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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투쟁/이슈

■ 현장

 

삶과 투쟁의 주인,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비정규직 노동자’

선지현 충북노동자교육공간 ‘동동’ 대표

 

 

함께(同) 배우고 실천하는(動) 노동자들의 배움터! 충북노동자교육공간 ‘동동’은 2019년 말 설립해 올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역교육단체다. 동동은 부당하게 차별받고 탄압받는 현실에 분노해서 민주노조운동에 뛰어든 노동자들에게 좀 더 깊이 있는 통찰과 시야를 제공하고 싶어 만든 단체다. 서울과 다르게 지역에서는 현안 투쟁이라는 고개 너머 저 편, 아득히 보이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전망을 피부에 와 닿게, 지역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서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는 자리가 많다. 앞으로 동동의 여정에 관심과 기대가 쏠리는 이유다.

선지현 동지는 사회변혁노동자당 충북도당,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원남산업단지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의 일원으로 함께하며, 사회주의 정치 활동과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권리찾기 운동을 지역사회에서 대중화하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다. 이 정도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일 텐데, ‘동동’의 출범 덕분에 이제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더 분주해질 일만 남아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동동’ 사무실에서 열일(!) 중인 선지현 동지를 지난 3월 4일 만났다.

 

인터뷰 및 정리: 임용현 (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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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비정규직 문제에 숨통을 튼 운동본부 활동

 

2012년경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에서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구성을 제안했어요.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곳곳에서 촉발하던 시기였고, 이런 투쟁들을 지역사회에 알리고 연대의 힘을 구축해보자는 취지로 운동본부가 제안됐던 것 같아요. 활동 초반에는 주로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연대하는 일, 그 다음에는 차별철폐대행진, ‘차별 없는 충북’을 기조로 해서 캠페인 사업을 벌였어요. 그러던 중 참여단위들이 점차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거죠. 집회가 있으면 같이 참여하고 연대하는 것을 넘어서, 운동본부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찾기를 위한 독자적인 활동을 시도해보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안내하는 것이 어떨까. 그래서 운동본부가 상시적인 연대체 운동기구로 기능할 수 있도록, 집행단위도 구성하고 참여단체들은 매달 분담금을 내자고 했어요. 공동의 책임, 공동의 주체로 우리 스스로를 세워내자는 문제의식이었죠.

한편으로는 노동자권리찾기 운동을 시작해보기로 했어요. 6년 전부터 노동자들이 출퇴근하는 통근버스가 많이 모이는 곳에서 노동자권리찾기 캠페인을 한 달에 두 번씩, 격주 1회로 하게 됐죠. 보육노동자, 경비노동자 등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조사 사업도 추진했어요. 실태조사를 진행하면서 노조 없는 노동자들이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노조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찾기를 위한 활동들이 이어졌어요. 특히, 충북은 노동 관련 지역조례가 단 한 개도 없는 지역이거든요. 그래서 2018년에는 ‘저임금․비정규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조례운동’을 하게 됐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위한 활동 역시 시작하게 됐죠.

일단 조직노동자, 노동조합을 결성한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노조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무권리 상태에 놓인 노동자들의 권리찾기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이 문제들을 공론화하는 사업과 활동 들을 운동본부가 벌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노동권 사각지대 –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작년 4월부터는 충북 음성군 내 작은사업장 노동자 권리찾기를 목표로 ‘원남노동자권리찾기 사업단’을 출범했어요. 원남산업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2/3가량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사업장 평균 노동자 수는 35명이예요. 사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일수록 노동기본권 보장은 더 어렵기 마련이잖아요.

음성 원남산업단지 노동자권리찾기 사업은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의 제안으로 시작됐죠. 저는 금속노조의 전략조직화 사업 기획 논의부터 참여를 했었는데요. 노조가 조직화 로드맵을 짤 때 조직 확대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어떤 전략적 목표를 공유하는 게 좋을지 말하고 싶었어요. 제 생각은 어느 정도 큰 규모의 사업장들은 상담을 통해서든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든 결국엔 노조를 만들게 될 거라는 거예요. 문제는 노조를 만들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조건의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이죠. 노사협의회를 만들려고 해도 30인 이상 사업장에서만 적용됩니다. 2019년 들어서는 노동안전 이슈가 상당히 부각됐는데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100인 이상 규모의 사업장에서만 설치하도록 하고 있잖아요? 다양한 형태로 노동3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은 법 조항에서 배제되고 예외로 두는 노동자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죠. 전략조직화 사업은 노조가 만들어질 것 같은 곳이 아니라, 이렇게 만들고 싶어도 만들지 못하는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래서 개별노동자들도 지역으로 결합해서 사업장 규모와 관계없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걸 작은 사업장 노동자권리찾기로 말하고 있는 거죠. 이것이 원남산업단지 노동자들을 기업 단위가 아닌 공단지역으로 묶어세우자는 조직적 결의로 이뤄진 배경이기도 하고요.

 

 

원남노동자 실태조사, 우리의 준비 실태도 함께 점검하는 과정

 

원남산업단지 기본실태조사 사업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뼈저리게 다가온 경험들이 몇 가지 있어요. 예를 들면 취업규칙 게시 여부를 묻는 질문에 “취업규칙이 뭐에요?”라고 노동자들이 오히려 반문하는 거예요. 노사협의회를 구성할 권리가 있느냐는 질문에도 “노사협의회는 어떻게 구성되는 건가요?”라고 되묻는 식이죠.

취업규칙이 일방적으로 변경되고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노동법 얘기하기 전에 취업규칙부터 알려야 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취업규칙 바로알기’ 캠페인도 진행했죠.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사측에서 만든 것조차도 현장에 게시되지 않는다는 게… 나의 노동조건을 무엇이 규정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거잖아요. 우선 이런 것들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원남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라면 이주노동자가 굉장히 많다는 거예요. 작은사업장 권리찾기를 우리가 외치는 가운데서도, 그 사업장에는 이미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가 다양한 형태로 얽혀있어 분리되지 않는 게 현실이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는 이주노동자를 조직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어요. 공단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하면서 그들을 조직하고자 하는 우리의 실태도 드러난 거죠. 고민이 많아졌어요.

 

 

동원의 ‘대상’이 아닌 해방의 ‘주체’로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사업이 조직 확대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불안정노동 철폐’라는 운동 목표와 만나기 위해서는 많은 숙의가 필요하죠. 민주노조 운동이 대공장-정규직 중심의 운동이다! 세간의 평가는 대체로 그렇잖아요?

그러면 이걸 극복하는 방식은 무얼까. 제가 애초 접근하는 방식은 이런 거였어요. 우선,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지만 선뜻 나설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적극 조직해 이들이 조직노동자운동에서 일정하게 다수 지위를 점유하게 된다면, 아마도 운동의 체질이나 성격도 변화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면 그간 정규직 중심의 운동 패턴도 주체 내부로부터 실천적인 문제제기를 받으면서 조직적 혁신도 도모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점에서 노동조합의 조직 확대가 중요하다고 여겼고요.

두 번째는, ‘노조 할 권리’라는 것,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자기 권리를 찾는다는 건 사실 법적 수준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잖아요.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어찌됐건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게 매우 큰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노조 할 권리의 확대는 오히려 조합주의의 틀에 갇히지 않고 노동자운동의 질적 전환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랬던 거죠.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 부딪혀보니 새로운 문제들이 드러나더라고요. 예컨대 “노조 할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니까 당신들은 얼마든지 노동조합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이 현실에서는 노조 활동을 법 안으로만 묶어두는 것 같은 거예요. 법이 보장하면, 정부 정책이 나오면 그에 따른 요구와 조직화가 이뤄지는 거죠. 바꿔 말하면 노동자들이 스스로 현실을 바꾸기 위한 절박한 요구와 그에 기초한 투쟁으로 노조가 만들어지지 못한다는 거예요. 노조를 만들어도 투쟁이 없는 경우가 너무 많죠.

그래서 대개 “정부 정책을 지켜라”, “지침대로 이행하라”, “약속을 지켜라” 같은 요구로 수렴될 뿐, 뭔가 “난 이걸 바꾸고 싶어”, “이렇게 싸우자”로 나아가지는 않더라는 거예요. 이런 경험들 속에서 제가 느낀 바는 ‘주체화’의 필요성이었어요. 그들이 스스로 말하게 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싸움을 결정하고, 이런 운동의 역동성이 지역의 활력으로 작용하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 운동은 비정규직 문제를 시혜적이고 대상화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여전히 지배적인 것 같아요. 최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투쟁에서도 이런 경향들이 두드러져 보였거든요. 정부의 태도는 말할 것도 없고요. 조직노동자운동도 문제의식은 있지만 잘 바뀌지 않고 있어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을 전개하면서 운동의 주체로 서기보다는, 산별노조 간부대오에 이끌려가거나 그들의 안내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더라고요.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해방의 주체로 서 나가는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난 10년 동안 잊을 수 없는 기억

 

2017년 7월이었어요. 이때 충북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었는데, 어느 도로보수원 비정규직 노동자가 수해 복구 작업을 하던 중에 숨졌어요. 당시 기억을 떠올려보면, 4.16세월호 참사 때 사망한 기간제교사 순직 인정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기간제교사 순직 인정을 요구하는 싸움은 생각했지만, 그렇게 수없이 죽어나가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정작 뭘 해왔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식을 접하면서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는 사망한 도로보수원 비정규직 노동자의 순직 인정을 촉구하는 거리캠페인을 두 달가량 매일매일 진행했어요. 그때 제가 그때 목청껏 외쳤던 게 “죽음마저 차별하는 사회에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라는 말이었어요. 다행히 많은 시민들이 운동본부 활동가들의 호소를 귀담아들어주었고 서명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셨고요. 최저임금 1만 원 서명운동도 그 정도로 호응이 크진 않았는데, 도로보수원 비정규직 노동자 순직 인정 촉구 서명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1만 명 가까운 숫자를 모아냈어요.

당시 돌아가셨던 분이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다들 개의치 않고 열심히 활동했어요. 그 덕분인지 결과적으로 순직 인정이 됐죠. 2018년 9월 ‘공무원 재해보상법’이 시행되면서 제도적인 변화도 수반했고요.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당시 사건을 통해 차별의 실체를 목격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일상은 뜨겁게, 투쟁은 냉철하게

 

제가 활동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한마디로 ‘정확히’ 목소리 내는 거예요. 이를테면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족들이 너무 가슴 아파합니다”, “동료들이 힘겨워합니다”라는 말들이 투쟁 요구를 압도해 버리는 걸 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물론 당연히 필요하죠. 그리고 그 속에서 끓어오르는 공분도 느끼죠.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공감은 일상의 관계 속에서 과장이나 꾸밈없이 담담하게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동지애랄까 우의랄까…. 일상에서 그런 것들을 다져나간다면, 다수의 절박한 목소리에 수사를 몇 겹씩 얹을 필요는 없어 보이거든요. 투쟁을 할 때는 본질에 다가서기 위한 노력들이 좀 더 부각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제가 타고난 것 자체가 워낙 냉혈한이기도 하고(웃음), 그래서 저는 문제를 드러내는, 정확하게 목소리 내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매번 그게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요.

 

 

벽에 부딪히곤 하지만 결국 돌파구를 찾는다

 

활동하면서 이따금씩 소진된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제 경우엔 주로 관계 중심의 운동에서 민낯을 볼 때가 특히 그랬어요. 평소에 참 좋은 관계이고 운동적으로 같은 길을 걷는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정치적․운동적 관계로 보면 아무것도 아닐 때가 있었어요. 그때 좌절감이 깊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똑같은 일을 계속할 때? 어떤 활동 속에서 축적한 내용이 기대만큼 넓어지거나 깊어지지 않고 계속 제자리를 맴돈다고 느껴질 때도 마찬가지로 에너지가 소진되는 기분이죠.

그럴 때마다 대응하는 방식은 조금씩 달랐어요. 어떨 땐 주저앉아 버릴 때도 있고요, 혼자서 전전긍긍하며 해답을 찾아보려고도 해요. 또, 슬픈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쌓였던 감정을 발산할 때도 있어요. 기존에는 관심 갖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을 공부하기도 하고요.

 

 

철폐연대와의 만남, 그리고…

 

제가 철폐연대 동지들을 처음 만났던 게 ‘파견철폐공대위’ 활동을 통해서였어요. 저와 같은 정치단체 활동을 했던 동지들이 파견철폐공대위에 함께하고 있었고, 그 뒤 철폐연대가 만들어졌거든요. 어떤 인연이랄 것도 없이 매우 자연스럽게 동지들을 만나게 된 거죠. 그러고 나선 철폐연대 동지들과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제가 KTX 승무노동자들의 투쟁을 처음부터 3년간 연대했던 기억이 나거든요. 그때 철폐연대 동지들이 2006년 이 투쟁의 시작에서 2019년까지 함께하는 걸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기나긴 투쟁인데 그 시작에서 끝까지 놓지 않고 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비정규직 운동이 벌써 20년이 됐다죠? 먼저, 이 운동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고 계신 동지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저는 지역에서 비정규운동을 시작한 지 5년 정도밖에 안됐어요. 그런데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그들 스스로 자기 삶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스스로 의사 결정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게 저 같은 사람들이 해야 할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의 20년은 불안정노동자들이 스스로 싸움을 기획하고 결정하고, 나아가 민주노조운동 혁신의 주체로 우뚝 서 나가는 운동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런 고민을 함께 나누어주시길 <질라라비> 독자 여러분께도 당부하고 싶네요.

 

 

 

※ <질라라비> 200호 발간 기념행사에 함께해주세요.

 

- 2020년 4월 24일(금) 오후 6시 30분 /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강당(지하)

- 후원계좌 : 하나은행(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824-910011-23204

<질라라비>가 200호를 넘어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과 비정규직 철폐운동에 함께하는 동지들의 참여와 후원을 요청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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