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2] 보호라는 이름의 장애인 노동, 노동법의 사각지대 / 명숙

by 철폐연대 posted Feb 04,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보통의 인권

 

보호라는 이름의 장애인 노동, 노동법의 사각지대

- 장애인 노동자를 저임금에 가두는 보호작업장 실태조사

 

명숙 •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월 10만 원에서 90만 원이 월급이라고요?”

 

함께 일하던 인권활동가가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의 임금 실태를 듣고 놀라 되묻는다. 장애인 노동자들이 최저임금도 못 받는다는 것은 알았으나 그 정도가 이렇게 터무니없는 초저임금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최저임금은 월 1,822,480원(시급 8,720원)이었으니 적어도 그 절반 이하다.

 

장애인 보호작업장, 노동도 아니고 훈련도 아닌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함께 실태조사팀을 구성해 작년 4개 지역의 5개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 15명을 심층 면접 조사했다. 저임금이라는 말로도 모자라는 월 평균 10만 원에서 90만 원의 ‘바닥 임금’을 받고 있었다. 주 40시간 미만의 파트타임 근로를 하는 사람도 1/4 정도 있었지만 법정 최저임금에 미달한다. 대부분 발달장애인으로 숫자 개념이 정확하지 않아 자신이 받는 임금 액수를 정확히 모르는 경우도 많았지만, 자신의 월급이 생활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저임금이라는 인식은 있었다. 2020년 기준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는 장애인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37만 원이며,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매년 9천여 명 수준이다.

 

8 보통의 인권_01.jpg

 

2021.12.06.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 노동실태조사 발표회’ 진행 장면. [출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보호작업장은 장애인복지법 제37조(장애인복지시설)에 명시된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다. 법령에 보호작업장은 “취업이 곤란한 장애인에게 필요한 훈련을 행하여 직업을 주는” 곳으로 되어 있다. 장애인들이 다른 사업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훈련과 노동을 동시에 하는 곳임에도 우리가 조사한 보호작업장에서는 취업 초기 훈련 외 이렇다 할 훈련은 없었다. 새로운 직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장애인 노동자들을 위한 훈련이나 장애 특성에 따른 직무훈련 계획은 바랄 수도 없었다. 제빵사가 되고 싶어 하는 연구 참여자도 있었으나 작업 물량을 소화하느라 쉬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일을 가르쳐 줘야 하는 사람들 역시 일하느라 바빠 훈련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게다가 작업장에서 일하는 훈련인과 근로인의 차이는 없었다. 보호작업장에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임금을 목적으로 일하는 ‘근로장애인’과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 운영하는 ‘작업활동 프로그램’이나 장애인 직업 적응 훈련시설을 이용하는 ‘훈련장애인’이 함께 일한다. 훈련장애인은 근로 목적이 아니니 똑같이 일해도 훈련인과 근로자의 차이는 업무 배치 또는 근무시간에서의 차이 정도만 있었다. 업무 배치에서의 차이라는 것도 부품 조립 중 어떤 부품을 사용하는가의 차이 정도다. 그마저도 없이 요일만 다른 보호작업장도 있었다. 근로인이든 훈련인이든 실제 당사자들은 임금을 목적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작업장 측에서도 노무 제공을 중시하고 있었다. 근로장애인과 훈련장애인의 구분은 직무수행능력과 연관이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으며 그렇게 구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별표5>

 

가. 시설 이용 장애인

"이용장애인"은 아래 1)과 2)의 장애인을 말한다.

1) 근로장애인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하는 장애인

2) 훈련장애인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 운영하는 작업활동 프로그램 또는 장애인 직업적응훈련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근로장애인은 제외한다)

 

그 외에도 수당 같은 복리후생은 별다르게 없었으며 노동시간 및 휴게시간에 대한 결정 권한도 없었다. 그저 회사가 어려우면 근무시간을 줄여야 했고, 일감이 많으면 연장근로를 해야 했다. 괴롭힘이나 차별 등을 해결할 고충처리절차는 보호작업장에 없었다. 동료나 사회복지사로부터 괴롭힘이나 차별을 경험해도 이를 적절하고 정당하게 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 친한 사회복지사나 시설장에게 말하는 정도로 그칠 뿐이었다.

 

2020년 당시 장애인 노동자는 질병 감염에 취약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지자체의 휴관 지침이 있는 곳도 있었다. 장애인 노동자들을 못 나오게 하고 임시휴업에 들어간 보호작업장의 경우 휴업수당을 지급하지 않아 문제가 된 사업장도 있었다.1)

 

1) 2020년 8월 코로나로 인해 전국 장애인사업장 691곳 중, 휴업을 한 시설은 462곳에 이를 때도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 눈여겨볼 만한 특징 중 하나는 보호작업장의 시설이나 임금, 노동조건 등의 격차가 크다는 사실이다. 지자체의 보호작업장에 대한 지원이 많거나 시설장의 노동권 인식이 있으면 노동강도나 휴게시간 등 처우가 좋았다. 두 번째 특징으로는 노조 가입의 경험이 있는 장애인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를 한다는 점이었다. 드물긴 하지만 부당한 처우에 대해 시정을 요구해서 바꾼 경험도 있었다. 노조가 권리의식의 향상을 가져온 것이다.

 

보호작업장을 떠받치는 노동제도, 최저임금법과 적용제외 인가

 

비장애인과 분리된 바닥 임금을 떠받치는 중요한 노동제도는 최저임금법이다. 최저임금법 제7조(적용제외 대상) 규정은 장애인의 노동을 평가 절하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노동 능력이 없다는 가정 아래 최저임금의 취지에도 맞지 않게 적용제외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최근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을 통해 제출된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보호작업장에서의 최저임금 적용제외 현실은 매우 심각하다. 전국 619개 시설 중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은 2,702명이며, 최저임금 미만인 장애인 노동자는 7,371명이나 된다.

 

최저임금법 시행규칙에는 최저임금 적용제외의 인가 기준을 받으면 최저임금을 주지 않고도 장애인을 고용할 수 있다. 인가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 기준은 “최저임금을 받는 다른 근로자 중 가장 낮은 근로능력자의 평균작업능력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로 하고 있다. 인가기준은 매우 추상적이어서 직무평가로 이것을 명확히 가르기 어렵다. 지난해 강은미 의원실에 제출한 국정감사자료에 의하면 98% 이상이 허가를 받았다. 신청하면 허가해 주는 구조인 셈이다.

 

8 보통의 인권_02.jpg

 

 

장애인 보호작업장을 고안한 노동정책의 틀은 장애인 차별의 구조에 주목하기보다 장애인을 훈련시키면 장애인을 고용할 것이라는 가정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작업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는 장애인을 문제 삼거나 획일화된 상품 생산(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장애인의 노동이 거추장스럽다고 여긴다. 그러한 접근법은 장애인을 분리하여 보호한다는 허상을 만들어 냈다. 보호고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장애인의 노동권은 보호되지 않고 있었다. 공기업조차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 장애인 차별적인 고용구조와 속도와 생산성 중심으로 노동에 대해 접근하는 비장애인 중심의 체제는 문제 삼지 않는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분리하고 배제하는 보호작업장은 인권침해라고 보았다. 특히 독일, 세르비아, 룩셈부르크는 ‘보호작업장 폐쇄’ 권고를 받았다. 독일은 보호작업장 폐쇄를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 시행 중이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초안을 통해 보호작업장이 장애인의 개방/통합적 노동 시장 유입을 가로막기 때문에 보호작업장이 장애인의 노동권을 점진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대책일 수 없다고 하였다.

 

장애인의 노동 경험에 대한 주목

 

그러나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인식이 미치지 못한다. 중증장애인들이 일할 곳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우리가 만난 장애인 노동자들은 월 25만 원을 받고 일하고 있음에도 계속 일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나 미래에 필요한 경제적 자원의 수준에 미달하는 보호작업장이기는 하지만 선택할 일자리가 보호작업장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일을 해야 동료를 만나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노동세계에 참여할 수 있으며, 자신의 꿈(제빵사나 강사)이나 노동의 즐거움을 충족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적극적인 모색의 필요성,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반문해야 할 이유가 아닐까. 먼저 최저임금 적용제외 조항(7조)을 없애는 것부터 한다면 적어도 장애인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나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