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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이정원을 추억하고 기억합니다

황정일 (철폐연대 회원 이정원 동지의 옆지기)

 

어제 이정원 사진전을 위해 사진필름들과 인화된 사진 그리고 소지했던 물건들을 차에 실었습니다. 거기에는 액자도 있었는데 노근리 학살 장소를 담은 사진이었습니다. 이정원의 일과 삶이 담긴 물건들이 서울 합정동 절두산순교성지 부근 주택을 개조한 한 갤러리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노동사진활동가 이정원

 

이정원은 어린 시절인 1970년대 사우디에서 3년 동안 이주노동자로 일하느라 떨어져서 지냈던 아버지와는 좀 서먹함을 느끼고, 아끼고 쪼개 쓰는 것에 익숙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이정원은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는 1980년대 후반이었고 대학생이었던 큰언니 영향을 받아서인지 당시 친구들은 이정원이 진취적이었다고 말합니다. 중3때 학교에서 평화의 댐을 건설한다고 모금운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정원이 왜 모금을 강제적으로 하냐고 말했다네요. 1991년 대학에 들어간 이정원은 노래패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을 시작합니다. 당시 학교는 노래패와 풍물패가 양대산맥이었다고 하는데 이정원이 노래패 출신이라서 그런지 이후 이정원은 술이 얼큰할 때면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1995~6년 경 이정원은 인천 주안동 작은 어린이집에서 교사를 시작합니다. 아마도 이정원은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사진이라는 세계에 마음이 들어선 것 같습니다. 1997년에 이정원은 울산노동자대투쟁을 기록했던 이기원 선생님 등이 강의를 진행했던 한겨레문화센터 사진강좌를 수강합니다. 강좌 실습으로 지금 남아있는 필름에는 학교선배가 일하는 삼송역 철도차량기지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2018년 올해 추석 전날 의왕하늘쉼터 납골야외묘원에서 열린 이정원 3주기 추모식 때, 그 학교선배였던 철도노동자 엄길용 동지가 당시를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이정원은 인천 지역 활동을 고민하다가 몸이 아파져서 어린이집 교사를 그만두고 1998년 월간 <일하는 사람들의 작은책> 독자관리부로 들어갔고, 이듬해 <작은책> 인물취재 꼭지인 사진으로 보는 ‘사람사는 이야기’를 맡으며 일하는 사람들을 찍기 시작합니다. 이정원은 그곳에서 참 좋은 사람, 아픈 사람, 힘든 사람 들을 만나면서 다시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199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동안 이정원은 <작은책> 사진기자, <노동자의 힘> 사진기자, 민주노총 <노동과 세계> 사진기자, <참세상> 사진기자를 했습니다. 이 10년은 노동사진활동가 이정원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이정원은 이 활동 속에서 사진이 할 수 있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정원의 사진 활동은 녹녹하지 않았습니다. 2002년 경 <작은책>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너무나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새로운 편집진에게 동의가 안 되어 상근자들과 <작은책>을 그만두게 됩니다. 2005년에는 민주노총 핵심지도부의 비리 사건에 민주노총의 바른 길을 요구하면서 집단 사직합니다. 이정원은 그동안 사람에 치여서, 사람을 믿어서 생긴 상처들로 중간 중간 많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015년 추석 전날 암투병 중이던 이정원은 병원에서 외출해 목동 어머니집으로 와서 긴 잠에 들어갔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잘 알았던 이정원

 

이정원은 평소에 본인 자랑을 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정원에게서 내가 들은 자기 자랑 중의 하나는, 타인에게 선물을 할 때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을 잘 생각해서 센스 있게 사주고 받는 사람도 좋아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정원과 달리 그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저에게는 항상 뒤늦은 일인 것 같습니다. 이정원은 자신의 물건들을 소중히 여기고 아꼈습니다. 그 물건 중에는 2013년 가죽공예와 퀼트공예를 수강하면서 직접 한 땀 한 땀 만든 지갑과 가방도 있습니다. 이정원은 자신의 물건들과 마음을 지인들에게 나누고 갔습니다.

 

사진집을 만들고 사진전을 준비하며 이정원과 당시의 나와 많은 활동가들을 생각합니다. 요즘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워라밸이라는 용어가 유행입니다. 하지만 그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운동에 복무했고 아프기도 하고 그렇게 조금씩 사라져갔습니다. 그렇게 나도 활동가에서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이정원의 이야기를 이정원이 쓴 글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이제 곧 합정동 한 주택에서 이정원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제가 믿는 건 움직이면 조금씩 변한다는 명제입니다. 그것에 가장 부합한 것이 지금은 땅입니다. 사람은…… 그동안 제게 일어났던 일들로 백프로 수용이 되질 않습니다. 그래도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같이 가야 한다는 마음은,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솔직히 사람과 하는 일들은 좀 힘이 듭니다. 당장은 사람과 일을 하기 보다는 제가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게 땅입니다. 제가 움직이는 만큼, 제가 욕심 부린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닌 땅을 알고 싶습니다. 제가 노력해도 안 된다는 그 말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땅과 움직이며 겸허와 같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노력하고 싶습니다.”

 

 

 

이정원 사진전

 

- 2018년 11월 29일(목)~12월 12일(수) 매일 오후 12시~7시

- 레인보우큐브 갤러리(마포구 합정동 91-27번지)

 

 

표2 이정원동지 사진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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