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10] 명예산업안전감독관, 권리 밖 노동자들의 생명안전을 향해 / 이주용

by 철폐연대 posted Oct 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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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명예산업안전감독관,

권리 밖 노동자들의 생명안전을 향해

 

 

이주용 •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총무부장

 

 

 

노동부 근로감독 밖 99%의 현장

 

노동부는 올해부터 “중대재해 사이렌”이라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 사건의 간략한 개요가 공유되는데,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이 메시지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휴대폰을 울린다. 매일 7명, 연간 2,000명 이상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나라에서 노동자의 죽음은 마치 당연한 일상인마냥 하루하루 숫자로 쌓인다. 물론, 특수고용노동자처럼 이 ‘숫자’에조차 포함되지 않는 죽음도 있다.

 

노동권 사각지대에 내몰린 무권리 상태의 노동자들은 생명안전의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가령, 내가 살고 있는 충북에서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발생한 최소 50건 이상의 산재사고사망(중대재해) 사건 중 희생자가 민주노총 조합원인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은 노동조합이 없거나 일용직 혹은 파견노동자였다. 한편, 중대재해의 80%가량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듯 무노조·작은 사업장·각종 형태의 비정규직,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은 중대재해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는 결코 ‘우연히’ 혹은 ‘실수로’ 발생하지 않는다. 산업안전보건법과 그 하위법령은 사업장에서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수많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한다. 문제는 이윤축적과 비용절감이라는 자본의 절대적 목표를 위해 이런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를 방증하듯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대해 노동부가 근로감독을 실시하면 으레 수십 수백 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이 드러난다. 그러나 노동자의 생명안전을 목숨‘값’ 정도로 치환하는 이 자본주의에서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은 벌금이나 과태료 처분에 머물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경영책임자에 대한 검찰 구형은 짜맞추기라도 한 듯 징역 2년 이하에 그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동부가 진행하는 근로감독 대상은 전체 사업장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실제로 중대재해를 비롯해 노동안전보건 관련 사안으로 노동부 지청이나 지방청을 찾아가면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게 된다. 그렇다고 노동부의 책임이 줄어드는 건 아니지만, 노동자의 생명안전을 지키려면 국가기관의 역할에 기대고 있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아니, 오히려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현장의 안전보건을 쟁취하는 주체로 나설 때 국가기관에 역할을 촉구하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도저히 살펴볼 수 없는 99%의 현장, 바로 거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작업환경을 바꿔 나가기 위해 직접 개입하고 요구하고 싸우는 것.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은 바로 이를 위한 제도적 창구 가운데 하나다.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란?

 

‘명감’ 혹은 ‘명산감’이라고도 줄여 부르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을 간단히 풀이하면, 마치 노동부 근로감독관처럼 노동자가 스스로 일터 산업안전 분야를 감독하는 감독관이 된다는 것이다. 다만 노동부 근로감독관과 달리 특별사법경찰관의 권한은 없어서 ‘명예’ 감독관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 예방활동에 대한 참여와 지원을 촉진하기 위하여 근로자, 근로자단체, 사업주단체 및 산업재해 예방 관련 전문단체에 소속된 사람 중에서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을 위촉할 수 있다(제23조)”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1996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시 신설(당시에는 제61조의2)되어 현재까지 27년간 유지되고 있다.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하 명감)은 그 소속에 따라 ‘사내’와 ‘사외’로 구분된다. ‘사내’ 명감은 사업장에 속한 노동자가 해당 사업장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대표의 추천으로 노동부가 위촉한다. 사내 명감은 주로 자기 사업장에서의 산재 예방을 위해 안전보건 관련 사안에 대한 참여권을 갖는데,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제32조 2항 참조).

 

1. 사업장에서 하는 자체점검 참여 및 근로감독관이 하는 사업장 감독 참여

2. 사업장 산업재해 예방계획 수립 참여 및 사업장에서 하는 기계·기구 자체검사 참석

3.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있는 경우 사업주에 대한 개선 요청 및 감독기관에의 신고

4.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사업주에 대한 작업중지 요청

5. 작업환경측정, 근로자 건강진단 시의 참석 및 그 결과에 대한 설명회 참여

6. 직업성 질환의 증상이 있거나 질병에 걸린 근로자가 여러 명 발생한 경우 사업주에 대한 임시건강진단 실시 요청

(이하 생략)

 

물론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일정 수준의 힘을 갖고 있다면, 위와 같은 법령 규정 이상의 권리도 얼마든 쟁취할 수 있다. 가령, 노동자가 다치거나 질병에 걸릴 수 있는 요소를 노동조합이 직접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설비를 비롯한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해 관철시킬 수도 있고, 위험작업에 대해서는 작업중지 ‘요청’이 아니라 작업을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그럴만한 입지를 다지지 못한 상태라 해도 법령상 명감의 권한을 통해 작업장 안전보건에 관한 최소한의 알 권리와 개선을 요구할 권리를 확보하고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위반을 신고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면서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작업환경을 바꿔 나가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 나라에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가 80% 이상인 데다, 이렇게 노동조합 없는 노동자들이 위험작업에도 더 쉽게 노출된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이주노동자 등 권리 사각지대에 있을수록 산재에 더욱 취약한데, 이들의 노동조합 조직률 역시 대단히 낮은 상태다. 그렇기에 사업장 단위 노동조합의 틀을 넘어 이러한 무권리 노동자들의 생명안전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제도가 바로 ‘사외’ 명감, 혹은 ‘지역’ 명감이다.

 

 

5. 본문사진.jpg

2022.08.23. 일하다 죽기 싫다! 중대재해 사업주 엄중 처벌!

중대재해 근본 대책 마련 촉구 민주노총 충북본부 결의대회. [출처: 노동과세계]

 

 

현행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의 한계

 

사외 명감은 말 그대로 ‘사업장 바깥’의 명감을 뜻하는데, 단위사업장 울타리를 넘어 지역 차원의 역할을 펼쳐야 한다는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목적의식적으로 ‘지역 명감’이라고도 부른다. 지역 명감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서 “연합단체인 노동조합 또는 그 지역 대표기구에 소속된 임직원 중에서 해당 연합단체인 노동조합 또는 그 지역 대표기구가 추천하는 사람”을 노동부가 위촉하는데, 간단히 예를 들면 단위사업장 노조가 아닌 민주노총(연합단체인 노동조합)의 지역본부(지역 대표기구)에서 추천하는 방식이라 볼 수 있다.

 

사실 현행 법령은 지역 명감의 역할을 매우 한정해서 규정한다. 사업장 내에서 안전 관련 점검이나 감독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내 명감과 달리,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 나와 있는 지역 명감의 기능은 ‘법령 및 산업재해 예방정책 개선 건의’ 정도로 제한적이다. 하지만 단위사업장 차원의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 포괄되지 않는 권리 사각지대 노동자들의 생명안전을 위해서는 지역 명감의 활동 범위와 권한이 훨씬 더 확대돼야 한다. 가령 노동조합 없는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 지역 명감의 사고조사 참여를 보장하게 함으로써 사업주의 책임을 엄중히 규명한다든가, 중대재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위험 업종에 대해 지역 명감이 함께 참여하는 합동점검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역 내 불안정노동자나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안전 관련 실태 파악과 대책 수립을 촉구하는 등 지역 명감이 노동부의 들러리가 아니라 실제로 무권리 노동자들의 생명안전을 대변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싸운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 역할을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물론 명감 제도에는 방금 언급했듯 (특히 지역 명감의 경우) 법령에서 규정한 권한이 대단히 제한적이라는 점 외에도 몇 가지 한계가 있다. 단적으로 노동부는 명감 제도를 운용하는 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노동조합에서 추천한 명감을 위촉하지 않고 반려하는 경우도 있으며, 반기에 한 번씩 개최하도록 되어 있는 노동부 지청별 명감 협의회조차 아예 열지 않거나 최소한의 예산배치도 하지 않는 등의 행태도 보인다. 한편, 명감을 위촉하는 것은 의무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없다면 명감도 없는 사업장이 많다. 이런 상황인지라 명감 제도가 법제화된 지 27년이 지났지만 실효성 있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노동조합은 계속 제기하고 있다.

 

일터 안전의 전문가는 노동자 자신

 

명감에 관한 원고를 요청받고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정작 노동안전보건사업 담당자로서 나 역시 우리 지역에서 명감 제도를 활용해 이렇다 할 사업을 기획해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권리 밖 노동자들의 중대재해 예방과 지역 차원의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위해서라도 명감의 역할을 더욱 확대하고 실질적인 노동자 참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싸움이 필요한 것만은 사실이다. 여전히 최소한의 안전보건관리체계조차 갖춰지지 않은 일터에서 위험작업에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너무나도 많다.

 

분명한 것은, 명감은 노동안전보건 활동에서 현장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참여를 최소한 제도적으로 보장하게 한 하나의 창구라는 점이다. 결국 일터 안전을 지키려면 노동자가 자신의 작업환경을 통제할 권한을 가져야 하며, 나아가 자기 사업장을 넘어 지역공동체 차원의 노동안전 대변자로서 노동조합이 자기 역할을 주장하고 실행할 때 계급대표성의 확보도 더욱 진전할 수 있다. 일터 안전의 전문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노동자 자신이다. 일터의 작업환경에 대해 알 권리, 위험요소를 찾고 개선을 요구할 권리, 위험작업을 멈추고 거부할 권리, 재해가 발생했을 때 진상규명을 비롯해 사건 대응의 모든 과정에 참여할 권리 등등을 다른 누구도 아닌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명감이라는 현행 제도 자체가 이 모두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생명안전을 위해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작업에 통제권을 쥐어 나가는 과정의 한 발판이자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