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710] 2017파견노동포럼, 노조와 투쟁을 선택한 2%의 비정규직 이야기 / 신순영

by 철폐연대 posted Oct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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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와 투쟁을 선택한 2%의 비정규직 이야기

- 2017 파견노동포럼 섹션1 [현장 발언대] “비정규직, 침묵을 깨고 움직이다”

신순영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2 2017 파견노동포럼 섹션1 [출처 철폐연대].JPG

 

9월 2일, ‘파견법 폐기, 간접고용 철폐! 2017 파견노동포럼’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렸다. 파견노동포럼이 한 해를 건너오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조기대선 국면이 열렸다. 처음 파견노동포럼을 준비하던 시기, 박근혜 정부는 ‘파견법은 사이다법’ 버스광고까지 불사하며 파견 확대에 열을 올렸다. 나이가 많으면, 전문직이면 파견노동으로 내몰려 했고 제조업 뿌리산업에까지 파견을 허용하려 시도했다. 일부 업종에 한해 직접고용 원칙의 예외를 두는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18년이 지나는 사이 파견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상시적 해고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불안정노동 확산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평생 비정규직’을 떠받치는 파견법은 엄연한 현실로 안착됐지만, 파견노동자들은 좀처럼 조직되지 못했다.

 

‘나의 비정규직 공약’과 투쟁 현장의 목소리

광장으로 모여들었던 목소리들은 이제 노동과 삶의 현장으로 스며들어야 했다. 철폐연대 역시 광장의 격랑이 가라앉은 뒤,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 없는 노동과 불안한 삶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나의 비정규직 공약’이라는 기획사업(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바꿈․세상을 바꾸는 꿈, 알바노조, 예술인소셜유니온, 청년전태일 등의 단체들과 함께 3월 하순부터 한 달간, 온‧오프라인 설문조사와 노동자‧시민 집담회 등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공약이 필요한지 물었고, 결과를 정리해 대선후보들에게 전하고 보도자료를 냈다. 총 329명이 참여해 416가지 의견을 제안했고, 주요한 의견은 △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화 △비정규직 차별해소 및 차별 금지 △최저임금 인상(1만 원 이상) △노동3권의 온전한 보장 △기간제법‧파견법 폐기 △노동법 준수 및 위반사용자 엄벌 △사회보장 확대 △기타: 노동인권 교육 실시, 안전하게 일할 권리 확보, 재벌 개혁 등으로 추려졌다. 10월에는 사업을 마무리하는 토론회를 진행할 예정이다.)을 통해 한국 사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노동자‧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내고자 했다.

2017 파견노동포럼 섹션1의 취지는 이렇게 모인 노동자‧시민, 비정규직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한 번 한국 사회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하고, 투쟁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와 접목시켜 알려내는 것이었다. 저임금, 장시간노동, 고용불안, 노조탄압, 차별, 해고……. 침묵을 강요하는 현실을 거부하고 권리 찾기에 나선 노동자들, 함께여서 가능했던 용기로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려는 노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왜곡된 현실을 다시 한 번 짚어보고 싶었다.

‘나의 비정규직 공약’ 집담회에 참여했던 동양시멘트지부와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을 초대했고,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과 투쟁 현장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 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와 경기중서부건설지부 동지들에게도 함께해주시길 청했다. 섹션1 사회를 맡은 철폐연대 집행위원이자 전교조서울지부 대외협력실장 이성대 동지와 사전모임을 갖고 함께 나눌 이야기들을 논의했다. 기꺼이 초대에 응해준 투쟁사업장 동지들은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사전모임에 참석하고, 파견노동포럼에 함께하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투쟁을 소개하기 위한 준비에도 성실하게 임해 주셨다.

패널로 참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역도 업종도 현장의 조건도, 현재 처한 상황도 제각각이었다. 공통점이라면 정규직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비정규직 노조조직률이 2%도 채 되지 않는 현실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해 투쟁하고 있는 ‘선택 받은’ 노동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윤영금 서울지부장, 금속노조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안진석 대의원,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본부 동양시멘트지부 김진영 교선부장, 전국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조원하 조직차장에게서 각자 자신의 현장과 투쟁의 주요쟁점에 대한 소개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미조직 상태에서 비정규직으로 현장에서 일할 때 겪었던 경험들과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유와 이후의 변화들, ‘나의 비정규직 공약’의 주요 의제들과 투쟁의 쟁점을 잇는 이야기들을 함께 나눴다.

   

정규직이지만 거리에서 3년, 삼표-동양시멘트 노동자들

김진영 동지가 일한 동양시멘트 삼척공장은 1년 내내 쉬는 날 없이 밤낮 없이 가동됐다. 처음 입사해 깜짝 놀란 건 8시간씩 3교대 근무에 잔업을 하게 되면 무조건 8시간을 더 일해야 하는 ‘곱빼기 잔업’이었다. 16시간 연속으로 일하는 잔업을 일주일에 3일씩, 저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거부할 수 없었고, 저항하면 관리자의 눈총이 따가웠다.

명절 때도 가동되는 공장의 사무실 화이트보드에는 ‘하청업체는 휴가 쓰지 말 것’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같은 현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도 차별은 당연했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고용을 시작하고 시간이 갈수록 임금 격차가 벌어져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 됐다. 위험한 현장이었지만 장시간 노동을 마다할 수 없었고 그런 환경은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이끌었다. 노동조합을 만들자 큰소리치던 바지사장들은 오히려 노동자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뭉쳐서 힘을 가지면 당당해질 수 있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불법파견과 위장도급 여부 조사를 위해 노동부를 처음 찾았을 때 조합원들은 로비에서 ‘동양시멘트 기증’이라는 글씨가 박힌 큰 거울을 목격했다. 사건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는 노동부를 압박하기 위해 지청장실을 점거하자 8개월 만에 결과가 나왔다.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는 ‘정규직’. 그러나 직후 조합원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노동부에서는 직접고용 하라고 명했지만 회사는 돈과 시간을 무기로 해고노동자들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정규직임을 알려주고 노동부가 뒷짐만 지고 있는 사이,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투쟁했다.

투쟁 과정에서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정에 선 조합원들은 법정 구속되어 수개월씩 징역을 살았고, 노조를 탈퇴한 노동자들에게는 불구속 처분이 떨어졌다. 회사는 노동부 판정을 이행하는 대신 20억 원가량의 이행강제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법 위에 돈이 있는 현실을 확인시켰다. 간접고용으로 노동자들이 점점 노예화 되어가는 상황에서 진짜 사장이 누구냐를 따지고 문제의 본질을 찾아가며 싸우다 보니 노동자들은 갈수록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단결해서 함께 싸우며 악법들을 철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노동조합을 만든 2014년 5월 이후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가 이긴다!’는 마음으로 치열하게 싸워온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은 2017년 10월 16일, 정규직이 되어 거리에서 현장으로 돌아간다.

 

‘노조는 사랑’, 전도하듯 조직하며 권리를 찾는 교육공무직본부 노동자들

교육공무직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다. ‘유아교육법상의 유치원과 초중등교육법이 적용되는 학교 또는 교육부(청) 등 교육기관에서 근무하는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를 통칭하며, 크게 ‘비정규직 교원’과 ‘비정규직 일반 노동자’로 구분된다(비정규직 교원은 기간제교사, 산학 겸임교사, 명예교사, 강사직종(영어회화전문강사, 스포츠강사, 방과 후 및 특기적성 강사, 교과교실제 강사, 원어민영어강사, 시간강사 등) 등 정규교원이 담당해야 할 교육을 교원 부족 및 특정 전문능력소유자 필요 등 특별한 사정으로 인해 채용된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일반 노동자는 비정규직 영양사, 조리사, 조리실무사, 학교 도서관 사서, 교무, 행정, 과학실험, 전산, 특수교육실무사 등 학교 행정업무 지원과 교육 지원, 그 밖에 학교급식 등 학생복리 증진을 위하여 학교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다.).

윤영금 동지는 자식들이 군대에 간 뒤 장애아동의 특수교육을 지원하는 실무사로 학교에 들어갔다. 그때는 노동자니 비정규직이니 하는 게 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돌보는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학교에 대한 불만 같은 건 내려놓고 지냈다. 일을 하다 보니 아이들을 더 잘 돌보고 싶어졌고, 계속 일을 하고 싶었는데 비정규직어서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었다.

2년 일한 뒤 평가를 통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데, 성실하게 할 일을 열심히 하면 되는 게 아니라 학교 내의 이상한 기준과 임의적인 학교장 재량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학교장 재량’은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만 작용하는 ‘원칙’이었고,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문제제기하고 계속 일을 하려면 노조 가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노조에 가입하고 활동하고 투쟁하면서 미처 생각지 못한 변화들이 생겼다. 스스로도 변했고, 교장의 태도도 달라졌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윤영금 동지는 전도하듯이 주변에 함께 노조하자고, 힘을 모으자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학교는 미래세대를 기르는 교육의 공간이지만 ‘비정규직 종합백화점’이기도 하다. 다양한 직종과 직무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만큼 투쟁의 요구와 의제도 다양하다. 급식실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 문제, 야간당직 노동자들의 정년 보장 등 직무에 따라 개선되어야 할 지점도 있지만, 임금을 비롯한 각종 차별과 고용 불안은 모두가 겪는 공통점이다.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 대의원대회부터 6.30 사회적 총파업을 준비해왔고 서울의 경우 이틀 동안 파업에 나섰다. ‘최저임금 1만 원’을 비롯해,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한 목소리로 외치며 조직하고 싸웠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교육부가 직접 전국 시‧도 교육청을 한 자리에 모아 저임금과 차별적 처우를 개선하는 전국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집단교섭을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더 많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고, 학교가 노동자의 권리 역시 기르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구미공단 최초의 비정규직 노동조합,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의 투쟁

안진석 동지는 아사히글라스에서 일하기 전에는 노동조합 활동을 한 적이 없다. 노조는 대공장에서만 하는 것인 줄 알았다. 난생 처음 노조라는 걸 가입했는데 만들어진 지 한 달 만에 공장 밖으로 내몰렸다. 2년 넘게 거리에서 투쟁하다보니 나름 의식의 변화가 생겼다. 현장에서 일할 때는 경쟁상대로 생각했던 동료들이, 노조가 결성되고 함께하면서는 동지로 다가왔다. 이전에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많았다면, 이후에는 ‘모두 함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아사히글라스 공장은 2층은 정규직이 함께 일하고 1층은 비정규직만 일했는데, 1층은 일이 너무 힘들어 퇴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측은 안전화를 실내에서만 신도록 했는데, 일하다가 쉴 때 바깥바람 쐬고 담배 한 대 피우려고 신발을 갈아 신기에는 휴게시간이 너무 짧았다. 하청노동자의 경우 안전화를 신고 작업장 밖으로 나가면 징계를 하고 징벌조끼를 입히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징계사유이지만, 그마저도 관리자의 기분에 따라 좌우됐다. 원청노동자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당하는 차별은 더욱 부당하고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노동조합 설립 소식이 알려지자, 일상적인 차별과 저임금에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다수가 가입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도급계약 해지로 모두 문자해고를 당했다. 해고 통보는 공장을 가동한 9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휴무일에 전달됐고, 공장 안에는 노동자들의 개인물품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이후 물품을 찾기 위해 조합원들이 공장에 들어갈 때 회사는 2명씩만 출입을 허용하면서 6명의 용역을 붙여 감시했다. 어이없는 상황에 조합원 십여 명이 함께 들어가자 사측은 건조물침입이니 폭력 등의 혐의를 씌웠다. 법원은 사측의 증언만을 근거로 조합원들에게 수백 만 원의 벌금과 사회봉사 등을 명했고, 검찰은 그마저도 양형이 부족하다며 항소했다. 반대로 노동조합이 제기한 사건은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했다(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2년 넘게 진척이 없는 아사히글라스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와 불법파견에 대한 즉각 기소를 촉구하며 8월 29일부터 대구검찰청 앞 농성을 벌이고 있다. 9월 15일, 대구 현장노동청에서는 구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의 부당노동행위 고소사건이 대구지방고용노동청 1호 민원으로 접수됐고, 9월 22일 대구지방고용노동청 구미지청은 고소 26개월 만에 아사히글라스 파견법 위반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며 11월 3일까지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내렸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싸움과 함께, 비정규직‧정리해고 철폐와 노동3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의 주축으로도 열심히 투쟁해왔다. 지난해 11월 초부터 시작한 서울정부청사 시국농성과 조기대선 국면에서의 광화문 고공단식농성에도 함께 했다. 계약기간 6개월이 남아 있음에도 아사히글라스의 일방적인 계약해지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고, 일할 때는 ‘사내하청업체의 정규직’으로 불렸다. 정규직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원청 사용자가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고, 정규직이라도 정리해고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투쟁으로 알았고 자본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의 노동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건설현장 만악의 근원, 불법하도급을 깨기 위한 건설노조의 산별중앙교섭

조원하 동지는 건설노조의 특성상 노조에 가입한 이후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지금은 경기중서부건설지부에서 조직차장으로 일하고 있고, 경기중서부 현장의 노동조건과 현황을 주로 전했다.

건설노동자들이 호소하는 가장 큰 우려와 위험은 고용불안이다. 고용이 불안하니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않고 일하다 보면 다치는 경우가 많지만 산재처리는 쉽지 않다. 일하는 기간이 짧고 불법적인 도급으로 일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4대보험이나 사회보장에서 제외되는 일도 많다. 원체 불안정한 상황이라 조합원들은 4대보험료로 나가는 돈을 임금으로 받기를 선호하기도 한다.

건강과 안전 역시 문제다. 건설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은 일반적이고, 노조에서 전국 현장의 화장실 사진 콘테스트를 열어 1등 사진으로 선전전을 한 적도 있을 만큼, 현장의 위생상태 역시 열악하다. 노조에서는 산재 예방을 위해 현장 사진을 찍어 산업안전 관련 고발장을 접수하는 활동도 한다. 현장 주변 상가 건물이나 아파트 옥상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크레인으로 인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인양하는 경우는 다반사이고, 3미터 이상 높이에 사다리 없이 손으로 기어 올라가서 작업을 하거나 아래 하중을 지탱할 구조물 없이 작업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누가 봐도 사고가 나면 사람이 죽을 것 같은 위험한 현장임에도, 산업안전보건법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것 같아서 빼는 경우도 많다. 더 큰 문제는 산업안전보건법의 기준을 간신히 시늉만 내면서 위반을 비껴가는 경우 역시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건설노동자들이 겪는 고질적인 문제들의 근본원인은 불법하도급이다(지금의 건설현장은 ‘발주사(시행사)-종합건설업체(시공사)-하청업체(전문건설업체)-건설노동자’의 다단계 구조로 되어 있는데, 실상은 훨씬 더 복잡한 다단계 구조다. 최저낙찰제를 통해 원청인 시행사와 시공사는 수익을 얻고, 공사를 따낸 전문건설업체는 그 손실을 건설노동자에게 전가한다. 때문에 건설노동자의 고용과 임금이 불안정해지고, 공기 단축을 위한 무리한 작업 및 불법도급으로 인한 산재와 부당해고‧임금체불 등이 상시적으로 일어나며, 장기적으로는 건축물 부실시공으로 인한 안전문제도 발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 책임을 원‧하청이 서로 미루면서 근본적인 해결 역시 미뤄지고 있다.). 불법하도급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결국 원청이 직접 시공해야 한다는 것이 건설노조의 정책적 입장이다. 간접고용이라도 제대로 하라는 부끄러운 구호가 나올 만큼 심각한 고용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건설노조는 올해 전문건설업체들과 산별중앙교섭을 진행했고 얼마 전에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건설업체의 원청사용자성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불법하도급이 만연한 건설현장에서도 가장 낮은 위계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이야말로 가장 고통을 받고 있다는 점 역시 기억하고 현실을 바꿔내기 위한 실천 활동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준비한 이야기들을 모두 풀어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비정규직으로 통칭되는 노동자들 역시 서로의 상황이 낯설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로 하나의 배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과 차이 못지않게, 직무와 직종과 현장에 따라 개별화되는 비정규직 노동과 투쟁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작업 역시 시급함을 실감했다.

글을 정리하는 동안 두 가지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동양시멘트지부 39명의 해고노동자들이 10월 16일이면 정규직이 되어 현장으로 돌아간다는 소식 그리고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2015년 7월에 고소한 아사히글라스의 파견법 위반에 대해 대구지방고용노동청 구미지청이 마침내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고 11월 3일까지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했다는 소식이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로 꼬박 3년과 2년을 넘게 거리에서 싸워온 동지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벅차올랐다. 누군가는 정말 세상이 바뀌었다고 느끼겠지만, 이제 겨우 최소한의 ‘법대로’가 시작된 것이고 그 시작을 만든 것은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법대로’를 넘어 투쟁으로 폐기해야 할 비정규악법들이 놓여 있다.

 

 

2017파견노동포럼, 노조와투쟁을선택한2%비정규직이야기-신순영-질라라비201710.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