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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투쟁/입장

민주노총에서 힘겹게 기획하고 오랜시간 동안 투쟁하면서 관철시키고자 했던 주5일제가 자본과 정권의 공격으로 누더기가 되고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8월 29일 주5일제가 통과되었다.

민주노총에서 힘겹게 기획하고 오랜시간 동안 투쟁하면서 관철시키고자 했던 주5일제가 자본과 정권의 공격으로 누더기가 되고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이것은 '법'의 허울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이 힘에서 밀리는 순간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근골격계 직업병을 비롯한 각종 산재와 과로사에 시달리면서 세계 최장시간을 일하는 한국 노동자들에게는 이제 휴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왜 노동자들은 ILO의 통계로도 2500시간이 넘는 세계 최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었는가? 기본급만으로는 전혀 살아갈 수 없는 저임금이기에 잔업과 특근을 더해 초과근로수당과 연월차휴가수당 등으로 부족분을 충당하느라 이렇게 일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주5일제는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이며, 이제는 정상적으로 일하고도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통과된 법안에 따르면 주5일제가 되었으니 휴일수도 줄이고, 연월차수당을 폐지하고, 잔업수당의할증률도 일부 25%로 인하한다. 또 초과노동한도를 기존 12시간에서 16시간으로 확대하고, 변형근로제도 3개월로 강화하였다. 보상휴가제도의 도입으로 연장, 야간, 휴일근로를 하고도 임금을 못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은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받는 처지가 된 셈이다.
이것은 단지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여성노동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대기업 정규직은 투쟁을 통해 단협에 임금이나 근로조건의 저하 없는 주5일제를 쟁취하기 때문에 그래도 낫다고는 하지만,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다시 초과노동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 초과노동이 그나마 임금보전의 효과마저도 적어졌으니 노동자들은 초과노동에 또 초과노동을 해야 할 판이다.
이제 이것은 대다수 노동자들의 문제인 것이다. 생리휴가 무급화로 휴일이 더 줄어든 여성노동자들, 변형근로시간제에 의해 자기의 시간 주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비정규노동자들, 휴일에 쉬는 것을 엄두도 못낼것이며 그마나 잔업수당마저 줄어든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더욱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위해 투쟁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미 개악된 상황에 직면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당연히 투쟁해서 단협에 더 좋은 조건을 맺도록 해야 하고, 제대로 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다시 투쟁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법개정 투쟁'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노동시간 단축'의 실질적인 의미를 갖고 투쟁하기보다는 그것의 구체 실현태라는 '주5일제'라는 부분으로 집중하면서 실질적인 왜곡의 길을 터놓았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초기에 경총이나 전경련이 지독하게 반대할 때 우리는 이 요구야말로 노동자들의 요구라는 것을 확신했다. 경총이나 전경련이 개악안을 내놓았을 때 단지 주5일제를 막기 위한 맞불작전에 불과하다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켰고 주5일제를 실질적으로 무력화시켰다.
이것은 이미 우리가 경험한 일이자 앞으로 경험하게 될 일이기도 하다. 모성보호를 위해 여성단체에서 끊임없이 출산휴가 연장이나 수당지급 등을 놓고 투쟁해왔는데, 그 성과가 나타나려고 하자, 여성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서 사실상 적용제외대상을 확대하고, 대신 여성의 갱내근로나 야간근로 등을 허용하도록 만들어서 사실상 모성보호를 무력화하려고 한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을 열심히 하자, 마치 그것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오히려 특수고용의 '유사근로자화', 파견법의 확대 등 개악을 시도한다. 그들은 이제 노동자들의 노동권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를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적절한 수준의 타협은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후퇴시킨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타협이 아니라, 우리의 요구와 내용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힘이 부족하다. 총파업을 아무리 선언해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부터 무력해지고 실리주의가 가득한 운동풍토에서는 약간의 떡고물이 주어지면, 그리고 조직노동자들의 입장에서 그것이 자신에게 엄청난 해를 끼치는 사안이 아니라면 별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는 비정규직이나 여성노동자들도 투쟁의 힘이 없고 무기력해서 그냥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풍토를 만드는 것'이 지금 시기에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요구가 훌륭해도 그것이 정권과 자본에 의해, 그리고 우리 힘의 부족에 의해 왜곡될 때는, 그리고 그것이 노동자들을 분할하고 위계를 더욱 강화한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떡고물을 차버리는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이 없을수록 작은 성과에 연연하게 된다. 그러나 주5일제에 대한 논의가 왜곡되기 시작했을 때 이미 협상에 의존하지 않고 투쟁을 준비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뭔가 나올 것이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지 않고, 그것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를 폭로하는 데에 주력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민주노조운동은 이제 와서야 적절한 타협보다는 투쟁을 선택했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 통과된 주5일제가 결국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개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중간에 다시 그 기조가 흔들린다. 제발 부탁드리건대, 이후 '단협을 통해 개악을 무력화하겠다'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이번 주5일제로 인해 가장 고통받게 될 비정규직이나 여성노동자들, 특히 노동조합조차 만들기 어려운 이들에 대한 또 한번의 상처를 입히는 것이 된다. 그것이 투쟁방향이 되는 순간 지금의 주5일제는 하나의 최저기준으로 작동하게 되며, 민주노조운동이 그렇게 이야기해왔던 비정규직·영세사업장·여성노동자들은 고스란히 그 최저기준을 떠안게 될 것이다. '단협으로 쟁취할 힘'이 있다면, 그것을 주5일제를 재개정하기 위한 투쟁으로 모아야 한다. 그렇게 모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의 투쟁방향은 이번에 통과된 주5일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비록 이후 투쟁을 만드는데 힘이 부족하더라도, 쓰러져도 가겠다는 결의로 투쟁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결과 투쟁의 힘은 더 약해질 것이다. 물론 이것이 실리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는 원칙만을 앞세워서 실리를 저버린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도 자본은 우리의 요구에 대해 노동자들을 분할하고 실리주의를 강화시키며, 그것을 개악의 도구로 활용할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투쟁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투쟁과 단결의 힘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투쟁을 기획해야 하며, 당장의 성과, 또는 일부의 성과에 연연해서 더 큰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가 투쟁하는 목표는 바로 '노동자 전체의 노동권 쟁취'이며 그것은 전체 노동자 총단결의 기치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주5일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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