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708] 최저임금투쟁이 진짜 싸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 정록

by 철폐연대 posted Aug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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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감이 부러울 줄이야……’
최저임금투쟁이 진짜 싸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정록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 운영위원)

 

2018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결정됐다. 주 40시간 기준, 월급으로 환산하면 1,573,770원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몇백 원씩 찔끔찔끔 인상돼 온 최저임금에 비한다면 대폭 인상이다. 게다가 올해만 반짝 올리는 게 아니라 2020년까지 1만 원으로 꾸준히 올리겠다고 한다. 최저임금 인상 결정과 동시에 정부는 중소영세사업장 지원 대책을 내놨다. 3조 원 현금지원을 비롯해 납품단가 반영, 불공정거래 단속, 프랜차이즈 가맹점 권익 보호 방안이 포함됐다. 그리고 대통령은 최저임금 1만 원은 사람답게 살 권리를 상징한다고 일갈한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최저임금을 통해 첫 발을 내딛었다. 5월에야 출범한 새 정부는 준비된 자신들의 계획을 차곡차곡 집행했다. 그럼 우리는?

지난 4월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서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철폐 공동행동’(이하 만원행동)을 꾸렸다. 비정규직, 재벌문제, 노조할 권리 등 주요한 노동문제를 포함하고 있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최저임금 1만 원 실현을 중심에 놓고 꾸려진 사회적 연대체였다. 반월시화공단노동자 조직화를 목표로 하는 월담도 만원행동에 함께하기로 했고, 안산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안산 만원행동’을 구성해 매주 최저임금 상담과 만원행동 가입 캠페인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3 2017.7.5. 안산만원행동 난장 [출처 월담].jpg 2017.7.5. 안산만원행동 난장 [출처: 월담]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관심사
최저임금은 노조로 단결하지 못하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다음 해 임금인상폭을 사실상 결정하는 임금으로 기능해왔다. 특히 반월시화공단과 같은 중소영세사업장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근속과 숙련도를 추가해 임금을 지급했고, 파견이나 비정규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예외 없이 최저임금이 그해 임금이 되어왔다. 그래서 비슷한 조건의 서비스업 알바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공단 노동자들도 최저임금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최저임금 결정에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지만, 올해는 얼마가 오를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사장과 임금협상을 할 수는 없지만, 법정최저임금은 사장에게 영향을 끼치는 유일한 강제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단을 비롯한 안산지역 시민사회에는 최저임금 투쟁에 대한 답답함과 피로감이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수백 명이 참가한 최저임금인상 걷기대회도 열고 대규모 서명운동도 벌였지만, 지역의 이런 흐름과는 상관없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황당한 방식으로 결정되는 최저임금은 박탈감만 더 불러왔다고 한다. 이건 패배감과는 다르다. 패배감은 적어도 맞서 싸우는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이러한 박탈감과 소외감은 누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우리의 투쟁이 어디로 모이는지 확인되지 않을 때 느끼는 공허함, 재미없음이다. 

 

‘안산 만원행동’은 안산에서 만나는 노동자-시민들의 요구와 투쟁이 전국적인 최저임금 투쟁과 만날 수 있는 고리를 만들고 싶었다. 대선후보들 모두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으로 내거는 시점에서 1만 원 요구의 정당성을 알리는 걸 넘어서, 이런 열망과 욕구가 구체적인 운동으로 이어지고 정부와 재계를 압박하는 힘으로 작동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먼저 우리 편을 모으는 가입운동부터 시작했다. 실제로는 서명운동을 빙자(?)한 가입운동이었지만, 최저임금과 관련한 소식을 정기적으로 전달하고 함께할 수 있는 행동을 제안하려고 한다며 연락처를 요청했을 때, 흔쾌히 연락처를 건넨 이들이 300여 명이나 됐다. 정기적으로 문자메시지를 전달하고, 오픈카톡방을 열어 매일 관련 소식을 올렸다. 300여 명이 적은 숫자 같지만, 최저임금 싸움에 함께하겠다는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려다가 되돌아와 연락처를 건네준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고맙고 소중했다. 

 

최저임금위원회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을 만드는 것
우리 편을 모았으면 그 힘을 모아 상대와 싸워야 한다. 그런데 매년 최저임금투쟁은 최저임금위원회 주변을 맴돌며 그 싸움을 잘 벌이지 못했다. 올해 최저임금 투쟁 정세는 여느 해와는 달랐다. 새 정부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로드맵을 발표하며 최저임금결정 과정의 전면에 나섰다. 그리고 양대 노총은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최임위 참여거부를 선언했다. 최저임금결정제도로 기능해온 최저임금위원회가 사실상 무력화된 상황이었다. 최저임금은 개별 기업수준에서 노동생산성, 숙련도, 회사의 영업이익률 등을 따져서 결정하는 시장임금이 아니라 한 사회에서 노동의 사회적 기준을 세우는 정책임금이다. 그렇다면 경총-양대노총-교수 등이 모여서 임금협상을 할 게 아니라, 정부의 책임 아래 국민적인 토론과 논의 속에서 매년 결정되고 책임 있게 집행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존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임금은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를 놓고 말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러한 최저임금을 사회적 합의를 빙자한 임금흥정으로 만들고, 이를 결정하고 집행해야 할 정부의 정치적 책임을 감추는 훌륭한 도구로 기능해왔다. 그래서일까? 최저임금 투쟁은 경총 규탄집회도 가고, 어느 대학교수 규탄도 하고 협상 잘 못하는 노동자위원 비판도 하면서 갈팡질팡해왔다. 공익위원을 앞세워 사실상 정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해왔다는 사실은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의 메모에서도 확인했었지만, 이번 최저임금결정 과정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부의 15% 인상계획을 중심으로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의 수정안 도출이 요구됐고, 정부의 의지대로 15% 이상의 인상이 이루어졌다. 예년과는 다른 정세임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최저임금위원회가 작동했고, 노동자위원들은 그 일부로 역할을 했다. 여전히 아쉽다. 우리가 155원 협상안을 제시한 경총과 싸워야 했을까? 뒤에서 사용자들을 압박해 16% 인상안을 관철한 정부를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만원행동’에는 두 가지 길이 있었던 것 같다. 최저임금에 대한 정부의 책임 있는 정책결정을 요구하며 최저임금의 역할, 효과, 집행에 대한 사회적 논쟁과 합의를 만들어가는 길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동자위원들을 지지하고 사용자위원들을 압박하며 공익위원들을 견인한다는 고도의 협상의 길이 그것이다. 올해도 두 번째 길을 갔다. 최저임금 1만 원 실현을 바라는 힘들을 어떻게 모을지, 누구와 어떻게 싸울지 갈팡질팡하면서 말이다. 
최저임금위원회라는 구조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적 힘을 만드는 첫 번째 길이 쉬울 리 없다. 하지만 그 길에서, 안산에서 만난 300여 명에게 최저임금 1만 원 실현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제안하고 새로운 장소를 열어젖힐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모여서 싸울 때 비록 1만 원 달성에 실패할지라도 정부가 16% 인상했다며 자랑스러워 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 앞에서 왜 지금 1만 원이 어려운지 해명하고 사과하도록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최저임금이 물건값 흥정하듯 결정되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살 권리라는 분명한 사회적 권위를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최저임금투쟁이진짜싸움이될수있기를바라며_정록-질라라비201708.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