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11] 5인 미만 사업장 노동법 적용 제외의 문제점 / 김혜진

by 철폐연대 posted Nov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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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 포커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법 적용 제외의 문제점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부설 노동권연구소 연구위원)

 

 

근로기준법은 노동자 권리의 최소 기준이다.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은 최소 기준인 근로기준법도 일부만 적용될 뿐이다. 사업장의 규모만을 기준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천편일률적으로 침해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현실이지만, 이런 상황은 오랜 기간 개선되지 않았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이 사안이 알려지고 변화도 생길 텐데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2017년 말 기준 조직률이 0.2%에 불과할 정도로 조직화가 잘 안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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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철폐연대]

 

 

1.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실태와 노동조건

 

 

2019년 통계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580만 명에 이른다. 이는 전체 노동자의 1/4 정도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무급가족종사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노동자수는 35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4인 이하 사업장 실태조사’ 보고서(2016. 12. 고용노동부, 4인 이하 사업장 실태조사. 한국노동연구원)에서도 2016년 기준 4인 이하 사업장에 근무하는 임금노동자를 358만 7천 명으로 본다. 이 경우에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의 17%에 달한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대다수 도소매업과 음식 숙박업에서 일하고 있으며, 부동산업이나 여가서비스업, 교육서비스업, 협회 및 단체에도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서울과 경기 지역에 전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50% 정도가 일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여성의 비율이 조금 높고, 임시·일용직이 65.3%를 차지하고 있으며,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은 비율이 58.1%나 된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50대 이상 연령대의 비중도 높다. 1년 미만으로 일하는 비율이 47.3%에 이른다. 비정규직 비율이 71.9%에 이르며, 장기적으로 일하지만 임시직인 노동자들이 많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이 지극히 불안정하며 이동이 매우 잦다는 것을 알 수 있다(2019. 9. 10. 민주노총, 작은 사업장 노동자 권리보장 의제개발 워크샵, ‘30인 미만 노동시장의 특징과 노동자운동의 전략’. 박준도).

위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에 의하면 2016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138만 원으로 1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월 평균 임금 279만 원의 절반에 불과하다. 시간당 임금도 8,245원으로 전체 평균 1만 3,456원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유급휴가가 주어지는 이는 23.9%(전체는 60.2%), 상여금은 39%이다. 초과근로수당을 받는 이는 15.0%(전체 47.3%)이며,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비중은 30%를 하회하고, 사회보험 가입률은 30%를 전후한 낮은 수준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일수록 더 나쁜 노동조건에서 일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이 편법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파견노동자는 상시근로자수에 포함되지 않으니 파견법을 활용하거나 외주나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활용하여 기업의 규모를 줄인다. 업체를 쪼개서 법인을 분리하기도 한다. 사내부서에 불과해도 법인이 분리되면 독립적인 회사로 간주되어 5인 미만 사업장이 되는 것이다. 제조업에서 많이 활용되는 소사장제도 마찬가지이다. 판매대리점도 법인과 회계, 인사노무관리 시스템이 분리되어 있으면 별도의 사업장으로 보기 때문에 5인 미만 사업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2.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문제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을 일부만 적용한다. 근로기준법 제11조 1항에 의하면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하여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있으며, 2항에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일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고 하여 대통령령에 적용 가능한 법을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령에서 제외한 규정>

- 근로기준법령의 요지 등을 근로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조항(제14조)

- 명시된 근로조건이 사실과 다를 경우 노동위원회에 손해배상 신청 등을 규정한 조항(제19조 제2항)

-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등에 대한 제한 조항(제23조 제1항)

- 부당해고 등에 대한 노동위원회 구제신청과 조사, 구제명령 등에 대한 조항(제28조~제33조)

- 근로시간 조항(제50조)

- 연장근로의 제한 조항(제53조)

- 연장, 야간, 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 지급 조항(제56조)

- 보상휴가제 조항(제57조)

- 근로시간 계산의 특례 조항(제58조)

- 연차유급휴가제도 조항(제60조~제62조)

- 18세 이상 여성에 대한 유해 위험 사업 사용 금지와 야간휴일근로제한 조항(제65조 제2항, 제70조 제1항)

- 태아검진시간의 허용 조항(제74조의2)

- 직장내 괴롭힘 금지와 발생 시 조치 (제76조의2,3)

- 취업규칙 관련 조항(제93조~제97조)

 

정부는 사업주의 지불능력과 정부의 관리감독 어려움을 근거로 들어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을 제한한다.

헌법재판소에서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적용을 제외한 현행 근로기준법을 합헌으로 판단하였다. 1999년 헌법재판소는 5인 미만 사업장을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제외한 근로기준법 조항이 합헌이라고 판시(98헌마319)했다. 소규모 사업장의 열악한 현실, 국가의 근로감독 능력의 한계를 감안한 정책적 결정으로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으며, 인간의 존엄성에 상응하는 근로조건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입법자의 형성의 자유에 속하며, 4인 이하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되는 기준이 인간의 존엄성을 전혀 보장할 수 없을 정도라고는 볼 수 없다고 한 것이다.

20년이 지난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도 “근로자 보호의 필요성과 사용자의 법 준수 능력의 조화”라는 근거를 들어 이 조항을 합헌이라고 판시했다.

 

 

3.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의 문제점

 

 

우선 기업 규모로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문제가 있다. 기업 규모는 작지만 매출이 영세하지 않은 사업장도 많다. 의원이나 변호사 사무실, 종교단체, 학원 등은 기업의 규모가 작아도 매출이 작지 않고, 어린이집이나 사회복지 시설들은 정부의 보조를 받는 사업이다. 여기에 더해 대형 출판사들이 법인을 분리하는 등 실질적으로 5인 미만이라고 보기 어려운 사업장도 있다. 업종의 특성이나 실제 기업의 매출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규모만 따져서 일률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문제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영세한 사업주들도 있다. 도소매업이나 음식·숙박업의 경우 실질적으로 영세한 5인 미만 사업주들이 많다. 그런데 왜 이들은 지불능력이 없는가? 자영업 시장의 경쟁, 원·하청 불공정거래나 높은 임대료 등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영세사업주에게 부담이 되는 임대로나 카드수수료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원·하청 불공정거래에 대한 개선대책을 마련해야지,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고 최저임금이 올라야 이 왜곡된 구조가 드러나고 개선의 필요성이 생긴다.

정부는 근로행정의 부담을 주장하는데, “경찰이 부족해서 도둑을 잡기 힘드니 도둑질을 합법화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 때에는 도둑질을 합법화하는 것이 아니라, 왜 사람들이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는지 그 구조적인 문제점을 파악하여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경찰 수를 늘릴 수 없다면 자율적인 방범활동을 강화하는 등의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행정 부담을 이유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정부는 영세사업장 위주의 근로감독, 노동조합과 함께하는 명예근로감독관 제도 등을 적극 추진하면서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4.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에 대한 권고

 

 

국가인권위원회는 2008년 4월 30일 “5인 미만 사업장에만 근로기준법의 주요 규정을 배제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면서,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는 것을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되 단계적으로 적용을 확대’하라는 권고를 내린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의 당사자로서 교섭력도 없고 관리감독에도 포함되지 않아 불리한 계약에 응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노동조건이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2012년 12월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는 ‘「근로기준법」 적용범위 확대 방안’ 보고서를 발간하여 규모별 차별 적용은 국가 기준이나 헌법의 평등권에도 맞지 않고, 사업장 종사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근로조건의 적용을 배제하는 선진국의 입법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우선 적용되어야 하는 조항을 선정하여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하여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2018년 6월 법제처는 ‘65개 법령 속 숨은 차별 없앤다’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65개 법령(노동관계법령은 13개)을 “불합리한 차별법령”으로 선정하였으며, 그 중 하나로 “상시근로자 수가 5인 미만인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권익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소규모 사업장에 적용하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 법령 규정을 확대할 것”을 주장했다. 이 법령 정비 과제는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보고되었지만 고용노동부는 후속작업을 하지 않았다.

2018년 8월 1일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도 위원회의 업무를 마치면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를 비롯해 다양한 개선 의견이 있었던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7조에 따른 '별표 1'을 개정해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확대할 것”을 고용노동부에 권고했다. 시행령 별표 1은 상시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조항을 설명하는 조항이다. 즉 시행령 개정을 통해 근로기준법 적용 조항을 확대하고 제도 개선을 위한 TF를 구성하도록 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이 요구도 수용하지 않았다.

 

 

5.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은 주체를 조직하는 과정이어야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조직화가 어렵다. 사업장의 규모가 영세한 경우 노동자들은, 그 안에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보다는 경력을 쌓아서 더 나은 사업장으로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은 사업장은 사용자와 함께 일하므로 노조에 적대적인 조직문화에서 노조 때문에 대립하기를 꺼려하기도 한다. 한국의 노동조합이 기업별 교섭구조에 고착되어 있는 이상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조직되기는 어렵다. 그래도 변화의 가능성이 생기면 조직화의 가능성은 열린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은 노동자들에게 많은 기대를 줄 수 있는 바, 이 투쟁이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2019년 4월 합헌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 국회가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에 나서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법 개정이 아니라 대통령령으로 근로기준법의 적용 조항을 확대하는 것이 방안이 될 수 있다. 정치적 역학을 고려하지 않고 노동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요구하고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통령령을 개정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제외조항 전체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핵심조항, 즉 ‘해고 조항’ 등을 중심으로 개정을 위한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휴 등 ‘임금’에 대한 부분은 영세사업주들의 반발을 뛰어넘기 어렵지만 52시간 상한제 등도 적용 가능하다. 대통령령에서 적용이 당장 필요한 부분을 추려내고 집중적으로 개정을 요구하는 투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투쟁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참여를 끌어낼 때 의미가 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변화를 바라며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실천, 예를 들어 ‘시행령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 등으로라도 노동자들을 만나고 참여할 공간을 열어야 한다. 단지 누군가의 노력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직접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기업의 지불능력’이라는 이데올로기에만 매여 있는 현재의 지형을 바꿀 수 있다. 주체들의 참여와 더불어 사회적 연대를 광범위하게 구축할 때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도 현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