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811] 손과 말, 노동과 권리를 잇는 KT손말이음센터지회 / 황소라

by 철폐연대 posted Nov 1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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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노동자를 위한 전략과 실천 

 

손과 말, 노동과 권리를 잇는 KT손말이음센터지회

황소라 (KT새노조 손말이음센터지회장)

 

“이름만큼 예쁘지 않은 ‘손말이음센터’”, 지난 2017년 11월호 <질라라비>에 이정호 기자님이 기고한 글의 제목으로 우리 손말이음센터 중계사들의 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은 좀 예뻐졌을까?

 

2017년 6월 11일, 황소라의 독립영화

대학교에서 수화통역학과 전공으로 졸업 후 2011년 손말이음센터 입사.

주변에서는 전공을 잘 살렸다며 축하 일색이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손말이음센터는 청각언어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도록 문자나 수어를 음성으로 전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직원들을 ‘중계사’라 칭한다. 전공을 살려 중계사가 된 나는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일했다.

손말이음센터는 2005년 개소하여 13년이 되어 가는데, 실상 중계사들은 ‘KTCS’라는 회사의 소속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과 KTCS가 용역계약을 체결해 ‘중계사’는 간접고용노동자이다. 입사 이래 지속된 고용불안, 저임금, 관리자의 갑질 및 배임‧횡령, 상급자 및 이용자로부터의 성범죄, 높은 퇴사율로 인한 업무량 급증 등 누가 봐도 간접고용의 문제가 심각한 일터이기도 하다.

나는 잘살기 위해 노동조합을 시작했다. 반 년가량 KT새노조를 따라다니며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노동조합에 대해 공부하고 자장면도 많이 먹었다(KT새노조에서 식사를 할 때 중국집을 자주 갔다.).

2017년 6월 11일, 한국정보화진흥원 직접고용 및 근로환경 개선과 손말이음센터 규모 확대를 목표로, 12명의 주연에서 ‘황소라 지회장’으로 ‘KT새노조 손말이음센터지회’가 크랭크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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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T새노조 홈페이지]

 

뻔한 시놉시스, 운 좋은 주인공?

노조를 시작하면서 본보기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2017년 6월 21일, 야간중계사로 근무하면서 발생한 체불임금 진정을 넣었다. 3달 만에 KTCS에서 합의 요청이 와서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이를 통해서 같이 진정에 참여하지 않은 야간중계사들도 체불임금을 받게 되었다.

노조 설립한 사업장의 기사들을 보면 대부분 부당노동행위가 필수인 양 나타난다. 우리 지회도 다르지 않았다. 당시 센터장은 우리 조합원에게 직접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겁박해 2017년 6월 30일,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했다. 조사를 하다 보니 엮이고 엮인 사건들이 줄줄이 나왔고, 아직도 조사가 진행 중이다.

노조라면 한 번 이상 하는 피켓 집회도 가장 더운 8월 22일부터 내 생일인 12월 1일까지 했는데, 직원들의 조롱도 받고 모르는 분에게 응원도 받았고, 여러 기자님들을 알게 되어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중계사들이 진흥원에 직접고용된다고 하여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 집회는 잠시 쉬기로 했다.

 

2017년 6월 30일에 손말이음센터 운영 관련해 짧은 감사요청서를 한국정보화진흥원과 KT(KTCS는 KT의 계열사)에 보냈지만 응답이 없어, 9월 24일에 5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2차 감사요청서를 보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감사실에서 조사 중이라는 안내만 받고 결과를 받지 못했다.

내부에서 해결하고 싶었지만 회사는 많은 관객몰이를 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우리는 2017년 9월부터 국정감사를 위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과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에게 호소하고 직접 찾아뵈며 노예처럼 일하는 중계사들의 처지, ‘2014년 그 사건’ 등을 다시금 입에 올렸다.

2017년 10월 17일 과기부 국감과 31일 환노위 국감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진흥원을 질타했다. 환노위 국감에서는 참고인으로 출석해 펑펑 울면서 우리 이야기를 했다. 발언 내용을 미리 작성해 갔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 그 사건’을 다시 언급해야 하니 숨이 가빠지고 손이 떨려 진정제를 복용하면서 말했다. (의원석과 위원석에는 물이 준비되어 있는데 참고인석에는 물이 없었다. 건의할 수 있다면 참고인석에도 물을 제공해줬으면 좋겠다.) 의원들의 언성 높은 질타를 직접 들으니 내가 잘못되지 않았구나 하는 안심과 당사자가 말할 때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던 진흥원에 대한 억울함과 답답함이 몰려왔다.

 

‘2014년 그 사건’, 내 인생 첫 번째 굴곡

당시 사건을 되짚기 너무 고통스러워 손말이음센터 2차 감사요청서 중 진술서 내용 일부를 첨부한다.

 

야간중계사일적 일이다. 2014년 12월 중순 성폭력중계(영상화면에 남성의 성기만 노출)를 처음 받았다. 너무 깜짝 놀라 책상 밑으로 숨었다. 계속 숨어 있을 수 없어 겨우 화면을 다시 봤는데 화면 그대로 있어서 울면서 접속 종료했다. 이후 휴식 따윈 없고 계속 중계를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간도 성폭력중계에 쉽게 노출이 되어 있고 피해들이 많은데 공지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 이후 공지된 것은 캡처를 하라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중계사들은 성범죄에 노출되어 성폭력중계를 계속 받았고, 나는 많게는 하루 10번 가까이도 받았다. 1달가량 성범죄에 노출되어 회사 오는 길이 지옥 같았고 장수를 희망하는 내가 죽고 싶었다.

1월 말경 성폭력중계 화면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 더는 참을 수가 없었고 그날 같이 근무한 ○○○중계사가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센터장에게 전화를 걸어 모바일영상중계는 그날부로 야간중계사에게는 한시적으로 인입이 정지되었다.

그러나 문자중계는 울면서 받았다.

다음날 팀장에게 전화가 와 근무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못하겠다고 울어서 하루만 쉬게 되었다. 이후 센터장에게 정신의학 전문의와 연계를 요청했으나 산업재해가 아니라며 받아들이지 않고 몇 달 뒤 인터넷중독상담센터와 연계를 해줬다.

이것도 야간중계사 4명이 한자리에서 신청을 받기에 원하는 사람은 개인으로 신청하겠다고 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것도 너무나 괴롭고 중계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두렵다.

일처리를 개인의 중계사에게 맡기고 문제 발생 시 관리자에게 보고해야 하는데 업무적인 얘기조차도 하고 싶지 않다. 너무나 역겹고 가증스럽다. 이 내용을 작성하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니 지금도 죽고 싶고 당시 화면을 본 내 눈알과 기억하는 내 뇌를 빼버리고 싶다.

 

기승전……결?

2017년 10월 31일 환노위 국감이 열렸던 날 중계사를 성희롱한 센터장은 격리되었고, 2018년 1월 31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직장내성희롱이 인정되었다. 100cm 되는 자리, 40cm 되는 통로였던 닭장 같은 사무실에서 숨이 트이는 곳으로 이전도 했다.

2017년 12월 21일 나는 산업재해를 신청했고, 올해 4월 3일 사이버성폭력 최초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인정되어 요양 중이다. 업무는 다르지만 콜센터, 수어통역사 등 내 산재승인 소식을 접하고 다들 우리네 일자리에서 상징적인 것이라 축하와 동정을 동시에 받았다.

1960년대 개봉한 영화 <벤허>는 러닝타임이 222분이다. 어머니에게 듣기로는 영화가 너무 길어 상영 중 쉬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KT새노조 손말이음센터지회’의 제목은 바뀔 것이다. KTCS의 소속이 아니라 한국정보화진흥원에 직접고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게 엔딩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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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3. 『파견법 폐기, 간접고용 철폐 2018 파견노동포럼』 2섹션, 발제하는 필자 [출처: 철폐연대]

 

진흥원에서 ‘진흥원 직원은 대구 근무가 원칙이다’라며 센터 운영과 중계사 안위는 생각하지 않으며, 무기계약직인 중계사들에게 기존 정규직의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직고용이 되어 고용불안에서 탈출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중계사들은 되려 고용불안을 받게 되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지방 이전이 아니라 손말이음센터의 운영 정상화이다.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손말이음센터의 적정직원 수는 40명인데 현재 37명으로, 응대율은 40%대이다. 우리 이용자들은 전화를 하고 싶어도 중계사가 부족해 못하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 셈이다. 센터 응대율은 100%가 되어야 하며, 센터 확대와 중계사 확충이 시급하다.

현재도 센터 응대율이 40%대에 불과한데 지방 이전을 강행한다면 센터는 존폐 위기에 처할 수 있고 중계사들의 해고로도 이어질 수 있다. 센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청각언어장애인들에게도 큰 피해가 간다. 문제 발생이 뻔히 보이는데도 지방 이전을 강행한다면 그 자리에서 열성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을, 필요에 따라 대체할 수 있는 부품으로 여기는 처사와 다름없는 것이다. 지방 이전은 노동자들을 무시하며 강행할 것이 아니라 센터 운영이 원활하게 된 이후에 논의해도 충분한 사안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짧은 시간 동안 크고 작은 성과가 굉장히 많았다. 손말이음센터지회의 모든 조합원은 노조가 처음이다. 다들 몰라 잘못되었다 인지하지 못한 것을 노조를 하면서 알게 되었고 이제는 출근하는 게 즐겁다고 한다.

노조를 하면서 내 인생 최고로 병원도 많이 다니고 약도 많이 먹었다. 후회는 없다. 다만 노조를 빨리 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정년이 되면 퇴직하겠지만, 손말이음센터 노동조합의 이야기는 대를 이어서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