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710] 2003년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파업과 이용석 열사 / 이경미

by 철폐연대 posted Oct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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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파업과 이용석 열사

이경미 (2003년 파업 당사자, 철폐연대 회원)

 

 

1 [출처 (사)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 홈페이지].jpg

[출처: (사)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 홈페이지]

 

14년 전 가을이 깊어가던 날, 근로복지공단에서 일하던 우리는 짧은 파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우리나라의 산재보험 처리 및 고용보험료을 징수하는 공공기관으로, 전국 55개 지사에서 민원 접수, 상담, 보험료 부과‧징수. 진료비 지급 등 꼭 필요한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존에 있던 정규직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위해 대의원대회에 참석하여 노조가입을 받아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기에 하나의 노조에서 같이 활동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되어 단독으로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고용안정과 처우개선 등을 위해 사측과 여러 차례 교섭을 하였으나 결렬되었고, 그해 가을 집행부는 우리에게 최후의 수단인 파업으로 행동에 나설 것을 제안했습니다. 노동조합이 설립된 지 1년도 안 된 시점이어서 아직 노조 활동도 투쟁도 낯선 조합원들이었습니다. 집행부는 ‘짧은 파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2003년 10월 26일 파업 결의를 다지기 위해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 종묘공원으로 모였습니다.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행진을 준비하려던 그때, 당시 광주본부장이던 이용석 열사가 “비정규직 철폐하라!” 외치며 분신했습니다. 그 순간 우리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습니다. 같은 공단에서 일하던 동료가 자기 몸에 불을 당겨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던 순간, 우리가 알던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그전까지 1년 단위로 근로계약서를 써도, 아파서 병가를 낼 수 없어도, 동일노동‧동일임금을 받지 못해도, 우리의 급여가 인건비가 아니라 사업 잡비예산에서 나오는 것이어도……. 그냥 원래 그런 것인 줄 알고, 나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에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찍히기 싫었으며, 월급날 직급보조비를 넣은 현금 봉투를 받는 정규직 동료들을 보며 느끼는 약간의 공허함을 제외하면 비정규직이어도 살아갈 수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용석 열사의 분신으로 인해 나의 위치, 나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깨달으며 큰 충격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집행부가 짧을 것이라 했던 파업은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본사 앞에서 41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가을과 겨울을 맞이하며 우리는 이 땅의 비정규직들이 얼마나 차별받는지 알아갔습니다. 공단 내에서 꼭 필요한 사업임에도 자본의 논리를 이용하여 싼값에 힘든 일은 다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들에게 넘기는 현실, 재고용을 무기로 우리의 단결을 막고, 아파도 쉴 수 없고, 동일노동을 해도 동일임금을 받지 못하는 차별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파업 중에는 우리의 정규직화도 중요했지만, 이용석 열사를 분신과 죽음으로 몰아간 근로복지공단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 죽은 동료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로, 파업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사측과 정규직의 회유와 협박이 날로 심해지고 심지어 우리를 분열시키는 정규직 전환 시험 앞에 우리의 파업 대오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업천막이 있는 영등포 중마루공원에 남은 우리들은, 이용석 열사가 남긴 ‘비정규직 철폐’의 의미를 찾으며, 그를 기리며 무거운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우리의 파업은 11월 3일 공단과의 단체협상 체결로 끝이 났습니다. 지금은 그것보다는,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이용석 열사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6급 명예 정규직원’ 증서를 추증하고 분신 사망과 관련해 사과를 했다는 사실이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 우리는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단계적 정규직화 계획을 노무현 정부로부터 끌어냈습니다. 사회에 확산되고 있었던 비정규직 문제를 공공기관에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합류하여, 우리 공단도 비정규직을 단계적으로 정규직 전환하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약 66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 500명 이상이 전환시험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전환시험에 합격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약해지 되어 공단을 떠났고,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우리들은 공단의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도전도 해보았지만, 여전히 공단은 ‘기존 정규직’의 세상입니다. 정규직 내에서 출신성분을 분류하는 또 다른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비정규직 양산을 막고 정규직화를 하겠다고 하지만, 기존 정규직들의 반발이 심한 것을 보면 ‘비정규직 철폐’가 쉽지 않은 것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도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2003년 파업의 마지막 대오는 100여 명의 남은 조합원과 일명 외부세력(?)이었습니다. 우리의 투쟁에 함께 연대하는 동지들이 없었다면 그 긴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우리 말고 우리의 투쟁을 지지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투쟁이 정당하다는 반증 같아서 너무나도 좋고 든든했었습니다. 연대하는 동지들을 보며 나도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는 곳에 가야겠다고, 그때 받은 연대의 힘을 나도 다른 동지들에게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파업을 통해, 연대하는 동지들을 통해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2004년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 마무리 집회에서 그런 동지들에게 이용석 열사투쟁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때 보여준 연대의 마음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연대로 함께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초 우리 공단에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또 생겼습니다. 14년 전의 역사를 되풀이하듯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가입을 제한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따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고용안정과 처우개선, 차별 철폐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예전 ‘근비’(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조합 조합원)들도 있는 것을 보면서,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고 느껴집니다.

 

공단 내에서 민주노조 건설이 좌절되고, 2003년 파업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이용석 열사의 뜻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다 보니 어느덧 또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10월이 되면 망월동 이용석 열사묘역으로 참배는 가겠지만 매년 그렇듯 마음은 무겁습니다. 열사의 죽음 이후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되기 보다는 교묘해졌다고 생각됩니다. 차별과 분리 정책은 더 심해지고, 공단 내에 새로운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만들어져 그들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되고 있기까지 하니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2003년 파업을 결의하던 마음으로,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던 마음으로, 연대의 힘을 보여준 동지의 마음으로, 열사의 유서를 다시 읽어봅니다. 2003년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10월 26일 새벽, 파업 전날 유서를 써내려간 열사의 마음을 다시 새겨봅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어봅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가 모인 이 자체가 노동자로서 승리입니다. 직원을 탈피한 진정한 노동자로서 삶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동지들의 몫까지 우리가 싸워야 합니다. 노예문서같은 비정규직 관리 세칙을 파기하고 고용 안정을 외치는 우리의 요구는 당연한 것이며 마땅히 쟁취해야 합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버리고 나만, 우리만 함께한다면 반드시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오늘 이 모임 자리를 자축하며 즐겁게 투쟁합시다.”

    

 

[편집자주] 이용석 열사 14주기를 맞는 10월, 올해도 10월 28일 서울에서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가 열립니다. 수없이 함께 외쳤던 '비정규직 철폐'의 의미를 생각하며, 많은 동지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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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파업과 이용석열사_이경미-질라라비201710.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