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3] 단체협약상 기업청산에 대한 합의조항의 유효성을 인정한 가처분 결정 / 장석우

by 철폐연대 posted Mar 0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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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 포커스

  

 

단체협약상 기업청산에 대한

합의조항의 유효성을 인정한 가처분 결정

-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23. 1. 30.자 2022카합50161 결정 -

 

 

장석우 •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

 

 

1. 사건 발생의 경위

 

한국와이퍼 주식회사(이하 ‘회사’)는 매출 규모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부품 회사인 일본 덴소(DENSO)의 한국 내 자회사다. 덴소는 2022년 기준 세계 35개 국가와 지역에서 총 198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전체 임직원 수는 17만 명에 육박한다. 2021년 기준 매출 규모는 55조 원, 순이익은 3조 원에 이른다. 이들에게 한국와이퍼 노동자 280명은 언제든 정리대상이 될 수 있는, 한 줌의 존재였던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2018년경부터 새로운 납품계약 기회를 포기하는 등의 방법으로 매출 규모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해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은 매출 규모가 더욱 축소된 2020년, 회사와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했다. 회사는 이를 위반하고 청산을 검토했다. 노동조합은 다행히 이러한 정황을 포착했고 회사를 압박하여 2021년, 더 강력한 고용안정협약(이하 ‘협약’)을 체결했다. 위 협약의 핵심조항은 청산, 매각, 공장이전의 경우 반드시 노동조합과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이행 시 조합원 1인당 1억 원의 금액을 손해배상 해야 한다는 위약금 조항도 들어 있다. 중간납품을 받는 원청 덴소코리아 주식회사와 일본 최대주주 덴소와이퍼시스템도 위 협약의 이행을 보증했다. 노동자들은 회사와 협약을 믿고 열심히 일했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신뢰를 배신했다. 2022. 7. 7. 전 직원에게 이사회, 주주총회에서 해산결의를 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2023. 1. 8. 본격적인 청산절차를 시작하며 기업 활동을 종료한다고 했다. 이후 노사 간 현재까지 수십 차례의 교섭이 진행되었다. 회사 입장은 강경했다. 청산에 대해 재검토할 수는 없고, 오직 퇴직조건만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2022. 8. 25. 청산절차 중 노동조합과 합의 없는 해산 등기, 주요자산매각 등을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을 신청했고,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이하 ‘법원’)은 같은 해 11. 24. 이를 전부 기각했다(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22. 11. 24. 자 2022카합50121 결정, 이하 ‘선행 가처분 결정’). 노동조합은 같은 해 11. 30. 선행 가처분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를, 다음 날인 12. 1. 청산절차 중 노동조합과 합의 없는 해고를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2023. 1. 30. 간접강제 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인용했다(이하 ‘평석 대상 결정’).

 

2. 주요 쟁점 및 결정 요지

 

1) 쟁점

평석 대상 결정의 주요 쟁점은 협약 중 “회사는 청산, 매각, 공장이전의 경우 반드시 노동조합과 합의해야 한다”는 조항에서 ① ‘합의’의 의미, ② ‘청산’에 ‘청산 과정에서의 해고’ 포함 여부, ③ 해당 조항의 유효성이다.

 

2) 결정 요지

 

(1) 주문

 

채무자(회사)는 단체협약상 절차에 따른 채권자(노동조합)와의 합의 없이 채권자 소속 조합원들을 해고하여서는 아니 된다.

 

(2) ‘합의’의 의미

 

① 합의조항은 노사 양측의 중대한 관심사였고, 문구 작성 경위를 보면 쌍방의 협상에 의하여 최종적인 합의로 채택된 것인 점, ② 협약서 다른 조항에서 합의와 구분하여 협의와 협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점, ③ 회사가 파업을 조속히 종결시킬 필요로 노동조합의 요구를 수용한 점을 종합하면 이 사건 합의조항의 합의는 단순히 의견수렴절차를 거치라는 뜻의 ‘협의’가 아닌 노동조합과 의견을 성실하게 교환하여 노사 간에 의견의 합치를 보아 청산절차를 진행하여야 한다는 뜻에서 ‘합의’를 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3) ‘청산’에 청산 과정에서의 해고가 포함되는지 여부

 

① 청산 과정에서 해고는 물론 해고된 근로자 채용도 가능한 점, ② 협약 체결의 중요한 경위는 청산 과정에서의 해고에 관하여 노동조합과 합의하도록 하여 고용불안정을 해소하는 데 있었던 점, ③ 협약서 체계를 전체적으로 보면, 협약서상 청산에는 청산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고 및 기타 근로조건이나 근로자 지위의 변동에 관한 사항이 모두 포함되는 점을 종합하면, 이 사건 합의조항에 따른 합의의 대상인 ‘청산의 경우’는 청산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고’를 포함한 청산에 관한 절차 내지 청산에 관한 사항을 모두 포함한다고 보아야 하고, 회사가 해산 후 그 재산의 권리의무를 정리하여 회사의 법인격을 소멸시키는 과정인 청산절차 그 자체만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4) 해당 조항의 유효성

 

① 해당 조항은 강행법규나 사회질서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는 점, ② 상법은 청산 과정에서의 해고 기타 근로조건이나 근로자 지위의 변동을 명시적으로 규율하고 있지 않은 점, ③ 해고를 제한해도 사업 양도, 매각 시 고용승계가 가능하므로, 주주들의 전권사항인 해산결의와 양립 불가능하거나 이를 무용하게 만들거나 상법이 정한 법정청산절차를 불가능하게 한다거나 상법의 청산 관련 강행규정에 반하지 않는 점, ④ 청산절차에서도 법인격은 존속하므로, 단체협약도 청산기간 중 존속하며 협약 당사자는 이를 준수할 의무가 있는 점, ⑤ 회사는 협약서 체결 이전부터 청산을 계획하였고, 주주도 위 협약서 내용을 알면서도 해산결의를 하는 등 협약서 체결 당시와 현저한 사정변경이 없는 점, ⑥ 회사는 단체협약의 구속력이 배제되는 파산절차가 아닌 청산절차 진행 중인 점을 종합하면, 이 사건 합의조항은 채무자가 채권자와의 합의에 따라 청산 과정의 해고를 제한하는 내용으로서 유효하다.

 

3. 결정에 대한 검토

 

1) 이른바 ‘경영권 사항’에 대한 단체협약상 합의조항의 유효성

 

(1) 정리해고

 

과거 대법원은 소위 ‘전체적 해석론’과 ‘경영권특별취급론’에 따라 정리해고의 경우는 징계해고와 달리 단체협약상 ‘합의’를 ‘협의’로 해석해 왔다. 대표적인 판결이 한국조폐공사 판결(대법원 2002. 2. 26. 선고 99도5380 판결)이다. 위 판결은 “사용자가 경영권의 본질에 속하여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항에 관하여 노동조합과 ‘합의’하여 결정 혹은 시행하기로 하는 단체협약의 일부 조항이 있는 경우, 그 조항 하나만을 주목하여 쉽게 사용자의 경영권의 일부 포기나 중대한 제한을 인정하여서는 아니 되고, 그와 같은 단체협약을 체결하게 된 경위와 당시의 상황, 단체협약의 다른 조항과의 관계,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노동조합이 경영에 대한 책임까지도 분담하고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그 조항에 기재된 ‘합의’의 의미를 해석하여야 한다”고 하여 한국조폐공사와 노동조합이 체결한 단체협약상 정리해고에 대한 합의조항을 ‘협의’의 취지로 해석하였다.

그런데 2011년경부터 이와 같은 법원의 완고한 태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작은 진방스틸코리아 판결이다. 서울고등법원 2011. 2. 9. 선고 2010누18552 판결은 진방스틸코리아가 노동조합과 체결한 단체협약상 고용승계 조항(진방스틸코리아와 인수예정자인 한국주철관공업은 현재 재직(휴직자 포함) 중인 전 종업원에 대하여 전원 고용을 승계하도록 하며, 인수 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도록 한다)에 근거하여 회사의 정리해고를 무효로 판단했다. 위 판결은 대법원 2011. 5. 26. 선고 2011두7526 심리불속행 기각판결로 확정되었다.

이후 알리안츠생명보험 판결(대법원 2012. 6. 28. 선고 2010다38007 판결)에서는 “정리해고는 근로자에게 귀책사유가 없는데도 사용자의 경영상의 필요에 의하여 단행되는 것으로서, 정리해고의 대상과 범위, 해고 회피 방안 등에 관하여 노동조합의 합리적인 의사를 적절히 반영할 필요가 있고, 노사 쌍방 간의 협상에 의한 최종 합의 결과 단체협약에 정리해고에 관하여 사전 ‘협의’와 의도적으로 구분되는 용어를 사용하여 노사 간 사전 ‘합의’를 요하도록 규정하였다면, 이는 노사 간에 사전 ‘합의’를 하도록 규정한 것이라고 해석함이 상당하고, 다른 특별한 사정 없이 단지 정리해고의 실시 여부가 경영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이라는 사정을 들어 이를 사전 ‘협의’를 하도록 규정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고 하여, 종래의 해석론을 실질적으로 폐기하였다. 실제 위 사안의 단체협약에는 정리해고에 대한 합의조항은 없었고 조합간부 해고에 대한 합의조항만 있었는데, 조합간부를 정리해고한 사안에 대하여 이와 같이 판단한 것이다. 다만 이 사안에서는 노동조합 측의 합의권 남용 내지는 행사 포기가 인정되어 해고가 무효로 판단되지는 않았다.

고용안정협약의 유효성에 대하여 본격적인 법리를 설시한 대법원 판결은 포레시아배기시스템코리아 판결(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1두20406 판결, 이하 ‘포레시아 판결’)이다. 위 판결에 의해 “정리해고나 사업조직의 통폐합 등 기업의 구조조정의 실시 여부는 경영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이는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으나, 사용자의 경영권에 속하는 사항이라 하더라도 그에 관하여 노사는 임의로 단체교섭을 진행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고, 그 내용이 강행법규나 사회질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이상 단체협약으로서의 효력이 인정된다. 따라서 사용자가 노동조합과의 협상에 따라 정리해고를 제한하기로 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단체협약이 강행법규나 사회질서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고, 나아가 이는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에 대한 대우에 관하여 정한 것으로서 그에 반하여 이루어지는 정리해고는 원칙적으로 정당한 해고라고 볼 수 없다. 다만 이처럼 정리해고의 실시를 제한하는 단체협약을 두고 있더라도, 그 단체협약을 체결할 당시의 사정이 현저하게 변경되어 사용자에게 그와 같은 단체협약의 이행을 강요한다면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부당한 결과에 이르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단체협약에 의한 제한에서 벗어나 정리해고를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판례법리가 확립되었다. 이 사안에서 회사는 노동조합과 “현 시화공장 재직인원(2008년 7월말 현재)에 대하여 고용보장을 확약한다”는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한 후 해당 인원들을 정리해고 하였는데, 법원은 위 협약조항의 규범적 효력을 인정하여 해고를 무효로 판단하였다. 위 판결은 정리해고 이외의 사업재편 등 각종 경영권 사항에 대한 단체협약상 합의조항의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2) 분할매각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법인 분할, 매각’에 대하여 노동조합에 대한 사전 통보 및 합의절차를 둔 사례에서,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2017. 4. 12. 자 2017카합5024 결정은 위 단체협약에 위반한 법인 분할절차의 진행 및 지분매각의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요지는 분할매각에 대한 합의조항이 사용자의 경영권 행사를 전면적으로 박탈하는 내용이 아니라 이를 제한하는 내용으로서 경영권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지 않고, 강행법규나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과 회사의 대주주가 단체협약과 별도로 주주권의 행사에 관한 합의를 한 경우 그 합의에 대하여도 위 포레시아 판결에서 제시한 법리가 적용된다고 판단한 점도 특징적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사용자가 회사 합의서 및 단체협약에 위반하여 회사 분할 절차를 계속 진행하고 있고, 회사 분할 절차가 완료될 경우 노동조합으로서는 단체협약에 따른 권리를 더는 행사할 수 없을 것으로 우려되는 점 등을 근거로 보전의 필요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3) 신규채용

 

노사가 단체협약의 후속 합의로 신규채용에 대하여 노동조합에 대한 합의절차를 둔 사례에서, 부산지방법원 2020. 1. 15. 선고 2019나53297 판결은 위 합의조항을 위반하여 노동조합과 합의하지 않은 채 총 3회에 걸쳐 11명의 신규채용을 일방적으로 진행한 회사의 행위를 채무불이행으로 보아 이를 협의로 해석한 원심 판결을 취소하고 노동조합에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요지는 신규채용에 대한 합의조항이 사용자의 경영권을 전면적으로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이의 행사를 제한하는 내용으로서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지 않고, 강행법규나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판결은 위 후속 합의를 단체협약에 준하는 개별협정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고 보고, 포레시아 판결에서 제시한 법리는 사용자의 경영권에 속하는 사항에 대하여 단체협약에 준하는 개별협정을 체결한 경우 그 합의에 관하여도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4) 공장이전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공장이전’, ‘사업장 단위 및 차종 단위의 사업양도’에 대하여 노동조합에 대한 합의절차를 둔 사례에서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2020. 7. 22. 자 2020카합10193 결정은 위 단체협약에 위반한 공장 해외이전 절차의 진행금지를 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요지는 공장이전 등에 대한 합의조항이 경영권의 본질을 침해한 규정이라고 볼 수 없고, 강행법규나 사회질서에 위배된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장이전’의 의미에 대하여 전체적인 조항의 문언상 의미와 취지에 비추어 사전적 의미의 ‘공장의 물적 설비의 장소적 이전’에 한정된다고 볼 수 없고, 실질적으로 ‘공장이전’과 같은 상태가 초래되어 조합원의 신분에 대하여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를 포괄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사용자가 단체협약을 위반하여 공장이전 절차를 계속 진행하고 있고, 베트남으로의 공장이전이 완료되어 울산공장에서의 버스생산을 중단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서는 단체협약상 권리를 행사할 수 없을 것으로 우려되는 점 등을 근거로 보전의 필요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5) 기업청산절차

 

노사가 고용안정협약으로 청산에 대한 합의조항을 둔 사례에서, 선행 가처분 결정은 위 협약에 위반한 청산절차의 진행금지를 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회사는 해산사유가 발생한 경우 청산 중인 회사가 되어 청산의 목적범위 내에서 존속하고, 그 청산이 종결된 회사라도 어떤 권리관계가 남아 있어 현실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으면 그 범위 내에서는 그 범위 내에서는 아직 완전히 소멸하지 않는다. 채무자와 같은 주식회사의 해산사유는 존립기간의 만료 기타 정관으로 정한 해산사유의 발생, 합병, 파산, 법원의 해산명령 또는 해산판결, 회사의 분할 또는 분할합병, 주주총회의 결의가 있다. 다만, 주식회사가 존립기간의 만료 기타 정관에 정한 사유의 발생 또는 주주총회의 결의에 의하여 해산한 경우에는 주주총회 특별결의(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의 수와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수)로 회사를 계속할 수 있다. 이처럼 청산이란 주주총회의 해산 결의 등 해산사유의 발생을 원인으로 진행되는 절차인 점, 해산 결의는 주주들의 고유한 권한에 속하는 사항으로 사용자가 처분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닌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합의조항에 따른 합의의 대상인 ‘청산’이란 회사가 해산 후 그 재산의 권리의무를 정리하여 회사의 법인격을 소멸시키는 과정으로서 ‘청산에 관한 절차’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하여 주주총회 의결사항인 해산과 회사 주도의 청산을 구분하여 판단했다. 그리고 위 합의조항의 의미에 대하여 “청산 과정에서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이나 퇴직금 등의 금품 청산절차가 예정되어 있고, 청산 과정에서 해고는 물론 청산업무 등의 수행을 위하여 해고된 근로자에 대한 채용까지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청산에 관한 절차에는 근로자의 노동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사항으로 사용자가 처분할 수 있는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러한 사항은 단체교섭의 대상인 단체교섭사항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여 청산에 관한 절차 중 상법조항 등 강행법규에 위반되지 않으면서 사용자가 처분할 수 있는 단체교섭사항에 대하여는 그 유효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비록 선행 가처분 결정은 노동조합의 신청취지(청산 관련 각종 등기 금지, 재산매각 금지 등)가 강행규정인 상법상 청산 관련 규정에 위배된다고 보아 그에 대한 피보전권리를 인정하지 않았지만(즉시항고를 통해 수원고등법원 2022라338 사건으로 다투는 중), 위와 같은 판시는 평석 대상 가처분 결정이 내려지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6) 소결

 

이상과 같이 법원은 점점 다양한 ‘경영권 사항’에 대한 단체협약상 합의조항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판단을 하고 있고, 그 인정 범위는 확대되는 추세다. 이른바 ‘경영권’은 신성불가침의 권리라거나 주주와 대표이사 등 경영진이 갖는 배타적 권리가 아니다. 상법이나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 등 각종 실정법에 따라 제한되는 권리이기도 하다. 주주나 원청 등 거래상대방 등과의 합의를 통해 제한될 수도 있고 제3자에게 위임도 가능하다. 양도의 대상도 될 수 있다. 채권단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 같은 채권단 주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영진이 채권단과 합의해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협조가 필수적인 경우 노동조합과 합의해 일부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와 같은 법원의 판단 경향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2) 이른바 ‘통상해고’에 대한 단체협약상 합의조항의 유효성

 

(1) 통상해고의 자유를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

 

대법원 2001. 11. 13. 선고 2001다27975 판결 등은 “사업의 폐지를 위하여 해산한 기업이 그 청산 과정에서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은 기업 경영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서 정리해고에 해당하지 않으며, 해고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한 유효하다”고 보았고, 대법원 2003. 4. 25. 선고 2003다7005 판결은 “기업이 파산선고를 받아 사업의 폐지를 위하여 그 청산 과정에서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은 위장폐업이 아닌 한 기업경영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서 파산관재인이 파산선고로 인하여 파산자 회사가 해산한 후에 사업의 폐지를 위하여 행하는 해고는 정리해고가 아니라 통상해고이다”라고 설시한 바 있다. 위 판결들은 평석 대상 결정에도 인용되고 있다.

 

(2) 회사 주장과 법원 판단

 

회사는 위 판결들을 근거로 청산과정에서의 해고는 기업의 자유로서 고용안정협약상 합의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고, 단체교섭의 대상이 아닌 사항을 단체협약으로 정한 것으로서 효력이 없으며, 이 사건 청산은 사실상 파산절차와 다름없기 때문에 단체협약서의 구속력이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협약 체결의 목적 자체가 청산과 해고를 막기 위한 것으로서 위 합의에는 청산절차에서의 해고에 대한 합의가 포함되고, 청산과정에서 해고와 고용유지는 사용자가 처분 가능한 사항으로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설령 채무자에게 파산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채무자가 현재 파산이 아닌 청산절차를 거치고 있는 이상 파산과 같이 단체협약의 구속력이 배제될 수 없다고 보았다.

 

(3) 검토

 

청산과정에서의 해고가 정리해고가 아닌 통상해고라고 본 위 대법원 판결은 통상해고가 ‘정당한 이유’가 있는 한 유효라고 하며, 청산에 따른 모든 해고가 유효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포레시아 판결은 고용안정협약을 위반한 해고는 원칙적으로 정당한 해고라고 볼 수 없다고 하여 해당 조항의 효력의 성격을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에 대한 대우에 관하여 정한 것으로서 규범적 효력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이를 위반한 해고를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의 ‘정당한 이유’를 갖춘 해고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평석 대상 결정은 대법원의 기존 판례 태도와 배치되지 않으며, 타당하다.

 

4. 결어

 

노사가 진지한 교섭을 통해 체결한 단체협약은 강행법규나 사회질서에 위배되지 않는 한 유효하고, 이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평석 대상 결정은 고용안정협약 중 기업청산에 대한 노동조합의 합의권, 그중에서도 정리해고가 아닌 청산 과정에서의 통상해고에 대한 합의권의 유효성을 인정한 법원의 첫 판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평석 대상 결정의 취지를 토대로 한국와이퍼 노사가 교섭을 통해 잠재적 사업양수인에 의한 전원 고용승계 등 최적의 해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