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07] 장애인노동조합 준비위원회가 출발합니다 / 정명호

by 철폐연대 posted Jul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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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

 

장애인노동조합 준비위원회가 출발합니다

정명호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장)

 

 

안녕하세요.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장 정명호입니다. 장애인일반노조 준비모임을 시작한 지 1년 8개월 만에 드디어 준비위 발족식을 했습니다. 저는 19살께부터 경인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각종 업무처리를 하면서 제 장애에 맞지 않는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빠른 업무처리를 강요하는 등의 이유로 저는 1년 만에 못 견디고 퇴사했습니다.

 

1년간 쉬면서 어느 날 어떤 장소로 이동 중이었습니다. 먼발치에서 어디에서 많이 본 분이 저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분은 투쟁의 현장에서 많이 본 동지였습니다. 저는 길거리 캐스팅(?)되어 그날부터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했습니다. 2년 동안 참 많은 교육을 받으며 조직 담당도 맡게 되었고, 장애인운동뿐만 아니라 다른 운동에 대한 연대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습니다. 동광기연, 한국GM 등 인천지역 노동 현장에 연대를 하면 할수록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에 관심이 생겼고 지금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에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준비모임을 하면서 과연 이 작은 소모임이 준비위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을 쓸모없는 존재로, 중증장애인의 노동은 무가치한 노동으로 낙인화시키고 있기에 열심히 세미나에 참여하고 여러 노동 현장도 연대하면서 중증장애인의 노동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중증장애인의 노동은 새롭게 정의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몸이 자본주의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운동의 아버지이신 칼 맑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분배해야 한다’고요. 저희는 속도가 느립니다. 느리다고 해서 노동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속도가 빛의 속도이기 때문에 중증장애인들이 노동시장에 못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는 장애인 노동자와 실업자 등의 조합원을 모아 단결된 힘으로 여러 가지 일을 준비해나가려 합니다. 장애인은 어떤 부문보다 실업자가 많습니다. 그만큼 정부의 정책도 잘못되었고, 기업들도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30대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1.92%에 지나지 않습니다. 법정 고용률 3.1%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치입니다.

 

우리는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 장애인의 고용을 늘리라는 투쟁을 진행할 것입니다. 어떤 노동조합보다 정부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진행하는 일이 잦은 노조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그나마 취업한 장애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 승진 등 일상에서 차별받는 모든 부당함에 대응해나갈 것입니다.

 

또한 장애인의 먹고살 권리를 대변하는 활동을 진행할 것입니다. 장애인의 노동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장애인의 노동을 새롭게 정의하여 장애인의 가치 있는 활동이 정당한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되는 사회로 만들어갈 것입니다. 자본이 요구하는 경쟁과 효율, 생산성의 기준에 따른 ‘노동’을 ‘좋은 노동’으로 바꿔낼 것입니다.

 

이 사회는 속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속도는 곧 자본가들에게 이윤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중증장애인들은 노동의 속도도 느리고, 그 중에는 노동의 역할을 아예 할 수 없는 최중증장애인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본가 입장에서는 중증장애인들은 쓸모없으니까 장애인 수용시설 또는 방구석으로 사회에서 격리해 일평생을 살아가게 합니다. 헌법에서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는 4대 권리와 의무에 ‘노동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은 노동에서 철저하게 소외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입니다.

 

따라서 중증장애인의 노동은 새롭게 정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 농성을 진행할 때 중증장애인들이 1,842일 동안 농성장을 사수하는, 즉 경비하는 노동을 했고, 역사 측에서도 1,842일 동안 역사 경비를 했습니다. 둘 다 지키는 노동을 했지만, 한쪽은 의미가 없는 노동인 반면에 다른 한쪽은 의미가 있는 일, 즉 임노동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자본가 관점에서 우리 쪽의 노동은 가치가 없는 노동, 이윤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틀을 깨려고 합니다.

 

장애인일반노조의 또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은 소외된 모든 이들과 연대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여성, 성소수자, 빈민, 노점상 등 사회적 약자들과 사회복지 노동자, 산업재해 노동자, 이주 노동자 등과 긴밀히 연대할 것입니다. 또한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등 탄압받고 소외당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사업장에도 적극적으로 연대해나갈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노동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는 중증장애인들에게 노동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습니다. 최중증장애인에게는 존재하는 것, 살아있는 것 자체가 노동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원하는 노동이 아니라 우리 몸에 맞추는 노동을 쟁취하려고 합니다. 이는 길고 멀리 봐야 하는 긴 싸움일 될 겁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노동자,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여 자본주의를 끝장냅시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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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6.12. [출처: 준비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