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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라라비

‘광주형 일자리’ 고용쇼크의 해결책인가, 노동자에 대한 공격인가

이청우 (노동해방투쟁연대 준비모임 활동가)

 

 

2014년 광주시장에 당선된 윤장현은 박근혜 대선공약이기도 했던 ‘자동차 100만 대 생산기지 광주’를 추진했다. 기아자동차노조 광주지회장도 적극 협력했고, 기아자동차 광주 4공장 유치라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당시 새누리당도 당론으로 채택하고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해 적정임금(4천만 원)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대기업 자동차공장을 유치, 일자리를 만드는 프로젝트”인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시작이었다.

기아자동차 광주 4공장 유치는 실패로 끝났다. 현대차그룹은 “논의나 협의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해외생산 비중을 높이던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당시만 해도 국내에 투자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2018년 5월 31일, 현대자동차가 광주시에 빛그린산업단지 투자의향서를 제출하면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기사회생했다.

 

 

고용쇼크의 해결책?

 

문재인 정부는 “노사상생형 일자리 모델(광주형 일자리 모델) 전국적 확산”을 추진했다. 최근에는 고용관련 지표가 악화되면서 이를 타개할 해결책으로 광주형 일자리를 제시하고 있다.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도 광주형 일자리가 좋은 대안이라며 대구, 구미, 창원, 군산 등에서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전국으로 확산하는데 주력할 거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와 광주시는 광주 빛그린산단에 위탁생산공장을 세우면 1만 2천 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효과를 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자리의 질을 따지기 이전에 새로운 일자리 규모 면에서 보더라도 터무니없이 과장됐다. 실제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1천 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부품사 등 기존 일자리를 더한 숫자일 뿐이다.

6월 4일 현대차 관계자들이 공장부지를 실사하면서 속도를 내는 것 같았고, 6월 13일 새로 광주시장에 당선된 이용섭도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히면서 급진전을 이룰 것처럼 보였다. 광주시가 합작법인 지분의 21%(590억 원)를 투자해서 1대 주주가 되고, 현대차가 19%(531억 원)를 투자한다는 소식도 알려졌다.

그러나 6월 19일로 예정됐던 광주시와 현대차의 투자협약식은 연기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직접 참석해서 힘을 실어주려던 계획도 무산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합작법인 이사회 구성, 경영책임 부담(즉 적자, 경영실패의 부담을 누가 질 거냐)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8월 안에 협약 체결을 마무리하기 위해 현대차와의 단독 협상을 진행하면서 교섭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노동계를 배제했다. 그러자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항의하며 노사민정 참여를 중단했고, 8월 17일 열린 광주시 일자리위원회 출범식에도 불참했다.

 

박명준 전문위원은 “투자를 하겠다고 나선 현대차도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듣자 하니 현대차는 인도에서 생산하는 i10(소형 승용차) 수준의 생산비를 고려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생산원가 측면에서 보면 연봉 4천만 원은 물론 3천만 원도 고임금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광주에서 ‘인도 생산성’을 추구하고 노동조합은 배제한 상태에서 공장을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제2의 동희오토’를 요구한다면 ‘광주형 일자리 투자’라는 이름 대신 대기업의 지역일자리 지원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게 박 전문위원의 생각이다.([인터뷰] “이대로 계속 가면 ‘광주형 일자리’ 아닙니다”, <민중의소리> 8월 19일)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설계한 핵심 인물인 박명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도 인터뷰에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는 느낌… 이대로 계속 가면 우리가 꿈꾸던 ‘광주형 일자리’라고 부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비판했다. 가야할 길이 먼 모양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실체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간단히 말해서 노사민정 합의를 통해 임금을 낮은 수준으로 묶어두고 자본의 투자를 촉진,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원리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적정임금 실현 △적정노동시간 실현 △원·하청 관계 개혁 △노사책임경영 구현 등 4대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인 연봉 4천으로 묶어두고, 광주시가 공동복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소득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한다고 한다. 그러나 광주시와 현대차의 협상 과정에서 3차 협력업체 수준의 3천만 원대의 임금체계를 설계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렇다고 광주시가 지원한다는 주거, 교육, 의료, 기타 공동복지 서비스가 준비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직무‧직능‧성과를 중심으로 하는 임금체계를 설계한다. 결국은 그냥 낮은 임금이다.

적정노동시간은 유연한 인력운용을 목표로 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적용되도록 적극 지원”하고 “물량의 이관 또는 집단적 전환배치도… 신속히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또 협력적 노사상생을 추구한다며 “‘상생노사발전협의회’(이하 ‘상생협의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결정사항의 경우 최소 5년의 시간 동안 그 유효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사관계에 분쟁이 발생해 중재를 요청할 경우 “산단노사중재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제시한 의견은 상생협의회에서의 결정사항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사실상 노동조합을 부정하고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부정하는 것이다(위 내용은 3월 7일 광주광역시 노사민정협의회가 채택한 『빛그린 산단 내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선도적 실현을 위한 노·사·민·정 공동 결의』에 잘 나와 있다.).

이 정도면 자본가들에겐 꿈의 공장이다. 현대차가 4년 만에 다시 광주형 일자리에 투자할 의욕이 생긴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2 [출처 광주광역시 공식블로그].jpg[출처: 광주광역시 공식블로그]

 

 

동희오토와 비교되는 광주형 일자리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실체가 이렇다 보니 시작부터 제2의 동희오토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동희오토는 2001년에 설립돼 2004년 충남 서산에서 기아자동차 모닝을 위탁생산하기 시작했다. 현대차 자본은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이후에 경차를 정규직이 생산하면 적자라며 “당신들은 건들지 않을 테니 외주 위탁생산공장을 짓는 데 합의하라”고 종용했고, 기아차노조는 동희오토 설립에 합의했다. 동희오토는 그렇게 “노조 없고, 파업 없고, 정규직 없는 3無 공장”을 목표로 전략적으로 설립됐다. 국내 자동차산업 최초의 완전 위탁생산공장의 탄생이었다.

동희오토의 생산직 노동자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매년 최저임금이 이곳 임금의 기준이 됐다. 잔업에 특근, 야간까지 풀로 일해도 연봉 4천을 넘지 못한다. 2017년에는 최저임금 인상폭이 커지면서 상여금 600% 중에서 300%를 기본급에 녹였다. 그것도 연장, 휴일, 야간수당이 늘어날 것까지 대비해서 임금총액은 그대로 유지하도록 계산됐다.

현대‧기아차가 2013년 3월 4일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실시해서 밤샘노동, 심야노동을 없앤 반면, 동희오토는 얼마 전까지도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운영돼 왔다. 그나마 경차시장이 전반적으로 축소되면서 일감이 줄자 2018년 8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실시하고 있다. 물론 임금삭감에 대한 보전은 미미할 뿐이다. 풀잔업, 풀특근으로 근속 10년차가 4천을 받던 시절은 이제 다시 오지 않게 되면서 퇴직하는 노동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컨베이어라인 편성률은 평균 90% 수준이고, 옵션에 따라서 97%까지 치솟는다. 여유인원도 부족하다. 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공단은 2013년 야간조 근무 중식시간에 식당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노동자에 대해 산재를 인정했다. 이를 통해 동희오토의 ‘살인적인’ 노동강도라는 말이 단지 말뿐이 아님이 입증됐다.

동희오토의 임금, 노동조건이 이와 같이 열악한 상태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어용노조가 회사와 손발을 맞춰 왔기 때문이다. ‘노조 없는 공장’을 목표로 한 동희오토에 노조라고? 그렇다.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5년 열악한 임금,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민주노조를 세웠다. 현대‧기아차 자본은 업체폐업, 계약해지, 징계해고, 협박, 강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민주노조를 탄압했다. 만일을 대비해 준비해 놨던 유령노조를 오픈시켜 강제로 노동자들을 가입시키고, 이 어용노조를 통해 노동자들을 통제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아직 대체로 성공하고 있다.

 

 

“동희오토와는 다르다” … 과연 그런가?

 

광주시 또한 동희오토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두 가지 점에서 동희오토와 다르다고 차이점을 밝혀야만 했다. 하나는 광주시가 1대 주주로 투자에 참여한다는 것, 또 하나는 노동자들의 경영참가를 보장한다는 것.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처럼 어쨌든 말로는 정규직 방식의 일자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광주형 일자리가 동희오토처럼 생산직 전원이 하청업체를 통해 비정규직으로 채워지는 공장이 된다면 사회적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광주시는 1대 주주로 투자에 참여하고 정규직으로 고용할 것이기 때문에 동희오토와는 다를 거라고 장담한다. 그러나 독립법인이기 때문에 현대‧기아차 정규직 노조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고 낮은 임금, 무노조, 위탁생산이란 조건은 ‘중규직’ 또는 자회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위장된 비정규직일 뿐이다.

노동이사제와 같은 경영참가 역시 상황을 바꿀 수 없다. 자동차산업이 이미 포화상태인 데다가, 전기차 시장은 아직 출발단계이기 때문에 새로운 공장이 이윤을 낼지 어떨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래서 광주형 일자리가 이윤을 내는 공장이 되기 위해서는 경영참가, “노사공동책임”이란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노동자들이 저임금, 높은 노동강도를 스스로 받아들이게끔 만들고 경영 실패의 책임을 떠안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을 위한 경영 참여가 아니라 철저히 자본가들을 위한 경영 참여다. 동희오토에서는 어용노조가 상여금 기본급 전환을 통한 임금삭감, 높은 편성률 등 공장 운영에 대한 자본의 계획에 동의해주는 방식으로 경영에 참가했다면, 광주형 일자리에서는 노동이사제가 그 역할을 할 뿐이다.

 

3 [출처 광주광역시 공식블로그].png

[출처: 광주광역시 공식블로그]

 

 

광주형 일자리 ‘이데올로기’

 

자본가들과 조‧중‧동, 경제신문들은 동희오토를 추켜세웠다. 동희오토는 2007년 기준 1인당 생산량이 174대인데 비해 기아차 화성공장은 62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른 여러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노동생산성이 기아차의 2배를 넘어서 ‘경차=적자’라는 공식을 깼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파업이 없는 것까지 감안하면 생산성 차이는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광주공장에서 생산되는 기아차 쏘울(AM)을 동희오토에 투입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현대차 자본은 동희오토를 설립할 때 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구성되고 어용노조로 현장을 통제하는 동희오토가 정규직의 고임금, 낮은 생산성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둔갑하는 데는 몇 년 걸리지 않았다. 동희오토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현대차 자본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있었던 만큼, 현대‧기아차 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한 비난 역시 거세졌다.

반면에 광주형 일자리는 처음부터 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됐고 결과는 전체 노동자들의 하향평준화다. 정규직 임금의 절반인 연봉 4천과 현대‧기아차 노조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독립법인을 강조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광주형 일자리를 현대‧기아차 노조가 반대한다면? 고임금 기득권에만 집착하고 생산성은 낮은 귀족노조로 몰아붙여서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정규직이 양보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 지금도 보수언론, 경제지에서는 현대차노조를 비난하는 나팔을 불어대고 있다. 찬성한다면? 위탁공장의 낮은 임금과 높은 생산성을 강조하며 정규직을 공격하고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을 하락시킨다. 이것이 자본가와 정부의 전략이다. 여기에 그럴싸한 노사민정의 합의, 상생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뿐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광주형 일자리는 친환경차 생산공장과 부품클러스터를 목표로 했다는 점이다. 물론 보도에 따르면 현대차는 친환경차가 아니라 QS라는 1,000㏄ 미만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검토한다고 한다. 아무튼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산업은 급격한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전기차, 자율주행차, 커넥티드, 카쉐어링 시대로 빠르게 진입할 것이다. 이 시대가 되면 기존 완성차 공장과 내연기관 관련 부품사의 일자리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배터리, 모터, 감속기, 전기전장, IT 등 관련 부품사와 카쉐어링 관련 서비스 영역의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부문의 임금과 고용, 노동조건은 어떻게 설계돼야 하는가? 자본가와 정부가 가진 대답이 혹시 광주형 일자리가 아닐까?

 

 

일자리를 둘러싼 전투

 

자본주의 경제가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일자리 문제는 이미 사회적 전투의 장이 됐다. 일자리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세력은 어떤 지지도 받을 수 없다. 자본가정부와 자본가들은 ‘고용 없는 성장’을 추구한 장본인이면서도 높은 실업률을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조직된 노동자들 책임으로 돌렸다. 가짜 정규직, 자회사, 무기계약직과 다름없는 조금 나은 일자리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청년실업률이 높고 저임금, 비정규직, 나쁜 일자리가 넘치는 판에 연봉 4천짜리 광주형 일자리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와 자본가들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란 이름으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기 정치적 기반으로 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 해결책을 실현할 힘을 조직하지 않는 한, 자본가와 정부의 저 형편없는 대책조차 가난한 노동자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있다. 만약 조직된 노동자운동이 자기 일자리와 임금을 지키는 것으로만 투쟁을 제한한다면 이런 상황을 절대 바꿀 수 없다.

30대 재벌 사내유보금은 해마다 늘어서 2017년 말 기준 883조 원이다. 이중 일부만으로도 모든 노동자에게 즉각 최저임금 1만 원을 지불할 수 있고,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사회적 부는 엄청나다. 이 부는 노동자 전체를 다단계 하청구조의 사슬로 묶어 착취한 결과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자본가들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부라 불러야 마땅하다.

문제는 그 사회적 부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누가 결정하고 통제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이 거대한 사회적 부를 직접 통제하고, 한줌 자본가의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 모두의 생존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실제 투쟁을 조직하는 것으로 전진해야 한다. 그래야 가난한 노동자들도 이 투쟁에서 희망을 발견하면서 전체 노동자계급이 단결할 수 있는 기초가 만들어질 수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조직 노동자운동에게 이 길을 갈 준비가 돼 있느냐를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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