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02] 문화예술노동자, 산별노조 건설을 향해 발 내딛다 / 안명희

by 철폐연대 posted Feb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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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 

 

문화예술노동자, 산별노조 건설을 향해 발 내딛다

안명희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철폐연대 집행위원)

 

 

“밥 먹고 예술합시다”

 

2011년 12월 진보신당 문화예술위원회(준), 문화연대, 칼라TV의 공동주관으로 <밥 먹고 예술합시다>라는 예술인 집담회가 열렸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과 최고은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예술가들의 잇따른 죽음에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예술인들의 생존권을 보장받고, 예술의 사회적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 예술인들의 노동조합인 예술인소셜유니온 준비위원회가 공식 발족했다.

2012년 8월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가 주관하고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진행한 <문화노동자 불만집담회>가 열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모아 권리의 형태로 재구성하고, 이들 노동자들이 누려야 할 권리의 법적·사회적 기준을 만들기 위한 과정 속에서 문화예술 분야의 노동자들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5조: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 모두가 노동자들이다. 특수고용 노동자, 문화예술 노동자, 가사 노동자, 실업자와 구직자, 해고자 모두 노동자로서 자주적으로 단결하고 투쟁할 권리가 있다”로 표현되었다(<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전문,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오월의봄, 2018), 16~21쪽.).

전체 운동 속에서 문화예술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너무도 작아서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문화예술노동자들은 지지치 않고 쭉 말해왔다. 밥 먹으며 예술하고 싶다고,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문화예술인도 노동자라고,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문화예술 활동의 결과는 작품이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작품은 상품으로 거래된다. 문화예술인들이 노동자가 아닐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땅의 법과 제도는 문화예술노동자들을 사각지대로 몰아넣고 생존권도 노동권도 보장하지 않으려 한다. 문화예술노동자들이 처한 환경은 권리를 빼앗긴 비정규직 노동자, 불안정한 노동자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문화예술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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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9.19. 문화예술인 노동자선언 [출처: 문화예술노동연대]

 

 

문화예술노동자, ‘문화예술노동연대’ 깃발 아래 모이다

 

2017년 예술인 고용보험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결성된 문화예술노동연대의 궁극적인 목표는 문화예술인 산별노조 건설이다. 현재 함께하고 있는 단위로는 △ 공공운수노조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서비스연맹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 공연예술인노동조합,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뮤지션유니온, 예술인소셜유니온, △ 무용인 희망연대 오롯, 서울연극협회 복지분과,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문화연대 등 총 12개이다.

문화예술노동연대의 핵심적인 활동은 문화예술노동자 관련 법안 대응이다. 대표적으로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과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이 있다. 2012년 시행된 예술인복지법은 특수고용 노동자들과의 형평성을 운운하며 노동자성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한 고용노동부의 반대로 고용보험은 빠지고 산재보험 적용만 보장했다. 때문에 문화예술노동자 모두가 당연하게 고용보험을 적용받아 실업 중에도 생존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은 문화예술노동연대의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2018년부터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계기로 예술인들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노동과 복지 등의 직업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적극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는데, 문화예술노동자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는 법 제정에 대한 개입도 문화예술노동연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또한 정기적으로 교육과 토론 등을 배치해 문화예술노동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있다. 문화예술노동연대와 함께하고 있는 연대 단위의 역량 강화와 내부 교류를 위해 단위별 특성에 맞는 문화예술 교육을 ‘달팽이학교’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다. 달팽이학교의 첫 수업은 동화와 글쓰기에 관한 것으로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가 주관하였다. 그리고 문화예술인 노동자성을 주제로 단위별 사례와 연구를 격월로 발표하는 ‘예술노동포럼’도 진행하고 있다. 첫 예술노동포럼은 <공연예술분야 근로조건 실태조사보고서: 연극 분야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한, 공연예술인들의 노동자성을 중심으로 노동조건을 살펴보는 ‘공연예술, 노동을 말하다’였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활동이 연대투쟁이다. 문화예술노동자들은 노동자 투쟁에 늘 함께해왔다. 파인텍 투쟁, 콜텍 투쟁, 고 김용균 추모제에서 문화예술노동자들을 찾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특히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 성원으로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에 참여하고 있는데, 문화예술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 주체로 전체 투쟁에 함께하는 건 처음이다. 숙제는 비정규직 투쟁에서 문화예술노동자들은 어떤 요구를 가지고 어떻게 함께할 것인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해가야 한다는 것이고, 한편으론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우리 안의 투쟁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화예술 현장에서는 다양한 사안으로 싸우고 있는 문화예술노동자들이 있다. 우리 안에서도 낯선 투쟁이라는 것이 부끄럽지만, 이들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문화예술노동자들의 단결을 꾀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예술노동연대, ‘문화예술산업노동조합’을 희망하다

 

문화예술인들을 대변한다는 단체는 많다. 그러나 문화예술노동자들이 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는 노동조합은 찾기 어렵다. 출판지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개별 출판노동자들이 가입할 수 있는 노조는 없었다. 방송스태프노조도 불과 작년에 만들어졌다. 현재 예술학원 강사들과 예술고등학교 강사들은 가입할 수 있는 노조가 없다. 어찌어찌해 활동 가능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문화예술노동자들과는 딱히 관련이 없는, 동질감을 갖기 어려운 상급단체에 소속되기 마련이다. 문화예술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상급노조가 없어서다. 문화예술노동자들이 전체 운동 속에서 발언력이 약한 건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어렵고,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여러 연맹으로 흩어져 있어 한목소리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문화예술노동연대 안에서 단체교섭을 하고 있는 노동조합은 영화노조, 예술강사노조, 방송연기자노조 정도다. 사용자단체를 지정하고 단체교섭을 준비하고 있는 건 출판지부 하나다. 문화예술노동자들은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일하는 공간이 일정하지 않으며 프로젝트별로 고용이 이뤄지거나 프리랜서 형태로 일을 한다. 실업과 반실업을 오가고 있어 생활이 불안정하다. 그러다 보니 사업장 교섭을 넘어선 교섭을 시도해야 하는데, 사용자를 지정하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교섭의 대상인 사용자단체를 지목하는 일이 급선무다. 또한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이 문화예술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좌지우지해서 문화체육관광부를 대상으로 한 교섭 역시도 주요하게 배치되어야 한다.

그래서 문화예술노동자들은 희망한다.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하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 영역을 넘어 문화예술이라는 울타리 내에 있는 모든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 문화예술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보장받고 문화예술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문화예술자본과 교섭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 그리고 민주노조 안에서 전체 비정규직 투쟁에서 소외되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이것이 우리가 문화예술노동자들의 산별노조, 문화예술산업노동조합(가칭)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다.

 

 

강조하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현장’ ‘조직화’라는 과제

 

2018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콘텐츠 분야 - 노동시간 단축 기본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유연근로시간제 활용을 적극 제시했다. 출판노동자는 5인 미만 사업장이 76.9%를 차지하고 있어 실제 노동시간 단축의 영향을 받지 않음에도 탄력근로제가 언급되는 형편이고, 영화노동자는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었으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논의로 장시간 노동이 유지될 판이다. 이에 반해 예술강사는 단시간 노동이 문제다. 초단시간 노동자라서 주휴일, 연차휴가, 퇴직금 등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술강사들은 임금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더라도 수업 준비시간을 인정받아 직장건강보험이 도입되길 바란다. 공연예술노동자들은 공연 연습시간도 임금 지불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방송연기자의 1일 최대 촬영시간은 표준계약서상 18시간이고, 영화노동자는 12시간이다. 방송연기자와 영화노동자 모두 촬영 준비 및 대기시간이 면밀히 측정되지 않음을 지적한다. 이처럼 노동시간이라는 의제 하나만 가지고도 문화예술노동자 간에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당연히 맞닿은 지점도 있다. 중요한 건 각각의 문화예술 현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통해 문화예술노동자들의 요구를 찾고, 문화예술노동자 전체의 힘으로 공동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다음 단체교섭이다. 문화예술노동자들은 문화예술계 내부의 권력을 깨뜨리기 위한 자기 노력을 해야 한다. 선배와 선생님이라는 지위에 가려진 사용자라는 민낯을 확인해야 하는 불편한 과정이 문화예술노동자들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단체교섭을 해보면 안다. 문화예술 권력을 가진 선생님에게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워야 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적극적으로 사용자를 찾고 책임을 물리는 것, 미룰 수 없는 일이다. 현재 문화예술노동연대에서 사용자나 사용자단체가 특정되지 않은 노동조합으로는 공연예술인노조와 뮤지션유니온이 있다. 출판지부는 단체교섭을 준비하면서 출판사 사장들의 모임인 대한출판문화협회를 사용자단체로 지목했다.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의 작가들은 출판지부와 마찬가지로 출협을 사용자단체로 지목할 수 있다. 계약의 형태는 다르지만 작가와 출판노동자의 노동에 대해 책임져야 할 대상은 출판사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자단체를 특정하고 단체교섭을 해왔던 영화노조는 올 들어서는 각 제작사별로 교섭을 달리하고 있다. 사측 교섭단에 위임한 제작사보다 비위임한 제작사들이 많아지면서 위임사들에 한정된 단체협약이 실제 현장에 적용되기 어려운 면이 있어서다. 방송연기자노조 역시 과거에는 지상파 방송사를 통합해 교섭했으나 현재는 각 방송사별로 교섭을 진행하는데, 특히 작년 10월 대법원에서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아 그동안 교섭을 해태해왔던 방송사와도 교섭을 재개한 상태다. 아직 문화예술노동연대 안에서 단체교섭의 구조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한 바 없지만, 이제라도 각 단위당 단체교섭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사례를 축적하고 문화예술노동자 단체교섭의 상을 그려나가야 한다.

현재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참가 단위를 중심으로 산별노조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결의를 다지기 위해 간담회를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내부 다지기를 넘어 산별노조 건설 논의에 참가할 문화예술 단위를 확장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참가 단위의 확장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아직 조직되어 있지 않은 개별 문화예술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별도의 노력 역시도 해야 한다. 우리가 산별노조를 건설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문화예술노동자들의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서다. 문화예술계 내부의 억압적인 권력 구도를 깨고, 문화예술자본과의 교섭을 통해 전체 문화예술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당연히 현장에서 나온다. 문화예술노동자 조직화 없이 산별노조 건설은 있을 수 없다. 상부의 논의를 통한 참가 단위의 전환으로 만들어지는 노조는 진정한 산별노조라 할 수 없다. 문화예술노동자 전체를 대상으로 문화예술산업노동조합을 건설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는 조직화 방안을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 조직화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문화예술노동자 조직화 전략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산별노조 건설 전망이 제출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불안정한 노동이 일반화된 시대, 노동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노동자들이 점차로 확산되는 지금, 이미 불안정성을 내재화한 문화예술인들이 노동자로 다시 서는 과정이 경직된 운동사회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 좋겠다. 문화예술노동자들의 이해에만 함몰되지 않고,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러한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