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711] 현대제철 당진공장에 해고자 있어요. / 손소희

by 철폐연대 posted Nov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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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당진공장에 해고자 있어요.

손소희 (지역사회노동자운동지지모임, 철폐연대 회원)

 

당진으로 가는 길에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반가운 건 사람일 테고, 소식은 짠했다. 해고된 지 5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최병률씨와 이환태씨가 해고자복직투쟁 천막농성을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지지와 응원을 듬뿍 담아 천막농성장에 찾아가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언제가 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당진은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질라라비> 원고를 쓰기 위해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를 찾아가는 길에 방향을 틀었다. 투쟁문화제 일정이 취소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가라고, 운전대의 방향을 당진으로 틀었다. 현대제철 정문에 지은 천막농성장을 찾아갔다.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병률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환태씨는 제사를 모시러 집에 가고 안 계셨다. 올 3월에 해고된 따끈따끈한 해고자 한근우씨를 알게 되었다. 세 명의 해고자가 비좁아 보이는 천막농성장에서 함께 24시간 농성을 시작한 것은 지난 9월 5일부터였다. 해고자들은 복직투쟁 계획을 지회에 제출했다. 지회와 간담회를 통해 투쟁을 실현시키고자 했다.

 

1 현대제철 당진공장 전경 [출처 필자].jpg

현대제철 당진공장 전경 [출처: 필자]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2012년 12월에 노조를 띄웠다. 4,500명의 정규직과 1만 명의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소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측의 탄압에 저항하며 노조를 만들었다. 병률씨와 환태씨는 2013년 9월경에 해고를 당했다. 해고자복직투쟁을 해야 했지만, 그 당시에는 노동조합의 세력을 키우는데 중점을 두고 활동했다. 2014년 노조가 인정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조합원 수는 급격히 늘어난다.

조합원 500명이던 시절에는 현대제철에 해고자가 있다는 사실을 조합원들도 알고 있었다. 당시 환태씨는 노조의 정책부장이었고, 병률씨는 노조의 조직부장으로 왕성하게 활동을 할 때였다.

현재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은 2,700명이다. 최대 규모의 노조가 되었지만 해고자복직문제는 단체협약의 주요쟁점으로 다뤄지지 못했다. 해고자 두 사람은 2015년 9월에 2기 집행부를 끝으로 노조의 직책을 내려놓는다. 해고자복직투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5년 전 떠나왔던 현장은 그대로지만, 업체는 폐업되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여전히 그 현장, 그 공정에서 생산을 하고 있다. 동료들은 병률씨와 환태씨를 잊지 않았다. 출퇴근 선전전을 할 때면 자리에 함께해주었다. 동료들은 퇴근할 때면 천막농성장으로 찾아와 술잔을 기울이며 해고자들의 외로운 투쟁을 지켜준다. 두 해고자는 원직복직의 요구를 단 한 순간도 잊어버린 적이 없었다. 부당해고는 대법원까지 갔지만 패소했다. 그러나 분명히 부당해고였다. 싸워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지금은 현대제철에 비정규직 해고자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조합원이 대다수다. 해고자에 대한 유언비어도 현장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2016년부터 본격적인 해고자복직투쟁을 시작했다. 우선은 공장 앞에서 해고자 문제를 알려내는 선전전을 시작했다. 2017년 해고자복직투쟁의 계획을 지회로 제출했다. 지회 임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투쟁계획을 구체화시켜 나가려 했다. 그러나 지회의 반응은 뜨겁지 않았다. 지회와 행보를 함께하기 위한 시간은 더디게 지나간다.

그러던 따뜻한 봄날에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노사가 중국 상해로 산업시찰을 떠난다. 그곳에서 노조 간부들이 사측으로부터 성접대를 받는 사건이 터졌다. 처음엔 소문이 나돌았다. 지회 집행위에서 추궁하고 묻자 당사자가 직접 양심고백을 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일파만파 파장이 커졌다.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도덕성 논란에 휩싸인다.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훼손하고 조합원대중에게 엄청 큰 실망과 불신을 안겨준 사건이다. 회사와의 유착관계에 대한 시비를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다.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면서 진상규명을 해나가고 있지만,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해고자복직투쟁은 지회의 큰 환영을 받지 못한 채 천막농성을 시작한다. 하청업체의 현안 문제로 싸우고 있는 또 다른 조합원들과 공동으로 선전전을 하기도 한다. 천막농성장에 2,700명이 다 모이지 않지만, 현장의 조합원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제 자리를 잡은 듯 보였다.

 

따끈따끈한 해고자

한근우씨는 올 3월에 징계해고를 당했다. 근우씨는 해고를 자행한 사측도 밉지만, 자신의 해고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노조의 옹졸한 처신에 화가 나있다.

근우씨는 서울사람이다. 자영업으로 일식집을 운영했다. 일은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다. 근우씨는 지인의 소개로 취업을 했다. 집에서 먼 거리의 당진 현대제철 간판만 보고 찾아왔다. 최저임금이니, 노동법이니, 이런 건 전혀 몰랐다. 서울생활 할 때 노조라는 단어를 들어보긴 했지만 관심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근우씨는 현대제철 운송업체인 ‘대주중공업’에 입사했다. 대주중공업은 장비와 덤프를 취급하는 업체다. 거대한 현대제철의 공장 안에서 석회석과 같은 재료를 실어 나르는 덤프트럭을 운전했다. 주야간 맞교대로 근무했다. 임금은 포괄임금이라서 쉬는 날 없이 일해야 했다. 그러나 근우씨가 느끼는 현장의 문제점은 감시와 통제였다.

일을 마치고 동료들 간에 술 한 잔 걸치면서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면 다음날 관리자들 귀에 다 들어가 있다. 동료와 동료 사이를 믿지 못하게 만들고 감시하는 현장 분위기는 삭막하기만 했다. 현장노동자들은 늘 위축되어 있었다. 꽤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들도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계약서를 써야 했다. 현장의 상태와 환경은 열악했다. 사소한 사고가 많았다. 바닥에 고철덩어리들이 늘어져 있다 보니 타이어 펑크가 자주 발생한다. 그럴 때면 관리자는 시말서를 요구한다. 현장노동자들의 고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관리자들의 횡포에 치가 떨렸다.

노조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근우씨는 함께 일하는 동료 2명과 함께 찾아가서 가입했다. 현대제철 현장은 인간답게 살기에 기본이 전혀 안 갖춰져 있다고 근우씨는 생각했다. 근우씨는 잘리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그 때는 일자리야 여기 말고도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된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무엇보다 현장을 바꾸고 싶었다. 인격적으로 멸시당하는 것을 더 두고 볼 수 없었다. 꼭 관리자들의 버릇은 고쳐주고 싶었다.

노조에 가입했던 2013년에 노조는 체계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대주중공업 하청현장의 문제보다 병률씨와 환태씨가 다니던 업체가 폐업을 하면서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하는 사건이 컸다. 근우씨는 노조에 기대지 않고 현장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싸워갔다. 그 당시에 운송하청업체들의 노조가입률이 높았다. 노조활동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운송업체들의 환경이 더욱 열악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매우 신경이 날카롭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근우씨가 해고되던 지난 3월, 근우씨는 현장대의원이었다. 임금과 휴일 등 현안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사측 책임자에게 의견을 전달하고는 지사장과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측 책임자는 현장대의원과의 대화를 피하고 노조집행부와 바로 연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날은 2016년 연말이었다. 현장노동자들이 송년회 회식을 하는 자리에 사측 책임자가 늦게 참석했다. 현장대의원인 근우씨가, 당시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출과정에 사측이 개입된 정황이 드러나 따져 물은 것이 발단이 되었다. 서로 격앙된 말다툼 중에 주먹이 오고 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 일로 사측은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사측의 책임자는 정직 2개월을 받았다. 근우씨는 징계해고를 당한다. 전혀 형평성에 맞지 않는 징계결과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부당해고로 노동위원회 제소했다. 결과는 모두 부당해고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사측도 순순히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현대제철의 운송업체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보니, 일하던 중에 다툼이 생기면 주먹질도 빈번히 발생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단 한 번도 징계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노조의 현장대의원인 근우씨가 징계해고라니 표적징계가 아닐 수 없다.

노조에 가입하고 처음 교섭위원으로 활동하던 2013년에도 표적이 되어 징계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날, 노사 교섭을 마친 시각은 밤 10시 30분이었다. 동료들과 밥을 먹으면서 술을 한 잔 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아침 출근해서 사측 관리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한 후 덤프트럭 운전을 하고 상차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사무실 직원이 직접 현장으로 근우씨를 데리러 왔다. 직원의 차를 타고 사무실로 갔더니 경찰을 대동하고 음주측정을 한 것이다. 전날 마셨던 숙취가 완전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을 터였다. 사측은 치사한 방법으로 노조탄압을 일삼았다. 10일 정직 징계를 당했다. 그 때 10일 동안 일하지 않고 단체교섭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현대제철 운송하청 대주중공업의 표적이 되어 징계해고를 당한 것이다.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근우씨의 징계해고 사안을 술자리에서 일어난 개인의 문제로 치부했다. 근우씨의 생각은 달랐다. 장소가 회식장소일 뿐이지, 노조의 현장대의원으로서 사측 책임자와 언성이 높아질 만큼 사안의 심각성이 있었다. 그 일로 주먹이 오고 간 것은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해고사유가 될 수 없다. 이것을 노조활동이냐 아니냐의 잣대를 들이대어 해고자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 것은 결국 사측이 의도한 대로 노조가 해고자를 방치하는 것이다. 현장대의원에 대한 노조탄압으로 인식하지 않는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의 처사에 야속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노조가 생긴 후로 업체별로 해고가 있었지만, 해고 문제가 이슈로 된 적은 없었다. 누가 그만뒀다는 소식을 접하긴 했다. 분명 회사의 압박이 있었을 테지만 스스로 그만둔 걸로 읽혀진다. 현대제철 원청이 노무관리에 상당히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본이 의도한 결과겠지만,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이 속한 업체의 현안문제 해결에 급급하다. 특히나 임금인상이 가장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지회 차원에서 하청업체 표준임금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놓아 업체별 편차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근우씨가 안타까운 것은 노동조합이 단결할 수 있는 큰 요구를 걸고 싸움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제철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다른 이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노동자의식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조합원이 교육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길 원한다. 노조의 덩치는 산만큼 커졌지만 제대로 파업을 통해 자신의 힘을 확인하지 못한 채 사업장 현안문제 해결로 시야가 좁혀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고자들을 포함해서 현장의 조합원들은 현대제철의 불법파견에 대해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법률에 의존한 정규직화의 한계를 보았다. 노동자의 권리를 온전하게 지켜내고 정규직화의 길로 가기 위해서라도 2,700명의 조합원이 자신의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근우씨는 이야기한다.

앞으로 해고자복직투쟁에 화려한 계획이 있지는 않다. 현대제철 현장에 꾸준히 해고자문제 뿐 아니라 노동현장의 부당하고 불이익한 사안에 대해서 폭로하고 노동자의 관점을 키우기 위해 알려내는 일을 꾸준히 할 것이다.

근우씨가 생각하는 투쟁의 당면목표는 자신이 소속되어 일했던 대주중공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머지 두 해고자는 원래의 공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근우씨는 병률씨와 환태씨를 통해서 민주노조운동을 보고 배웠다. 그들은 동지다. 함께 싸우고 함께 투쟁하는 중이다.

근우씨가 자신들의 싸움을 통해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조합원들이 투쟁을 훈련하고 힘을 축적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근우씨는 노조활동을 하면서 조합원들과 소소한 모임을 가진 적도 많았다. 앞으로도 현장의 조합원들과 소모임을 만들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위한 학습과 토론을 활성화시키면 좋겠다. 그런 풀뿌리 같은 모임이 여기저기 많이 생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최근 더 많이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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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고자복직투쟁 농성천막과 선전전 [출처: 필자]

 

근우씨가 해고당한 지도 7개월째에 접어든다. 노조의 생계비 지원을 받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광화문에 촛불을 밝힐 때 함께 참여하면서 아빠의 노조활동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살림살이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는 현실 앞에서, 아내가 마냥 이해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직은 내색하지 않고 믿어주는 것 같아 다행이다.

어려운 여건에도 근우씨는 투쟁을 멈출 수 없다. 사측의 부당함을 많이 봤다. 자본가와 싸워서 이기고 싶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