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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우리가 가진 단결의 힘을 믿고 나아갑시다!

차헌호 금속노조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

 

 

휴대전화와 TV 액정용 유리 기판을 만드는 일본계 기업 아사히글라스는 지난 2015년 5월 구미공장의 사내하청업체 (주)지티에스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자, 한 달 뒤 지티에스에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리고 지티에스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178명은 6월 30일 문자 한 통으로 집단해고되었다. 경북 구미공단 최초의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그 탄생부터 비정규직의 설움과 분노를 안고 그렇게 첫걸음을 뗐다.

급여는 9년 동안 최저임금 수준을 맴돌았고, 3교대와 주야 맞교대를 번갈아가며 쉴 새 없이 연일 라인에 매달려야 했다. 점심시간은 고작 20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육체와 정신을 온전히 컨베이어벨트 속도에 맞춰 살라는 자본에 맞서,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결사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조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싸움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은 포기하지 않고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자본의 탐욕을 비호하는 고용노동부와 검찰‧법원을 마주보며, 차별을 고착화하는 법제도와 사회구조를 바꾸는 싸움에도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공동소집권자이자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인 차헌호 동지를 3월 12일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에서 만났다.

 

인터뷰 및 정리: 임용현 (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10 차헌호.jpg

 

 

끝내 이기리라는 마음으로

 

얼마 전까지 저희 아사히비정규직지회 현안은 잠시 뒤로 물려둔 채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동지들의 투쟁에 집중 연대해왔어요. 그 싸움을 일단락 짓고, 지금은 다시 저희 사업장 현안 대응을 하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저희가 2015년에 노조를 만들고 나서 한 달 만에 문자 한 통으로 해고가 됐잖아요. 그해 7월 21일에 저희가 고용노동부 구미지청에 회사를 부당노동행위․불법파견 혐의로 고소를 했죠. 그런데, 고용노동부 구미지청은 2년여의 시일이 흐르고 나서야 아사히 불법파견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죠. 검찰의 행태는 더 가관이었어요. 2년 내내 제대로 된 수사 한 번 안 하다가 무혐의 처분을 내렸어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어서 저희가 대구검찰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며 매일 항의를 했어요. 그러더니 작년 2월에야 파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단 말이죠. 해고자들은 공장 바깥으로 밀려나서 거리 생활을 벌써 6년째 하고 있는데, 검찰이 그제서야 좀 움직이는 모양새를 보이는 거죠.

어쨌든, 법원과 검찰도 이제는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하거든요. 관련해서 민‧형사상 소송이 지금 진행되고 있어요. 하나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 2심이 있고, 아사히 사측이 불법파견으로 기소된 형사재판도 진행 중입니다.

그다음에, 아사히글라스 자본이 저희한테 손해배상 청구한 사건이 하나 더 있어요.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구미공장 입구 도로에 래커로 ‘복직’ 등 글자를 썼던 걸 문제 삼은 거죠. 저희한테 5천 2백만 원 손배 청구해놓은 상황이라 그것도 대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변화의 속도는 많이 더디지만, 저희가 물러서지 않고 계속 투쟁한 결과물들이 하나하나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옳다’는 긍지와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을 보여준 톨게이트 노동자들

 

작년 뜨거웠던 여름부터 올겨울 내내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동지들의 투쟁에 저희 아사히비정규직지회도 온힘을 다해 함께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동지들 앞에서 이런 얘길 항상 했던 기억이 있어요. 톨게이트 투쟁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얼마나 허약하고 기만적인 것이었는지, 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이 얼마나 뿌리 깊은 차별에 고통 받고 있었는지 분명히 보여줬다고요.

이 동지들이 결단이 필요한 국면마다 단 한시도 주저하지 않고 싸움에 나서는 걸 보면서, 정말 투쟁은 톨게이트 동지들처럼 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요새 갈수록 사법부 판단에 기대거나 정치권의 힘을 빌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주류적인 투쟁 방식처럼 가고 있잖아요. 톨게이트 투쟁은 이런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으로 여러 난관을 헤쳐나갔던 것 같아요.

수십 년 동안 현장에서 무시받고 착취당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회사를 거부하고 집단적으로 투쟁을 펼친 거죠. 이 과정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이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에서 300명이 로비 점거 투쟁을 벌였을 때였어요. 당시 경찰들이 대오 해산명령을 내리고 연행을 시도했었는데, 톨게이트 동지들은 상의 탈의로 맞서면서 점거농성을 끝까지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어요. 평균연령 50대 이상의 동지들이 공권력의 날선 진압 작전에 전혀 움츠러들지 않고 온몸을 던져 저항했어요. 결국 이 동지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강제연행도 막아낸 거죠. 그 순간 대오 전체가 어깨동무하며 노래를 불렀었는데, 그때 다 같이 울었어요. 공동운명체로 똘똘 뭉친 동지들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죠.

노동자들이 자신을 걸고 투쟁에 나섰기 때문에, 이 투쟁은 일개 공기업에 맞선 싸움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가짜 정규직화에 맞선 전체 민주노조운동, 1,1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봐요. 물론, 톨게이트 동지들만의 힘으로는 ‘무늬만 정규직’에 불과한 자회사 정책 폐기로 전진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자명했죠.

그래서 이 싸움을 우리 모두의 힘으로 엄호하고 지지하지 못한 것은 굉장히 아쉬운 부분입니다. 어쨌든, 이 동지들이 갖고 있는 힘을 최대한 발휘해서 투쟁을 펼친 것만은 명백했어요. 또 민주노총, 한국노총 상관없이 우리 투쟁이 옳다는 긍지,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단호하게 싸우는 모습도 마지막까지 정말 감동적이었고요.

 

 

공동투쟁의 가능성을 확인하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단위사업장의 현안만이 아니라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과제를 내걸고 지난 1년 5개월여 간 공동의 투쟁을 조직해왔습니다.

저는 이 시간들이 공동투쟁에 대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이 산별조직이지만, 기업과 업종의 구분을 넘어서는 계급적 현장 실천은 여전히 부족하죠. 우리 의식도 산별노조 본연의 정신과는 아직도 거리가 멀어 보이고요. 그래서 단위사업장이나 업종, 직종을 넘어서 하나의 공동투쟁이 가능할까, 처음에는 우려도 많았어요.

다행히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에 함께하는 단위들이 서로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공동투쟁의 전망을 세워나가려 노력하고 있어요. 특히나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특수고용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정치사회단체들까지 ‘비정규직 철폐’라는 기치 아래 함께 싸운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큰 일이라고 생각해요.

또, 각급 단위에 여러 회의 구조들이 존재하지만, 어느 회의 자리보다 진지한 의견들을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동지들과 나눌 수 있어서 저 역시도 많이 배우고 느끼는 시간들을 보낸 것 같습니다.

 

더 많은 비정규직 단위를 조직하는 활동이 필요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1,1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진정으로 희망이 되고, 명실상부한 비정규직 당사자의 대표체로서 자리매김하려면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죠.

저는 무엇보다 비정규직 단위들이 더 큰 자신감과 굳은 의지로 공동투쟁을 확대․강화하겠다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가 정권과 자본에 가장 두려운 존재다”라는 확신을 갖고 이후 싸움을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이건 하나의 투쟁만 반짝 잘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겠죠.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끈기 있게 현장을 조직하고, 더 많은 비정규직 단위들이 공동투쟁에 함께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를 확장하는 노력도 동시에 필요하다고 봅니다.

 

 

비정규직에 더 가혹한 코로나19

 

최근 대구경북지역이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죠. 그 어느 때보다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하기가 사실 힘든 여건이에요.

당장 뭘 해야 할까요? 저들은 코로나를 기회로 노동개악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고 봐요. 민주노총이 전 국민에게 재난생계소득 100만 원을 보장하라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하더라고요. 특수고용직과 기간제, 영세자영업자 등 모두 정부가 실질적으로 책임져야 합니다. 물론 지금도 이런 이야기들이 산발적으로 나오곤 있지만, 당장의 생계문제 해결을 넘어 그 이상으로 공세적으로 제기하고 싸워야 한다고 봐요.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요.

 

 

민주노조답게 토론하고 실천하자!

 

투쟁을 해나가다 보니까 자꾸 뭐가 생겨요. 예전에는 몰랐던 게 하나하나 보이기도 하고요. 일단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고, 과정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더라고요. 그럼, 그 과정을 어떻게 만들 거냐. 이 부분에서 제가 얻은 해답은 일단 조합원 동지들과 전체 상황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떤 사안이나 정보를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투쟁에서 그것이 미치는 영향이나 효과라든지, 내용적인 부분이 너무 거창하거나 추상화되지 않고 명료해질 수 있게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더라고요. 그래야 조합원들이 투쟁에 온전히 함께할 수 있고, 이후 그 경험들이 증발되지 않고 축적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는 ‘연대’예요. 흔히들 연대가 중요하다고는 얘기하는데, 특히나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연대의 경험 속에서 많이 각성했고 책임감도 커진 것 같아요. 연대를 통해서 노동조합의 운영도 민주적이고 수평적으로 바뀌었어요. 일례로 어느 투쟁사업장에 연대를 가게 되더라도, 저희가 어떻게 연대할 것인지, 조합원들과 수많은 토론을 했어요. 단순히 투쟁사업장에 한 번 다녀오는 게 아니라, 투쟁 당사자들과 간담회도 갖고 투쟁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필요해요. 농성장이 있는 투쟁사업장에서는 최소한 1박 농성에 함께해서, 그 동지들이 투쟁하는 일상 속에서 겪는 고충이나 아픔에 대해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려고 노력도 하죠.

이렇게 되니까 조합원들도 더 이상 관성적인 방식으로 연대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함께 투쟁하고 함께 승리하자’는 계급적 원칙에 더욱 충실하려고, 앞으로도 더 적극적으로 실천해나가려고 합니다.

 

 

철폐연대 동지들에게 전하는 말

 

아사히 비정규직 투쟁 이야기를 담은 <들꽃, 공단에 피다>라는 책을 철폐연대 활동가 동지들이 애써주신 덕분에 완성할 수 있었어요. 동지들과 이 책을 만드는 작업을 함께했던 게 저희에게도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아요.

철폐연대처럼 비정규직 문제를 중심에 놓고 오랫동안 활동하는 단체들이 흔치 않잖아요. 비정규직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관점에서 정부 정책이나 법․제도를 연구하고, 또 이것을 바꿔나가기 위해 현장 동지들과 실천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앞으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더욱 많은 고민과 토론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어요.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 보다 깊은 고민, 더 다양한 목소리가 철폐연대 동지들의 활동을 통해서 구석구석까지 잘 전달됐으면 합니다.

 

 

 

※ <질라라비> 200호 발간 기념행사에 함께해주세요.

 

- 2020년 4월 24일(금) 오후 6시 30분 /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강당(지하)

- 후원계좌 : 하나은행(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824-910011-23204

<질라라비>가 200호를 넘어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과 비정규직 철폐운동에 함께하는 동지들의 참여와 후원을 요청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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