 때문에 하청노동자 사망사고에서의 원청 처벌수준이 낮은 것이다.

 

개정법은 원청의 법상 조치의무 위반으로 하청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단순한 조치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제169조, 이 부분도 법정형이 상향됨)과 구별하여 사망 그 자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근거를 명확하게 두었다(제167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형). 하청노동자 사망에 대하여 원청에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법 적용에 있어서의 수사기관의 소극성의 여지를 제거한 것이다. 다만 최초 정부 입법예고안에서는 1년 이상 7년 이하 징역형으로 규정하였으나, 이후 법 개정 과정에서 하한형 규정이 삭제되며 완화되었다. 그 외에도 사망사고에 대하여 유죄판결 혹은 약식명령이 고지되면 200시간의 범위에서 산업재해 예방교육을 수강하도록 명령(병과)할 수 있는 근거가 신설되었다.

 

그런데 개정 산안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개정 산안법은 2020. 1. 16. 시행이다.) 재해를 당한 하청노동자 故김용균님의 사망에 대해서는,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에 책임을 지울 수 없는 것일까? 산안법 개정에 대한 최근 고용노동부의 입장을 보면, 마치 이번 법 개정으로 ‘비로소’ 하청노동자 사망에 대해 원청에 책임을 지울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정법은 원청의 책임을 명확히 한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일 뿐, 현행법 체계 하에서는 하청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청 책임 부과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법리를 오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故김용균님 유족과 시민대책위원회는 故김용균님 사망에 대해 현행법 제66조의2 등을 적용하여 원청을 고소·고발하였다. 수사기관이 잘못된 법 해석 관행 뒤에 숨어 수사와 기소의 책임을 방기하지 않기를 촉구한다.

 

2 광화문광장 고김용균님 시민분향소 [출처 철폐연대].jpg

광화문광장 고김용균님 시민분향소 [출처: 철폐연대]

 

 

5. 결어 – 이것을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개정 산안법을 통해 원청의 책임 범위가 이전보다 확대되고 명확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험을 외주화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범위는 매우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안전 및 보건에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 중 극히 일부만 제한되고 있을 뿐, 화력발전소 석탄운반 컨베이어 운전작업, 기차 선로나 지하철역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등 최근 우리 사회에서 외주화된 위험의 참상을 일깨워준 위험 작업들은 여전히 아무런 제한 없이 더 취약한 노동자가 떠안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를 근거로 사업주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위험을 통한 이익향유자가 그로 인한 불이익을 부담하도록, 산안법상 ‘근로자’의 정의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정의와 별도로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업주의 정의 역시 ‘근로자를 사용하여 사업을 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사업을 영위하기 위하여 노무를 제공받는 자’ 등과 같이 고용관계를 넘어선 이익향유자로 개념화하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산업재해의 위험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관리하는 주체를 찾아 마땅한 책임과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산업현장에서의 위험 축소에 대한 기여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19. 1. 31. 민주노총과 노안단체들이 공동주최한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에 대한 평가와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발제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