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712] 민주노조와 함께 단련되는 삶, 세종호텔노동조합의 투쟁 / 허지희

by 철폐연대 posted Dec 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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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와 함께 단련되는 삶, 세종호텔노동조합의 투쟁

허지희 (세종호텔노동조합 조합원)

 

고등학생이 된 조카가 호텔경영학과에 가고 싶다고 한다. 깜짝 놀라 말리는 나! 호텔 객실부 또는 프론트에서는 계약직으로밖에 일할 수 없을 것이며 계약이 만료되어도 절대 정규직이 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F&B(식음료부서)에서는 아예 상주하는 서빙직원을 두지 않고 필요한 시간에 인원요청에 맞춰 인력업체에 맡길 것이며 조리부서도 계약직이나 알바로만 일할 수 있으니 다른 길을 찾아보거나 굳이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싶다면 외국에 가는 게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이 상황이 바로 내가 23년 근무해 온 세종호텔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올해 여름 나는 세종호텔에서 근무한 자신의 23년을 기록할 기회가 생겼다. 룸메이드를 하며 얻은 목디스크가 심각해져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 후 혼자 병실에 누워 개인 블로그에 써놓은 일기를 정리했고 ‘#룸메이드일지’라는 제목을 붙여 페이스북에 공개하기로 했다.

 

세종호텔에 입사한 1994년, 내 나이 24세. 당시만 해도 사장님이 직접 신입사원 면접을 보는 공개채용이 있었고 호텔 대표전화와 투숙객들의 문의에 응답하는 전화교환 8명은 전원 정규직이었다. 입사 당시 교환실장님이 35년을 근무하고 정년퇴임하셨기에 나도 그런 길을 걷게 될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2014년 창립기념일이었던 12월 20일, 오전 10시에 20년 근속기념 표창장과 메달을 수여한 세종호텔은 당일 오후 5시에 전화교환원인 나를 룸메이드로 발령냈고 같은 부서내 발령이기에 문제없다고 했다. 내가 민주노조인 세종노조의 조합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년 동안 전화 받는 업무만을 해왔던 나로서는 객실청소 업무를 배우고 시작하는 데에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함께 싸워보자는 김상진 전 노조위원장님의 격려가 있었고 룸메이드팀에는 나와 함께 2012년 호텔로비 점거파업에 참가했던 10여 명의 조합원들이 든든한 지원군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룸메이드일지’는 소중한 나의 동지들과의 일상을 정리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으니 내게는 ‘난중일기’인 셈이다.

 

룸메이드 업무를 시작하며 첫 번째 어려움은 청소하는 사람의 유니폼을 입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틀도 못 되어 끊어지게 아픈 허리와 발바닥의 통증이 유니폼의 부끄러움을 잊게 했다. 육체노동을 해 본 적 없던 내게 하루 평균 만보기로 2만 8천~3만 2천 보를 찍는 룸메이드의 업무는 두 달 만에 체중이 6kg 빠지고 생리가 끊길 정도의 엄청난 노동강도였다. 숙련된 룸메이드조차도 면역력 저하로 대상포진과 갑상선, 터널증후군, 테니스엘보, 디스크 등 근골격계질환을 직업병으로 안고 사는 게 현실이다.

2주간의 짧은 교육이 끝난 후 현장에 투입되었다. 객실의 문을 열고 침대를 볼 때마다 베드 커버를 벗기고 새 것으로 교체하는 시간이 너무너무 오래 걸려 한숨밖에 안 나왔다. 하루 청소하는 객실이 처음 5개에서 매주 1개씩 올라 15개가 될 때까지, 그날 배정된 객실을 다 청소하지 못할까봐 두려워 잠을 못 잘 정도였다. 청소만으로도 벅찬 하루를 견디고 나면 퇴근길엔 여지없이 졸면서 귀가하는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종호텔은 룸메이드들에게 주방용 위생모자를 씌웠다. 나와 같은 날 룸메이드에서 호텔로비를 청소하는 퍼블릭팀으로 발령난 노동자들에게도 함께였다. 주방용 위생모자는 한 마디로 ‘김치공장’ 모자였다. 기존의 유니폼과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땀을 많이 흘리는 룸메이드에게 피부병과 탈모까지 유발시켰다. 룸메이드와 퍼블릭 조합원들은 노조에서 보낸 몇 차례의 공문에도 김치공장 모자 씌우기를 취소시키지 않는 회사를 향해 ‘모자벗기’로 항의했다.

물론 세종노조가 파업을 풀고 현장에 복귀하자마자, 회사가 만든 복수노조에 가입해있는 룸메이드들은 제외한 세종노조 조합원만의 항의행동이었다. 하루에 한 장씩 받는 업무지시서와 팀장의 협박과 회유에도 여성조합원 전원이 서로를 격려하며 그 시간을 버텨냈다. 그 사건으로 소수인 세종노조는 큰 자신감을 얻었고, 당시 팀장은 회사를 떠나게 됐다.

2015년 여름 메르스 사태로 호텔경기가 나빠졌다. 세종호텔에도 빈 객실만 넘치자 사측은 룸메이드를 식당으로 보내 서빙과 설거지, 뷔페 즉석요리 코너를 맡기려 했다. 그때도 세종노조는 보건증 없이 불법업무는 하지 않는다고 회사와 맞장을 떴다. 또한 과장급 이상, 또 계장급 이상 실시한 연봉제 시행으로 호텔의 중간간부를 다 내보내는 희망퇴직이 있을 때 30명 이상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갔으나, 세종노조 조합원들은 본인의 동의 없는 임금삭감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싸워나가고 있다.

그 외에도 세종호텔은 김상진 전 노조위원장님을 전환배치하고 끝내 해고시켰고, 직원들의 의사조차 묻지 않고 복수노조의 노조위원장과 대의원 3명의 직권조인으로 전직원 성과연봉제를 통과시켜 오래 장기근속해 온 직원들의 임금에 온갖 꼬투리를 잡아 삭감시키고 있다.

그러나 세종노조는 끈질긴 선전전과 집회로 세종대 주명건 이사장의 욕심과 불법을 알리고, 세종호텔의 방만한 경영 결과로 힘없는 노동자들이 퇴사하고 전환배치되고 임금이 삭감되는 현실을 알려 왔다. 그렇게 싸워온 결과 올해 여름에는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대상이 되어 근로감독관이 나오는가 하면 복수노조제 시행 이후 처음으로 교섭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교섭 자리에서도 모든 것을 경영상의 어려움 때문이라고만 핑계 삼는 세종호텔에 화가 난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회사와의 크고 작은 투쟁으로 단련되어 온 세종노조이기에 우리는 우리를 믿는다. 220여 명의 조합원 중 대다수가 회사의 압력에 세종노조를 탈퇴해 복수노조로 가입하고, 15명밖에 남지 않은 소수노조이지만 세종노조는 항상 말해야 할 것을 말해왔고 우리를 지지해 주는 연대가 있기 때문에 더 강하다.

10월에 열렸던 후원주점은 그래서 이름도 연대주점이었다. 세종노조를 응원하는 연대동지들과의 신나는 파티였기 때문에 호텔 셰프들이 대거 출동해 소고기편채, 육회, 생선초밥 등 어떤 후원주점에서도 만나기 힘든 일품요리들을 선보였다. 수많은 연대동지들이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1층과 2층을 빈자리 없이 꽉 채워주었고, 우리들은 그 힘을 받아 현장에서 더욱 힘차게 싸워나갈 수 있다.

 

디스크수술 후 3개월의 병가에서 복직한 지 2주가 되었다. 일하다 얻은 병인데 같은 일을 하러 출근한다고 말리는 친구도 있었으나 전쟁터로 돌아왔다. 세종호텔이 나뿐 아니라 모든 조합원들을 전환배치 시키는 것은 일하라고 보낸 게 아니라 못 견디겠으면 스스로 떠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매일 출근할 것이다. 매일 출근해서 산재도 신청하고 디스크 때문에 같은 업무수행이 힘드니 다른 부서로 발령 내달라 요청하고 회사에 당당히 할 말도 하면서, 세종호텔로서는 지긋지긋할 세종노조 조합원 허지희의 얼굴을 정년 때까지 질기게 보여줄 생각이다.

 

3 일도 힘들고 회사도 힘들게 하지만 즐겁게 집회하는 세종노조 [출처 필자].jpg

일도 힘들고 회사도 힘들게 하지만 즐겁게 집회하는 세종노조 [출처: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