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11] 금속노조 구미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 임용현

by 철폐연대 posted Nov 0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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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속으로

   

 

금속노조 구미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투쟁 이야기

“공장의 주인은 노동자”

 

 

인터뷰·정리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먹고 튀다’의 줄임말인 ‘먹튀’는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이익만 챙겨 떠나는 행위를 뜻한다. 흔히 우리는 업체나 상점에서 제공하는 상품/서비스를 꿀꺽하고 줄행랑치는 것을 먹튀라고 말하지만, 기술탈취, 대량해고, 고의폐업 같은 해외자본의 무책임한 행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먹튀라고 부른다. 전자가 주로 개인적 일탈로 나타난다면 후자의 경우 (경영권을 가진 자들의) 집단적인 결정과 행동을 통해 이뤄진다.

‘국경 없는 자본’의 이동은 사업의 착수뿐만 아니라 철수에 있어서도 자유롭게 일어난다. 그리고 해외자본이 사업 철수를 결정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이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판매 부진이나 수익률 저하, 노동비용 증대 등 어떤 이유에서든 더 이상 투자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지체 없이 손을 떼고 그곳을 떠나 버린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자본은 국적만 없는 게 아니라 일말의 사회적 책임이나 도덕적 의무 역시 갖지 않는다. 자본의 자유가 커질수록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는 너덜너덜해지는 것이다. 특히 기업의 청산이나 사업 통폐합 등 구조조정은 사용자의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한다는 이유로 해당 기업에서 일해 온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간단히 소거되었다.

국내에서도 자본의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먹튀 기업들이 줄지어 생겨났다. 지난 몇 년 새 한국게이츠, 한국산연, 다이셀코리아, 한국와이퍼 같은 외국인투자기업들은 국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며 크게 환영받았지만 막상 사업을 청산할 땐 뒤돌아보지 않고 노동자들을 버렸다. 지자체들은 이들 외투기업에 산업용지 무상임대와 법인세·취득세 감면 등 파격적인 특혜를 제공하며 유치 경쟁을 벌이곤 했다. 외투기업들은 곶감 빼먹듯 각종 혜택을 챙기고도 어느 순간 경영악화를 빌미로 일방적인 공장청산을 결정했다. 구미공단 4단지 내 외국인기업 전용단지에 입주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도 정확히 같은 경로를 밟고 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공장을 지키며 1년 넘게 고용승계 쟁취를 위해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을 지난 10월 19일 만났다. 이날 금속노조 구미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조합원들과 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대구·경북지역 회원 등이 간담회에서 함께 나눈 이야기를 짤막한 기록으로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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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9. ‘철폐연대 10월 투쟁사업장 방문모임’ 간담회 진행 모습. [출처: 철폐연대]

 

 

지자체가 터준 꽃길 따라 구미공단 입성한 외투기업

 

경상북도 구미시는 ‘박정희의 도시’라는 별칭으로 익숙할 만큼 개발독재 시기 1호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된 내륙 최대 공업도시다. 5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구미공단의 주력산업은 초기 화학섬유에서 1990년대 무렵 전기전자로 무게중심이 넘어갔다. 이러한 산업재편 흐름 속에서 2000년대 들어 외국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지자체의 유치 사업이 본격화됐다. 구미시가 외국기업의 투자 촉진을 명목으로 구미공단 4단지 외국인투자지역을 별도로 지정하며 온갖 특혜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외국기업에 대해 임대료를 50년간 전액 감면해 주고, 법인세·소득세는 임대 개시 후 5년간 면제, 취득세·등록세·재산세는 사업 개시일 후 15년간 면제해 주는 파격적 인센티브를 내걸고 외국기업 모시기에 열을 올렸다. PDP와 LCD, 반도체 등 전자소재 분야에서 입지가 탄탄한 일본의 닛토덴코 그룹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03년 닛토덴코는 구미시로부터 3만 평의 땅을 무상임대 받아 LCD 편광필름 생산업체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를 설립했다. 편광필름은 노트북, 태블릿 PC, 스마트폰의 액정화면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 핵심소재로 일본 본사에서 관련 기술을 이전하고 원단필름을 공급한다. 닛토덴코는 편광필름 생산기지를 국내에 구미와 평택 두 곳으로 이원화했는데, 국내 LCD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에 적기 납품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자사 제품의 주요 거래처가 있는 지역에 생산시설을 두는 게 물류비 절감과 품질관리에도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에 따라 각각 별도의 현지법인(평택공장은 한국니토옵티칼)을 세우고 구미공장은 엘지에, 평택공장은 삼성에 편광필름을 납품하는 체계를 갖춘 것이다. 이처럼 고객사가 원하는 제품을 보다 ‘빠르고 값싸게’ 생산하기 위해 닛토덴코는 한국 투자를 공격적으로 감행했다. 

 

“닛토덴코는 전자기기용 테이프를 만드는 회사에서 출발해서 지금은 97개에 달하는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에요. 주로 IT나 전기전자 관련 중간재를 만드는 회사라서 일반인에 친숙한 제품은 별로 없는데, 그나마 잘 알려진 브랜드라면 일명 찍찍이라고 하는 청소용 테이프 ‘고로고로’라고 있거든요. 이런 제품부터 해서 다이소 같은 유통점에 들어가는 생활용품이라든지 자동차 부품이라든지 제품군이 굉장히 다양해요. 한편으로는 기업 이미지도 중시해서 세계적인 테니스 대회인 ATP 월드투어의 후원사까지 맡고 있어요.” (최현환 지회장)

 

이처럼 닛토덴코는 작고 볼품없어 보이는 사업일지라도 기술력으로 다른 중소업체들을 압도할 수 있다면, 그래서 어떻게든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글로벌 틈새시장 전략’을 펼쳐 왔다. 어디서든 최고가 되겠다는 기업의 야망은 탐욕과 무책임으로 굴절되기 마련이다. 그 선례는 닛토덴코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미국계 다국적 기업 3M에서 찾을 수 있다. 일단 두 기업은 공업용 테이프를 잘 만드는 회사로 정평이 나 있고, 첨단소재도 만들면서 청소용품 같은 생활용품 시장까지 손을 뻗쳤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게다가 한국쓰리엠은 3M 미국 본사의 투자로 1977년에 설립된 대표적인 외국인투자기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회사 모두 외국인투자기업의 단물 빼먹기 경영으로 노동자들의 권리가 계속해서 위축되었다는 점까지 흡사하다. 

 

“한국옵티칼이 2004년부터 공장을 가동했는데 처음에는 직원들을 많이 채용했었어요. 한때 직원 수가 700명, 800명 될 때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2018년, 19년에 연달아 두 차례에 걸쳐서 구조조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회사가 구조조정을 마음대로 해도 아무런 제재가 없었거든요. 공장부지 임대료며 법인세, 지방세 이런 걸 죄다 감면받아서 큰돈을 버는데 이렇게 노동자들 잘려 나가는 걸 지자체에서 그냥 보고만 있는 거예요.” (최현환 지회장) 

 

한국옵티칼하이테크가 2018년, 2019년에 단행한 인적 구조조정의 이유는 여느 외투기업과 다를 바 없었다. 주요 거래처인 LG디스플레이 구미공장이 2017년 파주로 이전하면서 회사 매출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2차 구조조정 이후 구미공장에 남게 된 노동자는 56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다 닛토덴코의 상하이법인이 코로나19 확산으로 가동을 중단하면서 중국 생산물량은 2022년 4월부터 다시 구미로 넘어오게 된다. 이때를 전후해 희망퇴직으로 공장 밖으로 밀려났던 노동자들에게 회사의 재고용 연락이 왔다. 상하이공장 물량의 대체생산을 서두르면서 회사는 정규직 인원 100명을 신규채용했다. 이렇게 닛토덴코의 글로벌 공급망 재배치 계획에 따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물량도 고용도 요동쳤다.

언제든지 갈아 끼워 쓰다가, 또 필요 없으면 버리는… 우리가 부품인가? 회사의 이런 모습이 석연찮다가도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다시 출근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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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최현환 지회장 [출처: 철폐연대]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 

 

우여곡절 끝에 회사도 노동자도 재기의 발판이 마련된 줄로만 알았다. 세 번째 희망퇴직은 이제 없으려니 싶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4일 누구도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공장동 건물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오후 5시께 공장 한가운데서 커다란 불길이 치솟았고 진화 작업은 이튿날 아침까지도 계속됐다. 5,800평 규모의 공장동 전체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멀쩡히 잘 굴러가던 공장이 하루아침에 전소됐다는 소식에 노동자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도 이대로 국내 생산을 접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연 매출 4,000억 원의 알짜배기 공장을 닛토덴코가 쉽사리 포기할 리 없다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생산라인을 복구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이 회사에서 조만간 나올 거라 믿었다. 순진한 믿음을 거두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회사는 화재 발생 한 달 만인 11월 4일 청산을 결정했다.

 

“화재가 있고 나서 공장 재건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부사장에게 논의를 제안했어요. 그랬더니 부사장이 자기는 결정권이 없다면서 본사에서 결정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겁니다. 한 달이 그렇게 흘렀어요. 11월 3일 저녁에 이 사람한테 전화가 걸려 와서 ‘클로징 결정이 났다’고 하더군요. 이튿날 노동조합과 회사 경영진이 만나기로 해서 지회 임원들이랑 갔더니 회사는 일본에서 건너온 하기와라 미치히로라는 사장이랑 부사장, 이사 등이 노무사를 대동해서 나왔어요. 그 자리에서 회사는 청산 결정이 났다면서 관련 서류를 우리한테 주더니, 이후 정리와 해산 절차는 노무사에게 위임할 테니 앞으로는 노무사랑 얘기하라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며칠 지나서 이제 노무사가 노동조합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청산 절차를 마무리 짓기 위해 위로금 협의를 하자는 제안이었어요. 저희는 ‘먼저 고용에 대해 얘기를 해야지, 위로금부터 얘기하는 게 맞느냐’고 되물었더니 노무사가 이렇게 답변을 합니다. 자기는 청산 이행을 위해서 위로금 부분만 위임을 받아 왔기 때문에 다른 내용은 협의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제가 형사고발 당합니다’라면서요.” (최현환 지회장) 

 

위로금만 받고 나가라는 제안에 노조가 순순히 응하지 않자 회사는 희망퇴직 신청을 일방 통보하고 설명회를 열었다. 130여 명의 노동자들이 1년 치 임금을 위로금으로 받는 조건에 희망퇴직을 받아들였지만, 남은 17명의 노동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노조와 함께 싸우기로 했다. 평소 숫기 없고 말수도 적기로 유명한 소현숙 조합원도 이때 남아서 싸우기로 결심한 한 사람이었다.

 

“공장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었어요. 실제로 불이 난 걸 보고서야 ‘단기간에 회복되기 힘들겠구나. 이제 어떡하지?’라고 생각했죠. 공장 정상화를 위해 노력할 테니 기다려 달라는 회사 말만 철석같이 믿고 한 달 동안 열심히 놀았어요. 공장을 재건하는 동안 자리가 없으면 평택공장에서 대체생산 하다가 다시 내려오겠구나, 생각했는데 청산 문자 보았을 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기운이 쏙 빠지더라고요. 한동안 멍해진 상태로 ‘회사가 우리를 속였나?’, ‘회사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노력한 게 아니라 도망가려고 시간을 벌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노조에 매일 같이 출근했어요. 어느 날인가 사장이 온다길래 사무실로 찾아갔을 때 어렵사리 면담이 잡혔는데 별로 성실하게 답하지도 않더라고요. 답은 이미 정해졌으니 너희들은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하니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죠. 분명히 사업성도 있고 6개월 전에 사람까지 100명이나 추가로 뽑아 놓고 갑자기 불이 났다고 공장 재건은 이후 사업성이 없다며 싹 다 나가라니 말장난에 속는 기분이었어요. 이대로 나가 버리면 다른 데 가서 생산라인 만들어서 돌릴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같이 투쟁하게 됐어요.” (소현숙 지회 교선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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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소현숙 교선2부장 [출처: 철폐연대]

 

 

이게 ‘먹튀’가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불타버린 공장을 재건하지 않기로 결정한 닛토덴코의 또 다른 자회사, 한국니토옵티칼은 평택에 생산공장이 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가 청산 절차를 밟는 동안 한국니토옵티칼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모두 30명의 노동자를 신규채용했다. 

 

“경영진들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조직이잖아요. 아시다시피 닛토덴코의 자회사가 구미공장도 있고 평택공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구미공장)는 화재보험금을 받아서 공장을 재건축하고 가동하는 데 한 2~3년은 소요될 테고 그만큼 비용이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투자한 비용에서 본전을 뽑으려고 하면 여기서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죠. 경영진들이 봤을 땐 공장을 재가동하는 것보다 청산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한 겁니다. 어차피 구미공장을 청산해도 대체생산을 할 수 있는 평택공장이 있기 때문에 고객사의 공급망이 끊길 염려가 전혀 없는 거예요.” (최현환 지회장) 

 

실제로 구미공장에서 LG디스플레이로 납품하던 물량은 고스란히 평택공장으로 이전됐다. 닛토덴코가 구미공장 화재를 핑계 삼아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청산을 발표했지만 이는 또 다른 현지법인(한국니토옵티칼)을 통한 대체생산을 염두에 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와 같은 공급망 다각화 전략은 세계 각국에 여러 개의 생산거점을 거느린 닛토덴코 같은 부품조달 전문업체나 공급망 최상단에 있는 LG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 같은 거대기업에 두루 이점을 안겨 준다. 닛토덴코가 구미공장 청산계획을 내놓으면서 언급한 (사업 지속의) 불확실성도 결국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 것 아닐까. 대내외 여건 변화에 따른 생산계획 재조정을 보다 용이하게 하면서도 고객사의 수요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공급망 다각화는 노사갈등으로 인한 납품조달 지연 이슈도 해결할 수 있어 자본 입장에서는 최상의 처방이 아닐 수 없다.

닛토덴코와 마찬가지로 국내공장 청산 계획을 지난해 말 내놓아 먹튀 논란을 촉발했던 일본의 자동차부품기업 덴소 역시 대체생산을 무기로 한국와이퍼(덴소의 한국 자회사) 노동자들의 폐업 반대 투쟁을 무력화한 바 있다. 한국와이퍼가 생산한 자동차용 와이퍼 부품을 납품받는 현대자동차는 덴소 측이 국내 다른 공장에서 노조(한국와이퍼분회) 몰래 대체생산을 이어 왔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사실 공급망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 있는 대기업이 부품사의 납품계획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문제들을 모를 리 없다. 하물며 공급망 차질이 불가피한 정도로 구미공장에 큰불이 났는데 이를 LG디스플레이가 몰랐다면 그건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소리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를 비롯한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LG 자본에도 책임을 묻는 이유다.

 

회사의 ‘적반하장’, ‘막무가내’ 노동자 괴롭히기 

 

닛토덴코 그룹의 일방적인 청산 결정과 해고 통보는 회사가 그동안 노동자를 어떻게 대해 왔는지를 또렷이 보여 준다. 구미공장에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지 어느덧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회사가 버리고 간 공장을 지키며 ‘사라지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은 이제 13명이 남아 있다.

외투기업과 결탁한 구미시, 경찰은 한 몸처럼 움직이며 시시각각 공장을 침탈할 기회만 엿보고 있다. 지회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진행한 이날(2023.10.19.) 오전에도 사측은 철거용역반과 함께 공장에 나타나 뻔뻔하게도 조합원들의 자진퇴거를 요구했다. 그에 앞서 사측은 조합원들의 자택에 내용증명을 보내 철거공사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및 가압류 신청을 통보했다. 9월 1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은 사측이 제기한 채권가압류 신청을 받아들여, 노동자 5명의 주택임대보증금 2억 원(1인당 4,000만 원)을 가압류했다. 

 

“우선 가압류를 받았지만 별로 그렇게 몸으로 와 닿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제가 가진 재산을 당장 강탈해 가는 상황은 아니라서 그런 느낌도 드는데, 솔직히 그건 궁금하더라고요. 왜 회사는 가압류를 신청했고, 왜 법원은 그걸 받아 준 거지? 우리가 불법행위를 했다는 게 이유라고 하던데, 그 이유라는 게 저는 수긍이 가질 않더라고요.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다는 거지? 가압류를 하는 목적이 뭔가 상대방에 손해를 끼친 게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게 도대체 뭐지? 우리는 단지 노동조합 활동을 한 것밖에 없는데….” (박정혜 지회 여성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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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박정혜 여성부장 [출처: 철폐연대]

 

 

노동자들의 일과 삶은 아랑곳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돈 계산만 하느라 바쁜 먹튀 기업의 행태는 이렇듯 파렴치하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웃음으로 꿋꿋하게 결의를 다진다.

 

“저는 아들이 그 메모지(내용증명 통보)를 봤거든요. 우리 집에서 엄마가 젤 문제라고, 엄마가 어떻게 아들보다 큰일을 저지를 수 있냐고 하더라고요.(다 같이 웃음☺) 그래서 너도 자라서 노동자가 될 테니까 언젠가 엄마 상황이 되면 충분히 이해하게 될 거라고 말했거든요. 그러니까 아들이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하시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피해는 안 가게끔 그 선에서 적당히 하라면서….(다 같이 폭소~☺)” (이희은 지회 조합원) 

 

들꽃처럼 피어나는 연대 

 

분명 쉽지 않은 싸움이지만 연대의 기운은 구미공장에서 전국으로, 나아가 닛토덴코 본사가 있는 일본까지 확장되고 있었다. 특히 아사히비정규직지회, KEC지회 등 구미지역 동지들은 사측의 침탈에 맞서 공장을 함께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곳곳에서 옵티칼 투쟁을 함께하는 동지들의 활동 소식도 청해 들었다. 

 

“평택공장이나 엘지트윈타워 앞에서 선전전을 꾸준히 진행해 주시는 동지들이 있잖아요. 쉽지 않은 일인데 내 일처럼 선뜻 나서주시는 데 무척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이훈 동지(민주노조를깨우는소리 호각 활동가)를 보면, 자기 학업이 있는데도 매주 목요일 구미 내려와서 일요일에 올라가고… 이렇게 연대에 진심인 동지들 때문에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습니다. 제 옆에 있어서 하는 얘긴 아니고요.(다 같이 웃음☺)” (유성화 지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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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유성화 사무장 [출처: 철폐연대]

 

 

“사실 전부 다 고맙죠. 그걸 어떻게 딱 찝어서 얘기하겠습니까…. 그래도 배 국장님(민주노총 경북본부 배태선 교육국장)이 첫 시작부터 우리 투쟁에 둥지를 틀고 이끌어 주시니까 그게 특히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사실 모든 게 처음이나 다름없잖아요. 방향성을 제대로 못 잡고 있을 때 ‘지금은 이런 국면’이고 ‘앞으로 이렇게 전개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고민을 함께 나눠 주는 연대 동지들의 조언이나 격려가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드립니다.” (배현석 지회 회계감사) 

 

“저희가 사실 일본 원정투쟁을 열기가 참 어려웠거든요. 앞서 한국와이퍼, 한국산연 같은 자본의 먹튀행각이 계속해서 있어 왔고, 그래서 다시 한번 국제연대를 통해서 일본 외투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묻는 싸움을 이어가야 하지 않겠냐고 금속노조 국제사업국을 통해 저희가 먼저 제안을 했어요. 다행히 그동안 국제연대를 열심히 조직해 온 일본 동지가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1차 원정투쟁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어요. 원정투쟁 첫 일정부터 오사카 유니온 네트워크라고 해서 20여 개 단체가 모여 있는 연대체가 있는데요. 거기에는 항만운수노조, 건설운수연대노조 간사이지구 레미콘지부, 그 외에도 여러 시민단체들이 함께하고 계시더라고요. 많은 인원수라고 할 순 없지만, 이 단체들을 중심으로 도쿄, 오사카 등지에서 닛토덴코를 향한 싸움을 앞으로도 계속하자는 결의를 보여 주셨던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최현환 지회장)

 

“저도 원정투쟁 떠날 때까지만 해도 사실 걱정이 많았는데요. 일본 도착해서 놀랐던 점은 우리가 노랑색 몸조끼를 입고 있었거든요. 그걸 입고서 숙소에서 오사카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어요. 꼭두새벽부터 어마어마하게 많은 일본인들이 우리를 지나치면서 한 번씩 꼭 쳐다보더라고요. 저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였는지 그게 막 부끄럽진 않더라고요.(다 같이 웃음☺) 아무튼 닛토덴코 그룹 본사가 있는 오사카에서 첫날부터 항의투쟁을 전개했는데요. 그때마다 재일교포 동지 한 분이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오셔서 마이크랑 앰프, 발전기 등을 챙기셨거든요. 그렇게 사흘 동안 애써 주셔서 제가 너무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렸더니 ‘저는 투쟁하는 게 전부입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일흔이 다 되어 가시는데도 우리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연대하시는 걸 보고 배울 점이 참 많다고 느꼈어요.” (박정혜 지회 여성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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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9. 간담회에 참여하고 있는 옵티칼 동지들 모습. [출처: 철폐연대]

 

 

책임져야 할 자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 

 

전국적으로 뻗어 나가는 연대에 조합원 동지들이 고마움과 동시에 뿌듯함, 든든함을 느끼고 있어 조금이나마 안도감이 들었다. 물론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가 상대해야 할 적수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도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 지역 일자리 창출은커녕 지자체의 퍼주기 지원으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챙겨 간 닛토덴코 자본, 이러한 사실을 뻔히 알고도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는 구미시와 한일 양국 정부, LG디스플레이 모두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이다. 다행히 동지들의 각오는 굳세다. 

 

“한국에 진출한 외투기업이 특혜를 받는 걸 당연시하고 또 폐업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자본이 무한대로 누릴 수 있는 권리로 여기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특혜를 제공하는 이유가 말하자면 자국 정부가 고용에 대한 책임을 떠넘긴 것이잖아요. 결국 중요한 건 닛토덴코가 한국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까닭이 과연 뭐냐, 라는 거예요. 여기서 공장을 돌려야 물류비도 아끼고 팔아먹기도 용이하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최소한 이런 외투기업이 무책임하게 먹튀할 때 빼먹은 돈 만큼은 환수를 해야죠. 지금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소위 ‘먹튀방지법’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외투기업이 철수할 때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철수를 허용하지 말아야죠. 그 기업들이 노동자들과 합의할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합니다.” (배태선 민주노총 경북본부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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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9. 간담회에 참여하고 있는 옵티칼 동지들 모습. 

(왼쪽은 민주노총 경북본부 배태선 동지) [출처: 철폐연대]

 

 

“제 다짐과 각오는 간단합니다. 한번 끝까지 가 보는 겁니다. 어디가 끝이냐고요? 평택공장으로 고용승계 쟁취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가짐으로 싸워 나가겠습니다.” (유성화 지회 사무장) 

 

“제가 20대에 옵티칼 입사해서 이제 18년째 되어 가는데요. 만약 여기에서 제 경력이 멈춘다면 여태껏 걸어온 제 삶도 리셋이 되는 기분일 거예요. 하지만 고용승계가 된다면 그렇게 제 삶과 일이 이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닛토덴코가 저희한테 하는 짓을 보면 악질기업이 따로 없죠. 그런 기업에 다시 들어가서 뭐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대로 해고를 인정하면 결국 내 삶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봐요. 그래서 저는, 저희는 이 싸움을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최현환 지회장) 

 

“어떻게 보면 자본이 막강하잖아요. 저희 13명의 힘으로만 할 수 있는 투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연대해 주신 전국의 동지들께 너무 감사하고, 그만큼 동지들의 응원과 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투쟁하는 게 저희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 자체적으로도 단결을 잘해야죠. 싸움이 길어질수록 우리가 단단해져야 외부에서 누가 쳐도 흔들리거나 깨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저는 구호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닛토덴코 각오해라! 고용승계 쟁취한다!” (박재정 지회 조직부장) 

 

사라지지 않을 권리, 존중받고 일할 권리를 위한 투쟁은 비단 일터에서 쫓겨난 이들만의 싸움이 아니다. 사업주 마음대로 회사 문 닫은 게 무슨 대수냐는 저들에 맞서 노동권을 지키는 동지들의 투쟁에 함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