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807]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업 중대사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 참가기 / 이김춘택

by 철폐연대 posted Jul 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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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 조선업 중대사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 참가기

이김춘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2 삼성중공업 해양플랜트 크레인 사고 1주기 ‘추모와 투쟁 주간’ [출처 거통고조선하청지회].jpg

성중공업 해양플랜트 크레인 사고 1주기 ‘추모와 투쟁 주간’ [출처: 거통고조선하청지회]

 

2017년 5월 1일 오후 2시 52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해양플랜트 마틴링게 P모듈 위에서, 엘리베이터를 운반하기 위해 이동하던 골리앗크레인과 쓰레기통을 비우는 작업을 하던 지브형 타워크레인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로 타워크레인의 붐대를 지탱하던 강철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붐대와 함께 떨어져 P모듈 메인데크 위에 있던 노동자들을 덮쳤다. 메인데크에는 “평소에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람 머리밖에 안 보일 정도로 빽빽하게” 노동자들이 있었다. 느닷없이 노동자들을 덮친 크레인 붐대와 강철 와이어로 현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다. 결국 하청노동자 6명이 목숨을 빼앗기고, 25명 이상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고, 수백 명이 비참한 사고 현장을 목격한 충격으로 트라우마에 고통받았고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사고가 나자 삼성중공업 전체에 작업중지명령이 내려졌고, 2주 동안에 걸쳐 노동부 통영지청 근로감독관 2명과 안전보건공단에서 나온 9명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중대재해조사를 했다. 또한 거제경찰서는 서장(본부장)과 경남지방청 광역수사대 안전사고전담팀 및 거제경찰서 형사팀 등 43명으로 수사본부를 구성하고 45일 동안 수사를 진행했다.

이들 노동부‧안전보건공단과 경찰은 노동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법적으로 조사와 수사를 독점하는 정부기관이다. 이들의 조사와 수사는 이후 형사처벌을 위한 재판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재판 중이라는 이유로 사고에 대해 조사하고 수사한 자료는 오랜 시간 동안 전혀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고조사 내용을 종합해 안전보건공단이 노동부에 제출하는 ‘중대재해조사보고서’에는 사고의 직접적 원인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풍부한 조사 내용과 자료가 담겨 있다. 그런데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이 중대재해조사보고서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1장 분량으로 요약한 내용을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이번 국민참여조사위 조사과정에서는 안전보건공단이 중대재해보고서를 비치해 위원들이 열람할 수 있게 했는데, 오죽했으면 한 위원은 “중재재해보고서를 열람한 것 자체가 성과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왜 크레인이 충돌했는가? vs. 크레인이 충돌했는데 왜 많은 노동자가 죽고 다쳤는가?

권한과 지위를 독점한 노동부와 경찰의 조사와 수사는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을 밝히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고 한정되어 있다. 이번에도 노동부와 경찰의 조사는 “왜 두 개의 크레인이 충돌했는가?”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비규환의 사고 현장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운 좋게 살아남은 하청노동자들은 전혀 다른 질문을, “왜 두 개의 크레인이 충돌했는데, 그렇게 많은 노동자가 죽고 다쳐야 했는가?”를 질문하고 있다. 이 같은 질문은, 지금까지 자신이 일해 왔고, 앞으로도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진종일 일할 수밖에 없는 조선소 해양플랜트 공사현장의 위험성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위험한 현장이 바뀌지 않는 한 노동자가 죽고 다치는 대형 참사는 또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노동자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원청 조선소와 백여 개 하청업체 그리고 수백 개 재하청 물량팀 바지사장들의 이윤만을 위한 조선소 노동현장에 대해 하청노동자가 제기하는 문제는 크게 세 가지다. ‘다단계 하청고용 구조’와 ‘무리한 공정진행’ 그리고 ‘위험한 혼재작업’이 그것이다.

그러나 직접적 사고 원인에만 집중하는 노동부와 경찰의 조사에는 이 같은 내용은 전혀 조사되거나 고려되지 않고 있다. 삼성중공업 역시 마찬가지다. 사고 3개월 뒤 ‘안전실천 마스터플랜’을 발표했지만 역시 크레인 충돌방지 대책만이 담겨있을 뿐이었다. 또한, 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소통이 문제였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대통령의 메시지와 노동부장관의 현장노동청

이 같은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7월 3일 제50회 산업안전보건의날을 맞아 발표한 영상 메시지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대통령은 메시지를 통해 “열악한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떠맡기는 위험의 외주화”를 언급하면서 “제도는 물론 관행까지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대형 인명사고의 경우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국민이 충분히 납득할 때까지 사고 원인을 투명하고 철저하게 조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https://youtu.be/t0Y-Wc4ge00 제50회 산업안전보건의날 대통령 영상 메시지

정부가 2017년 8월 17일 발표한 ‘중대산업재해 예방대책’에는 대통령이 말한 국민참여 조사위원회의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사회적 논란이 되는 대형 인명사고 발생 시 사업장의 관리시스템뿐만 아니라 제도, 관행상 문제까지 규명하는 조사위원회를 운영”하겠으며 “위원회 구성 시 전문가뿐만 아니라 관련 업계 종사자나 관련 분야 지식, 경험이 있는 국민 등이 폭넓게 참여하도록 개방”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세부 이행계획에 있어 국민참여 사고조사위는 2017년 하반기 시범 운영하고 2018년 1월부터 본격 실시하겠다고 했다. 이후 국민참여 사고조사위의 첫 번째 사례로 당시 중대재해가 잇따라 발생한 조선업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한편, 김영주 신임 노동부장관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명분으로 2017년 9월 12일부터 9월 28일까지 광역단위 10곳에 현장노동청을 운영하고 직접 방문했다. 이에 삼성중공업 해양플랜트 크레인사고 공동대책위(이하 공동대책위)는 9월 19일 부산 벡스코 현장노동청을 찾은 김영주 장관을 만나 대통령이 제시한 ‘조선업 중대재해 국민참여 사고조사위원회’ 구성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사실 그 이전에 이미 조사위원회 구성은 결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동대책위의 요청은, 현장의 요청에 노동부가 응답해 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그럴듯한 ‘모양새’를 제공했다. 어쨌든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17년 11월 2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위원 17명을 위촉하여 4개월 동안 활동할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이하 ‘국민참여조사위’)가 출범하게 된다.

 

국민참여조사위 참여를 둘러싼 공동대책위 내부의 논란

노동부는 국민참여조사위 구성 과정에서 민주노총에게 위원 1명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 애초에 노동부는 이른바 ‘전문가’를 추천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민주노총은 현장활동가를 추천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노동부와 민주노총의 입장이 서로 맞서다가 결국은 민주노총의 의견이 관철되었다. 이에 민주노총은 삼성중공업 사고 이후 거제지역에서 활동해 온 공동대책위 1인이 국민참여조사위 위원으로 참여할 것을 제안하였고, 공동대책위 논의를 통해 글쓴이가 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글쓴이의 국민참여조사위 참여는 공동대책위 내부의 논란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동대책위는 거제지역 하청노동자 대량해고에 대응해 온 ‘거제통영고성 조선소하청노동자살리기대책위’(이하 ‘거통고대책위’)와 영남권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해 온 ‘부산울산경남 건강권대책위’(이하 ‘건강권대책위’)가 함께 이끌어왔다. 그런데 국민참여조사위 참여 문제를 놓고 거통고대책위는 찬성 입장을, 건강권대책위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게 된 것이다.

공동대책위 논의를 통해 글쓴이가 국민참여조사위에 참여하는 것으로 결론은 났다. 그러나 건강권대책위는 국민참여조사위 참여에 결코 동의할 수 없었고, 결국 공동대책위 내에서 격론을 벌인 끝에 건강권대책위는 공동대책위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공동대책위를 이끌어 온 한 축인 건강권대책위의 활동 중단은 사실상 공동대책위의 해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후 공동대책위는 이름만 남고 사실상 해소되었고, 거통고대책위만의 활동이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국민참여조사위 참여를 둘러싼 두 대책위의 찬성/반대 입장 차이보다 더 중요하고 핵심적이었던 것은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논의 과정이었다. 노동부 계획에 따른 국민참여조사위의 출범 일정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노동부와 민주노총의 위원 추천을 둘러싼 입장 차이로 시간이 지연되었다. 그리고 민주노총과 공동대책위 사이의 위원 추천을 위한 소통 과정에 또 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정작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공동대책위 내부의 토론은 시간의 촉박함을 핑계로 충분히 진행되지 못했다. 그에 따라 국민참여조사위에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은 됐지만, 참여에 반대하는 건강권대책위에게 그 결정은 일방적인 것이었고, 결코 동의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결국, 건강권대책위는 공동대책위 활동을 중단했고 이것이 공동대책위의 사실상 해소로 귀결된 것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글쓴이는 지금도 국민참여조사위 참여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동대책위 내의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특히 국민참여조사위 참여에 결코 동의할 수 없는 건강권대책위의 입장을 고려했다면, 다시 말해 국민참여조사위 참여 결정이 곧 공동대책위의 해소를 의미했다면, 굳이 공동대책위의 1인(글쓴이)이 국민참여조사위에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결정이 이루어졌고, 결국 공동대책위는 사실상 깨졌다.

이 때문에 국민참여조사위 참여는 조직적 소통과 지원이 없는, 참여 위원 개인의 활동으로 국한되었다. 또한, 하청노동자 문제에 강점이 있는 거통고대책위와 노동안전보건 분야에 좀 더 전문역량을 가진 건강권대책위의 공조가 깨진 것으로부터, 국민참여조사위 활동 결과물인 보고서 내용의 문제점과 한계는 이미 노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공동대책위가 국민참여조사위에 참여하기로 한 결정은 매우 뼈아픈 것이었다.

 

국민참여조사위 구성의 문제점

국민참여조사위는 그 구성부터 비판에 직면했다. 첫째, 위원 구성 과정이 투명하지 않았다. 정해진 위원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위원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사전에 충분히 의견이 수렴되거나 논의되지 않았다. 또한, 민주노총, 한국노총, 경총 추천 위원을 제외하면 어떤 기준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위원이 위촉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어서, 노동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둘째, 노동현장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위원 구성이 되지 못했다. 노동부는 현장 노사 의견을 반영한다는 취지에서 안전담당을 했던 조선소 임원 출신 2명과 수십 년 경력을 가진 크레인 운전 노동자, 용접 노동자 2명을 위원으로 정했다. 그러나 회사측 위원이 안전담당 경력을 바탕으로 자본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었던 반면, 현장 노동자위원 2명은 자신의 작업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노동자위원 2명은 비록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다년간 노동안전 활동 경험이 있는 조선소 노동조합 노안활동가를 위촉했어야 했다. 그래야 노동자 입장에 선 의견 개진과 국민참여조사위 활동이 가능했다. 한편 조선소 임원 출신 위원의 경우 임원 재직 당시 노동탄압을 했다는 점에서 금속노조 노안실에서 문제제기 하는 등 논란이 되기도 했다.

 

조사위원회의 권한과 조사의 한계

비록 대통령의 제안과 노동부장관의 의지로 출범한 위원회이지만, 국민참여조사위는 법률규정에 의해 구성되지 않은 임의기구였다. 그래서 권한과 조사에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특히, 국민참여조사위는 삼성중공업 해양플랜트 크레인사고가 난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출범해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므로 조사를 할 수 있는 사고 현장은 이미 남아있지 않았다. 사고가 난 마틴링게 P모듈은 완성 단계에서 배에 옮겨 설치되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현장조사란 하다못해 사고가 난 P모듈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작업 현장이 얼마나 복잡하고, 그 안에 들어가서 일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어떤 조건에서 일을 했는지 상상이라도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옆 모듈에 올라가 P모듈을 한 번 내려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에 따라 구체적인 사고조사는 이미 진행된 안전보건공단의 중대재해조사보고서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능한 조사방법은 크게 자료조사, 설문조사, 심층 인터뷰 세 가지였다. 그런데 자료조사의 경우, 자료 제공을 요청해도 제출기관의 선의에 기대는 것 말고는 자료 제출을 강제할 방법이 없었다. 자료 제출을 꺼릴 수밖에 없는 삼성중공업과 STX조선해양 회사는 물론이고 국민참여조사위를 관장하는 노동부를 포함하여 공공기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조선소 원‧하청 도급계약의 불공정성을 간접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최근 몇 년 동안 공정거래위원회에 삼성중공업이 피제소된 건수와 사건 처리결과를 자료로 제출해달라고 요구하였으나 돌아오는 공정위 담당자의 대답은 “우리가 그런 자료를 제출할 근거도 없고, 의무도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또한, 사고 당일 사고 현장인 P모듈에서 일한 1,623명의 명단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러므로 이미 밝혀진 명단을 토대로 이 노동자들을 전수조사해서 다단계 고용구조를 아주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개인정보 보호를 명분으로 1,623명의 연락처를 제공하지 않았고, 차선책으로 사고 당일 기준 1,623명의 고용보험 가입현황을 노동부에 요구하였으나 구체적인 신상정보가 없어서 확인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삼성중공업에서 그나마 제출한 자료는 내용이 부실했다. 예를 들어 삼성중공업은 사고 현장에서 일한 1,623명의 소속 업체와 이름만을 제출했다. 그것만 가지고는 밝혀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 1,623명에 대해서는 이미 국회의원실을 통해 소속과 이름뿐 아니라 직급과 근속연수, 담당업무 등이 명기된 자료가 제출된 바 있다. 그래서 국민참여조사위에 제출된 자료가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자료를 통해, 사고 당일 일한 노동자의 53.6%가 근속 6개월 이하 노동자라는 사실과 72.6%가 물량팀을 대부분 사용하는 도장, 보온업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이 같은 제한된 자료의 한계가 있지만, 물량팀의 규모와 성격을 분석한 것, 날짜별 하청노동자 투입인원의 변화를 분석한 것, 하청노동자의 근속을 분석한 것 등은 나름 의미를 갖는다. 한편, 설문조사의 경우 원청 조선소의 협조가 있어서 단기간 대규모 조사가 가능했고 응답 내용도 비교적 충실해 자료로써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다. 다만, 조사 당시가 물량팀 노동자의 수가 최저로 줄어든 시점이라는 점, 그리고 조사가 상선과 해양플랜트 중에서 상선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조선소의 한 분야(상선)의 특정 고용조건(하청업체 본공)에 대한 설문조사로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

 

심층 인터뷰의 역설

자료조사, 설문조사보다 시간과 비용이 더 집중된 조사는 조선소의 다양한 집단에 대한 심층 인터뷰 조사였다. 3차에 걸친 현장조사를 통해, 원청의 안전 담당부서, 원청의 하청업체 담당부서, 하청업체 대표와 관리자, 하청업체 본공, 하청업체 물량팀, 삼성중공업을 떠난 물량팀, 노동자협의회(정규직) 노동안전 담당자, 안전대행업체, 산업안전감독관 등을 3:3 인터뷰 방식으로 조사했다. 인터뷰의 분량이 방대하고 그것을 녹음한 내용을 글자로 푸는 과정에 큰 비용이 지출됐다. 그러므로 이번 조사위원회 활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조선업 연구자 누구라도 1차 자료로 분석, 활용할 수 있도록 인터뷰 녹취록 전체를 공개해야 한다. 설문조사 역시 분석 정리된 결과만이 아니라 원 데이터까지도 공개하거나 연구자에게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인터뷰에서 원하는(?) 대답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삼성중공업에만 국한하면 원청 관계자든, 하청 관계자든, 하청 본공 노동자든, 재하청 물량팀 노동자든 모든 인터뷰 대상자들이 “모든 것이 다 잘되고 있다”고 대답했다. 원청은 안전에 큰돈을 투자하고 있으며, 안전관리자는 안전에 있어서만큼은 원청노동자 하청노동자 구별이 없었다. 하청업체도 안전 전담인력이 1명 이상 고용되어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산재 은폐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구조라고 했다. 안전교육과 안전시스템은 잘 가동되고 있으며, 위험을 발견하면 하청노동자 누구라도 그것을 지적하고 위험요소가 제거될 때까지 작업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었다. 하청노동자라고 해서 정규직보다 훨씬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대답도 별로 없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에는 “역시 원청이 시간을 할애해 주고 인터뷰할 사람들을 정해서 보내주니까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의심했다. 그런 면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인터뷰이들이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런데 인터뷰가 거듭 진행되다 보니 나중에는 다른 질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고, 모든 것이 다 잘 시행되고 있는데, 왜 중대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걸까?” 이 같은 질문은 하나의 역설을 깨닫게 했다. 이렇게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데도 중대재해가 계속 발생한다면 그것은 시스템이 형식적으로는, 겉으로는 작동하지만 실제로 현장 밑바닥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아무리 안전에 비용을 많이 투자하고 안전시스템을 잘 갖추어 놓더라도 중대재해를 막지 못한다면, 안전시스템 이외의 다른 요인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모든 것이 다 잘 돌아가고 있다는 인터뷰의 역설은 결국 다단계 하청고용 구조를 없애지 않는 한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원청의 안전시스템이 아무리 잘 갖춰지고 잘 운영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1차 하청업체 정도일 뿐, 하청의 재하청 다단계 물량팀으로 내려가면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또한 아무리 하청업체의 안전 역량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단기적인 이윤 이외에는 관심도 여력도 없는 재하청 물량팀은 안전의 주체가 전혀 될 수 없다. 이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시작했다.

   

국민참여조사위 보고서의 명과 암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4개월로 계획되었던 국민참여조사위 활동은 2개월이 연장되어 계속됐고, 조선업에서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제도개선안을 담은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이전부터 조선업 중대재해에 관해 노동계가 제시한 대책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조선소 방식의 위험의 외주화인 다단계 하청고용 금지, 둘째, 안전관리에 있어서 원청의 책임성 대폭 강화, 셋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대표되는 원청 최고경영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원청 최고경영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국민참여조사위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어차피 논의되었어도 경총 소속 위원과 조선소 임원 출신 위원들이 격렬하게 반대했을 것인데, 국민참여조사위 위원들 스스로도 처벌 문제는 국민참여조사위의 소관 사항이 아니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다단계 하청고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은 보고서 제도개선안의 가장 첫머리에 놓였다. 다단계 하청고용이 문제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다수 위원들이 이견이 없었다. 다만 어떻게 금지할 것인가로 넘어가면 각자의 주장에 차이가 있었는데, 어쨌든 법으로 금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 대해 결국은 동의한 것이다. 그러자 경총은 전술적으로 일보 후퇴를 선택했고 경총 출신 위원의 제안으로, ‘금지한다’가 아니라 ‘엄격히 제한한다’로 최종 정리됐다.

비록 다단계 하청고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제안이 보고서에 담겼지만, 그것을 실제로 입법화하는 것은 노동부의 의지에 달려있다. 그런데 노동부의 입법 의지를 장담할 수 없고, 실제로 입법안 마련이 매우 까다로운 점을 핑계로 경영계의 입법 반대 주장도 강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고서의 또 하나 커다란 축은 ‘원청의 책임성 강화’다. 그런데 보고서에 담긴 원청 책임성 강화 방안이 과연 책임성 강화 방안이 맞느냐는 논란이 벌써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보고서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원청의 책임이 너무 전반적으로 광범하게 규정되어 있어, 처벌의 근거가 될 수는 있어도 원청의 적극적인 예방 활동을 강제하지는 못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일본법의 사례를 차용해 원청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는 조항과 그렇지 않은 조항을 구분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오히려 원청의 책임을 축소하고 나머지 조항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반론도 있다.

또한, 안전활동의 가장 기본이지만 여전히 하청업체에서는 ‘가라 사인’이 횡행하는 안전교육에 대해서 노동계는 하청노동자의 안전교육도 원청이 책임지고 실시하도록 법에 규정하자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보고서는 하청업체가 안전교육을 시행하였는지 여부를 원청이 확인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도로만 제안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건설업에서 시행 중인 제도를 조선업으로 확대하려고 노동부가 준비 중인 ‘안전관리비 계상’에 대해서는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위원도 있어서, 일단 시범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도입 여부를 결정하자는 경총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또한, 원청의 하청업체 안전관리에 대한 개입 강화에 대해 경영계가 줄기차게 이야기해 온 “불법파견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졌다. 우선은 노동부 지침을 변경하고, 장기적으로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명기해 원청의 하청노동자에 대한 안전상 지시와 명령이 불법파견의 근거에서 제외됨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제안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과연 보고서에 ‘원청 책임성 강화’란 이름으로 담긴 제안들이 오히려 원청 책임성 약화나 회피의 내용 아니냐는 반론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글쓴이는 사실 ‘다단계 하청고용 금지’에 목숨을 걸었고, 반면 안전관리제도에 대해서는 전문성과 역량이 크게 부족하다. 또한, 국민참여조사위 참여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공동대책위가 깨지는 탓에 오랜 기간 노동자 건강권 활동을 해온 건강권대책위의 조직적 협력과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민주노총 노안실과의 긴밀한 논의와 협력도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안전관리제도 분야에서 민주노총과 오랫동안 협업을 해온 전문가 위원들의 의견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고, 그 의견에 의존하거나 따라가게 된 것이다. 어떤 요인과 이유를 들던, 국민참여조사위 위원의 역할을 맡은 글쓴이가 오롯이 책임져야 하고 평가되어야 할 문제임이 분명하다.

 

다단계 하청고용 금지에 총력을 기울이자

국민참여조사위의 활동은 2018년 4월 말로 끝났지만, 보고서 작성은 후반작업을 거쳐 6월 말이 되어서야 노동부에 제출됐다. 국민참여조사위 보고서에서도 주장하고 있지만, 우선 고용노동부는 보고서 내용을 웹사이트에 공개해 누구나 손쉽게 그 내용에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 설문조사 데이터와 인터뷰 녹취록도 최대한 공개해서 조선업 연구자들이 원 데이터를 자유롭게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고서 제도개선 제안의 가장 첫머리에 위치한 ‘다단계 하청고용 금지’를 실제로 법제화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차적으로는 노동부의 법제화 의지를 확신할 수 없고, 법안 마련이 까다롭다는 점을 파고든 자본의 반대 운동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가 구체적인 법제화 방안을 마련하여 정부와 국회에 요구하고 투쟁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금속노조 소속 울산, 목포, 거제통영고성 3개 조선하청지회는 금속노조 법률원과 함께 다단계 하청고용 금지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대규모로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당사자의 투쟁 없이 입법 청원만으로 다단계 하청고용 금지가 법제화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총력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비록 최저임금법 개악으로 중단 상태에 있기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주노총 역시 새로운 노사정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구성 논의에 함께 참여해 왔다. 또한, 6.13 지방선거에서 집권 여당의 파란색 물결이 소위 적폐세력인 자유한국당만 집어삼킨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 역시 집어삼켰다. 이 같은 자유주의 세력이 집권은 물론이고 모든 정치세력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노동운동에 필요한 것은 끊임없이 경계를 묻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활동 속에서 시시각각, 끊임없이 노동과 자본의 경계를 묻고, 나 자신은 지금 그 경계의 어디에 서 있는지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어느새 자본 권력의 자장 안에서 끈 없이도 묶여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철폐연대가 발행하는 기관지 <질라라비> 179호(2018-07)호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