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711] 이름만큼 예쁘지는 않은 ‘손말이음센터’ / 이정호

by 철폐연대 posted Nov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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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길에서 만나다

이름만큼 예쁘지는 않은 ‘손말이음센터’

이정호 (뉴스타파 객원기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의사소통 영상중계

양한웅, 박석운, 이갑용. 쉽게 조합되지 않는 사람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 인사말을 했다. 지난 9월 13일 저녁 조계사에서 열린 ‘KT민주화연대’ 출범식 자리였다. 30년씩 노동운동에 종사해 흰머리가 날리는 이들이 올 겨울 노조위원장 선거에 들어가는 KT노조의 민주화를 위해 그날 저녁 모였다. 그 틈에서 황소라(29) 공공운수노조 손말이음센터 지회장을 만났다. ‘손말이음’이란 이름이 고와 눈길이 갔다. 늙은 노동자들에게 황 지회장은 자신들의 처지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107손말이음센터’는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운영한다. 청각언어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을 문자나 수어(수화)로 실시간 중계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정보격차를 해소하는 필수공익 사업으로 2005년부터 중계서비스를 시작했다. 처음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했다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맞춰 2008년부터 24시간 운영한다. 주말에도 서비스는 계속된다.

 

정보화진흥원 일하지만 소속은 KTcs

수화중계사들이 KT새노조 행사에 왜 왔는지 궁금했다. 2006년부터 정보화진흥원은 이렇게 중요한 상시지속적인 일을 통째로 외주화했다. 수화중계사들은 하청회사 소속이 됐다. 2006~2008년 용역업체 제니엘이 들어왔다가 2009년부터 KTcs가 하고 있다. 여기서 궁금증이 풀렸다. 황 지회장 같은 수화중계사들은 KT가 노조민주파 직원들을 솎아내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위해 만든 자회사 KTcs 소속이었다.

 

1 손말이음센터 황소라 지회장이 광화문 정보화진흥원 서울사무소 앞에서 점심시간 1인시위에 들어갔다. [출처 손말이음센터지회].jpg

손말이음센터 황소라 지회장이 광화문 정보화진흥원 서울사무소 앞에서 점심시간 1인시위에 들어갔다. [출처: 손말이음센터지회]

 

황 지회장은 원래 언어치료사가 되려고 했다가 1학년 첫 학기에 들었던 수화 수업이 너무 재밌어 수화통역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11년 졸업한 황씨의 첫 직장이 손말이음센터다. 여기서 7년을 일했다. 손말이음센터는 입소문이 나면서 업무량이 폭증했다. 청각장애인이 중국집에 짜장면 한 그릇 시킬 때도, 늦은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가는 택시를 부를 때도, 야식 배달에도, 119구급대를 부를 다급한 상황에도 수화중계시스템은 꼭 필요하다.

 

이용자 급증해도 인력은 오히려 줄어

2012년 하루 평균 1,059건이었던 중계건수는 2016년 2,064건으로 늘었다. 4년 만에 2배로 늘었지만 인력은 오히려 줄어 지금은 중계일을 안 하는 센터장까지 29명이 전부다. 덕분에 응대율은 2015년 75.1%에서 올 1~8월 43.6%로 뚝 떨어졌다. 인력 부족은 중계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려 응대율 추락과 함께 장시간 대기로 이어져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하는 장애인에게 돌아갔다.

인력 부족만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받는 임금은 올해 최저임금 6,470원보다 딱 13원 더 많은 6,507원이다. 여기에 식대 8만 원, 실적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등급수당(0~10만 원)을 합쳐도 실수령액은 170만 원대에 불과하다. 올해 월 기본급은 136만 원이다. 해마다 기본급은 최저임금에서 10원 정도 격차를 두고 따라 올랐다. 이 때문에 누적 퇴사율이 70%에 달할 만큼 인력난에 시달린다.

야간 근무를 하던 황 지회장은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일해야 할 만큼 힘들어 노조를 만들어 볼까 했다. 자신들이 소속된 하청회사 KTcs에 노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해봤지만, 전화도 안 받았다. KTcs의 원청 KT에도 노조는 있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KT노조 민주화를 추진해온 KT새노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지회로 가입했다.

황 지회장보다 먼저 2008년에 입사한 김영수(35) 씨도 비슷한 고통을 겪다가 함께했다. 김씨는 지회 사무국장이 됐다. 4살 아들을 둔 직장맘 김 사무국장은 광부의 딸로 태어나 병으로 쓰러진 어머니 병간호 때문에 대학 졸업 후 취업 시기를 놓쳤다. 김 사무국장도 손말이음센터가 졸업 후 첫 직장이다. 김 사무국장은 29명의 센터 전 직원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입사가 빠르지만 지금도 200만 원 남짓한 월급을 받고 있다. 2012년 결혼하고 한동안 남편에게도 자기 월급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워낙 저임금이라.   

한시도 쉬지 않고 김 사무국장을 포함해 세 자식을 건사해온 부모를 보고자란 터라, 열심히 하면 잘 풀리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기본급은 2015년 121만 원에서 2017년 136만 원으로 올랐지만, 그 사이 10만 원이었던 식대는 8만 원으로 줄었고 5만 원씩 주던 교통비는 아예 사라졌다. KTcs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이렇게 각종 수당을 줄여 총액을 쥐꼬리만큼 올렸다.

 

직고용 요구하며 노조결성 뒤 1인시위

이렇게 중요한 공공서비스를 하청으로 돌려놓고 예산 타령만 하는 정보화진흥원을 상대로 지난 6월 노조를 만들었다. 회사는 노조 만든 지 닷새 만에 불법파견의 여지를 지우려고 원청 이름과 로고가 버젓이 박혀 있던 명함부터 폐기하라는 공지를 올렸다. 저임금 타개책으로 생계형 장시간 노동을 해온 중계사들에게 근로기준법대로 주 12시간으로 시간외근무 시간을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그 전엔 한 달에 100시간 넘게 시간외근무를 하던 중계사들도 있었다.

국민신문고와 일자리위원회에 정보화진흥원 직고용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내고 노동부엔 체불임금을 진정했다. 원청인 진흥원과 KTcs엔 센터 감사요청서도 발송했다.

그제야 원청과 하청회사는 간담회를 열고 중계사들의 얘기를 들어줬지만, 근본적인 해결엔 난색을 표했다. 지난 8월 22일부터는 자신들이 일하는 광화문에 있는 정보화진흥원 서울사무소 앞에서 “퇴사율 70%, 외주용역 실패”라는 글자를 새겨들고, 점심시간마다 직고용을 요구하는 1인 시위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