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6] 해방세상을 마중하려 합니다 / 남영란

by 철폐연대 posted Jun 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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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해방세상을 마중하려 합니다

 

 

남영란 • 철폐연대 후원회원

 

 

 

차별와 혐오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곁에서 힘을 얻고

 

2022년 초 활동 복귀 전, 마음이 끌려 찾아간 곳이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부산차제연)와 전국차별금지법제정연대, 부산성소수자인권모임 QIP에서 함께 준비한 평등영화제 “내일을 여는 극장”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 중에 많이 울었다. 끝없는 배제와 혐오 속에서 존재가 지워진 채 살아가길 강요받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가 더욱 커질 수 있게 곁을 채워 가는 이들의 모습.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느낌은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세상의 모습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해 봄, 부산에서 서울까지 평등의 길을 이어 갔던 이들은 기필코 평등의 봄을 맞이하겠다며 국회 앞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전국 곳곳에서 싸움을 만들어 갔다. 자신의 몸을 갈아 넣는 단식투쟁 와중에도 자신은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평등의 봄을 맞이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던 두 동지의 모습이 아직도 선연하다. 부산에서도 민주당 부산시당 앞 릴레이 단식농성으로 “그저 있는 그대로, 나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을 혐오세력들의 틈바구니에서 외쳤다. 보탤 것이라고는 함께하고 있다는 마음과 몸뚱이밖에 없었던 나는 그저 그들 곁에 서 있었다.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절박함으로 모아졌던 그 힘도 차별과 배제, 혐오를 먹거리로 삼는 자본의 논리, 그리고 그에 부응해 왔던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해도 안 되는구나 하는 무력감이 들 만도 한데 담담히 또다시 걸음을 내딛는 이들이 내 곁에 있었다.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100가지의 목소리를 모으는 “무지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혐오세력들의 현수막이 눈을 아프게 했던 지하철 입구 광고판에 “살자”라는 글귀를 함께하는 이들의 이름으로 채워 넣어 부산시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일상화되어 있는 차별의 언행들과 혐오의 눈길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 그리고 모두에게 나의 모습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그냥 나답게, 너답게 살자고 말해 주고 싶었다.

 

부산차제연에 소속된 단체들은 평등세상을 향한 지향을 품고 있다. 그만큼 다른 어떤 연대체보다 서로의 활동을 공유하고, 서로의 활동을 평등이라는 가치로 연결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워크숍을 열어 부산차제연 활동의 방향을 논의하는 장을 만들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2023년 5월 17일, 아이다호문화제를 진행했다. 부산차제연의 수많은 활동들을 이어 주는 굵직한 매듭으로 자리매김했던 부산아이다호문화제와 부산퀴어문화축제가 최근 몇 년간 코로나 등으로 열리지 못했던 만큼 올해는 꼭 열어 보자고 다짐했었다. 2023부산아이다호문화제 “혐오를 뒤집어 평등을”, 작지만 촘촘히 준비해 온 이들의 수고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자리에서 나는 또 힘을 받는다. 수많은 투쟁들이 패배 속에서 또다시 길을 찾아가듯이 진심으로 싸워 왔던 이들은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상을 열기 위한 다음의 발걸음을 위해, 평등의 길을 내는 또 다른 한 걸음을 내디딘다. 그래서 나는 지난 7년간 부산지역에서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해 길을 만들어 왔던 이들 속에서 힘을 얻는다.

 

열사를 통해 나를 다지며

 

활동 복귀 시점에 나의 야심 찬 계획은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이었다. 부산에서 가까운 양산에는 부산경남울산지역의 열사희생자와 동지들이 계신 솥발산열사묘역이 있다. 부산경남울산지역의 한 해를 시작하는 시무식 때, 가까운 열사희생자들의 추모제가 있을 때 찾았던 솥발산이었는데, 솥발산열사묘역 교육으로 이전보다는 좀 더 자주 가게 되었다. 대중교통으로는 이동하기 쉽지 않아 갈 때마다 누군가의 차에 얹혀 가곤 했었다. 이제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도, 여타의 이유로도 언제든지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솥발산에 가야겠다 마음먹고 운전면허를 고시 보듯 준비했다. 그렇게 지난 1년 동안 참 많이 솥발산을 오르고 내렸다. 솥발산열사묘역은 이제 지치고 힘들 때, 길을 잃은 듯 헤맬 때 나에게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고,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그런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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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울산지역의 열사희생자들이 계신 솥발산열사묘역. [출처: 부경울열사회]

 

 

부산경남울산열사정신계승사업회(부경울열사회)는 나와 솥발산열사묘역을 이어 주는 고리가 되어 주었다. 솥발산을 더욱 가까이 두고 싶었던 나의 사심을 기꺼이 받아 안아 준 것에 감사했고, 열사가 만들어 왔던 역사의 많은 부분을 글로 배운 내가 고동치는 심장,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왔던 열사의 모습을 무엇으로 채워갈 수 있을까 하는 부담을 함께 안은 채 부경울열사회의 활동은 내 활동의 일부가 되어 있다. 열사를 기억하며 산자의 몫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단위 열사회와 사업회 동지들의 모습을 보면서 공명했고, 열사가 남긴 기록을 정리하면서 나를 정리해 갔다. 열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열사가 꿈꾸었던 세상을 향해 나를 벼리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물들여 가고 있다.

 

다른 세상을 꿈꾸며

 

최근에는 부산기후정의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부정의와 불평등에 대한 넘쳐 나는 현상들과 회자되는 이야기들에 정의와 평등을 자신의 언어와 행동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모습이 새롭게 느껴졌다.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세상으로의 전환이라는 방향성, 그리고 산개해 있던 운동들이 서로를 연결시키고, 기후정의운동을 써 내려가며 당사자로 스스로를 세워 나가는 모습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제각각으로 보이는 운동이 연결되며 변화 발전하는 모습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다른 세상을 향한 밑그림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다른 세상을 향해서 내가 만들고 있는 운동이 진전하고 있는 지점을 확인하게 해 주는 것, 같은 방향성으로 지금까지 움직여 왔던 운동이 구체성을 담보하게 밀어 올려지는 것, 체제에 안주해 왔던 운동을 풀어 헤쳐 도약을 위한 실타래의 한 줄기를 뽑아 내게 하는 것. 뭔가 어색하고, 부조화스러운 운동의 연결대처럼 보이더라도 지금까지 만들어 왔던 운동의 국면들을 다른 국면으로 전환되게 하리라는 기대를 담뿍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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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기후정의파업 참가선언 부산기자회견. [출처: 남영란]

 

 

그래서 부산지역에서 기후정의가 그런 기제로 작동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학교를 함께 기획해 갔다. 각각의 운동의 고민지점들을 드러내고, 함께 나누고,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고리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진행되면 될수록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노력들을 요하는지,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과제들에 대한 답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협력이 요구되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기에 많은 욕심을 부리지는 않지만 최소한 함께 만들어 가는 이들 속에서 같지만 같지 않은 것이 무엇이고, 다르다고 판단되었던 것이 어느 지점에서 만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조금 더 나은 다음을 기약하고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어느덧 다른 세상을 향해 서로를 연결하고 있는 ‘우리’를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노동해방을 마중하려…

 

활동 복귀까지 나의 곁에서 나의 무너짐을 철통같이 막아 주고,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물어 주며, 활동의 길을 열어 준 동지들이 있다. 바로 (가)노동해방마중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아직 부산지역에 공공연하게 이름을 내밀지 않았다. 노동해방마중의 가치와 지향, 그리고 내용을 채워 가는 데에 가장 적절한 계기라고 생각하며 부산기후정의학교 기획단에 함께하는 것으로 첫발을 내딛었고, 414기후정의파업에 몸을 실었다. 나는 노동해방마중이 남다른 상상력으로, 뾰족하지만 너른 품으로 다른 세상을 향해 가는 다양한 운동들과 엮이기를 바란다. 철폐연대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