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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축복이 혐오를 이긴다

 

진구 • 섬돌향린교회, 무지개예수

 

 

 

2019년 8월 31일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이동환 목사는 다른 두 개신교 목회자와 함께 “평화로운 축제와 당당한 우리의 삶을 위해” 축제 참가자들을 축복하는 축복식을 베풀었습니다. 이 ‘죄’로 이동환 목사는 소속 교단 종교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이 두 문장이 연결되는 세상을, 교회를 바꾸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한국 교회의 성소수자 혐오

 

한국 주류 개신교가 성적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가장 대표적이고 가시적인 것은 퀴어문화축제 반대 측 참가일 것입니다.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들이 명절처럼 여기는 행사입니다. 이날만큼은 퀴어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다양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모습을 축하하며, 시민으로서 응당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위해 모여 행진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때 보수 기독교 세력들은 근처에서 반동성애 맞불집회를 개최합니다. 퀴어 퍼레이드 장소로 가는 길목마다 ‘회개하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고, 스피커를 통해 큰 소리로 찬송가를 틀며 훼방을 놓습니다. 행진하는 트럭 앞에 드러눕는 등 행사 진행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저지 운동’의 역사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보수기독교 집단은 무슬림·난민과 더불어 성소수자 차별금지법안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2007년부터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습니다.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며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이제 정신의학계의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들을 ‘이성애자로 바꾸어 주겠다’는 반의학적 전환치료 시도와 동성애자 인권 뿐 아니라 탈동성애자 인권도 보장하라는 어불성설인 주장도 계속해서 있어 왔습니다. 또한, ‘동성애 반대’를 위한 연사들을 개발해서, 각지에서 컨퍼런스를 열어 동성애 등 성소수성은 후천적이며 질병이고 HIV/AIDS 등을 일으킨다는 ‘거짓말’도 일삼습니다. 최근에는 ‘젠더 이데올로기’라는 정체불명의 단어를 내세워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이 기독교와 사회를 파괴하려는 사회주의자들의 체제 전복 전략이라는 영문 모를 주장을 전면에 들고 나오기도 합니다.

위 사례들은 소수 극단적인 사람들의 이상한 주장들인 것 같지만, 상식 있다는 ‘중도’ 기독교인들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동성애·성소수자성은 죄다”라는 것이 개신교 전반의 인식입니다. 최근 수년간 여러 개신교 주요 교단들에서는 동성애자 혹은 동성애 ‘찬동자’에 대해 교회에서 정직·면직·추방하거나, 신학교 입학·교직원 임용을 금지하거나, 교회 직분 맡는 것을 금지하는 등의 교단법 조항을 신설하였습니다. 자연히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교회들도 거의 없어, 많은 기독교인 성소수자들은 자기를 숨기고 교회에 다녀야 하고, 퀴어문화축제 시즌에는 강대상에 울리는 혐오와 차별이 뒤섞인 설교를 참아내야 합니다. 이 시기에는 아예 교회를 가지 않는다는/못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동환 목사는 어떤 일을 겪고 있는가

 

성소수자들에게 적대적인 한국교회의 풍토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성소수자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감리교) 이동환(영광제일교회) 목사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이동환 목사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투쟁 현장에 함께 해 온 목사이기도 합니다. 재능교육, 동양시멘트, 파인텍, 콜트콜텍 현장에 연대했고, 최근에는 삼성 김용희 고공농성의 개신교대책위를 꾸리기도 했습니다. 그가 성소수자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은 한 성도가 자기가 사실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했을 때부터입니다. 성소수자들도 평범한, ‘나와 똑같은 사람’임을 알게 된 후로, 이 목사는 성소수자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퀴어 퍼레이드에도 참석했습니다.

그러던 이동환 목사는 2019년 인천 퀴어문화축제 개신교 축복식 순서에 목회자로 함께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소속 교단 교단법에 ‘동성애 찬성·동조 금지’ 조항이 있는 것을 알았기에 고민했지만 ‘하나님 사랑은 차별이 없다는데, 대상이 성소수자라고 해서 차별이 있을 수는 없다’라고 생각하여 수락했습니다. 이 목사는 축복식에 참여한 목회자 3인 중 한 명으로서, 평화로운 축제와 참가자들의 당당한 삶을 위해 축복하고 꽃을 뿌려주었습니다.

이 일이 알려지자, 몇 감리교 목회자들은 이 목사 처벌을 교단에 요구했습니다. 심사를 맡은 경기연회 자격심사위원회는 이동환 목사에게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했지만, 이동환 목사는 각서 대신 ‘각서에 대신하여’라는 제목으로, 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목회·선교사역이 자기의 목회 신념이라는 글을 제출했습니다.

이 목사는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리포트로 작성해서 제출하라는 요구도 받았습니다. 이 목사는 성경의 여러 구절들과 찬성·반대·중립의 다양한 입장들을 검토하여, “단순히 ‘동성애 금지’로 규정하지 말고 논의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 결론의 50장 분량 리포트를 작성해서 제출했습니다. 리포트에서 제기한 질문에 대해서 심사위원들과 대화할 수 있을 것을 기대했지만, 돌아온 것은 “그래서 찬성이냐 반대냐?”라는 사상 검증에 가까운 질문이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도 쓰지 않고, 동성애는 찬반의 문제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이동환 목사에게 돌아온 것은 교단 재판 정식 고발이었습니다. 7월 21일 현재, 이동환 목사는 첫 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재판은 한국에서 성소수자 이슈로 열리는 첫 번째 교회 재판이라는 점에서 한국 교계와 성소수자 운동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7 보통의 인권_01.png

2019년 인천퀴어문화축제, 꽃 뿌리며 축복하는 이동환 목사. [출처: 비디오머그 동영상 갈무리]

 

감리교가 말하는 범과와 그 문제점

 

중세 유럽도 아니고, 2020년 한국에서 종교재판이 뭔가 싶으신 분들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한국 개신교는 여러 교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교단들은 교단별로 교단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리교의 교단법인 “교리와장정”의 재판법 제3조 제8항은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마약, 도박과 같은 범과(犯過, 잘못을 저지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감리교 교리와장정 재판법에서 규정하는 처벌의 수위는 5개로 나누어지는데, 가벼운 순서에서 무거운 순서로 견책-근신-정직-면직-출교입니다. 문제가 된 제3조 제8항의 범과를 저질러 재판받고 처벌되는 경우에는, 최소 정직의 징계, 즉 목사직에서 정직 또는 면직되거나 감리교회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중징계를 받게 됩니다.

이 법조항에는 본래 ‘동성애 찬성·동조’ 구절이 없다가 2016년부터 추가되었습니다. 이런 법조항 개정을 위해 2016년 당시 감리교단은 어떤 준비와 의결과정을 거쳤을까요? 당시 법안 개정과 관련된 뉴스를 찾아보면, 법안 개정을 위해 1년 이상 준비해 제출된 본래 안에는 동성애와 관련한 조항은 없었으나, 결의 당시 일부 위원이 도입 근거나 타당성에 대한 설명도 없이 동성애 반대를 강력하게 주장하여 졸속으로 추가시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 양심에 따라’ 일하고 싶은 목사,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 위계적인 교단

 

이 문제는 성소수자 혐오·차별 문제일 뿐 아니라 노동하는 사람으로서의 권리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동환 목사는 교단 재판에서 징계를 받으면 일정 기간 동안 목사로 일할 수 없게 되거나(정직) 목사직을 박탈당하게 됩니다(면직·출교). 감리교 재판에 회부된 지금도 재판에 회부되었다는 이유로 목사직을 정지당하여 목회 일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이동환 목사가 겪는 문제를 단순히 해고와 같은 노동권 침해로 의미 짓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동환 목사는 교단과 근로계약을 맺은 것은 아니며, 다만 교단의 관리를 받으며 개별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목사가 횡령을 하거나 성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등 교단이 목회자를 징계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교단이 목회자를 징계하는 것이 노동권 침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동환 목사가 겪는 상황은 좀 더 복잡합니다. 이동환 목사는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신앙과 목회 양심에 의해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2016년 감리교 교단법에 “동성애를 찬성하면 처벌한다”는 조항이 처음 생겼을 당시, 일부 감리교 구성원들은 이 조항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입장의 감리교인들을 겁박하고 고립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을 염려했었습니다. 4년이 지나 이동환 목사에게 이런 염려가 현실화된 것입니다.

감리교단은 해당 법조항을 개정하기 전에도 후에도 교단 차원에서 동성애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토론을 거친 적이 없습니다. 이동환 목사를 심사하는 과정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찬성이냐 반대냐로 명확히 밝히라고 요구했을 뿐 진지한 토론은 없었습니다.

대화, 토론, 연구 과정 없이, 목사 개인의 신앙 양심에 대한 사상 검증과 보복으로 일할 터전을 빼앗을 수 있는 교단 내의 강압적이고 위계적인 구조가, 이동환 목사가 겪고 있는 사건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현재 이동환 목사 대책위의 요구는 “성숙한 대화와 토론을 위한 연구모임을 만들고 불합리한 ‘교리와 장정’ 개정을 위해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정말 성소수자를 차별할까?

 

성경은 정말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을 차별하고 정죄(죄로 정함)할까요? 동성애가 죄라는 것은 아무런 연구도 없이 교단법에 추가할 수 있을 정도로 자명한 문제일까요?

전 세계 다양한 개신교 교단들에서도 성소수자 수용과 관련된 이슈는 어려운 주제입니다. 미국 장로교(PCUSA)는 논의 끝에 2015년 동성 결혼을 허용했습니다. 세계 개신교 중 가장 큰 교파인 성공회에서는 게이와 레즈비언을 사제로 임명하기도 합니다. 한편, 미국 감리교는 성소수자 수용에 대한 이슈로 갈등하다가 올해 초 두 교단으로 나뉘었습니다. 성소수자 수용에 대해서 다양한 교단에 다양한 고민들과 갈등이 있지만, 한국 여러 교단의 경우처럼 토론도 연구도 없이 동성애를 죄로 못박고 금지하는 규정을 신설하지는 않습니다.

성소수자와 관련된 성경 구절을 자세히 검토하기에는 지면의 성격이나 분량에 어긋나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며, 서로를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는 말씀이 동성애 금지구절들보다 훨씬 더 자주, 중요하게, 명시적으로 적혀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동성 간 성행위를 죄로 규정하는 것처럼 읽히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저술 당시의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함께 읽으면, 해당 구절들을 근거로 동성 간의 합의된 사랑과 육체관계를 정죄할 수 있다는 결론에 간단하게 도달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면, 보수 기독교에서는 동성애자들의 죄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했다고 가르칩니다. (영어로 남성 간 성관계를 말하는 sodomy라는 단어도 여기에서 왔습니다.) 그러나 에스겔 16:49~50에서는 소돔이 멸망한 이유를,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가난하고 못 사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 주지 않아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오히려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손을 붙잡아 주지 않는 한국 보수교회와 겹쳐 보이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성서 저자들에게 현대에 통용되는 동성애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동성 간의 성적 관계는 늘 존재해 왔겠으나, 우리가 경험하는 ‘이성애’와 ‘동성애’는 우리가 속한 문화 가운데서 의미를 가지는 특수한 제도이며, 시공을 가로질러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성서 구절이 금지하는 동성 간 성관계 금지 구절들은 주로 우상숭배, 폭력, 강간, 성매매 등과 결부되어 나타납니다. 이 구절들은, 오늘날의 성별이 같은 두 사람 간의 합의된 관계에 대한 규범으로 삼기는 어렵습니다.

더 나아가서, 현대 신학에는 성소수자들의 입장과 시선에서 성서를 읽는 작업을 통해, 성소수자가 빼앗겼던 성경 읽기의 자리를 되찾으려는 일군의 신학적 흐름이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성경 전체에 고작 7번 등장하는 동성애 금지구절들을 반박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성경 이야기 안의 퀴어한 맥락들을 새롭게 조명하면서 ‘성경적’이라고 일컬어지던 관계의 규범, 존재의 규범을 전복하여 기독교 안에 성소수자들의 자리를 되찾으려고 합니다. 다윗을 둘러싼 남자들의 이야기, 룻과 나오미의 고부 간 퀴어한 관계의 이야기, 예수와 ‘사랑하시는 제자’ 간의 이야기... 퀴어의 눈으로 읽는 성경은 새롭고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를 다시 읽으면서, 동성애·성적소수성은 죄가 아니며, 성소수자들은 축복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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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원서와 함께 보내준 연대의 메시지 중. [출처: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 페이스북 페이지]

 

“평화로운 축제와 당당한 우리의 삶을 위해”

 

2019년 인천퀴어문화축제 축복식에서 ‘평화로운 축제와 당당한 우리의 삶을 위해’ 축복식을 거행한 이동환 목사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 마음을 헤아려보기 위해, 잠시 그로부터 1년 전 2018년 인천퀴어문화축제로 돌아가 보았으면 합니다.

2018년 인천퀴어문화축제는 보수 기독교발 혐오세력으로부터 린치에 가까운, 한국 성소수자 운동 역사에 유례없는 폭력 피해를 입었습니다. 천여 명의 방해 세력이 몰려와서 집회신고 된 광장을 무단 점거하고 무대 설치를 방해했습니다. 반대세력이 광장을 둘러싸면서 광장에 있던 축제 참가자들은 고립되었습니다. 한 번 나가면 방해세력이 만든 담을 넘어 돌아서 들어올 수 없어서, 참여자들은 몇 시간을 식사도 못 하고 화장실도 못 간 채로 광장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발생한 폭행 및 기물 파손 사건들도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2019년 8월 31일 다시 열린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그 어떤 자리보다 축복이 필요한 자리에서, 이동환 목사는 ‘평화로운 축제와 당당한 우리의 삶을 위해’ 축복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혐오세력과 성소수자들 한가운데 서서 그 혐오와 저주를 자기 몸으로 막아주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는 하나님께서 성소수자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동환 목사를 고발하고 심사한 사람들은, 인천 퀴어문화축제 참여자들을 축복하기로 결정한 이동환 목사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려 보았을까요? 하나님께 사랑받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받는 문제에서조차 소외를 경험하는 성적 소수자들의 불공평한 위치에 대해서는 얼마나 헤아려 보았을까요? 딱딱한 성서 해석의 틀 안에 갇혀, 성소수자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죄인으로 정죄하는 믿음 안에 머무르며, 손쉽게 배제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 칼날 앞에 이동환 목사가 서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동환 목사를 위해 연대하고 힘을 전해 줄 때입니다. “사랑이 이깁니다.” 축복은 혐오를 이깁니다. 우리들은 이동환 목사님을 위해 끝까지 기도하고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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