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01] 나의 연대 이야기, “가만히 못 있겠다” / 신유아

by 철폐연대 posted Jan 0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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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나의 연대 이야기, “가만히 못 있겠다”

신유아 (문화연대 활동가, 철폐연대 회원)

 

 

한 달이 채 안 되는 사이 세 분이 돌아가셨다. 철거민, 택시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은 슬픔보다 분노의 무게감을 더 던져준다. 한 분은 여의도 국회 앞에, 또 한 분은 마포구청 앞에, 그리고 한 분은 광화문광장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순식간에 서울은 눈물로 범벅이 돼 버렸다.

어디로 가야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은 나만 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기분과 마음이 연대활동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가만히 있으라.” 세월호 아이들에게 던져진 바로 이 말이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우리 “가만히 있지 말자.”

   

4,000일이라는 숫자가 대수롭지 않은 것인 듯, 날짜를 더해가며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거리에서 노숙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2007년 어느 날 문자로 통보받은 해고 이후 12년을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 기타(guitar) 노동자의 이야기다. 회사는 저임금의 노동력을 확보하여 고수익을 내기 위해 인도네시아, 중국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국내 공장을 없애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는 어떠한 소통도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은 2007년이다. 일단 대전에 있는 공장으로 가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문화연대의 활동이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어딘지 잘 어울린다고 느껴졌다.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와의 첫 대면을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12년간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과의 연대는 애증의 관계로 형성되었고 투쟁 과정 속에 갈등과 반목의 시간을 수도 없이 보내야 했다. 문화로 싸우는 투쟁은 여타 다른 노동자들의 투쟁과 조금은 달랐고 그러다 보니 갈등과 고뇌의 시간도 많이 생겼다. ‘이게 무슨 투쟁이야’ 부터 ‘우리가 이런 거나 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니다’ 라는 말, 심지어 ‘연대가 투쟁을 장기화시킨다’는 말까지 들어야 하는 억울한 시간들도 많았다.

 

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과의 연대는 생산물이 기타이다 보니 음악을 하는 문화예술가들과 연대를 만들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는 기타를 칠 줄 모르고 기타를 치는 뮤지션들은 기타의 생산과정을 모르기에, 이들간의 상호 연대야말로 최고의 투쟁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었고 그 판단은 적중했다.

홍대를 배경으로 활동하던 뮤지션들의 대부분은 콜트기타를 알고 있었고 콜트기타를 만드는 회사가 노동자를 어떤 식으로 탄압했는지 알고나서 부터, 더 이상 피 묻은 기타로 연주를 하고 노래를 하는 것은 삶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뮤지션들 사이에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12년간 500여 팀의 밴드와 뮤지션 들이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투쟁에 연대공연을 했다. 투쟁은 노래로 물들었고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은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며 투쟁하는 뮤지션이 되었다.

 

뮤지션들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밴드나 가수 들은 12년간 그들만의 생태계에서 살아남기도 하고 사그라들기도 하며 또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2007년 함께했던 팀들 중 여럿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기도 했고, 하청업체 직원이 되기도 했고, 작은 가게의 주인이 되어 이 땅의 현실과 직면하며 살고 있다. 그들은 그 삶 속에서 콜트‧콜텍 노동자의 투쟁을 되돌아보며 새롭게 자신들의 삶과 투쟁을 벌이며 산다. 연대는 일방적이지 않다. 상호 영향을 주며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연대 와주셔서 고마워요”, “투쟁하고 싸워주셔서 고마워요.” 서로에게 고마운 관계가 되는 것이다.

 

2 2018.12.17. 파인텍 굴뚝농성, 사회원로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 [출처 신유아].jpg

2018.12.17. 파인텍 굴뚝농성, 사회원로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 [출처: 필자]

 

400일이 넘도록 75미터 굴뚝 위에서, 회사는 약속을 지키라고 외치는 노동자들도 있다. 2016년 겨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노숙 텐트농성을 했다. 박근혜 정부가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에게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블랙리스트를 비밀리에 작성한 것에 분노한 문화예술인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을 때다. 광화문 노숙 텐트촌은 하루하루 식구들이 늘어갔고 그 중 가장 마지막에 결합한 단위가 구미에서 올라온 파인텍 노동자들이었다.

 

408일간 해고자 복직을 외치며 고공농성을 한 끝에 사측과 합의를 했던 스타케미칼. 자회사를 만들어 그리로 복직하는 것을 약속받고 파인텍이라는 이름의 자회사로 복직했다. 그러나 파인텍은 유령회사였고 이에 분노한 파인텍 노동자들은 스타플렉스(스타케미칼 사장 김세권이 만든 회사로 현재 본사가 목동에 있다.) 본사가 있는 서울로 상경투쟁을 온 것이다. 이 때 처음 파인텍 노동자들과 알게 되었고 광화문 노숙 텐트촌에서 함께 살면서 조금씩 소통하기 시작했다.

 

2017년 겨울, 목동 굴뚝에 두 사람이 올라가 농성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한강 줄기가 흐르는 둑방 옆 굴뚝은 아찔하게 높았고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조용했다. 저 위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야 했다. 추운 겨울 털실을 집어 들었고, 뜨개작품들로 거리의 가로수를 감싸기 시작했다. 오가는 자동차 운전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나는 파인텍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시작했고 문화예술인들이 함께할 수 있는 꺼리를 찾아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을 고민하며 지내기를 1년, 굴뚝 위 두 사람은 여전히 거기에 있고 연대하는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왜 당사자인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은 당사자의 목소리로 그저 당사자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 것인데……. 혁명을 이야기하고, 정권을 비판하고, 헬조선을 바로잡자고 외치는 노동자들이 야속했다. 대규모 집회 현장에서 귀에 인이 박힐 정도로 들었던 이야기, 어느 순간부터 허공을 떠다니는 그런 이야기는 듣기 싫어졌다. 좀더 현실적이고 조금은 솔직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굴뚝 위에서 몸은 건강한 건지, 굴뚝이 흔들리는 건 아닌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잠은 잘 자는지……. 나는 그런저런 안부가 궁금했다. 그럼에도 꼼짝도 안 하는 자본가의 얼굴이 궁금했고 그를 혼내주고 싶었다. 연대하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가 궁금하다. 연대하는 사람들과 자본을 혼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싶었다. 그래서 빨리 위험한 굴뚝에서 내려오길 바랐다.

 

어느 순간부터 내 발길이 목동으로 가지 않았다.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정작 듣고 싶은 이야기는 들을 수 없어 심란해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제발 건강하게 하루빨리 내려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방법을 찾고 싶은데, 그런 소박한 마음이 협소한 투쟁으로 느껴진다는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부담스러웠다. 마음은 굴뚝을 보고 있지만 몸은 그곳에 없는 이상한 연대가 몇 개월간 지속되었다.

연대단위 회의를 한다고 모여라 해서 나가보아도 답은 보이지 않았고 투쟁 당사자들은 여전히 현실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정부투쟁 의지가 더 커보였다. 이들의 투쟁은 헬조선의 악의 축 자본가과 수구세력 들을 향한 투쟁이었고 결국에는 혁명이 답이라는 확장된 투쟁신념이 너무도 확고한 기조였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당장 우리만의 투쟁으로 바꿔낼 수는 없는 것들이었다. 도무지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연대를 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순간들이었다. 나의 연대가, 문화적 투쟁이, 다양한 방식의 기획들이 큰 투쟁을 이야기하는 당사자들에게 그저 양념처럼 느껴진다는 것, 때로는 투쟁으로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에 적잖이 힘들었다. 투쟁기조는 당사자가 정하고 그 기조 안에서 투쟁을 조금 풍성하게 해줄 문화적 연대만을 원하는 태도는 문화를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문화적 연대를 고마워했지만 그 고마움은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굴뚝농성조차 100일, 200일을 넘기며 속절없이 시간을 더해가고 있었다. 투쟁의 동지로 기조와 방식 등을 함께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었으면 했다. 서로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누면서 투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넓혀갔으면 했다. 굴뚝을 바라보는 모두의 마음이 단 하나일 수는 없겠지만, 굴뚝 위 노동자들이 하루빨리 건강하게 내려오고 파인텍 노동자들이 승리해서 현장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심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다시 굴뚝으로, 단식농성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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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어느 날 [출처: 신유아facebook]

 

연대는 무엇일까. 상호 영향을 주며 삶을 바꾸어 가는 것이다. 누군가 주기만 하는 일방적인 연대는 없다는 말이다. 함께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상처받고 힘겨워도, 서로를 토닥거리며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연대가 아닐까. 연대자의 말과 행동이 당사자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고 당사자의 말과 행동이 연대자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오랜 시간 함께하는 이유는 연대자이면서 바로 당사자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이따금 상처 받으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이유는 이 모든 투쟁이 사회적 의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고, 그것은 누구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현장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