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8] 여권법 위헌법률심판 제청, 언론자유를 위한 운동이며 차별에 대한 저항이다 / 권순택

by 철폐연대 posted Aug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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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여권법 위헌법률심판 제청,

언론자유를 위한 운동이며 차별에 대한 저항이다

 

 

권순택 •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세계 80여 개국을 다니며 수십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총격과 살상의 현장을 끈질기게 취재하는 분쟁지역 전문 PD”

 

2021년 5월, JTBC ‘방구석1열 - 내전 영화 특집’ 편에 초대된 김영미 독립PD를 변영주 감독은 이렇게 소개했다. 김영미 PD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은 ‘분쟁지역 전문’이라는 말이다. 그런 김영미 PD와 개인적 인연이 있어 가끔 만날 때마다 ‘분쟁지역을 취재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이라는 건, 당연히 분쟁지역에서 겪게 되는 생명의 위협이나 생필품조차 구할 수 없는 데에서 오는 곤란함 등을 떠올리게 했다. 적어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장진영 사진작가의 ‘여권법’ 위반에 따른 형사처분, 그로 인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경유하면서 김영미 PD가 실질적으로 겪는 어려움은 다른 곳에 있었음을 깨닫게 됐다. 그것은 분쟁지역을 취재하면서가 아닌 한국 정부에 의한 것이며, 여권법 제17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여권법 제17조는 언론에 대한 취재 허가제다

 

2022년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특별 군사작전 개시 명령을 선언으로 전쟁이 시작됐다. 많은 언론인의 발길이 우크라이나를 향했다. 장진영 사진작가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3월 5일 폴란드를 거쳐 우크라이나로 들어가 보름 동안 현장을 취재했고, 카메라에 담은 전쟁의 기록을 시사IN을 비롯한 여러 언론 매체들을 통해 소개했다. ‘금지된 현장’이라는 사진전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전쟁이 벌어진 우크라이나 현지의 모습이 한국 언론인에 의해 처음으로 국내에 전달된 의미 있는 작업이며, 언론 행위라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그가 맞닥뜨린 현실은 냉혹했다. 정부로부터 “외교부 장관의 허가 없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체류했다”고 여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1년의 세월이 지난 2023년 3월, 장진영 사진작가는 여권법 위반으로 약식명령으로 500만 원의 형사처분을 받았다.

 

현행 여권법 제17조는 전쟁 등 국외 ‘위난상황(危難狀況)’이 벌어진 지역에 대해 방문이나 체류를 금지하는 ‘여권의 사용제한’을 담고 있다. 외교부가 지정한 ‘여행금지국가·지역’*에 대해서는 방문과 체류가 전면 금지된다. ‘취재·보도’의 목적인 경우를 포함한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그때라도 외교부가 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해당 국가와 지역 방문을 신청하고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국 정부가 정한 허가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언론사는 KBS와 SBS로 3월 18일의 일이다. 장진영 사진작가보다 13일이나 늦을 때였다. 기자들은 우크라이나에 들어가기 위해 외교부에 경호 및 숙소 계약기간이 담긴 활동계획서를 제출하고도 ‘방문지역(체르니우치 주)’, ‘방문기간(3일 이내)’, ‘방문인원(4인 이내)’의 체류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다. 극단적인 취재 제한이 적용된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찾은 언론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2박 3일이었기에 짧은 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현지 상황을 전부 파악해야만 했다. 어느 장소를 찾아가 누구를 만나야 할지, 그곳에 가기 위해 어떤 이동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지, 모든 취재 계획을 빠르게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실행 과정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전쟁의 고통을 호소하며 오열하는 우크라이나 주민을 앞에 두고 기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는 거였다고 한다. 시차 적응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오죽하면 KBS 유원중 기자가 “2박 3일, 그것은 취재인가 견학인가!”, “방송에서 ‘나 우크라이나에 들어왔어’라고 증명사진이라도 찍으러 들어 온 건지 분간이 안 됐다”라고 표현했을까?

 

안타까운 건, 그런데도 KBS·SBS 기자들은 전쟁의 중심부에는 가 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돈바스’와 러시아 군의 점령 여부가 집중됐던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는 외교부가 방문·체류를 불허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인들은 우크라이나에서도 서부에 위치한 ‘체르니우치 주’ 내에서만 이동할 수 있었다. 김영미 PD는 이를 두고 “체르니우치는 우리나라로 치면 마라도”라고 일갈했는데, 마라도에서 서울을 취재하라는 게 외교부의 방침이었다는 얘기다.

 

그 시각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하는 전 세계 언론인들이 모여 있던 곳은 르비우(리비우)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의 군사시설을 미사일로 공격했던 그 시기(2월)에 르비우에 프레스센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진행 상황과 취재를 위한 정보 공유가 활발히 진행됐다. 전 세계의 기자들이 르비우에 모여 있었지만, 우리나라 언론인들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여권법 제17조를 근거로 외교부가 방문과 체류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외교부가 르비우 내 방문·체류를 허용한 때는 그로부터도 한 달이 지난 4월 25일의 일이다. 키이우 방문은 5월 26일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대한민국헌법 제21조 제2항은 정확히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국적의 언론인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할 때 사실상 외교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신세였던 셈이다. 여권법 제17조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나선 까닭이다.

 

 

7. 본문사진.jpg

2023.06.23. 언론의 자유를 위한 여권법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기자회견.

[출처: 언론개혁시민연대]

 

 

취재·보도는 언론사 ‘정규직’들의 몫인가

 

장진영 사진작가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당초 여권법 제17조는 취재·보도의 목적인 경우, 예외적으로 여행금지국가 내 방문과 체류를 허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를 담당하는 곳이 외교부다. 문제는 외교부가 언론인의 우크라이나 방문과 체류를 허가하면서도 프리랜서 언론인을 비롯한 사진작가들에 대해 차별적으로 대우했다는 점이다.

 

외교부의 <우크라이나 취재 목적 방문(예외적 여권사용) 허가 신청 안내> 공문을 보면 ‘기본원칙’에 “언론사 소속 직원(단, 외교부 출입 언론사에 한정)”이라고 적시돼 있다. 외교부가 자체적으로 언론인들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허용하며 두 가지 장벽을 세워 놓은 것이다. 언론사 소속 직원이어야 할 것, 그리고 그 언론사가 외교부 출입을 하고 있어야 할 것. 언론사에 소속돼 있지 않고 사진을 찍어 왔던 장진영 작가는 애초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다. 한국 사회 내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종군사진기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분쟁지역 전문기자 타이틀의 김영미 독립PD 또한 마찬가지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전문성을 갖췄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설령 언론사에 소속돼 있다고 하더라도 외교부 출입이라는 장벽 또한 만만히 볼 게 아니다. 해당 언론사가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한 외교부가 지정한 협회 회원사로 등록돼 있어야 한다. 결국 ‘대형 언론사 정규직’만이 넘을 수 있는 장벽이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 이유다.

 

장진영 작가가 기소됐다는 소식을 듣고 김영미 PD를 비공식적으로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김영미 PD는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돼 취재하던 도중에 시리아에서 나온 적이 있다”면서 “그래서 벌어진 상황은, 시리아 내 우리나라의 독립적인 취재가 가능한 소통 채널이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여행금지국가 제도가 생긴 이후, 장장 15년 동안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게 힘들었다. 시리아 내전 상황도 요르단 국경에서 취재하고 그랬지만 우크라이나조차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만큼 시리아 내부를 취재하기 위해서는 제3자를 통해야 했기에 비용을 더 들여야 했고, 그 비용을 독립PD로써는 감당하기 힘들다는 게 김영미 PD의 설명이었다.

 

여기에서 ‘취재·보도는 대형 언론사 정규직만의 몫인가.’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우크라이나에 제아무리 공익적 목적으로 취재·보도를 위해 들어가려고 해도 접근조차 할 수 없으니 하는 말이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여권법 제17조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언론자유를 위한 운동이며 동시에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차별에 대한 저항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국민들의 알 권리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외신의 시각이 아닌 오롯이 한국의 시각으로 전쟁을 바라볼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언론인들에게 여권법으로 인해 범죄자가 될 걱정만이라도 덜어 줘야 할 때가 아닐까.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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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정부가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한 나라는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예멘, 시리아, 리비아, 우크라이나, 수단 등 8개국이다. 여행금지‘지역’으로 지정한 곳은 필리핀 일부 지역(잠보앙가 반도, 술루·바실란·타위타위 군도), 러시아 일부 지역(로스토프, 벨고로드, 보로네시, 쿠르스크, 브랸스크 지역 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30km 구간), 벨라루스 일부 지역(브레스트, 고멜 지역 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30km 구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접경 지역(아제르바이잔 접경 30km 구간, 아르메니아 접경 5km 구간/아르츠바셴 및 나흐치반 아르메니아 접경 지역 제외) 등 4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