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806] 최저임금 실태조사에서 만난 반월시화공단 사람들 / 이미숙

by 철폐연대 posted Jun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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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실태조사에서 만난 반월시화공단 사람들

이미숙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

 

 

2018 최저임금이 16.4% 인상되면서 언론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역효과를 걱정하는 기사들이 넘쳐났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기업들은 줄도산을 할 것이고, 고용시장은 악화되어 실업률만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기업들은 발 빠르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대비책 마련을 위해 머리를 쥐어짰고, 각종 세미나와 포럼 등을 통해 편법들을 개발해내고 공유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에 불을 붙이면서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되돌리는 일에 가담했다.

 

반월시화공단도 술렁거렸다. 지난해 가을부터 월담은 최저임금 꼼수 제보 전화를 받기 시작했고, 모두들 비슷한 이야기들을 했다. 기본급은 올랐으나 상여금이 반토막 났고, 복리후생적 수당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바꾸면서 기존의 조건들은 후퇴했고, 노동자들에게는 일방적 통보나 형식적 동의만을 구한 채 변경이 되었다. 그나마 그런 형식적 절차조차도 지키지 않는 곳이 태반이었다.

 

2016년 진행했던 노동환경실태조사 결과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 중 26.1%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고, 비정규직의 최저임금 미만율은 38.6%였다. 가장 심각했던 파견노동자들의 최저임금 미만율은 51.35%에 달했다. 최저임금 꼼수가 한바탕 쓸고 간 공단에서 안 그래도 최악이었던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 변화에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했고, 그들의 목소리는 반영이 되었을까. 월담은 공단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2018년 3월부터 5월 둘째 주까지 ‘최저임금 위반/적용 실태조사’를 총 30회에 걸쳐 진행했다. 노동자들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공장 근처 식당 앞과 출퇴근길 전철역이 주요 거점이었다.

 

“이거 하면 뭐가 달라지는 게 있어요?”

“이미 다 바뀌고 난 뒤라서, 지금 해봤자 의미 없잖아요?”

“계산을 안 해봐서 얼마인지 모르겠는데?”

“우리 회사가 워낙 어려워요. 서로 양보하는 거지”

“관리자들 다 보는데, 회사 옆에서 받고 있으면 어떻게 해”

“난 최저임금 아니에요”

“돈은 회사가 알아서 주는 거잖아요”

   

30만 명 가까이 일하고 있는 반월시화공단은 삭막할 정도로 공단 거리에서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출근과 동시에 현장으로 들어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퇴근하면 통근버스를 타고 공단을 빠져나간다. 공장 밖으로 나오는 시간은 단 한 시간, 점심시간뿐이다. 규모가 큰 회사들은 사내에 식당이 있지만 중소영세업체들은 주로 회사 밖 식당을 이용한다. 종소리와 동시에 달리기를 해서 밥을 먹고, 잠깐의 휴식을 위해 다시 걸음을 재촉해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 그들을 붙잡고 선전물을 나눠주고 5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했고, 대부분은 냉담했다.

 

“이거 하면 뭐가 바뀌는 게 있냐?” 질문을 던진 50대 노동자는 돈 주는 놈들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열변을 토하셨다. 대통령만 바뀌고 나머지는 다 그대로인데 뭐가 제대로 되겠냐며, 하루아침에 사장님 머릿속이 뒤집어지지 않는 이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임금이 오르고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정책이 바뀐다고 해도 그것을 적용시킬 힘이 없으면 현장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경험적 확신이 오히려 현실에 몸을 맞추게 했고 변화를 위한 시도를 멈추게 했다.

 

남색 작업복을 입은 여성노동자가 다니는 회사는 이미 작년 하반기에 다 바뀌었다고 했다. 상여금이 12개월로 분할되고 수당은 줄었지만 임금총액이 줄어든 건 아니어서 사람들도 큰 불만은 없고, 개별로 뭔가에 사인을 하라고 해서 했는데 그게 취업규칙인가 근로계약서인가 모르겠다고 했다. 꼭 확인해 보시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관리자들이 밥 먹으러 왔다 갔다 하는데 여기서 설문조사를 받고 있으면 누가 하겠냐고 핀잔을 주던 노동자도 회사에 불만은 있지만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했다. 요즘 회사 사정도 안 좋아서 내 입장만 주장할 수도 없고, 그저 일 잘하는 성실한 노동자로 인정받아서 안 잘리고 계속 다닐 수 있으면 좋은 거라고 했다. ‘성실’함의 기준은 ‘불만을 말하지 않는 거’였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임금이 얼마인지 모르고 있었다. 안산역에서 만난 노동자는 ‘임금은 회사가 알아서 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했다. 명세서를 받긴 했는데 한 번도 꼼꼼히 계산해 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유해수당, 고열수당 등 무슨 명목으로 주는지 모르고 받았던 수당들이 말없이 사라진 것을 보고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임금은 주는 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가능할 만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되는 것이고, 액수를 정하는데도 내 의견이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우리의 말에 쉽게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부턴 주기로 한 금액이 제대로 지급되고 있는지는 잘 살펴볼 것이라고 했다.

 

“난 최저임금 아니에요” 철강회사를 25년 넘게 다닌다는 남성노동자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실제, 재해 위험률이 높은 기계나 철강 쪽 기술직 남성노동자들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여성노동자들, 나이가 적어 보이는 노동자들에게 쏠렸다. 씁쓸하지만 현실이 그랬다. 아무리 회사를 오래 다녀도, 손이 빨라서 물량을 많이 내도, 불량검사를 완벽하게 해내도 ‘특별한 기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단순생산직 여성들의 임금은 남성들에 비해 늘 적게 책정된다.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똑같은 일을 해도 차이는 발생했다. 높은 임금을 받아서 자존감이 높았던 철강회사 남성노동자에 비해, 적은 월급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자존감은 무엇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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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11. 마지막 실태조사를 마치고, 에이스들 인증샷 [출처: 월담]

 

실태조사는 마무리 되었다. 이제 분석을 마치면 후속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조사를 하면서 계속 들었다. 가동률이 줄어들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어 공단을 떠났고, 그만큼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저임금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임금수준을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설문에 응해준다고 해서 당장 상황이 바뀔 것 같지도 않았다.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필요해 보였다. 후속작업은 그 지점부터 고민되어야 할 것 같다. 최근 최저임금 위반으로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던 M사업장은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서 실제 많은 부분이 바뀌고 있다. 취업규칙도 만들어졌고, 체불된 임금도 받아냈다.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진행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스스로 움직이니까 바뀌는 것이 있고 뭐든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움직이면 바뀔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지금 공단노동자들에게는 필요한 것 같다. 월담의 최저임금위반감시단 활동은 그 가능성을 만드는 일에 집중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