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004] 당사자의 곁에서, 함께 힘을 만드는 / 이은주

by 철폐연대 posted Apr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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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당사자의 곁에서, 함께 힘을 만드는

이은주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상임활동가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은 노동자 중심, 현장 중심의 노동보건운동을 지향하는 단체다. 1990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모임’과 1991년 보건의료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노동자 건강을 위한 모임’이 1995년 ‘노동과 건강을 위한 연대회의’로 통합되고, 1999년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으로 개편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산재와 건강권에 관한 무료 상담과 교육, 현장 조사와 연구, 각종 대책위 결합 및 지역 사안과 관련한 활동을 기본으로 현장 노동자들이 회원으로 결합하는 팀 활동이 진행되고 있으며, 녹산공단 이주노동자 조직화 및 거제 조선하청노동자 조직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2019년 4월에는, 2017년 노동절에 발생한 거제 삼성조선소 크레인 사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 <나, 조선소 노동자 - 배 만들던 사람들의 인생, 노동,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펴냈다.

이은주 동지는 1994년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모임’ 간사로 시작해 현재까지 마창거제산추련에서 활동하고 있다. 10년 전 1년간의 안식년으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고, 이후 다시 10년째다. 올해 처음으로 철폐연대 정기총회에 가볼까 생각하며, 다른 동지들은 1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이은주 동지를, 3월 5일 창원 내동공단의 마창거제산추련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및 정리: 신순영 (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9 이은주.jpg

 

 

회원들의 활기로 채워지는 공간

 

출발은 노동조합 산업안전보건부 간부들의 소모임이었고, 1999년부터 대중조직으로서 회원들을 받게 되었어요.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조직으로 안정화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회원으로 조직되는 게 맞겠다 싶어서, 회원을 늘리기 시작했어요. 노동조합 등 단체 25개, 290명 정도의 개인회원이 있어요. 아쉬운 점은 그중 90%가 정규직이라는 거고, 저희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고 고민이 계속 거기에 있기도 해요.

회원 활동은 팀이 중심이고, 현재는 세 개의 팀이 있어요. 조직팀은 현장의 노동안전 활동가들이 각 사업장 사안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하고 서로 배우는 모임이고, 한국노총이나 상급단체가 없는 사업장도 있어요. 3년 전에는 “뭣이 중헌디”라는 제목의 30분짜리 교육용 영상을 직접 제작했고, 작년에는 각 사업장의 활동사례를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어요. 소통팀은 분기별로 나가는 소식지를 만드는데, 글 쓰는 일이 쉽지 않다 보니 팀원이 많지는 않아요. 심심통통이라는 심리상담사 모임은 2년 전쯤 지역의 S&T중공업이랑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심리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나, 조선소 노동자> 책 작업을 마무리한 후에 관심 있는 분들도 같이 하는 팀으로 지속되고 있어요.

활동하는 사람들은 30명 정도로 유지되고 있어요. 회원조직이고 대중조직이라고 하면 그 안에서 그들이 움직이고 활동을 해야 조직이 살아남는 거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내가 몸담고 뭔가를 하면 그 조직이 소중해지기도 하고 그 모임을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모임들이 활성화되는 게 의미 있겠다고 생각해서 거기 시간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죠.

 

 

부침 속에서도 꾸준히 서로 배우며

 

한참 운동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활동이 안 될 때는 문을 닫아야 되나 고민하는 시기도 있었어요. 그래도 팀은 계속 가동하려고 했죠. 손과 마음이 많이 가는 일이지요. 처음부터 부딪쳐서 뭔가 풀어야 하는 과정에 있는 동지들이다 보니, 하나하나 그 과정을 함께 밟아가야 해요. 저희 지역도 노동단체가 거의 사라졌어요.

그런데 저희는 좀 다른 게, 노동조합 안의 간부들이 바뀌잖아요. 역할이 바뀌기도 하고 그러면서, 3~4년 전부터 주요 연령층이 젊어졌어요. 얼마 전 금속노조 지부모임에서 보니 전체 중 20% 정도 빼고는 다 처음이었어요. 저희들은 똑같은 걸 계속 반복하면서 좀 지치는 것도 있는데, 그들한테는 오히려 새로운 거고. 제가 처음 와서 현장 모임을 했던 것처럼, 이분들한테는 이 모임이 지금 그런 셈인 거죠.

저한테도 도움이 되는 게, 젊은 동지들이 와서 한창 새로 공부하고 교육하고 그랬던 적이 있어요. 교육 2시간만 해도 실은 지치는데, 끝나면 질문과 토론이 이어져요. 다른 동지들이 열정과 힘을 내는 게, 저를 버티게 하는 힘이기도 하고 배우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아요. 몸이 좀 힘들기는 해도, 이 시간들이 또 20년, 30년을 이끌어갈 힘이 되기도 하겠고. 그렇게 옆에 같이 있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속도를 맞추고 과정의 의미를 새기며 걸어가는 길

 

활동을 오래하다 보면,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고통도 있고 슬프기도 하고 거기서 또 희망도 있고. 제가 처음 안식년을 갖고 돌아온 게 십년 전이에요. 쉬면서 어느 지역 어느 단체의 누구라는 이 역할에 너무 갇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왜 이걸 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 많이 했었는데, 돌아와서는 다른 사람들은 다 지쳐있는데 이주노동자 사업이며 거제 새터 사업도 하자고 그랬어요.

녹산공단 조직화에 결합하고 이주노동자 사업하면서, 소통이란 게 뭘까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10개 국어로 이주노동자 권리책자 작업을 했는데, 다른 한국어 책자 만들 때보다 시간이 훨씬 더딘 거예요. 글 하나 쓰고 번역하고 받아서 보내고 편집한 걸 다시 보고… 하는 과정에 시간과 노력이 배 이상 든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고, 속도를 조절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그때 많이 했어요.

저희 회원 중 90%가 정규직인데, 상담 오고 투쟁하는 사업장들은 주로 비정규직이지만 여기에 와서 주체로서 참여하지는 못해요. 그래서 창원 말고 주변 경남 지역의 공단 조직화 사업이나 뭔가를 연결하는 게 필요하다는 고민을 했고, 2010년쯤부터 많은 내부 논의 끝에 거제로 결정했어요. 회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월차 내서 거제, 통영에 가서 선전전하고, 1년쯤 후에 평가를 거쳐서 거제에 ‘새터’를 만들었어요. 함께한 동지들이 돈도 모으고, 당시 산추련에서도 기금을 만들어 넣고 오랫동안 지원을 했죠. 필요한 곳에 역량을 투여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실제 그 과정에서도 우리 회원 동지들이 그만큼 결합했다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위험의 외주화, 법과 현실의 괴리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1월부터 시행됐잖아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년 말 도급 관련해서 아노다이징(양극산화처리) 공정에 대한 이슈가 지역에 있었어요. 아노다이징은 화장품 용기부터 전자제품, 우주항공 부문에까지 널리 쓰이는 알루미늄 도금 공정인데, 전통적인 도금 개념이랑 달리 전기를 통해서 알루미늄 껍질이 부식되게 만들고 다시 코팅을 해요. 그 과정에 사용되는 크롬산의 유해성은 똑같고요.

작년에 법이 통과된 후에 한국우주항공산업이라는 데서 국민신문고에 아노다이징은 부식시키는 거니까 도금이 아니지 않느냐고 질의를 하고, 고용노동부에서는 도금이 아니니 도급 금지 작업에서 제외한다고 답을 했어요. 그건 저희가 몰랐었는데, 사천의 한 사업장에서 똑같은 문제가 발생해서 고용노동부에 항의 진정하고 전문가회의 소집한대서 가서 증언하고 12월에 현장조사도 진행됐어요. 결국 아노다이징도 도금이고, 도급이 금지되어야 한다고 해서 그 사업장에는 도급 중지하고 직접고용하라는 조치가 내려졌고요.

법이 바뀐다고 하면, 사업장에서는 이미 안에 있는 도금 작업 밖으로 빼는 꼼수가 벌어져요. 작년에 현대제철에서 아연 도금하는 사업장 노동자들을 촉탁직으로 돌렸던 것처럼. 위의 경우는 그런 것들 중 하나에 대한 문제제기가 된 거고, 아주 작은 사례일 거라고 생각해요. 작년에 법이 개정되고 시행까지 1년이 있었으니 밖으로 빠지는 도금 작업들이 더 많았을 것 같고요.

 

 

<나, 조선소 노동자>와 이후

 

삼성중공업 사고 기록에 참여했던 노동자들 중에 지금은 세 분 정도만 일하러 가시고 나머지는 아직 일을 못하고 계셔요. 시간이 지난다고 회복되는 게 아닌 거죠. 2월 21일에 항소심이 있었어요. 업무상과실치사상은 다 인정됐는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은 아니라고 나왔어요. 항소심 진행 과정에 피해자 증언도 신청하고, 지브크레인 운전사도 다시 만나 얘기 듣기로 했어요.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이행을 위한 국내 연락사무소(NCP)에 진정해놨던 건은 아직 진행 중에 있어요.

그날 재판에 태평양에서 삼성측 변호사가 나왔는데, 마지막 발언을 하면서 “고통을 마무리하고” 라는 말을 했어요. 얼마 전에 읽은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책에 “처음 한 명의 죽음은 ‘자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번째 죽음부터는 ‘타살’이고, 수백 수천 번째가 되면 그것은 ‘학살’이다.” 라는 구절이 있어요. 한국 사회가 근대화되고 난 이후에 노동자의 죽음이 동일한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고, 그렇다면 지금은 노동자의 학살이 이루어지는 시기인 거잖아요. 그 고통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그 현장도 변하지 않았는데. 누군가는 “고통을 마무리”하자고 말하고… 사람들은 잘 모르죠. 잊혀져가기도 하고요. 아무튼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이에요. 검사가 상고를 다시 해서 한 번 더 원청의 책임을 묻기 위한 활동이 남아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지나고 돌이켜보니까, 책 작업하는 과정 자체가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기록단에 같이했던 분들하고 1년간 주기적으로 만나서 계속 논의하며 작업했는데, 그게 사람을 이해하고 상황을 이해하는 과정, 고민하는 과정이 되기도 하면서 그 시간을 버틴 힘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엄기호 씨가 말하는 ‘고통의 곁에 선다는 것’, 제가 함께한 인권기록활동가 선생님들에게 제 옆에 있던 분들이라고 얘기했거든요. 그런 게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동지의 죽음, 노동자의 죽음

 

그런데 책 작업이 끝나고 얼마 안 됐을 때, 작년 6월에 현대위아창원비정규직지회 한 분이 자살을 하셨어요. 노동조합 설립할 때 핵심인 3공장에 처음으로 노조 조끼를 입고 들어갔던 동지였어요.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 율동패도 하고 지회에서는 문체부장을 맡았고요. 그 동지가 마지막 선택을 하기 전에 여러 사람과 통화했었는데 저도 그 중 하나였어요. 근데 전혀 그걸 알아채지 못한 거죠.

한 사람이 절망하고 마지막 선택의 지점에 서는 건, 여러 요인이 있는 거잖아요. 그 사람을 잡아주는 단 하나의 끈이라도 있었다면 달랐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장례를 치르는 데까지는 동지들을 챙겨야 하니까, 뭘 할 수도 없고 마음도 표현할 수 없었는데… 끝나고 나서는 되게 우울감에, 지금까지도 약간 그런 마음이 있거든요.

그 동지는 몸이 아파서 산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후에 복귀할 사업장이 라인작업이다 보니 부서 전환배치를 요청했는데 안 받아들여지고… 회사측하고 갈등하다가 그런 선택을 한 거였어요. 하지만 결국은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지회나 지역의 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 영향을 미친 거죠. 그 후에는 밤에 오는 전화도 받자, 설사 횡설수설하더라도 그래도 내가 10분이라도 들어주자, 그래요. 그때 만약에 내가, 마지막 끈이라도 잡고 있었다면, 아직 나랑 같이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 많이 들어서.

 

 

간극과 단절

 

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면 약간 권력이나 결정에서 배제되는… 그리고 속도감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전국화되거나 서울에 올라가서 뭔가 되는 건, 지역에서 이미 일상화된 사건인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현장과 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해결 과정이 석연치 않게 흘러가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문제가 당사자의 운동으로 힘을 얻어서 해결되기보다는 어떤 정치적 해결로 귀결되는, 언젠가부터 늘 청와대 앞에서 뭔가를 해야 하는 그런 부분이요. 그런데 그만큼 현장이 같이 움직이지는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 법이 바뀌어도 그 과정에 노동자들이 별로 참여하지 못해요, 어떻게 바뀌는지도 잘 몰라요. 그냥 제출된 것만 아는 거예요. 그걸 지키고 싸워야 되는, 뭔가 바꿔야 되는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이 자기가 내용을 결정하거나 그것을 위해 투쟁하지 않으면 당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죠. 간극이 계속 늘어나는 느낌이에요. 사회적 합의라는 어떤 과정들이, 현장의 논의와 의견을 수렴하고 또 투쟁을 통해서 안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안이 먼저 만들어지고, 마치 그것이 현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되는데 그 논의와 결정 과정에서 정작 현장의 노동자는 배제되는 문제가 크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큰 사고나 문제가 생기면 진상조사단이 구성되잖아요. 문제를 가장 잘 아는 건 그 현장의 노동자고, 그러면 진상조사 과정에서 당사자 주체들이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요. 오히려 대상화되기도 하고, 사업주가 보여주는 일부가 전체인 것처럼 되기도 하고, 결과가 나오면 개선될 거라는 기대감을 갖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죠. 그런 게 안타까워요.

 

 

권리의 사회적 확장과 당사자의 목소리

 

노동자 건강권에 대해 예전보다는 더 많이 관심을 갖기도 하고 드러나고 있기도 하지만, 그 사회적 확장에서 계급과 현장은 빠져 있다는 느낌이 저는 들어요. 많은 시민사회 영역에서 관심을 갖고 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그건 연대의 의미로 형성되는 거고. 결국은 그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바꾸고 투쟁할 수 있는 요구들을 갖춰야 되는데, 잘 되지 않는 거죠. 갈수록 뭔가 걸러진 목소리를 찾는 것 같아요. 필터링을 하는 거잖아요. 결국은 누구의 목소리로 어떻게 말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그게 또 최근의 문제만은 아니기도 해요.

법과 제도가 바뀌고 관심도 높아졌지만 현실은 별로 달라지지 않죠. 현장의 상황들을 드러내서 투쟁을 만들고 지역으로 전국으로 확산시켜내는 노력들이 필요한 것 같은데, 우리의 역량과 시간과 인력을 어디에 투입하느냐 하는 결정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해요. 전체 운동이 우리가 무엇을 위해 투쟁할 건지, 어떻게 함께할 건지, 어떻게 민주적으로 논의할 건지에 대한 어떤 지향과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데… 갈수록 소통은 어려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지금 노동자의 죽음이 대물림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태일 50주기, 전노협 30주년이 됐는데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 자식들에게, 평등하지 못한 세상의 또 다른 노동자에게 죽음이 대물림되고 있어요. 결국 힘은 노동자에게 있다는 말이 여전히 유효할지… 그걸 사람들이 인정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여전히 당사자의 목소리와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동의 문제, 어떻게 함께 헤쳐갈 수 있을까

 

고 이한빛 PD의 이야기를 다룬 <가장 보통의 드라마>를 읽으면서 놀랐던 게, 거기는 드라마를 만들고 여기는 배를 만드는데 고용형태나 착취방법이 너무나 똑같다는 거였어요. ‘프리랜서’라는 이름 하나면 다 되는 거고, 그렇게 전 사회가 다 다단계 외주화되고 있다는 게 곳곳에서 보였어요.

<후쿠시마, 하청노동자 이야기>라는 책을 읽으면서는 강원도가 생각났어요. 후쿠시마가 탄광지대였는데, 석탄산업이 몰락하니 관광산업이 부상하고 그러면서 원전마피아가 지역을 장악하는 과정이 있어요. 그 안에서 강원도가 보이고, 조선소가 똑같이 보이는 거예요. 모든 게 다 똑같은 거죠. 다들 비슷한 상황에 있는 거고, 그럼 공동의 문제라는 거죠.

그러면 비정규직 운동은 아직도 내뱉어지지 않는 목소리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드러난 목소리와 묻혀있는 것들이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공동의 문제라는 것을 어떻게 같이 논의하고 연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다양하게 중층적으로 나뉜, 어떤 궤를 깨는 운동이 좀 필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각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같은 모양과 형태로, 우리가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걸 드러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고통에 연대하는 자세와 소통을 생각하는 요즘

지금은, 끊임없이 내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 되새겨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저도 오랫동안 활동해왔고, 그러면서 저 나름 시기마다 해야 되는 일의 어떤 흐름이 있다 보니… 충분히 준비되지 않거나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끌고 가는 모습이 저한테 너무 비쳐지는 게 있었거든요.

그리고 이전에는 제가 보고 있지 못했거나 배제했던 문제들에 대해서도 들여다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 전에 <진주>라는 책을 읽게 됐는데, 아버지가 운동하시는 분이어서 진주교도소에 수감되고 어려서부터 그 영향 아래 살면서 성장한 주인공의 이야기예요.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일상이 그려지는데, 그 안에서 저도 막 보이는 거예요. 우리가 얘기하는 뭔가 큰 전망이나 어떤 지향이라고 하는 것에 많은 것들이 배제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것에도 내 시선을 계속 두려고 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 전 출근길에 하늘을 봤는데 날씨가 흐렸어요. 우리가 바람 분다고 화내지 않고 비가 온다고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결국 사람의 마음도 자연의 순리처럼 변화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 편견 없이 보는 것, 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 그렇지만 정말 아니다 싶은 건 분명하게 서로 말하는 것. 그런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동지라는 이름으로 그냥 관계가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서로를 지치게 하는 것도 소통이 안 되는 문제가 가장 크니까요.

상처를 받는 것도 상처를 회복하게 만드는 것도 관계인 것 같아요. 나이를 먹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사람은 정말 모두 다르다고 느껴요. 처음 운동하고 그럴 때는 막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동지니까… 그랬는데,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지 못하잖아요. 가끔은 기본 전제 자체가 서로 다르다는 걸 계속 확인하게 되기도 하고, 그래서 조금 숨을 천천히 쉬어가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을 해요. 물론 쉽지는 않죠.

 

 

※ <질라라비> 200호 발간 기념행사에 함께해주세요.

 

- 2020년 4월 24일(금) 오후 6시 30분 /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강당(지하)

- 후원계좌 : 하나은행(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824-910011-23204

<질라라비>가 200호를 넘어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과 비정규직 철폐운동에 함께하는 동지들의 참여와 후원을 요청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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