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6] 김숙영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지부장

by 철폐연대 posted Jun 0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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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속으로

 

김숙영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지부장 

 

“고객센터 직영화와 공공성 강화를 위해 함께해주세요!”

 

인터뷰 ‧ 정리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고객센터에서 전화 상담 업무를 맡고 있는 민간용역업체 소속 상담노동자들이 지난 2월, 24일간의 전면파업에 나섰다. 상담 업무 직영화와 처우개선을 요구하기 위함이었다. 상담노동자들은 3월, 4월에도 부분파업을 이어갔지만, 공단은 정규직 노조의 반대 등을 핑계 삼아 직영화를 위한 논의 자체를 줄곧 회피해왔다. 급기야 지난 5월 21일 건보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에서 ‘민간위탁사무논의협의회’가 당사자인 상담노동자들을 배제한 채 강행되었고,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6월 중 무기한 전면파업 재개를 선포했다. 전국 7개 지역, 12개 센터에서 쟁의권을 확보한 가운데, 1천여 명의 조합원들은 5월 3일 발족한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직영화 및 노동권 보장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와 함께 앞으로 더 큰 투쟁을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5월 18일, 서울 금천구에 소재한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다가올 투쟁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김숙영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지부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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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18.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김숙영 지부장의 모습. [출처: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가입자 권리는 뒷전, 콜수 경쟁에만 혈안

 

건보공단은 공공기관 산하 고객센터(콜센터) 가운데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전화상담 업무의 폭증과 함께 2006년 공공기관 최초로 고객센터를 설립한 건보공단은 현재(2020.4.1.~2022.3.31. 도급인력계획(2020년) 계약 기준)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경기·인천 7개 지역에서 11개 민간용역업체를 통해 1,600여 명의 상담 인력을 두고 있다.

상담노동자들은 건강보험 자격, 보험료 부과, 보험급여, 건강검진, 의료급여,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업무와 4대보험 징수통합 관련 업무 등 총 1,069개의 상담 업무를 수행 중이다. 더욱이 건강보험은 ‘전 국민의 건강 보장’을 목적으로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사회보장제도이기 때문에 5,100만 명의 시민이 의무 가입하도록 제도적으로 강제하고 있다. 이 같은 특성으로 인해 건보공단 상담 업무는 민간기업의 상담 업무에 비해 훨씬 방대한 고객(가입자)을 응대해야 할 뿐만 아니라 민감한 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 관리하고 있다.

 

“저 같은 경우엔 콜센터 업무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입사했기 때문에 건보공단 고객센터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전혀 몰랐었거든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이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4대보험 중에서도 콜수도 많고(2019년 기준 상담 인력 1인당 하루 콜수는 평균 120콜이다.; 편집자 주) 업무량도 상당히 많아요. 다른 보험은 가입 대상이 전 국민이 아닌데, 건강보험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입이잖아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죠. 탈퇴도 가입자가 요구한다고 해서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사망하거나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야만 자격 상실이 되는 거죠. 저희가 하는 일 자체가 대국민 서비스이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양의 개인정보를 열람하고 처리해야만 해요. 특히 인터넷 접속이 어려운 환경이라든지 스마트기기 사용이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이나 저소득층 같은 경우엔 더욱 친절하게 상담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을 아예 허용하지 않는 거예요. 그 분들한테는 저희가 제공하는 정보가 정말 절실하지만, 업체에서는 상담시간 개별 콜수를 실시간 체크하면서 2분 30초 안에 모든 상담을 끝내라고 압박하거든요.”

 

건보공단은 민간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활용한다는 미명 하에 고객센터를 외주화했지만, 이들 민간용역업체들은 단지 인력파견 전문업체에 지나지 않았다. 이른바 ‘건강보험에 대한 전문적인 역량’은 고사하고, 실적관리를 비롯한 노동통제기법만 발달한 곳이었다. 애초 상담 업무의 전문성과 정확성은 민간용역업체가 자체 보유한 것도 아니고, 상담노동자들의 숙련된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으로서 역할 포기한 건보공단

 

건보공단 상담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20콜 이상을 받고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면 휴식시간도 없이 일해야 했다. 코로나19 국면에는 질병관리청 1339 콜센터 업무까지 겸임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높은 노동강도와 넘치는 업무량이 더욱 가중되었다. 감염병 재난 시기, 사회 구성원 모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건보공단 상담 업무가 꼭 필요하다는 점이 새삼 확인되었지만, 공단만큼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할 마음이 조금도 없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단계적으로 정규직화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핵심적으로 내세운 기치는 ‘공공성 회복’이었잖아요. 정부가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선도하겠다는 의미도 물론 있었지만, 무엇보다 국민의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공공부문이 더 이상 효율성의 논리로 작동해선 안 된다는 성찰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공공기관인 건보공단도 정부 정책에 발 맞춰서 비용 절감이나 수익 증대를 꾀하기 보다는 공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는 기대가 있었죠. 저희뿐만 아니라 국민들 또한 건강보험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걸 당연히 바랄 거고요.”

 

현재 건보공단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을 상담업무 직영화를 추진할 수 없는 주된 근거로 앞세우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의 정규직 노동조합(건강보험공단노동조합)은 작년 5월 조합원 1만 3,500명을 대상으로 ‘용역·민간위탁 노동자 직접고용 사업을 노조가 계속 추진할 것인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전체 조합원 중 52%가 응답)해 75.63%(5,824명)에 이르는 반대 입장을 확인했다. 고객센터 직영화 문제에 엉뚱하게도 채용 공정성 논란이 불붙었고 정규직 노조는 이를 계기로 상담노동자 투쟁에 대한 연대를 공식적으로 중단했다. 이어 지난해 말 진행된 정규직 노조 집행부 선거에서는 ‘조합원 동의 없는 고객센터 직영화에 반대한다’는 공약을 내건 후보조가 당선됐다.

 

“저는 앞서 말씀드렸던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이나 고객센터의 역할,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길 거부하고, 이렇게 노노갈등 양상으로 몰고 가는 건보공단이 제일 나쁘다고 봐요. 정규직 노동자들이 고객센터 직영화를 반대한다지만, 내부 구성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듯 말하면서 (건강보험) 가입자의 권리, 전 국민의 목소리를 결과적으로 외면한다는 게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만약 공단 내부 구성원 중 (고객센터 직영화) 반대 의견이 있다면, 어째서 그러한 문제제기를 하는지, 혹은 어떤 오해가 있지는 않은지, 적절한 대안은 무엇인지 당사자 간에 이야기하고 상호 설득하는 과정을 성의 있게 만들어 가는 게 공단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겠죠. 그런데 지금 공단 김용익 이사장의 모습은 정규직 노조의 반대를 직영화 논의를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커다란 걸림돌로 규정해놓고, 자기들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거잖아요. 공공기관의 수장이 해야 할 발언이나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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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3. 건강보험공단 서울고객센터 앞 선전전 중인 김숙영 지부장과 조합원의 모습. [출처: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제2의 인국공 사태?

 

한편, 시험 치고 입사해야 공정하다는 세간의 인식은 지난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때부터 더욱 견고해지고 있는 듯하다. 올 초 건보공단 상담노동자들의 전면파업에서도 이 같은 비난 여론이 극심했다. 공단은 문제 해결 대신 노노갈등을 부각하면서 발뺌했고, 보수언론들도 공정성 논란에 치중하면서 사태의 본질을 흐리기 바빴다.

 

“저희들의 투쟁에서 공정성 논란은 본질에서 조금 빗나간 측면이 있어요. 우선 공공기관인 건보공단의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게 저희가 투쟁에 나선 주된 이유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고객센터 업무 자체가 건보공단 시스템에 긴밀하게 연계돼 있어서 공단 업무와 별도로 진행될 수 없거든요. 저희도 공단 직원과 동일하게, 공단이 구축한 전산망에 로그인해서 가입자들의 수많은 개인정보를 열람하고 업무를 처리하니까요. 이렇게 국민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일을 수행하면서도, 상담의 질보다는 양으로 평가받는 왜곡된 고용구조 속에 저희는 놓여 있습니다. 보다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할 가입자의 개인정보들을 공단에서 직접 통제하지 않는 상황, 또한 소통창구의 구실보다는 ‘전화 받는 기계’가 되길 강요하는 상황을 개선하는 게 ‘진짜’ 공정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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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3.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직영화 및 노동권 보장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김숙영 지부장의 모습. [출처: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우리 사회에서 콜센터 노동은 노동권에서 배제된 하청노동자들로 채워지고,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가치 절하된 여성노동으로 채워졌다. ‘나는 공단 직원이 아닙니까’라는 항변에는 노동 안의 분할과 시민 내의 차별적 지위로부터 평등한 자격을 부정당해왔던 시간들이 켜켜이 묻어 있다.

 

- 2021.2.3. <한겨레> “나는 건보 직원이 아닙니까?” 전주희(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가입자 모두의 권리를 위해

 

이렇듯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은 건강보험 가입자들의 정보가 안전하게 보호되는 가운데 충분히 상담 받을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상담 업무 직영화를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상담 업무 직영화는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실적 압박에 상시적으로 시달릴 수밖에 없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바꾸는 투쟁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입자와 상담노동자 모두의 권리를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사회적 지지가 절실하다고 김 지부장은 호소한다.

 

“2019년도에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 때부터 그런 고민이 있었어요. 우리가 요구한다고 해서 공단이 외주화된 고객센터 업무를 직영화하리라 예상하진 않았어요. 어쩌면 우리가 온힘을 다해 싸워도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싸움일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공단의 입장을 변화시키려면 훨씬 거대한 힘이 필요한데, 다름 아닌 가입자들이 그 힘의 원천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이 싸움은 공단이 원하는 대로 정규직 노조를 겨냥해서 담판 지을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공단이 스스로 결단할 수 있도록 저희가 잘 싸우는 게 일단은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은 건강보험 공공성 강화를 위해 고객센터 직영화가 필요하다고 시민사회가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게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시 전면파업을 준비하는 지부장으로서의 각오는 무엇일까.

 

“이 투쟁을 통해서 우리가 ‘희망’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저 희망사항만은 아니었음을 꼭 확인하고 싶어요. 민주노조 운동, 비정규직 철폐, 사회공공성 강화… 저는 이러한 말들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가꾸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끄는 아름다운 가치라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나 남편이 제게 그러더군요. 그건 책에서나 나오는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이고 현실은 다르다고요. 저희들의 투쟁에 대해 온갖 냉소나 비난이 쏟아지는 현실 쯤이야 똘똘 뭉쳐 제대로 싸운다면 이겨낼 수 있어요.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던 아름다운 말들이 우리 운동 속에서 일그러지는 걸 목격했을 땐 더없이 참담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모쪼록 이 투쟁이 좁게는 내 일터를, 넓게는 우리 사회를 존엄하고 평등하게 만드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