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702]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 10주기를 추모하며 / 김대권

by 철폐연대 posted Feb 0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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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 10주기를 추모하며

김대권 (아시아의친구들)

 

 1 2007.2.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여수성심병원 기자회견 [출처 여수참사공대위].jpg

 2007.2.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여수성심병원 기자회견 [출처: 여수참사공대위]

 

며칠 전 한 인권단체에서 만들어 보내준 인권달력을 받았습니다. 인권과 관련된 주요 기념일이나 사건일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한 장씩 넘겨보며 기록된 날들을 짚어보았습니다. 하지만 2월 달 달력을 넘기며 내심 당연히 있을 거라 기대했던 날이 빠져 있어 적잖이 놀랐습니다. 2월11일,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일이 빠져있던 것입니다. 물론 아마도 단순한 착오나 누락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구지하철화재참사나 성수대교붕괴참사, 용산참사 등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는 ‘인권달력’에서마저 이 날이 기억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 한 편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10명의 사망자와 수십 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던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가 오는 2월 11일이면 10주기를 맞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이제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에도 한국사회에서는 비슷한 참사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천냉동고화재참사, 용산참사, 경주리조트붕괴참사, 세월호참사, 판교환풍기붕괴참사 등……. 그 중에서도 용산참사와 세월호참사는 국가권력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문제가 여전히 진행형인 사건들입니다.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 역시 국가권력이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을 ‘보호’한다면서 교도소와 다를 바 없는 시설에 가둬두었던 정부가 정작 외국인들의 생명권을 ‘보호’해주지 못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을 ‘보호’한다는 시설은 화재에 취약한 자재들로 가득 차 있었고 스프링클러조차 없었습니다. 관리 책임이 있는 법무부 직원들은 야간에 CCTV를 감시하는 근무지에 있지 않고 당직실에서 자고 있었고 야간근무는 계약직 용역경비원들에게만 맡겨져 있었습니다. 화재 발생 한참 후에 도착한 계약직 용역경비원들은 보호외국인들을 신속히 대피시키기보다는 도주를 우려해 시간을 지체하다 피해를 키웠습니다.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일부 보호외국인들이 수건을 물에 적셔 호흡기에 대고 침착하게 대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의 결말도 다른 참사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뚜렷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음에도 이 사건 화재의 원인을 보호외국인의 방화라고 신속히 결론 내렸고, 현장 법무부 직원 및 계약직 경비원 몇 명만 기소되어 처벌을 받았습니다. 법무부는 외국인보호소에 스프링클러 설치 등 화재예방대책 위주로만 이루어진 재발방지대책을 내놓았습니다.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던 네덜란드에서는 10년에 걸친 조사 이후 진상조사백서를 통해 원인과 대책이 발표되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여수외국인보호소와 같은 외국인보호시설은 경기도 화성과 청주의 외국인보호소를 비롯해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있는 전국 광역대도시마다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현재 20%를 넘어선 소위 ‘불법체류자’ 비율을 3년 내에 10% 이내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2007년에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 역시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과 동시에 시작된 대대적인 단속추방정책의 연장선에 있었던 결과였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가 있기 며칠 전에 해남의 한 배추밭에서 일하던 중국인이 단속반을 피해 도망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건입니다. 당시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단속반원들이 겨우 몇 명의 외국인들을 잡기 위해 1km 이상을 계속 쫓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렇게 붙잡혀 온 동료들은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에서 다시 희생됩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또는 꿈을 찾아 이주하는 것은 범죄가 아닙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이주해오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오히려 진정한 범죄는 가난한 이주자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가두고 추방하는 행위 들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가 아니라 가난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보호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형사범죄자도 아닙니다. 단지 정부가 행정목적 달성을 위해 만들어 놓은 행정법(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행정법 위반자들입니다. 행정목적 달성을 위해 사람의 신체를 구속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극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형사범죄자의 경우에도 행정당국(경찰)은 48시간까지 혐의자를 구금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이상 구금이 필요하면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여 법원의 판단을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외국인은 법무부장관의 결정만으로 기한 없이 구금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지금 화성외국인보호소에는 4년이 넘게 구금되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호소 내의 보호외국인에 대한 처우도 문제입니다. 일단 보호소시설이 교도소나 구치소와 거의 다를 바 없습니다. 교화나 교정의 목적이 있는 교정시설과 달리 외국인보호소는 교정시설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아니 오히려 어떤 부분은 교정시설보다도 못한 부분도 많습니다. 교도소나 구치소에서는 매일 한 시간씩 외부공기를 쐬며 운동할 수 있는데 반해 외국인보호소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외부운동장에서 운동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교정시설은 대부분 토요일도 하루 종일 면회가 가능한 데 반해 외국인보호소는 오전만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교정시설에 구금된 사람들은 형기가 정해져있어 내가 언제 나갈 수 있는지 미리 알 수 있는데 반해 외국인보호소에서 구금되어 있는 사람들 특히 난민소송 등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소송의 결과와 진행 상황 등을 미리 알 수 없기에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인보호소와 같은 구금시설은 외부로부터 격리되어 있고 일반인의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외부의 지속적인 감시가 더욱 중요한 곳입니다. ‘아시아의친구들’은 지난 한 해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화성외국인보호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주로 장기 구금되어 있는 보호외국인들을 면담하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가 다시 화성보호소에 구금되어 있는 외국인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산재치료 등을 요구하며 단식과 자살시도 등을 하던 보호외국인의 문제를 외부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참으로 오랜만에 인간다운 대화를 하였다며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활동이 작은 위로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올해도 ‘아시아의친구들’은 외국인보호소 정기방문을 갈 것입니다. 10년 전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에서 희생된 분들께 드렸던 마음의 약속을 잊지 않겠습니다. 함께할 분들을 기다립니다.

 

* 참여문의: 031-921-7880 / foa2002@empas.com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10주기추모_김대권_질라라비201702.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