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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 현장

 

삼성직업병 대응 활동에서 작은사업장 노동자건강권 지킴이까지

공유정옥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 자원활동가

 

2007년 11년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단체가 있다. 우리에게는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이 단체는 지난 12년간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의 문제에 천착하는 활동을 꾸준히 벌여왔다. 그 결과 ‘먼지 없는 클린산업’으로 일컬어지는 반도체․LCD 등 첨단전자산업의 작업환경 실태가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었고,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기업비밀보다 노동자․시민의 ‘알 권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인식도 차츰 확대되었다.

공유정옥 동지는 본인 전공인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와 ‘사회운동 활동가’로서의 정체성 사이에 딱히 경계가 없다. 지금은 반올림 자원활동가이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으로서 느슨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지만, 반올림 운동의 확장과 진전을 여전히 자신의 과제로 무겁게 껴안고 있는 듯했다. 최근에는 보건관리자 선임의무가 없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취약한 노동자 건강권을 보호, 지원하는 업무를 ‘경기동부근로자건강센터’ 책임의사 자격으로 참여 중이다. 캐주얼한 일상복을 입고 거리를 누비던 ‘그때’나 하얀 가운을 걸치고 근로자건강센터에서 일하는 지금이나, 그에겐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가 늘 최대의 화두이다. 3월 3일, 많은 궁금증을 안고 강남의 한 카페에서 공유정옥 동지를 만났다.

 

인터뷰 및 정리: 임용현 (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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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로 나의 일터를 진찰하다

 

많은 분들이 생소하실 수도 있는데, 제가 2014년부터 근로자건강센터라는 곳에서 근무를 시작했어요. 근로자건강센터는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에서 민간위탁 방식으로 설치․운영하고 있는데요. 지금은 전국 곳곳에 20여 개 센터가 만들어졌고, 저희 센터를 위탁운영하는 기관은 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단이라는 곳이에요. 다른 지역의 경우에도 지역 산업보건 전문기관이 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고요.

사실 안전보건이라든가 사회복지와 관련된 공적 서비스를 민간에 위탁한다는 게 여러 가지로 논란의 여지가 많잖아요. 다른 민간위탁 분야에서 겪는 문제들이 제가 일하는 센터 안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어요. 우선, 안전보건공단과 위탁운영기관의 계약 갱신 주기가 3년 단위인데요. 아무래도 고용불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죠. 그리고 정부지원금을 받아서 센터가 운영되는 구조라서 한정된 예산범위 내에서 인건비나 운영비를 쓰다 보니까, 저 같은 센터 직원들의 임금인상, 처우개선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여기에서 일하는 분들 대부분이 사명감 하나로 이 악물고 버티고 계시더라고요.

이런 구조적인 취약함에 대해 요새 고민이 부쩍 많아졌어요. 일단 저만 하더라도 부센터장이지만, 가톨릭대 산학협력단과는 ‘1년짜리’ 계약직이거든요. 업무 지시나 감사는 안전보건공단이 하고, 실질적인 운영은 위탁운영기관에 맡기는 구조이다 보니까, 저희 입장에선 두 군데가 다 ‘갑’이나 다름없는 거예요. 그래서 공단과 대화할 수 있는 창구부터 만들어보자, 그런 취지에서 ‘전국근로자건강센터협의회’라는 단체를 올해 초에 만들었어요. 원래는 2월 중에 운영진회의를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19 여파로 아직 모임을 갖지 못했어요.

 

 

반올림 농성은 끝났지만 문제해결은 아직 ‘진행형’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 등에서 일어난 직업병 피해 지원보상 합의가 이뤄진 게 벌써 재작년 일인데요. 당시 조정위원회의 중재 판정을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이행키로 합의하면서 직업병 문제도 이제 어느 정도 매듭지어진 게 아니냐…. 아마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거슬러 올라가면, 2015년 7월에 나온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을 삼성이 보류시킨 채 갑자기 자체적인 보상기구를 만들어서 합의를 일방 파기한 적도 있었고요. 그것 때문에 저희가 조정 절차를 무시한 삼성을 규탄하는 노숙농성을 1,023일 동안 진행했었죠.

아무튼, 조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 자리를 삼성이 스스로 걷어차면서 우여곡절이 참 많았어요. 아까 말씀드린 조정권고안이 삼성의 거부로 물거품이 되고 나서, 조정위원회가 재해예방대책 관련 ‘원포인트 합의’를 제안했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농성하는 와중에도 재해예방대책 관련 합의도 했었죠. 그러다가 조정위원회가 2차 중재를 다시 제안했고, 여기에서 사과와 보상, 그리고 예방대책에 대한 보완, 이렇게 세 가지 의제에 대한 합의까지 어렵게 도달한 거예요.

그래서 조정위원회의 2차 중재를 반올림과 삼성, 양측이 조건 없이 수용키로 한 건데요. 당시 합의 의미에 가려져서 그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사회적 관심이 덜한 것 같아요. 일단 직업병 피해자에 대한 보상 절차는 지원보상위원회가 독립적으로 꾸려져서 2028년까지 계속 진행하게 돼요. 추가예방대책에 대해서는 삼성전자가 공공기관인 안전보건공단에 500억 원을 기탁해서 전체 전자산업 반도체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공익적 사업에 쓰기로 했었죠. 최근에는 이 500억 원을 인건비나 연구프로젝트 비용으로 소모하기보다는, 오랫동안 기반이 될 수 있는 하드웨어를 조성하는 비용으로 사용하자는 계획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고 들었고요.

사실 반올림 농성도 종료됐고 중재안 합의도 끝났지만, 그 내용이 어떻게 이행되느냐는 결국 과정의 문제이잖아요. 많은 분들의 부단한 관심과 인내가 필요한 일인지라, 앞으로도 이 문제에 대해 자주 질문해주시면 좋겠어요.

 

 

산기법 개정안은 노동자 알 권리를 침해하는 ‘삼성보호법’

 

3월 5일, 반올림이 산업기술보호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해요. 작년 8월에 산업기술보호법이 개정됐는데, 어떤 법안이 개정되는 맥락과 배경이 실은 중요한 거잖아요. 당시 산기법 개정 내용은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선 안 된다”는 게 핵심이었고, 이게 한-일 무역갈등이 고조되던 시기에 구렁이 담장 넘어가듯 국회에서 통과된 거예요. 그런데 이 개정법에 따르면, 직업병 피해를 규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업장 내 유해화학물질 정보까지 비공개 대상이 될 수 있거든요. 단지 국가핵심기술이라는 이유로 노동자건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작업환경에 더 이상 문제제기할 수 없도록 만든 거예요. 이 법안이 기술유출을 방지한다는 미명하에 개정되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나 지역주민의 생명․건강에 직결되는 정보에 대해서도 접근할 수 없게 원천차단한 셈이죠.

그런데, 산기법 개정이 이렇게 졸속적으로 추진된 데에는 삼성의 영향이 지대하게 컸어요. 사실, 법안 개정 이전에도 삼성은 직업병 관련 산재소송에서 ‘안전진단보고서’나 ‘작업환경보고서’를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며 정보 공개를 줄곧 거부해왔어요. 고용노동부도 삼성 편에서 영업비밀 논리를 펼치긴 마찬가지였고요. 그러다가 2018년 들어 법원 판결이나 정부 입장에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었거든요.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작업환경 등 정보에 대해서는 적극 공개하라는 취지였어요.

삼성이 여기에 반기를 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죠. 2018년 3월, 고용노동부의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결정에 대해 삼성이 일단 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해서 정보 공개를 막아 세우더니, 이어서 고용노동부의 공개 결정에 행정심판도 제기한 거예요. 그러더니 2019년 8월에 느닷없이 산업기술보호법이 개정됐다는 사실을 저희도 뒤늦게 알아차린 거죠.

그 과정을 돌이켜보면, 이건 말 그대로 ‘삼성보호법’에 대한민국 입법․사법․행정부가 농락당했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그렇다고 저희가 달라고 요구한 정보가 엄청 대단한 무언가도 아니거든요. 애초 반올림이 정보 공개를 요청한 내용도 산재인정을 위해 필요한 자료 수준이고, 또 어차피 삼성이 고용노동부에 법적으로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보이기도 해요. 저희가 무슨 어마어마한 정보를 캐내려던 것도 아니고, 뭘 빗대어 설명하기도 우스울 지경이에요.

불행 중 다행스런 소식은 10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이번에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의 독소조항을 늦게나마 알아차렸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재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는 점이에요. 이제 그걸 이행하는 과정을 저희도 똑똑히 지켜봐야겠죠!

 

 

삼성 이재용과 문재인 정부의 밀월관계

 

 

앞서 말씀드렸듯이, 최근 한-일, 미-중 무역갈등을 빌미로 이른바 ‘수출 효자 종목’인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업종에 대한 기술보호나 규제완화 목소리가 정․재계를 중심으로 두드러지고 있잖아요. 게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문제도 일종의 ‘위기를 기회로’ 삼고자 하는 심리가 기득권층 내에서 확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기회를 틈타서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심보랄까요? 사회구성원들에게 굉장한 악재가 도래했을 때에도 거기에서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모습 같아서 참 그랬어요.

지난 주였나…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의 간담회가 있었잖아요. 그 자리에서 재벌 총수들이 정부에 이런저런 건의나 애로사항을 전달하면서 코로나19 상황으로 급변한 경영환경에 아낌없는 지원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SK이나 현대차, 롯데 같은 재벌 총수들은 중국 현지공장들이 차질 없이 가동될 수 있게 정부 차원에서 힘써달라는 주문을 했던 걸로 기억하고요. 그때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대통령에게 했던 얘기 혹시 기억나세요? “중국 진출 한국기업 주재원들이 코로나19 사태로 많이 힘들어 한다. 그분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격려의 메시지를 대통령께서 전달해달라”는 얘기였어요. 뭐랄까요. 다른 대기업들은 이참에 해결하고픈 민원들을 잔뜩 풀어놓는데, 삼성은 역시 다르긴 다르구나, 이런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이전 정권에서 국정농단의 배후로 지목됐던, 그래서 감옥까지 다녀왔던 인물이 이제는 정말 현 정권과 막역한 사이라는 걸 아예 대놓고 과시하는구나 싶었어요. 물론 규제완화나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따끔한 지적이 필요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이 많이 씁쓸하게 남더라고요.

 

 

삼성 준법감시위가 이재용 면죄부 될까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관련 재판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작년 10월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재용에게 준법감시제도를 만들라는 아주 이례적인 주문을 했잖아요. 그로부터 5개월 동안 진행과정은 일사천리였죠. 재판부의 파격 제안에 이어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을 따져 양형 기준에 반영하겠다고 호응했죠.

저는 준법감시위의 긍정적 효용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게 지금 어떤 의미일지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준법감시위 유무와 무관하게 이번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뭔가 사회 공동의 이익이나 사회정의를 위해 더 바람직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고 생각해요. 준법감시위는 그저 본질을 감추기 위한 장식? 고명 같은 거죠. 우리 눈을 현혹하기 위한 이런 겉치레들을 중심에 놓고 판단하면 자칫 위험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거예요. 어딘가에서 이런 표현을 본 적이 있는데요, 이게 ‘지우개’가 아니거든요. 지금 이재용 부회장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부분을 지울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런 맥락에서 사실 이번에 어떤 판결이 나오느냐가 우리나라 사법부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가, 혹은 사법부에 대한 삼성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인간 이재용을 위해서라도 인생의 구원을 받을 좋은 시간을 제대로 보내고 왔으면 하는데, 사법부가 저만큼 그 사람을 걱정하진 않는 것 같네요(웃음).

 

 

지난 10년 사이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

 

제가 실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로 30대를 보내오면서, 40대는 상임이 아닌 채로 맞이해보겠다는 꿈이 있었어요. 그런데 2012년 말 삼성의 대화 제안으로 인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죠. 반올림 교섭단 간사로 6년가량 지내면서 그게 제 발목을 잡은 거예요. 그래서 회한도 많긴 하지만 지난 10년간 제 활동에서 가장 큰 이벤트였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한순간으로 콕 집어서 말씀드리자면, 기억나는 며칠이 있어요. 처음에 삼성이 대화하자는 제안을 여러 경로로 해왔었어요. 그래서 “진짜 대화하고 싶으면 공식적으로 요청하라”고 했더니, 당시 삼성전자 DS부문 김종중 부사장 명의로 된 이메일이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한 거예요. 그때 활동가들과 피해가족들이 함께 회의를 하던 날, 그 회의를 준비하던 제 마음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 결국 우리가 독배를 받아든 거 아닌가, 그래서 “아, 이거 큰일 났다” 싶었거든요. 어쨌든, 반올림과 삼성의 대화는 노동조합이 회사와 하는 협상과는 또 다른 거잖아요. 법적으로 지켜야 할 룰이 없는 링 위에서 그들이 가진 엄청난 힘과 자원에 맞서 싸워야 하는 거니까요. 물론 우리도 우리가 가진 힘이 있겠죠. 다만, 우리가 어디까지 어떤 조건을 만들면서 같이 갈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상태일까. 이런 게 시험대에 오른 거죠. 그러니까, 도망가선 안 되는데… 아, 이길 수는 없겠다. 저들의 눈속임에 속지 않고, 저들의 힘에 억눌리지 않고, 과연 얻을 것을 얻어낼 수 있을까? 그래서 몹시 괴로웠던 기억이 나요. 이제 삼성이 나와서 싸우자고 선전포고 한 건데, 우리 손이 맨주먹이든 돌멩이가 있든 있는 힘껏 이 싸움에 임해야 한다는 생각밖엔 없었던 것 같아요. 질 수도 있는데, 그럼 그 안에서 꼭 이겨야 하는 건 이겨야만 해. 그런데 그게 뭘까? 우리 안에서 합의가 될까? 이런 번민과 갈등이 제 마음 속에서 회오리치고 있었던 기억이 나요.

 

 

소진된다고 느낄 때

 

사실 사람마다 그런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이 조금씩 다를 것 같아요. 제 경우엔 그런 시기가 급격하게 닥친 건 아니었어요. 자동차 연료가 천천히 바닥나더라도 한동안 차 바퀴는 굴러가기 마련이잖아요. 원체 내가 갖고 있는 역량을 100%, 200% 이렇게 발휘하는 성정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게 벼랑 끝으로 뚝 떨어지듯 그렇게 찾아오진 않았어요. 내 것으로 체화하고 나의 언어로 말해야 하고, 이런 과정들이 워낙 오래 걸리기 때문에 좀 느리기도 했고요.

예전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 활동을 했었는데, 조직 특성상 개인의 판단에 온전히 내맡기지 않고 굉장히 많은 토론을 했었어요. 누군가 보기에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비효율적이라고 느낄 만큼, 반복된 토론을 했는데 그 속에서 진짜 내 말을 찾을 수 있었어요. 저는 그게 너무 좋았고 정말 많이 배웠거든요. 그래서 소진되어 가는 한편에는 그 에너지를 쓰면서 제가 무럭무럭 성장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2005년에 상임을 시작했는데, 그때가 서른 한 살이었거든요. 마흔이 되기 전에 나한테 두세 달 노는 시간은 줘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어요. 실제로 2011년쯤 되니까 그동안 서서히 소진되어온 티가 나더군요. 그래서 상임을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고, 다행히 순탄하게 2012년부터는 상임을 중단했어요. 1년 정도 준비해서 그 다음해에 ‘자체적’으로 안식년을 가질 생각이었죠. 하지만 그해 말부터 삼성과의 교섭논의가 시작되면서 결국 안식년 시기를 영영 놓치고 말았죠. 아직도 고갈된 에너지가 채워지진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유급 안식년, 안식월, 이런 제도는 단체가 아무리 힘들어도 필수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활동가들에게 잠을 절대로 자선 안 된다고 말하진 않잖아요. 5년에 한 번, 7년에 한 번, 이런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제때 일을 팍 놓고 쉬는 건 정말 필수에요. 에센스!

 

 

작은사업장 노동자 안전보건 지원역량을 키우는 해로

 

근로자건강센터는 올해 재계약이 된 상태라서 이변이 없는 한 3년을 제가 더 일할 계획이거든요. 여기에서 제 나름 소박한 목표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경기동부근로자건강센터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우리 스스로 설정한 목표에 다가서는 건데요. 안전보건공단에서는 일 년에 몇 건, 이런 식으로 실적위주 평가를 하거든요. 위에서 내려오는 업무지시 말고, 우리가 이 지역에서 정말 뭘 하고 싶은지 함께 찾아나가는 거죠. 10명가량 되는 센터 직원들이 이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과제를 설정하고 그걸 구현해가는 걸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고요.

또 하나는 전국근로자건강센터협의회를 만들었는데, 이 안에서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도 다룰 수 있는 여건을 어떻게 마련할지 같이 고민해보려고 해요. 지금은 작은사업장 보건만 담당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이 더 안전할 수 있도록 작업환경 개선에도 저희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철폐연대 동지들에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2003년인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설립됐을 무렵 같아요. 어느 날 철폐연대 총회를 갔는데, 사람들이 “비정규직철폐연대가”를 부르고 있더라고요. 제가 그 노랠 몰라서 따라부르지 못하고 있으니까, 어떤 동지가 등짝 스매싱을 날리셨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네요! 아마 총회 시작 전에 노래를 함께 배우는 시간을 미리 가졌던 모양인데, 그때 저만 몰라서 혼쭐이 났거든요.

그리고 철폐연대는 제가 대학원 전공의를 하면서 ‘민중의료연합’이나 ‘근골격계직업병공동연구단’ 활동을 하면서 자주 만났던 동지들이었어요. 2002년 무렵에 우정사업본부 상시위탁집배원 문제를 조사하게 됐는데요. 상시위탁집배원들은 IMF 경제위기 이후 정부 차원의 구조조정 일환으로 도입된 제도였어요. 이 구조조정으로 인해 파생되는 비정규직 문제, 노동강도 강화, 근골격계 직업병 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을 자주 만났어요. 당시 ‘비정규직 철폐’냐 ‘차별 철폐’냐, 이런 얘기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철폐연대 회원이 됐던 것 같아요. 이것도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너도 가입해”라는 한 동지의 권유를 받고…. 일단 회비가 잘 나가고 있는지는 음… 모르겠네요. 확인해서 재개해야겠어요. 정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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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라라비> 200호 발간 기념행사에 함께해주세요.

- 2020년 4월 24일(금) 오후 6시 30분 /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강당(지하)

- 후원계좌 : 하나은행(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824-910011-23204

<질라라비>가 200호를 넘어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과 비정규직 철폐운동에 함께하는 동지들의 참여와 후원을 요청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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