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7] 내가 되고 싶은 것 / 장인하

by 철폐연대 posted Jul 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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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내가 되고 싶은 것

 

 

장인하 • 철폐연대 후원회원, 노동에 대해 공부하는 대학원생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수업이 한창이던 지난 2020년에 중학교 교사로서 이 코너에 글을 썼으니, 3년이 채 되기도 전에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2020년에 살아갔던 이야기는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로 시작되던데, 그 글을 쓸 때만 해도 내가 교사를 그만두게 될 줄은, 대학원생이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함께 활동하던, 혹은 투쟁의 현장에서 숨 가쁘게 살아가시는 동지들을 뵐 때면 아직 반가움보다는 죄송한 마음이 크기에 대학원생으로서, 연구실에 앉아,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는 게 무안하고 면목이 없지만, 다시 한번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 본다.

 

전교조 조합원으로 있었던 4년간의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지금은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사회학을 전공으로, 노동을 세부 전공으로 하여 공부를 하고 있다. 사실 이제 막 두 번째 학기를 마쳤을 뿐이어서 대학원에 대해, 공부와 연구에 대해, 노동에 대해 무언가 새롭게 알거나 느끼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학원에 오면 무언가를 계속 읽고 쓰게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뭘 더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반대로, 내가 뭘 모르고 있는지를 조금씩 더 정교하게 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말하면서도 이것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 민망할 뿐이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왜 대학원을 갔는지를 설명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한창 이 질문에 답을 하고 다니다가 문득 내가 매번 조금씩 다르게 대답하고 있다는 걸 느낀 적이 있다. 그때에는 아직 마음과 생각의 정리가 다 안 되어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으로는 어떤 확신이 있어서 대학원에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한다. 부족함이 많아서 그랬겠지만, 노동조합 활동을 할 때에는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현안을 대응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였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국면과 상황이 어떤 흐름 속에 놓여 있는 것인지, 그 흐름은 어떤 커다란 사회변동의 과정 속에서 형성된 것인지, 그렇다면 지금 노동자 계급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활동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당장 아는 게 없으니, 일단 관련된 공부를 좀 더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런 걸 대학원에 오면 할 수 있는 건지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아니, 내가 목적의식적으로 이런 걸 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대학원에서 수업을 듣는다고 이런 걸 배우고 고민할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요즈음의 사회과학 연구의 뚜렷한 경향 중 하나는 어떤 문제를 더 크고 넓게 보려고 하기보다는 엄밀함을 앞세우며 더 세밀하게 보려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다른 대학원의 분위기는 잘 몰라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대학원이라는 곳은 당장 자기 공부와 연구를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학문 장(영역)에서 요구되는 규범과 논리, 설명과 정당화 방식을 훈련하는 곳에 가까운 것 같다. 대학원에서는 나의 생산물이 이 영역에서 유통될 만한 상품이 되기 위한 규격과 내용들을 갖추는 데에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과 논리, 방법론들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단 대학원에 오면 이런 자격을 갖추기 위한 공부를 하며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시장에서 잘 팔린다는 것이 그 상품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듯이, 학문 영역에서 인정을 받기 위한 공부는 계급 투쟁과 사회 변혁에 대한 고민(이런 단어를 잘 안 쓴 지 고작 1년 정도 되었다고 벌써 이런 말을 쓰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이다)을 심화시켜 가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대학원에서는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공부들도 하게 된다. 내가 잘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되고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생각해 보게 될 때는 뭔가 내가 세상을 더 알게 된 것만 같아 기쁘고 설렐 때도 있다. 하지만 학문 분과 안에서 인정받는 연구들을 보다 보면, 맥이 빠지고 속이 답답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즈음 사회(과)학에서 점점 강화되는 경향은, 더 많은 데이터를, 더욱 정교한 방법론을 적용하여 분석함으로써, 현상을 더욱 세밀하게 설명해 내는 것이다. 물론 이를 통해 얻게 되는 것도 있겠지만 잃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예를 들어, 내가 전공하는 사회학에서 가장 자신 있게 다루는 주제가 ‘사회 불평등’인데, 사회학에서의 사회 불평등과 관련된 연구들을 거칠게 종합해 보면 ‘오늘날 한국에서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회 불평등과 관련하여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데이터로, 무슨 변수들에 초점을 두고 분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고 복잡한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는 연구자의 관점이 특별히 보수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진보적’인 문제의식을 가진 연구자들의 연구들도 그렇다. 아직 과문한 탓이겠지만, ‘세계적인’ 학술지에 실리는 연구들의 결론도 결국 ‘현실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며, 어떻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연구들이 학문적 기여는 분명히 있을 수 있지만, 이 연구들이 과연 현실의 노동자들의 삶을 바꾸어 나가는 데에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노동 관련 연구들을 찾아보다 보면, 연구자들이 갖는 문제의식의 깊이나 진지함, 그들이 하는 치열한 작업들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애초에 어떤 연구자들에게 ‘현장’은 단지 연구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막막해지기도 한다.

 

글을 쓰다 보니 대학원을 온 것은 역시 잘못된 선택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말을 하려던 것은 아니다. 대학원에 오기 전에는 막연하게 사회에 대해, 노동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대학원 생활을 조금이나마 경험해 보니 내가 뭘 하고 싶고 어떤 걸 하고 싶지 않은지, 그리고 그걸 하기 위해서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것 같다. 나는 학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내가 되고 싶은 것은 연구 역량을 갖춘 활동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내가 지금 뭘 모르고 있는지, 그래서 뭘 더 공부해야 하는지, 연구라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지금 대학원에서 배우는 중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애써 위로하고 있다.

 

 

8. 본문사진.jpg

2023.03.22. 돌봄-돌봄노동 공부하기. [출처: 철폐연대]

 

 

책과 논문들을 읽다 보면 뭔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넘어서 혼탁해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피나 땀이 배어 있는 현실의 명징한 말들은 어김없이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그래서 <질라라비>를 읽고, 철폐연대에서 하는 돌봄 노동 세미나에 참여하고, 김혜진 동지가 소개해 주시는 연구와 행사, 교육들에 가능한 한 참여하고 있다. 또 시간이 될 때면 가급적 집회에 참여하려고도 한다. 치열한 투쟁의 현장에서 물러나 있다는 데에서 답답함과 무기력함이 느껴질 때, 대학원에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들 때, 철폐연대 동지들의 글과 연구 작업, 철폐연대에서의 토론회와 교육, 세미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정말 큰 힘이 된다. 나중이라는 말은 민망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머지않아, 철폐연대 동지들이 하시는 활동과 비슷한 무언가를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뜬금없지만 이렇게 글을 마무리해 보려고 한다.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동지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