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06] 故 김용균 투쟁 이후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과제 / 이태성

by 철폐연대 posted Jun 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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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故 김용균 투쟁 이후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과제

이태성 (발전노조 한전산업개발본부 사무장)

 

 

우선 故 김용균 님의 죽음을 기억하고 문제의 원인, 고민과 앞으로 해결의 길을 만드는 것에 함께해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젊은 故 김용균 님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우리 사회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죽음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솔제지 및 청년건설노동자 故 김태규 씨가 현장에서 운동화를 신은 채 일하다가 추락사 했습니다. 얼마 전 그의 누나는 울먹이며 국회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누군가의 가족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동생일 수도 있습니다. 제발! 제발! 동생의 죽음의 원인을 규명해주십시오”라고. 1년에 2,400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OECD 산재사망사고 1위, 이 나라를 이제는 바꾸어야 합니다.

故 김용균 님의 장례를 치른 이후에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 과제를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김용균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故 김용균 님의 사망 이후 정부와의 합의를 통해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국무총리 훈령을 통해 4월 3일에 출범하였고, 7월 31일까지 활동을 합니다. 국가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가 왜 죽음의 현장이 되었는지 구조적인 원인을 살피고, 고용과 안전, 보건, 인권의 측면으로 나누어서 원인을 진단하려고 합니다. 발전소의 여러 분야에서 어떤 위험이 있는지 조사하고, 정부에 권고안을 제출하며, 정부는 이 권고안을 받아서 대책을 수립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권고안에 바탕하여 법안을 만들고, 이 권고안이 잘 이행되는지 참여한 위원들이 일정 기간 모니터링을 할 예정입니다.

여러 전문가들이 진상규명위원회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현장조사를 하고 각종 자료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발전소 현장에서 죽음의 외주화가 없어지기를 바라며 저도 작은 힘을 보태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진상을 규명하려면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발전소 현장의 의견을 모으고 원인을 잘 진단하도록 하는데 역할을 하는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원인을 제대로 조사해야 제대로 된 해결방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진상규명위원회가 그런 선례를 남기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위한 활동

 

2019년 2월 5일 당정발표가 있었습니다. 故 김용균 님과 같은 일을 하던 연료환경설비운전 분야는 새로운 공공기관을 설립하여 직접고용하고, 경상정비는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당정발표 이후 정규직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공기관을 설립하여 직접고용을 하기로 한 연료환경설비운전 분야는 당정 발표로부터 3개월이 지난 5월 14일에서야 1차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또한 산재사고가 훨씬 높은 발전소 경상정비 분야는 5월 22일 1차 회의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일부 원청 정규직으로 함께 일하고 있는 젊은 노동자들은, 자기들은 고시촌에서 컵밥 먹으며 하루에 3시간 자고 온갖 알바하며 입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날로 먹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발전소 현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급속히 진행된 민영화정책 개방 이전에는 모두 안정된 정규직의 일터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다시 공공성을 강화하고 반드시 좋은 청년 일자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비용 절감과 기업적 마인드가 아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공공기관 발전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내 일터에서 위험을 바꿀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고 모든 위험업무에서 2인 1조로 일할 수 있으려면 노동자에게 권리가 있어야 하고. 비정규직이 정규직화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지도록 싸울 것입니다.

 

 

故 김용균 재단을 만들기 위한 활동

 

故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한국서부발전(원청), 한국발전기술(하청)과의 합의에서 산업재해 취약계층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차별 해소를 위해 각 3억 원과 1억 원을 기부하기로 한 바 있습니다. 故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故 김용균 동지를 추모하고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는 손피켓을 들었던 故 김용균 동지의 뜻을 기려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고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활동하는 (가칭) 김용균 재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재단은 또한 산재 피해 유가족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도 하려고 합니다. 김용균 투쟁 과정에서 삼성반도체 산재 피해자인 故 황유미 님의 아버님 황상기 님과 故 이한빛 PD 유가족을 비롯하여 故 이민호 님의 아버님 등 현장실습생 유가족들이 모여서 더 이상 산재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으로 <다시는>이라는 산재 피해자 가족모임을 만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유가족이 앞장설 때 그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계속 이어가려고 합니다.

 

 

산안법 하위법령 개정을 위한 활동

 

2018년 12월,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습니다. 그 법은 ‘김용균법’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태안화력발전소 故 김용균 노동자와 같이 일했던 발전소 노동자들은 적용받지 못하는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도급금지 업무에 발전소의 위험업무가 포함되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하위법령인 시행령을 통해서 도급금지 업무도 늘어나고 도급승인 범위에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저희가 싸울 당시 정부와 고용노동부는 하위법령을 통해 故 김용균 님의 동료, 그리고 경상정비를 담당하는 노동자 모두가 적용되도록 하겠다고 수차례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위법령인 시행령이 만들어진 지금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은 도급승인 대상을 4개 화학물질(황산·불산·질산·염산) 취급설비만으로 규정했습니다. 발전소 노동자가 다루는 석탄에는 벤젠·이산화규소·수은·납 등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었지만 이런 사실도 최근에야 입수한 자료를 보고 알았습니다. 발전소 하청노동자만이 아니라 철도 하청노동자도 빠지고, 그렇게 구의역 김군도, 태안화력 김용균도 적용받지 못하는 ‘김용균법’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산업안전보건법 및 하위법령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제대로 개선할 수 없는 슬픈 현실입니다. 용역·하청노동자는 계속 위험 속에서 일하라는 말인지, 또 국민이 죽어야 하는지 답답합니다. 그래서 이 싸움도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활동

 

마지막으로 한 가지 꼭 만들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입니다. 지난 2017년 11월 발전소 현장 설비에 끼인 후 용역업체 간부의 차로 옮겨지다 1시간 만에 사망한 노동자에 대한 사업주와 원청의 책임은 벌금형이었습니다. 편의점에서 청소년에게 술․담배를 팔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의 벌금에 처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업정지까지 당합니다. 시민의 건강을 함께 지키는 바른 사회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가 강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업장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일하던 노동자가 평생 아픔과 장애 속에 살아가게 되더라도, 그 책임은 수백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의 벌금이면 끝입니다.

자동차를 타고가다 신호 위반과 과속을 하면 범칙금을 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그곳에 갈 때 기억하고 조심합니다. 음주운전을 해서 구속되면 다음에는 음주운전을 하지 않게 됩니다. 법을 지키고 누군가를 죽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하지만 포스코, 현대제철 등 대기업들과 공공기관인 발전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노동자가 죽어도 용역업체 일이니 원청과 상관없고 사람이 죽어나가도 돈만 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처벌 수위가 너무 약하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는 안전을 등한시하고 사람의 목숨을 최우선하지 않으면 기업에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기업처벌법을 만들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도 반드시 이 법을 만들어 제정해야 합니다.

 

 

3 2019.04.28. 청년노동자 故김용균 추모조형물 제막식 [출처 필자].jpg

 2019.04.28. 청년노동자 故김용균 추모조형물 제막식 [출처: 필자]

 

 

안전은 권리입니다. 함께 싸웁시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은 모든 노동자에게, 모든 일터에서 지켜져야 합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나이와 성별, 고용형태, 국적, 신분이나 직무와 관계없이 지켜져야 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며 생명권, 즉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노동자가 안전을 위협받으며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해법은 사람을 물건과 부속품처럼 취급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청노동자로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많은 위험을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3명의 동료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어른이고 노동자인 내가 비겁했구나, 이제 그런 세상을 우리 가족과 미래에 물려주면 안 되겠구나. 사람을 더 이상 물건이나 부속품처럼 취급받게 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을 읽어 주시는 여러분도 동의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함께해서 나만 안전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듭시다. 그래야만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는, 지금의 슬픈 현실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제 나의 가족일수도, 나의 형제일수도 그리고 나일수도 있는 죽음의 노동현장을 함께 바꿉시다. 그리고 모든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듭시다.

 

오늘 여러분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다음에 혹시 현장에서 만난다면 우리 모두가 잘했노라 웃으면서 인사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