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811] 크런치모드 거부하고 노동조합으로, 스마일게이트지회 ‘SG길드’ / 차상준

by 철폐연대 posted Nov 1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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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노동자를 위한 전략과 실천

 

크런치모드 거부하고 노동조합으로, 스마일게이트지회 ‘SG길드’

차상준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노동조합 스마일게이트 지회장)

 

 

우리는 즐거움을 만드는 사람들, 그러나 우리는 정말 즐거운가?

Crunch는 스포츠 경기에서 게임이 끝날 수도 있는 중요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문제는 이 크런치 모드가 짧은 기간이 아닌 연 단위로 길어진다는 것이다. 사람이 장시간 일을 하면 집중도가 떨어진다. 집중도가 떨어지면 실수가 많아지니 업무의 효율성도 극도로 저하된다.

크런치 모드가 장기화되면 개발자는 정공법보다 꼼수를 찾는다. 이게 나중에 눈덩이처럼 커지다 보면 서버가 떨어지는 등 게임이 마비된다. 회사는 금전적 손해를 보고, 노동자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몇 배의 시간을 소모한다. 한마디로 오늘을 살기 위해 내일을 포기하는 개발 방법론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크런치 모드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날카로워진다. 여유가 있으면 해프닝으로 끝날 문제들이 대립과 충돌로 이어진다. 자신의 일이 많고 정신적으로 피폐하니 주변을 보지 않는다. 주변을 보지 않으니 더 이상 협력이 되지 않는다. 각자 자기 연주만 해서 듣기 싫은 밴드의 연주처럼 우리의 게임이 변해간다.

 

왜 우리는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가?

게임산업은 조사한 자료가 3개월이 넘어가면 폐기처분할 정도로 유행에 민감하고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한다. 게임을 개발하는 데에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0년까지도 걸린다. 개발 기간이 길어질수록 성공할 확률도 급격하게 떨어지기에 회사는 빠른 개발을 요구한다. 빠른 게임 개발을 위해서는 성공의 노하우, 실패의 노하우, 기술적·인력적 지원, 효율적인 개발 프로세스 등의 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 없이 ‘빠르게’만 요구하니 필연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지금까지는 게임을 처음 개발할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게임이 출시된 후에도 장시간 노동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주로 만드는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의 생리적 특징부터 알아야 한다.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은 미국이나 일본에서 주로 만들어지는, 일정 금액을 주고 완성된 게임 CD를 사는 패키지 게임과는 다른 형태이다. 미국이나 일본도 출시 전 크런치 모드가 있다. 이 온라인과 모바일 게임은 출시할 때 ‘완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런칭’이라고 표현한다. 쉽게 말해서 배를 바다 위에 띄워서 항해를 시작하고(런칭) 배가 운행하는 도중 바다 위에서 주기적으로 배를 개수(게임 업데이트)해 확장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짧게는 일주일, 길면 두 달에 한 번씩 꾸준한 업데이트를 기반으로 한 속도전이 장점이었고 이 방법은 필연적으로 크런치 모드의 일상화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요즘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중국의 경우는 엄청난 자금과 인력을 기반으로 3교대를 하면서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을 만들고 있다. 참고로 중국은 기본적으로 노동법이 아주 강하게 되어 있고 인력 인프라도 많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보다 3교대가 더 금액적으로나 개발적으로 유리하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강점을 중국에게 빼앗기고 있고 완성도와 게임성으로 승부 보는 미국이나 일본의 방식은 제대로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는 더욱 더 강력한 크런치 모드의 수렁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게임은 사람과 컴퓨터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위의 상황만 보면 한국의 게임회사가 조만간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매년 조금씩 성장폭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스마일게이트는 2017년도 기준, 매출이 약 6,618억 원, 영업이익률이 42.6%이다(점이 잘못 찍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몇 년째 지속했으니 과연 회사가 쉽게 무너질지는 독자분들이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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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포브스 선정 우리나라 부자 순위, 4위에 스마일게이트 권혁빈 의장 [출처: Inven]

 

게임은 사람과 컴퓨터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이 말은 게임 개발의 전부는 인력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7년도 기준 인건비는 19.5%밖에 되지 않는다.

회사는 종무식에서 항상 이야기한다. “우리는 위기이다. 그러니 더욱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우리 회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이 업계 전체가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미친듯이 일을 하다 과로사를 하고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하고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져 암에 걸리는 동료와 지인들을 본다.

회사는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몇 년간 게임을 만들어오던 스튜디오를 하루아침에 정리한다. 그리고 “너희들이 능력이 부족해 스튜디오가 없어진 것이다”라며 “이직 시 이야기를 잘해줄 테니 한 달치 월급 받고 회사를 나가라”고 권고사직을 제안한다. 회사는 사업 설정을 잘못한 자신의 책임을 지지 않고, 그 책임을 오롯이 노동자에게 지우는 것이다.

이 업계에는 ‘정규직’이 ‘정년 고용’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왜냐면 우리 게임노동자들에게는 권고사직이 그냥 일상과 같기 때문이다. 오늘 권고사직을 당하면 옆 회사로 이직을 한다. 그리고 거기서 또 권고사직을 당하면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권고사직을 당하면 ‘이직해서 연봉이나 올려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 이직조차도 어려워져 결국 업계를 떠나게 된다. 난 아직도 이 업계에서 정년퇴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노동삼권을 보장받는 새로운 이미지의 노동조합이 필요했다

올해 7월, 주 52시간 근무시간 단축으로 인한 선택적 근로시간제 도입에 서명하기 위해 회사에는 근로자대표가 필요했고, 나는 근로자대표로 선정되었다. 근로자대표로서 나는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회사와 동등하게 협상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근로자대표가 된 지 이틀 만에 근무제 변경에 서명하게 되었다. 문제가 뻔히 보이는 내용임에도 서명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 자괴감이 들고 힘이 들었다.

나는 다음번 근로자대표 활동 때 지금처럼 노동자들의 의견을 전혀 듣지 못하고 진행하는 경우 서명하지 않겠다고, 그 다음주 전체 법인 인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때 노동삼권이 보장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초기 인원들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는 의지는 있었지만 노동조합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기에 정의당 비상구를 통해 네이버 노조인 공동성명을 찾아갔다.

그리고 네이버 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연맹을 찾았고, 이때 우리처럼 비슷한 이유로 노동조합 설립을 희망한 또 다른 게임업체인 넥슨과 함께 준비했다. 스마일게이트와 넥슨 양쪽 모두 위와 비슷한 상황이었고 이 업계는 밖에서 보이는 장밋빛 모습에 비해 노동자에 대한 대우가 너무 열악했다. 양쪽 모두 차근차근 화섬식품노조연맹의 노하우를 전수 받으며 함께 비밀리에 노조 설립을 준비했다.

넥슨은 9월 3일, 우리는 9월 5일에 순차적으로 노동조합을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업계 최초로 생긴 노동조합과 그것을 이어가는 ‘연쇄효과’를 동시에 얻으며, 언론과 사회의 조명을 받게 되었다.

처음 노동조합 설립을 전사 메일을 통해 알리며 우리의 활동은 시작되었다. 2시간 만에 100명이 가입했고 게임업계 2호 노동조합 탄생이 신기한지 수많은 언론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네이버와 넥슨과 함께 전단지를 돌리며 우리가 함께 연대한다는 걸 보여주고 우리의 노동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리기 위한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어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나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간담회를 진행하고 단체협약을 만들기 위한 근무 여건 조사 설문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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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G길드 플러스 친구]

 

무엇보다 우리 각자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서로 간에 소통을 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었고, 비로소 각 법인 및 조직 간의 상황과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마냥 제3자이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면, 이제는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노동조합이 생기고 바뀐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현재까지 회사는 특별히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등의 행동은 취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회사도 노동조합이 처음이라 인사팀장이 호기심에 간담회에 와서 부당노동행위로 오인 받을 뻔한 해프닝 정도만 있었을 뿐이다.

현재 SG길드는 약 350명이 가입한 상태이며, 꾸준히 조합원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11월 7일 첫 교섭이 있을 예정이다.

 

새로운 이미지의 노동조합으로!!!

문화를 창조하는 게임업계답게 우리는 새로운 이미지의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노동조합에 익숙하지 않은 게임노동자들에게 그들이 미디어에서 본 자극적인 시위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서이다. 홈페이지와 홍보자료에는 우리의 고양이 캐릭터가 등장하며, 딱딱한 선언문에서 벗어나 게임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우리는 노동조합이 세상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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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설립 선언문 [출처: SG길드 홈페이지(http://sgguild.com)]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상생이다. 노동자들 간의 상생, 회사와의 상생, 게이머들과의 상생, 사회와의 상생이다. 점조직 구조 속에 개인주의가 강했던 게임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대화하기 시작했고 서로의 고민과 아픔을 나누고 힘을 합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노동조합을 통해 회사에게 좋은 개발 환경과 처우를 요구할 것이며, 장기적으로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여 회사와 상생할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좋은 게임은 게이머에게는 좋은 취미, 좋은 작품, 또는 좋은 스포츠가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이 일자리 창출, 수출 증대로 이어져 사회와도 상생하기를 바란다.

꿈 같은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게임노동자들은 무에서 시작해 약 20년 만에 콘텐츠 수출의 50%를 이룩했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바라며 우리 게임노동자들이 만든 노조의 행보를 지켜봐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