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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 오늘, 우리의 투쟁

 

김용균법 있어도 여전한 위험의 외주화, 삼표시멘트 하청노동자 사망사고

 

김진영 • 민주노총강원지역본부 동해삼척지부 지부장

 

 

 

 

2020년 5월13일 강원도 삼척에 위치한 삼표시멘트 공장(구 동양시멘트)에서 현장노동자가 사망했다. 설비 보수를 위해 멈춰있던 계량벨트 스크래퍼(벨트 컨베이어와 유사한 설비) 내부에 끼인 이물질을 제거하던 중 불시에 가동된 벨트에 머리와 목이 끼어 사망했다. 혼자 일했다. 하청 노동자였다. 사망한 지 두 시간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사망사고 이틀 만에 동일설비 재가동 승인한 고용노동부

 

삼표지부는 현장에 나온 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사고가 발생한 6호기와 같은 설비인 7호기의 작업중지 명령을 요구하여 7호기를 멈췄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은 이틀도 안 되서 7호기에 대한 작업중지명령을 해제했다. 사고원인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민주노총강원지역본부와 삼표지부의 강력한 문제제기에 태백지청장은 “동일 설비에서 같은 사고가 일어난다면 직을 내려놓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며 삼표 자본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대변했다. “2019년 8월에 이어 두 번째 산재사망사고이니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라”는 노동조합의 요구에도 “1년 안에 3명이 죽어야 가능”하다는 게 고용노동부 태백지청, 강원지청의 입장이었다. 결국, 태백지청이 실시한 상시근로감독은 가동중지명령이 내려진 설비의 조속한 재가동을 위한 형식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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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표시멘트 중대재해 사망사고 책임자 처벌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 촉구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의 투쟁 결의 모습. [출처: 민주노총강원지역본부 삼표지부]

 

같은 시간, 삼표시멘트공장 인근, 도보로 20분 거리에 유가족이 있었다. 사고 당일 삼표지부는 삼척의료원 장례식장에 조문을 갔다. 삼표시멘트 하청업체 관계자들만 눈에 띄었다. 유가족은 진정성 없는 이들을 돌려보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했고 이대로는 억울해서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했다. 게다가, 사망한 노동자의 형님 역시 1988년도에 삼표시멘트 공장에서 산재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우리는 매일 빈소에 찾아갔고,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동지의 어머니 김미숙 동지와 김용균재단 사무처장 권미정 동지도 삼척까지 내려와 유가족을 위로하며 진심어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다. 삼표시멘트 원청이 책임지기를,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현장을 안전하게 만들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원청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고, 5월19일 삼표시멘트는 대표이사 명의로 애도문을 냈다.

“애도를 표하며 신속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관계기관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 재발방지 대책을 철저히 수립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겠다”고 하면서도 사과의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그리고 하청업체를 앞세워 유가족과 합의했다. 6월1일 장례절차는 그렇게 마무리 됐다.

 

형식적인 현장근로감독이 끝나고, 혼자 일하다 사망한 하청노동자의 장례절차를 마치고 난 뒤, 시멘트 공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뜨거운 열기 속에서 분진과 굉음을 내며 돌아갔다.

그러나 우리는 5월13일 이후 삼척 시내에서 매주 수요일 진행하는 ‘삼표시멘트 중대재해 사망사고 책임자 처벌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 촉구 촛불문화제’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매일 아침 삼표시멘트 정문에서도 선전전을 멈추지 않았다.

“2인1조 시행하라!”

“죽음의 외주화를 중단하라!”

“끊임없는 산재사고 삼표가 책임져라!”

 

삼표시멘트는 묵묵부답이었다….

 

1년 새 세 명의 하청노동자가 죽었다

 

그렇게 두 달이 조금 지난 7월31일, 삼표시멘트 공장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설비가 멈추면 보수작업을 하라는 업무지시를 받은 하청노동자는 컨베이어벨트가 멈춘 뒤 벨트 위에서 용접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벨트가 불시에 재가동하면서 원료 호퍼(원료저장시설) 7미터 아래로 추락, 사망했다. 내부온도(원료온도)가 100~150도 가량 되는 호퍼로 순식간에 벨트를 타고 딸려 들어간 것이다. 같이 작업을 나온 노동자가 한 명 더 있었지만 사고를 막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현장은 즉시 폐쇄되었고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의 특별근로감독이 진행되었다. 그들이 얘기했던 조건대로 1년 안에 3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한 것이다.

 

5월13일 산재사망 사고 이후 삼표시멘트와 고용노동부는 명확한 사고원인을 규명하지 않았고 재발방지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3개월도 안 돼서 똑같은 사고가 일어난 것이 그 명백한 증거였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명확한 사고원인을 듣지 못했다. 물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도 없었다. 그 당시 진행한 상시근로감독은 조속한 설비 재가동을 위한 것으로 형식적인 수순에 불과했다. 공장 내부를 청소하고 위험해 보이는 곳은 출입을 막고 곳곳에 주의하라는 경고 문구를 덕지덕지 갖다 붙이는 정도가 예방 대책의 대부분이었다. 안전교육에서는 사람의 실수가 원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원청 사업주의 책임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고용노동부 태백지청 또한 제 역할을 포기했다. 특별근로감독이 진행 중인 현재도 지난 5월과 다를 바가 없다. 주의, 경고 문구만 더 늘어났고 공장 출입 통제가 강화되었을 뿐이다. 수백 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이 적발되어 수억 원의 과태료를 납부하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이 같은 죽음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과태료 몇 푼으로 죗값을 대신할 수도 없을 것이다.

 

외주화가 죽음의 원인

 

연이은 사망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고용형태에 따른 현장업무 시스템의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원청 근무자는 실시간으로 무전을 통해 중앙제어실과 현장 상황을 공유하고 업무지시를 하고 소통한다. 멈춰있는 설비를 가동할 때는 현장 근무자를 찾는다. 대답할 때까지, 확인될 때까지 찾는다. 원청이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청근무자는 무전기가 없다. 같은 현장에서 원,하청 할 것 없이 모여서 일하고 있는데 서로 소속이 달라 소통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업무를 지시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누군가는 멈춰있는 설비를 보수하기 위해 접근하고 그 상황을 모르는 누군가는 그 설비를 가동시킨다. 그래서 또 죽는다. 외주화에서 비롯된 문제인 것이다. 불법파견 시비에 휘말릴까봐 무전기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라면 최소한 작업현장에 안전관리자라도 배치했어야 했다.

당장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서는 사람의 목숨을 비용으로 간주하며 이윤에만 혈안이 돼 있는 원청 사업주에 대해 모든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중대재해, 산재사망에 따른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면, 나아가 원청 사업주가 강력하게 처벌된다면 안전을 위해 실질적인 조치를 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실질적인 조치는 외주화를 없앴을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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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삼표시멘트 정문 앞에서는 중대재해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선전전이 이어지고 있다. [출처: 민주노총강원지역본부 삼표지부]

 

2020년 5월과 7월, 삼표시멘트 공장에서 사망한 하청노동자의 죽음은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김군과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고 김용균 동지의 죽음과 닮아있다. 고 김용균 동지의 죽음이 불씨가 되어 투쟁으로 만들어낸 ‘김용균법’이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그때와 다름없는 죽음의 행렬이 이어진다. 살기 위해 들어왔다가 죽어서 나간다. 죽음의 원인은 이미 밝혀졌다. 죽음의 외주화를 멈추고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생명을 지키는 위한 첫 걸음일 것이다.

 

산재는 살인이다! 돈보다 목숨이다! 살인기업 처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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