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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2%

 

문화예술 노동자, 타투이스트

 

김도윤 •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타투유니온지회 지회장

 

 

 

 

한국에서 타투이스트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불법’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합니다. 우리의 노동이 불법인 이유는 ‘타투는 의료행위’라고 적시한 1992년도의 판례 하나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는 타투 문화가 그다지 좋은 시선 안에 있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야쿠자들이 하던 ‘이레즈미’라는 장르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한국의 타투 문화도 조폭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뉴스에서 조직폭력배들을 검거했다는 소식을 전할 때, 가장 빨리 ‘나쁜 놈들’이라는 메타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철창 앞에 세워진 사람들의 등에 있는 문신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뉴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미디어에서 타투는 안 좋은 이미지를 설정하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였습니다. 예쁘게 볼 수 없었던 이 문화가 결국 사법부에 의해 철퇴를 맞게 된 이유입니다. ’92년도 판례는 미용타투 시술에 대한 부작용으로 인한 소송에서 생긴 것이지만, 앞서 설명한 국민의 인식이 뒷받침되었기에 ‘황당한 판결’을 용감히 내렸다고 생각됩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92년도 판례는 이미 일본이 가지고 있던 ‘황당한 판결’을 그대로 베껴온 부끄럽기까지 한 판결입니다.

 

불법이라는 오명

 

한국의 타투이스트들은 불법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습니다. 2007년에는 한국타투인협회를 만든 장준혁 회장님을 필두로 헌법소원과 관련 법률을 입법하고자 시도했었습니다. 이후로도 매 회기마다 입법과 헌법소원을 시도하고 있으나 ‘의사협회’ 등 의료 이익단체의 개입으로 번번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황당한 판례’ 아래서 황망한 30년을 보내오면서 한국에 생긴 또 하나의 웃지 못할 문화가 병원에서의 타투 영업입니다. 한국의 피부과 성형외과 등에서는 눈썹과 아이라인 등의 미용 문신을 산업화하여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이익산업으로 구축하였습니다. 물론 의사 선생님 개개인을 잡고 물어보면 타투가 의료행위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한 분도 없습니다. 하지만 단체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이익집단으로서의 협회들은 타투 합법화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성명을 발표하여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최근 한 업체의 조사를 통해 한국에서 타투를 경험해 본 사람은 미용문신을 포함하여 1,300만 명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미 내려놓을 수 없는 거대한 시장을 지키기 위해 의료이익단체들은 애꿎은 타투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잡아두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타투문화가 불법이 되는 것에는 의료단체가 개입하지 않았지만, 이제 정상화를 시키는 과정에서는 오로지 의료단체의 훼방만이 장애물인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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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이스트들을 위한 노동조합 ‘타투유니온’ 가입 홍보 카드뉴스 [출처: 타투유니온 인스타그램]

 

시각예술로서 타투

 

법률적인 노력 외에도 한국의 타투이스트들이 꾸준히 성취해온 노력의 산물이 있습니다. 바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최고 수준의 타투 실력과 문화입니다. 거의 모든 타투 장르에서 한국의 작업자들은 두각을 나타냅니다. 해외 컨벤션에서 상을 받는 것은 더 이상 이슈가 되지 못할 정도로 한국의 타투이스트들의 능력은 뛰어납니다. 이제는 수상뿐만 아니라 대규모 국제컨벤션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작업자들이 넘쳐납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큰 성취를 이룬 것이 있습니다. 코리안스타일 타투라고 불리는 ‘파인타투’ 장르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작업자들은 바로 이 ‘파인타투’를 작업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대다수는 한국인 작업자들입니다. 해외 유명 도시의 가장 좋은 작업실을 들어가면 어디서든 한국인 작업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해외 언론에서는 세계 타투의 트렌드는 서울에서 시작한다고 밝히기도 합니다. 파인타투는 기존의 타투가 장르 안에서 규칙과 스타일을 고수하며 발전해왔던 것과 다르게 정해진 틀이 없이 오롯이 바늘과 잉크, 피부라는 재료에 집중하여 파인아트가 그러했듯이 표현과 영감에 몰입하여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들을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해외 유명 연예인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타투를 받기 위해 좋아하는 작업자들과 연락을 취하고, 혹은 작업자를 자신의 나라로 초대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타투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합법화에 좀 더 다가가고자 노력해온 지난 10여 년의 산물입니다. 타투가 무섭거나 혐오스러운 문화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작업자들이 창조의 기쁨과 고통을 공유했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지킬 든든한 울타리

 

왜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지금의 타투 문화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한 작업자는 미국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배우와 모델들을 작업해주고 당당히 귀국을 하면서 인천공항에 내릴 때부터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가방에 들어있는 타투 용품이 검색대에 걸릴까봐 걱정이 되어서 입니다. 불과 몇 시간 전에는 아티스트라고 불리며 극진한 대접을 받았던 타투이스트는 인천에서부터 그냥 범법자가 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타투가 불법인 유일한 국가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또 타투가 불법인 것을 이용해서 작업을 받은 후 돈을 뜯어내거나 협박, 강간을 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림이 좋아서 타투를 시작한 미대생은 법률을 악용한 사람 때문에 전과자가 되고, 수사과정에서의 스트레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 어리고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업자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주변에서 이런 사례들을 목격하면서 우리를 지킬 든든한 울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절대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의료이익단체와 협상을 할 수 있는 연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타투유니온지회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민중의 소리 이완배 기자님의 방송을 들으며 막연히 우리에게도 강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을 때,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조성주 소장님의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고용된 직업인이 아닌 우리는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날 조성주 소장님이 전한 얘기는 달랐습니다. 고용된 노동자여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에 가입했기 때문에 당신이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처럼 우리가 일단 노동조합이 된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가장 높은 가치인 노동자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벅찬 가슴을 안고 다짜고짜 조성주 소장님을 찾아갔습니다. 그 후 2년간 조성주 소장님의 시간을 조금씩 빌리며 준비를 하여 지금 우리의 부모와 같은 존재인 화섬식품노조와 미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상상을 현실로!

 

이제 타투유니온지회라는 이름으로 상상 속에 있던 것들이 하나씩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화섬식품노조에 들어와서 가장 놀란 부분은 대기업에서 일하면서도 해보지 못한 스마트하고 경제적인 회의 문화였습니다. 왜 민주노총이 지금처럼 큰 조직이 되었는지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 노동조합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나 조직화에 무지한 우리 타투이스트들은 말 그대로 인큐베이팅을 통해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앞서 다져진 무리들의 도움으로 스스로 얻지 못할 많은 것들을 누리며, 타투유니온지회도 우리 다음에 만들어질 무리들을 위해 힘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타투유니온지회가 만들어지면서 내세운 첫 번째 사업은 ‘타투의 일반직업화’입니다. 법률적 문제를 해소하여 일반직업인이자 노동자로서 부족함이 없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슈입니다. 이를 위해 헌법소원과 입법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염려를 없애기 위한 자체적인 ‘위생 및 감염관리 가이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문화예술 노동자인 우리가 일반 직장인들처럼 무리의 돌봄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에 있는 직장인들처럼 정기건강검진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일반직업화 이전까지 억울하게 법률적 어려움에 처한 동료들을 무리가 나서서 보호해주기를 원했습니다. 또 세무, 법률, 노무, 성평등 교육 등 소양교육을 진행하는 것도 주요 사업입니다. 사실 막연하게 읊조렸던 이 사업들은 타투유니온을 통해 세부적인 정리가 되었고, 이후 수십 개의 시민사회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타투할 자유와 권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타투공대위’로 넘어오면서 사업을 좀 더 구체화하였고, 많은 노하우와 조직, 지혜를 갖춘 시민사회단체들의 도움으로 한 발 한 발 현실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연대의 마중물이 되어

 

최근에는 법무법인 오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와 함께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입법 과정에는 한국타투인협회,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정치발전소노동정치센터가 힘을 보태주고 계십니다. 타투이스트들의 소양교육에는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서울노동권익센터, 일과건강이 함께 해주시고, 그 베이스캠프가 될 ‘타투예술문화교육센터’는 최진주 조합원의 기부금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녹색병원과 함께 설립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녹색병원은 ‘위생 및 감염관리가이드’ 제작에도 TF로 참여해주셔서 타투이스트들의 부족한 의료지식을 수혈해 주시고,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 타투위생가이드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요 사업이었던 정기건강검진도 10월부터 녹색병원에서 시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조합원을 위한 사업은 더 늘어났고, 연대의 힘과 지혜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타투유니온을 통해 실질적인 사업을 진행하는 것 외에도 조합원과 공유하고 싶고, 실제로 공유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먼저 자리 잡은 자’가 ‘나중 오는 자’를 위해 연대와 나눔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타투업계에는 오래된 불신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조직을 꾸리면 돈을 바랄 것이고 합법화 이후에 이권 사업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라는 불신입니다. 물론 이런 불신은 대한민국에서 협회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조직에서 해당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런 불신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에 비영리단체인 노동조합을 선택한 것이기도 하고, 현재의 임원들은 조합비에서 어떤 임금도 받지 않고 봉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알아준 조합원들의 크고 작은 기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최진주 조합원은 자신이 타투를 하면서 번 비용 전체를 사회단체에 기부하면서 타투유니온에 2천만 원을 보내왔습니다. 그 기부금은 ‘조각기금’으로 조성되어 앞으로 모든 타투이스트들의 교육을 위해 공평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먼저 자리 잡은 누군가가 업계의 모든 동료를 위해 돌봄을 베푸는 경험은 2천만 원이라는 금전적 가치보다 더 큰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타투유니온이라는 무리를 통해 타투를 하는 모든 작업자가 얻게 되는 선한 경험이 언젠가는 우리의 보편적 문화로 자리 잡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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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유니온 김도윤 지회장 [출처: 김도윤]

 

“타투가 불법이 아니었더라면 ‘파인타투’라는 장르가 한국에서 만들어졌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 타투가 불법이 아니었더라면 그림 그리는 모래알 같은 우리들이 ‘타투유니온’이라는 이름으로 연대를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92년 판례가 고맙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의외로 더욱 아름다운 결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세계 최초로 타투이스트 노조가 어느 직장 부럽지 않은 복지와 돌봄을 실천하여 전 세계 타투시장에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주고 우리의 룰이 세계의 표준이 되는 빛나는 상상을 해봅니다. 이런 상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수년간 듣고 공부한 노동과 연대에 대한 지식이 노동조합이라는 지혜로운 결말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인 나를 위해서 혹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 건강한 노동조합의 모습으로 더 많은 노동자들이 연대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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