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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 원인과 대책

 

이희종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국장

 

 

 

 

1. 연이은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이하 ‘과로사대책위’)는 물량이 급증하는 추석 전후 택배노동자들 과로사가 속출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래서 당장 분류작업에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안타깝게도 대책위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추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 8일, CJ대한통운에서 일하던 고 김원중 노동자가 배송 중 가슴 통증으로 병원에 후송된 후 사망한 사건을 시작으로, 12일에는 쿠팡 칠곡 물류센터 노동자가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에서, 같은 날 새벽 4시 넘어서까지 물량을 처리하던 한진택배 기사가, 20일 CJ대한통운과 로젠택배에서, 22일에는 건영정기화물에서, 27일에는 한진택배에서 연이어 사망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게 벌써 15번째 죽음이다. 우리 스스로 두려웠다. 이 노동자들의 죽음을 어떻게 감당할까 두려움과 책임의 시간이었다.

 

 

2. 택배 현장의 노동 현실

[택배노동자에게 강요되는 공짜노동, 분류작업]

 

택배노동자는 아침 7시면 출근을 한다. 택배를 실은 차들이 터미널에 들어오면 일이 시작된다. 고객들의 수많은 물건이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흘러가면 택배노동자들은 그 물건 중에서 자기 배송지역 물건을 골라내서 차량에 싣는 이른바 ‘분류작업’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택배산업 초기만 해도 전체 물량이 적어서 분류작업 시간은 한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택배량은 지속해서 늘었고, 코로나19로 올해만 30% 급증했다. 요즘은 아침 7시에 시작된 분류작업이 오후까지 계속되고, 물량이 많은 날에는 오후 3시가 다 되어서야 끝나기도 한다.

택배사는 분류작업은 물건을 인수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택배노동자의 업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택배노동자들이 물건을 인수해서 차에 차곡차곡 싣는 시간은 한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분류작업은 명확한 ‘공짜노동’이다.

 

[과로사의 원인, 장시간 노동․심야 노동]

 

출근한 지 7시간이 지나고서야 본 업무인 배송이 시작된다. 점심을 제대로 먹을 시간도 없다. 간단한 편의점 음식으로 대신하기 일쑤다. 그렇게 일은 밤늦도록 이어진다.

과로사대책위가 택배노동자 8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긴급설문에 의하면 코로나 이후 택배노동자는 일주일 평균 71.3시간을 일하고, 하루 평균 313.7개의 택배를 배송하고 있었다. 택배노동자들은 점심시간에 12분을 소요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김밥을 차에서 먹는다’(22.2%), ‘주변 식당에서 사 먹는다’(21.9%), ‘도시락’(10%), ‘터미널에서 간단한 컵라면 등’(9.2%),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36.7%)고 대답했다.

코로나 이후 지금까지 거의 10개월 가까이, 하루 12시간 주 6일의 장시간 노동,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야간노동, 점심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노동이 계속되고 있다. 과로사는 우연이 아니라 이런 피로의 축적에서 발생하고 있던 셈이다.

한진택배의 한 노동자는 새벽 4시가 넘어서 집으로 들어가며, ‘저 집에 가면 5시 밥 먹고 씻고 바로 터머널 가면 한숨 못 자고 나와 터미널에서 물건정리 해야 해요……. 저 너무 힘들어요’라는 문자를 남기기도 했다.

 

4 오늘, 우리의 투쟁_1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01.png

“저 너무 힘들어요…” 10월 12일 과로사로 숨진 한진택배 노동자가 지난 10월 8일 새벽 동료에게 남긴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출처: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줄일 수 없는 택배량, 이름만 사장님]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 관련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면 ‘물량을 줄여라’, ‘욕심내지 마라’는 글을 보곤 한다. 하지만 이는 택배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택배노동자들은 대리점과 위탁계약을 체결하는 개인사업자다. 계약은 물량 개수가 아니라 담당 지역으로 체결된다. 내가 맡은 지역의 물건은 오롯이 나의 책임이다.

또한 택배사는 택배의 익일배송을 강제하고 있다. 터미널로 오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오늘 택배는 오늘 안에 모두 배송을 해야 한다. 계약을 어기게 되면, 결국 계약해지를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택배량을 하루하루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8월 14일 택배사들은 처음으로 ‘택배 없는 날’을 시행했다. 이처럼 택배사가 쉬지 않으면 택배노동자도 쉴 수 없다. 몸이 아프거나 집안에 일이 생기면 수십만 원을 들여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해야 한다. 사실 맡길 사람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몸이 아파도 쉴 엄두를 못 낸다. 택배노동자를 개인사업자, 사장님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이름만 사장님’이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갑을관계가 만드는 불법,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

 

대리점과 택배노동자의 갑을관계는 현장에서 여러 편법과 불법을 만들어낸다. 이슈가 된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가 그 예다. 2008년부터 도입된 특수고용 노동자 일부 직종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제도는 2012년 택배노동자에게도 적용되었다. 하지만, 일반 노동자와 달리 산재보험을 사업주와 노동자가 반반씩 나눠 내고,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제도라는 것을 두어 노동자가 원하지 않으면 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대리점장에겐 산재 보험비 50%도 줄이고 싶은 비용이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암암리에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강요하거나,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신청서를 쓰게 하는 사례가 많았다. 갑을관계에 놓인 택배노동자 입장에서는 대리점장이 강요하는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거부하는 것도 웬만한 배짱 없인 안 된다.

이뿐 아니다. 대리점장의 눈 밖에 나면 배송지역이 불리하게 조정되기도 하고 계약해지를 당하기도 했다. 노동조합이 자리 잡기 전에는 택배 현장에서 이런 갑질이 더욱 빈번했다. 아직도 택배기사들에 대한 부당한 페널티 제도를 운용하기도 하고, 상하차비 등의 명목으로 대리점의 비용을 전가하는 경우, 분류작업 인력에 대한 비용을 전가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3. 쏟아지는 대책, 약속은 지켜질까?

[택배사와 정부의 연이은 대책 발표]

 

연이은 택배노동자의 죽음으로 택배노동자의 열악한 처지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고, 이후엔 정부도 택배사도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택배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은 4,000여 명의 분류인력 투입을 약속했다. 롯데도, 한진도 분류작업 인력투입 등 대책을 발표하고, 10시 이후의 심야 배송도 중단하겠다고 했다. 그 외에도 과로사로 돌아가신 유족들과의 협의도 일부 진전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쿠팡은 과로사를 부정하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택배사들의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과로사대책위는 택배사들이 이런 발표라도 내놓는 것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정부도 나섰다. 고용노동부에서는 택배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조사하고, 대리점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토부는 택배산업 발전을 위한 세 번째 대책을 내놓고, 과로사 방지를 위한 범사회적 기구를 구성하겠다고 한다. 정부·여당에서는 올해 안에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의 대응도 늦은 측면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환영할 일이다.

 

[현장은 이제부터]

 

사람이 죽어가고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니 이런저런 대책이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실 문제 해결은 이제부터다. 과로사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우세함에도 아직도 제대로 된 대책이 실행되지 않는 이유는 현장 조직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최근 택배노동자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면서 현장 분위기도 변하고 있다. 택배연대노동조합은 소비자들과 함께 ‘우리집 택배기사 연락처 모으기’ 운동을 전개하고, 현장에서는 노동조합 가입으로 함께 싸울 것을 호소하고 있다. 과로사대책위는 ‘과로사 이행점검단’을 구성해 현장을 조사할 예정이다. 조합 가입 문의가 늘고 있고, 지회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롯데택배는 처음으로 파업을 해서 수수료를 인상하기도 했다. 연말연초에 있을 CJ대한통운과 택배연대노조의 교섭투쟁, 정부와 택배사와 과로사대책위가 함께 할 사회적 합의기구의 구성과 대책이행을 결속 짓는 일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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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7.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올해 사망한 택배노동자들의 영정을 들고 서울 을지로입구에서 추모행진을 벌였다. [출처: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4. 이후 과제

과로사대책위는 코로나 이후 갑작스러운 물량 증가로 긴급하게 대책수립을 요구했다. ‘공짜노동’ 논란이 되는 분류작업과 배송작업을 분리해 택배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택배 현장의 불합리를 100% 바로잡을 방안으로는 부족하다.

 

[적정물량 적정수수료]

 

택배노동자들이 담당 지역을 축소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임금 때문이다. 600원~800원대의 낮은 수수료 때문에 많은 물량을 배송하지 않으면 생활임금을 벌 수 없다. 수수료를 현실화해야 적정한 물량, 적절한 노동시간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코로나 위기로 CJ대한통운은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수수료 현실화 이야기를 해야 한다. 택배사에겐 물류업계의 경쟁, 지속적인 물류시설 현대화 요구도 있다. 그래서 수수료 인상은 결국 택배비 인상 논란으로 번질 수밖에 없어 조심스럽기도 하다.

통합물류협회의 통계자료를 보면 2019년 택배물동량은 국민 1인당 53.8개이고 1년 동안 27억 8천 개가 배송되었다. 2012년에 비하면 2배 가까이 증가한 양이다. 하지만 택배비는 2012년 2,506원에서 2019년 2,269원으로 250원 가까이 줄었다. 우리나라 택배비 단가는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적정물량 적정수수료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

 

택배는 현재 화물운송사업법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화물운송사업법에는 택배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택배산업은 성장하고 있지만, 관련 법은 미비하다. 대리점 관리·감독의 문제, 분류작업의 책임 문제, 택배 요금의 문제 등 현장의 여러 문제들을 법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이 논의되고 있다. 분류작업의 분리 등 노동자의 의견이 100% 반영되지 못했지만, 이 법이 제정되면 원청에 영업점 안전관리 의무를 부여하고, 계약갱신청구권을 6년으로 연장해 택배노동자들의 고용을 안정화하고, 표준계약서를 마련하는 등의 여러 긍정적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인터넷에서 물건을 사다 보면 택배비가 2,500원 정도로 책정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형 온라인 업체들이 그중에서 일부를 포장비 명목으로 가져가고 택배사에게는 1,700원 정도가 주어진다. 그러다 보니 택배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돈도 그만큼 적어진다.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이 제정되면 이런 리베이트 관행도 없어질 것이다.

정부·여당에서는 이 법에 대한 통과 의지를 밝히고 있고, 택배업계와 관련 노조는 일정하게 법안에 합의를 한 상황이다. 하지만 화물업계는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택배노동자들의 노동환경개선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생활물류서비스 발전법이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근본적 해결은 직계약, 직고용]

 

주 52시간이 입법화되었음에도, 택배노동자는 주 71.3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노동법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근본적인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고용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당장에 택배노동자가 원청에 직고용되기 힘들다면, 원청이 대리점을 인수하고 택배노동자가 원청과 직계약 하는 방식을 고민해 볼 수도 있다. 노동조건, 산업안전에 대해 원청이 직접 책임지고 관리하게 하고 노동조합이 원청과 직접 교섭을 하게 되면 현장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대리점 연합회의 반대가 있지만, 대리점의 구조를 그대로 존속하면서 원청에서 인수하는 방식이면 대리점장들의 이해를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희생으로 택배 현장의 불합리함이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되었다. 언론의 관심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불안하기도 하다. 빠르게 현장을 조직해서 노동자의 힘으로 택배노동현장을 바로 세워갔으면 좋겠다. 과로사 없는 택배 현장을 위해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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