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005] 우리가 “노조법 2조” 개정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 / 엄진령

by 철폐연대 posted May 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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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우리가 “노조법 2조” 개정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

 

엄진령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노조법 2조 개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요 요구이다. 민주노총 또한 2020년 전태일 열사의 이름을 딴 ‘전태일법’의 내용 중 하나로 노조법 개정을 통한 노조 할 권리 보장을 제시하고 있다. 질라라비 독자 가운데는 노조법 2조 개정을 수없이 외쳐온 이들도 있을 것이고, 들어는 보았지만 어렴풋한 이, 또 노조법 2조 개정이라는 요구 자체가 낯선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원청 사용자 책임 인정’이라는 구호 정도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그에 대한 제도적 개선 형태가 바로 ‘노조법 2조 개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노조법 2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고, 또 어떻게 개정하자는 것일까? 그 전에 먼저 노조법이 무엇인지부터 간단히 짚고 시작하자. 우리가 흔히 줄여서 노조법이라고 부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하고 파업 등의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며, 그에 대해 사용자가 교섭에 응해야 할 의무,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거나 파괴하는 등의 부당노동행위를 해서는 안 될 의무 등을 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노동3권 보장을 구체화하기 위한 법률이다.

 

그 가운데 2조의 내용을 고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을 할 수 있는 권리를 폭넓게 보장하고, 또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라는 것이 노조법 2조 개정 요구이다. 그렇다면 이제 노조법 2조가 노동자의 권리를 어떤 식으로 제약하고 있는지, 이 요구가 도출된 배경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5 풀어쓰는 비정규운동_01노동과세계.jpg

[출처: 노동과세계]

 

노동자냐 아니냐

 

1999년 학습지 회사인 재능교육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당연하게 노동부에 설립신고를 했지만 노동부는 신고필증을 교부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33일의 파업을 통해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았다. 갑근세를 내지 않고, 4대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는 것이 정규직 노동자와 다른 점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노동조합을 하는 것이 그 시작부터 이처럼 힘든 일이 될 것이라곤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다른 특수고용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조합을 세우는 것이 노동자들의 단결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행정관청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일이 되는 현실을 계속 마주해야만 했다. (사실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가 있음에도 이렇게 허가제처럼 운용되는 것 자체가 한국 노동행정의 큰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노동자들은 정부를 상대로 권리 보장을 요구했고, 개인사업자나 프리랜서가 아닌 노동자로서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사업자처럼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업에 고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지시를 받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식만 개인사업자로 되어 있을 뿐 일반적인 다른 노동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고, 오히려 개인사업자로 만들어서 노동법상 보장해야 할 여러 책임을 사용자들은 회피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노동자라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지급해야 할 퇴직금이나, 재해에 대한 보상이나, 노동시간에 대한 규제, 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임금, 실업에 대한 보호 등이 적용되지만 이들은 그 보장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보호는 취약한데, 기업들은 일반적인 노동자를 고용할 때보다 이윤을 더 얻고, 임금은 실적제로 해서 더 많은 일을 강요받고 있었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행정관청이 신고필증을 교부하지 않으면 사용자들은 노조의 교섭 요구를 무시했다. 해고를 당해도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다투기도 어려워 노조탄압의 수단으로 해고를 일삼았다. 사용자들은 교섭도 피하고, 조합원들을 해고하며 노동조합을 탄압했지만 노동3권을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라고 다투기도 어려웠다.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노동조합이 아니고, 그러니 혹여 사용자가 응해서 단체교섭을 하고 협약을 체결해도 그것으로 노동조건을 보호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지난 20년의 시간 동안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무수히 싸웠고, 그 결과 일부는 법원에서 노동자로서의 지위가 인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노동조합이지만 노조법상 노동조합이 아니고, 노동자이지만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나 프리랜서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와 사용자를 상대로 싸워서 설립신고증을 받아 내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그 권리를 부정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더 많다. 게다가 그런 노동자들은 산업의 변화에 따라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현재의 노조법상 노동자 정의는 포괄적으로 노동자들을 담는 그릇이 되어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해석되지 않았고 오히려 노동자의 범위를 좁혀서 배제되는 이들을 만들어 왔다. 그래서 특수고용 노동자라고 부르는, 개인사업자, 프리랜서 등으로 위장된 노동자들은 노조법 2조의 노동자 개념을 가지고 오랜 시간을 싸워왔다.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면서.

 

숨은 사용자를 찾아서

 

대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 대학의 청소용역 및 시설관리 노동자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 역시 오랫동안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해 왔다. 이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사용자가 누군지가 문제였다. 근로계약을 체결한 상대방은 하청업체나 용역업체 사장이었고, 이런 업체 사장이나 현장의 관리자들의 노무관리는 대체로 폭압적이었다.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해고하기도 했고,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었는데다가 인격을 무시하는 행태도 심각했다. 이를 견디다 못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세우기 시작했고, 이 흐름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크게 확장되어 왔다.

 

그러나 정작 노동조합을 만들어 싸우려 하니 업체 사장들은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하청 노동자의 임금이란 원청이 하청업체에 주는 비용에서 하청업체가 관리비와 이윤을 빼고 그 나머지로 주는 것인데, 노동자들이 임금을 올리려고 해도 원청에서 나오는 비용 자체가 커지지 않으면 한계가 분명했다. 하청이나 용역업체가 중간에서 착복해 가는 것을 줄일 수는 있었지만 생활 가능한 수준의 임금을 확보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진짜 권한을 가진 원청과는 교섭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노동조합을 만들면 원청은 그 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2004년 굿모닝신한증권에서 시설관리를 해오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건설했다. 일방적으로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것에 맞서서 파업에 들어갔는데, 파업 돌입 2시간 만에 원청인 신한증권은 업체와의 용역계약을 해지했다. 그리고 공권력을 투입해 노동자들을 건물에서 몰아냈다. 용역업체와 계약을 해지했으니 원청의 건물에 남아 쟁의행위를 하는 것이 ‘불법 점거’라는 이유였다. 오랫동안 일해 온 공간이었지만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단 두시간만에 폭력적으로 쫓겨나야만 했다.

 

원청이 이처럼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것이 용인되었던 건 노조법 2조의 사용자 개념을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용자로 좁게 해석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사용자 개념을 확대해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라는 것이 간접고용 노동자들 요구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질적으로 우리의 노동조건을 통제하는 원청이 교섭에 나서라, 업체 계약해지를 이용해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해고를 일삼고, 노조를 탄압하는 원청이 진짜 사장이다 라고 외쳐온 것이다.

 

반복되는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노동자의 해답

 

아주 오래된 두 가지 사례를 끄집어냈다.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싸워왔고 현실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가고 있지만, 늘 여전히 그 자리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투쟁의 역사가 쌓이면 그만큼 나아간 자리에서 싸울 수 있어야 하지만, 새로운 직종이나 새로운 고용형태가 등장할 때마다 이 싸움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자본은 과거와 같이 고정된 시공간에서 활동하지 않는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사업과 노동력을 결합시키고, 그 결합은 매우 유연해 노동관계의 형식적 양상이 거의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노조법은 여전히 과거의 그 자리에서 잘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여전히 과거의 공장 노동자가 주를 이루던 때에 머물면서 새로운 고용형태가 나타날 때마다 배척하기 급급했다. (사실 이는 법 자체의 문제 이전에 그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법률가-주로는 법관-들의 노동관계법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법률이 유연하게 확장․해석되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노동법의 본 역할을 해야 하지만, 우리 법원은 그런 해석을 기피했다. 그럴 때마다 노동자냐 아니냐의 싸움은 반복되고, 사용자가 누구인지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만 같다.

 

대표적으로 한창 논의가 활발한 플랫폼 노동을 예로 들 수 있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플랫폼을 통한 중개일 뿐 자신들은 사용자가 아니라고 한다.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얻는 노동자들은 고정된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용역을 제공하고 건당 수수료를 지급받기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부정 당한다.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문제와 나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사용자를 찾는 문제가 동시에 등장한다.

 

노조법 2조 개정은 이러한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노동자들이 제시한 해답이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고, 노조법이 노동조합을 할 권리에 대해 보장하고 있는 법률이라고 볼 수 있지만 현행 노조법의 적용 실태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이 법을 적용받을 수 있는 노동자가 누구인지를 가리고,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사용자를 상대로 투쟁할 수 있는 권리에서 배제되는 노동자들을 만들어내 왔다.

 

그렇다면 이제 노조법 2조라는 것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어떻게 바꾸어야 하겠는지, 노동자들은 어떤 해답을 내어 왔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노조법 2조는 무엇?

 

노조법 2조는 “정의” 조항이다. 정의에 대한 조항은 해당 법률(‘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 사용되는 용어의 의미를 규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현재의 노조법 2조는 ① 근로자, ② 사용자, ③ 사용자단체, ④ 노동조합, ⑤ 노동쟁의, ⑥ 쟁의행위, 이 여섯 가지의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① 근로자, ② 사용자 개념의 개정이다. 투쟁 구호에서 종종 듣게 되는 ‘노조법 2조 개정’은 바로 이 근로자, 사용자의 개념을 확대 ․ 개정하라는 요구이다.

 

그렇다면 현재 노조법상의 근로자, 사용자 개념은 어떻게 정의되어 있으며, 그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자.

 

‘근로자’ 정의의 확대

 

현행 노조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 ․ 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

 

일단 직업은 무엇이든 무관하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임금, 급료, 기타 그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고 있는 이라면 이 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라고 한다. 월급의 명칭이 무엇이라 되어 있든, 월급이 아니라 시급제이든 일당으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이든 상관없이 자기의 노동으로 일을 해서 살아가는 이라면 노동조합을 만들고 권리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분히 포괄적으로 노동자의 개념을 담고 있는 듯이 보이는 이 조항은 사실 그렇게 적용되지는 않아 왔다. 실제로는 근로계약서를 썼는지, 4대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는지, 업무지시를 구체적으로 받고 있는지 등을 더 많이 판단의 기준으로 사용했고, 그래서 노동3권의 주체가 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받아든 노동자들이 많았다.

 

이 문구를 해석하게 되는 경우는 보통 이런 경우다.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을 때, 노동조합을 만들고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을 때, 교섭을 하다가 해결되지 않아 노동위원회에 쟁의에 대한 조정을 신청했을 때,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탄압해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다투어야 할 때 등등.

 

이때 행정관청이나 노동위원회, 법원 등은 노동조합을 구성하고 교섭을 요구한 이들이 ‘노동자’인지를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그 판단의 기준은 협소해서 노동조합이 아니라는 판단이 종종 내려지고, 일터에서 단결로 만들어 온 노동조합의 활동이 무력화되기도 한다. 앞서 살펴본 특수고용 사례에서처럼 말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이를 다음과 같이 개정하자고 요구한다.

 

<민주노총 요구안>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다음 각 목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근로자로 본다.

가. 형식상 독립사업자 형태로 노무를 제공하더라도,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특정 사용자의 사업에 편입되거나, 그 사업의 상시적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자

나. 그 밖에 노무제공자로서 이 법에 의하여 보호할 필요가 있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

 

‘가목’(법률은 항, 호, 목 등으로 읽어 내려간다)은 독립사업자의 형태라고 하더라도, 또 하나의 회사가 아니라 여러 개의 회사에서 일감을 받아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노동자가 하는 일이 그 회사가 일회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하고 있는 사업에 해당한다면 그 일을 하는 노동자도 노동3권의 주체가 된다는 내용이다.

 

‘나목’은 그 외에도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이를 포괄할 수 있도록 더 폭을 넓히고 있는 내용으로 대통령령(노조법 시행령)으로 그 구체적인 내용을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보다 다양한 고용형태로, 다양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포괄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용자’ 정의의 확대

 

사용자에 대해서는 노조법 2조 2호에 규정되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2. “사용자”란 사업주 또는 사업 경영 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를 말한다.

 

일단 사업주나 경영담당자, 즉 기업의 사장이나 채용된 사장, 그룹의 경영자 등은 사용자에 포함이 된다.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즉 높은 직위에 있는 관리자 등도 사용자의 범위에 포함된다. 그래서 사장은 관리자들이 노동3권을 침해하는 언동을 하지 않도록 감독해야 할 책임도 진다.

 

문제는 기업의 경계를 넘어설 때의 사용자 범위이다. 하청 노동자들이나 용역노동자들에게는 근로계약을 맺은 상대방인 하청업체 사장, 용역업체 사장, 최근 공공부문에서 문제되고 있는 자회사의 사장 등이 그 일차적인 사용자가 된다. 그런데 이들은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 사용자라면 스스로 사업의 방향을 정하고, 그 경영에 있어서의 위험을 감당하고,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할 때는 그에 적극적으로 응해서 어느 정도로 인상할 수 있는지 아니면 못하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하청 사장들은 그 실질적인 결정의 권한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원청과 직접 교섭하고, 원청을 상대로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으로 노동조건을 바꿔 낼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노조법은 그렇게 해석을 폭을 넓히지 않고, 딱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에 국한하여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노동3권을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원청이 불법적으로 노조를 탄압했다고 인정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극소수다.

 

그래서 기업의 경계를 넘어 실질적으로 원청이 사용자로서 하는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것,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해서 노동3권을 실질화하자는 것이 노조법 2조의 사용자 정의 개정 요구이다.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래 ‘가목’과 ‘나목’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사용자로 인정해 노동3권 행사의 상대방으로서 지위와 책임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민주노총 요구안>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2. “사용자”란 사업주 또는 사업 경영 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를 말한다. 근로계약 체결의 형식적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음 각 목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사용자로 본다.

가. 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 등 해당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

나. 그 밖에 노무수령자로서 이 법에 의하여 사용자 지위를 인정할 필요가 있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

 

노조 할 권리를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법 2조의 정의 조항은 노조법의 적용을 받는 주체, 그 주체의 행위 등에 대해 그 뜻을 정하면서, 뒤에 이어지는 여러 조항들(노동조합의 설립 및 운영, 단체교섭과 협약, 쟁의행위, 부당노동행위, 벌칙 등)과 연관된다. 그래서 이 조항이 규정하고 있는 내용과 범위가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만약 ‘근로자’ 개념에서 포괄하고 있는 범위가 넓다면 더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권리를 위해 움직일 수 있다. 반대로 그 범위를 좁게 해석한다면 노조법상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주체로서 노동자의 범위는 줄어들 것이다. 노동조합을 폭넓게 보장해도 사용자에게 교섭의 의무가 강제되지 않는다면 책임 회피로 인해 노동3권은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그래서 사용자 범위의 확대도 필요하다. 이처럼 노조법 2조의 정의 규정과 그 해석 하나하나가 노동자의 권리 보장에 밀접한 내용이다.

 

또한 이것은 비단 특수고용이나 간접고용, 플랫폼 노동 등 현재 권리를 외면 받는 노동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아직 노동조합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미조직된 노동자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다.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법적인 제약이 계속해서 따른다면 노동3권은 모든 노동자에게 일반적인 권리로 자리 잡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개정은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노조 할 권리가 가까워지고, 더 실질화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다.

 

위에서 제시한 민주노총 요구안과 유사한 내용들이 기존에도 법률개정안으로 발의가 되었었다. 그러나 늘 국회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했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고, 원청이 사용자 책임을 공동으로 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던 현 정부에서도 이에 대한 법률개정안은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다. 21대 국회에서는 어떨까? 과반을 차지한 정부 여당이 애초의 공약을 애써 기억해 내 이제라도 노동자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 줄까?

 

그것은 노동자들이 얼마나 큰 목소리를 내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힘들더라도, 아직은 법이 노동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더라도 그 법의 한계를 뚫고 더 많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사용자 위에 더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사용자, 또 그 위에서 정책을 만들어 내는 정부를 상대로까지 투쟁을 해 나가야 우리가 원하는 법률 개정에 조금씩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말

 

사실 우리 노조법은 뜯어고쳐야 할 것 투성이다. 그래서 2015년에 철폐연대 법률위원회에서는 민주노총 법률원과 함께 ‘노조법 다시쓰기’라는 광대한 연구사업을 진행하기도 했었다.

 

노조법 2조 정의부터가 그렇다. 사실 노조법 2조가 규정하고 있는 여섯 가지 정의가 모두 필요한 조항은 아니다. 이 정의 조항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외국의 경우에도 이렇게 개념들을 자세히 규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가 누구인지를 왜 규정해야 할까, 노동조합이 무엇인지를 왜 규정해야 할까. 사용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의는 왜 필요한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직업이 생겨나고 새로운 노동자군이 형성된다. 이전에는 나의 사장이 누구인지 분명했지만, 지금은 사용자가 여럿이고 그 중 누구를 상대로 내 권리를 요구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기도 하다. 기업은 아래로는 하청이 줄줄이 늘어서고, 위로는 기업집단을 형성하며 지주회사라는 것도 있다. 사실 이 모든 개념들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가는 것인데 말이다.

 

그 외 정의 조항들도 그렇다.

노동조합에 대해 ‘근로조건 등’에 관한 사항만 목적으로 하고, 다른 정치적인 행동을 목적에 규정하거나 해고자가 포함되거나 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을 두고 있다. 노동조합의 활동 목적은 다양할 수 있고 그 중 하나가 정치적인 활동일 수도 있을 텐데 이를 왜 사전적으로 규제하는가. (과거 청년유니온이나 이주노조가 이로 인해 설립신고가 반려된 적이 있다.) 해고자를 포함할 것인지 여부는 노동조합이 규약으로 정할 사항인데, 이를 왜 행정관청이 개입하는가. (전교조나 공무원노조 등이 해직자를 이유로 무려 ‘노조 아님’이라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국제적인 기준에서 보면 이건 분명 해프닝에 가까운 일이다.)

 

또 ‘노동쟁의’를 노동조건 결정에 관한 분쟁상태로 정의해서, 단체협약의 해석에 따른 노사 간의 분쟁이나, 기타 다른 사유를 이유로 한 쟁의행위의 적법성 자체를 가로막는다. ‘쟁의행위’에 대한 정의도 그렇다. 쟁의행위의 다양한 양상과 형태에 대해 사전적으로 얼마나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을까. 노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자를 상대로 집단의 의사를 표현하고 그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의 개념을 일관되게 정의할 수 있을까?

 

사실 노동자 개념, 사용자 개념부터 줄줄이 이어지는 이러한 정의들이 한국 노조법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앞서 노조법이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이라고 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노조법은 오히려 노동자의 행동과 노동조합의 활동을 통제하는 것으로 작동할 때가 더 많다. 현재 한국의 노조법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보다는 규제하고 처벌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 처벌을 위해서는 누가 노동자이고, 무엇이 노동조합이고, 사용자는 누구인지, 노조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행하지 않으면 처벌되는 쟁의행위가 무엇인지 등을 규정해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노동법이 어떤 방향으로 작용하는가의 문제는 반드시 법에 적힌 문구가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니다. 때로는 법이 규정하지 않더라도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은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고 일터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는 역동적인 것이라 그를 세세하게 법률로써 정하고 규율하려 들기 보다 자율성에 맡기는 것이 더 좋을 때도 많다. 장기적으로는 세세한 법률규정으로 노동조합을 통제하는 것이 아닌, 자율적인 노사관계를 뒷받침하고 노동3권이 온전히 실현되도록 노조법 전반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와 사용자,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에는 종종 충돌이 일어난다. 사실 그것이 상당히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노사관계의 양상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이를 비용의 문제로 환산한다. 노동조합이 생겨서 갈등을 일으키고, 파업이 벌어져서 사회적 손해를 야기하고, 파업으로 인한 손실비용을 계산하고, 심각한 경우 그를 손해배상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에게 떠넘긴다. 노조법이 이런 구태를 벗고, 노동3권 보장을 위한 법률로 제자리를 찾게 하는 일. 우선은 노동조합을 모두에게 돌려주고, 사용자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찾아주는 노조법 2조 개정에서부터 시작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