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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꿈꾸다!

김승화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고덕지회)

 

 

3교대 수납 일을 하면서 노조 가입을 하고 직접고용을 외치고, 투쟁하고 다닌 사이 1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꿈처럼 지나갔습니다. 제 인생에는 없을 것 같았던 집회와 시위, 어느 순간 저는 그 현장에서 투쟁가를 부르는 노동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톨게이트 영업소 시스템이 영업소별로 운영이 되고 그 영업소를 외주업체가 맡아 경영하고 실직적인 일의 관리·감독은 도로공사 소장들이 하는 구조였는데, 직장 분위기가 폐쇄적이고 권위적이어서 요즘 세상에 이런 직장도 있구나 하며 의아해했었습니다. 지금도 자회사에서는 부당함에 대해 한 마디도 못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면 하라는 대로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2014년도에 외주업체가 바뀌면서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의 고용 승계를 하지 않아 서산 영업소가 파업을 했었습니다. 도로공사 소장과 사무장, 지금은 자회사로 간 팀장은 노동조합 가입하면 서산 영업소처럼 고용 승계도 어렵고, 이력이 남아서 다른 데에 취업하기도 어렵고,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건 나쁜 일이고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분위기를 조성했었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저나 제 동료들은 그 말에 두려움을 가져야 했고, 관심도 가지면 안 되는 것이라 여겨서 동료들 사이에서도 행여 말이 들어갈까 봐 대화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더욱 답답한 건 전국의 수납원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톨게이트 영업소 분위기가 어느 정도로 고지식하고 폐쇄적이냐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이 2심까지 승소했는데도 저보다 더 경력이 많은 당사자들은 “도로공사가 직접고용 시켜줄 일이 없다”며 앞서 소송한 동료들을 비아냥거릴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2017년도 12월에 임금 차액 소송에서 수납원들이 승소하니 전국적으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인원의 수납원들이 무노조 상태에서 도로공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참가하기 시작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정규직 가이드라인 직종에 수납원도 포함되어 있어서 직접고용이 금방 되겠다는 희망을 가졌었습니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 협의는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가이드라인에 의해 노조·무노조·전문가위원회·도로공사가 협상을 진행하였지만, 협상을 하는 동안 어용노조가 생겨났습니다. 직장 내에서 잘릴까봐, 왕따라도 당할까봐 부당함을 바꾸라는 건의도 할 수 없었던 직원들은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어용노조 가입들을 했습니다.

   

그 후 가이드라인 협의 중 자회사에 대한 내용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직장 내 분위기는, 팀장이나 사무장의 맘에 든다거나 잘 보이려는 직원들이 일을 잘하는 것처럼 둔갑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영업소 내부의 일들이 밖으로 알려지는 게 어렵고, 사소한 사건이나 비리가 있어도 근무지가 독립되어 있으니 정황만 있을 뿐 증거를 잡기는 어려웠습니다.

또 매번 외주업체가 바뀔 때마다 혹시나 그만둬야 하지는 않을까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업소 유지 인원은 정해져 있는데 사무장이나 외주업체가 데리고 오는 직원들이 있으면 수납원 중에 퇴사하는 일이 발생할까봐, 퇴사되지 않기 위해서 회식비를 직원들에게 걷어 도로공사 사람들을 불러 같이 회식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환경으로 자회사를 간다면 어떤 상황이 될지 불 보듯 뻔했습니다. 정년을 보장한다 하더라도 직장 내에서 밉보이는 순으로 순환근무를 해야 하는 건 당연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안정된 직장이 아니라 정말 이리 돌려지고 저리 메워야 하는 신세가 될 것이며, 자회사 자체가 폐업이라도 한다면 정년 보장조차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진행하면서 어떤 것이 불법파견이고, 내가 불법파견이어서 도로공사는 나를 직접고용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수납원들이 해고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미납 잡고, 신속한 처리를 위해 도로를 뛰어다니고, 민원 하나 생기게 하지 않기 위해 비굴한 굴욕을 당하고……. 수납원들이 그렇게 올리는 실적이 만들어낸 성과금은 도로공사 직원들의 몫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노동자도 내 권리를 알아야 투쟁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연합노조 노동조합 가입을 하고 내 권리를 알게 되고,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를 알아갈수록, 저들이 내 권리를 갈취해 간 것이구나, 그러면서도 우리의 직접고용을 막고, 자회사로 가라고 밀어 붙이는 거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소속된 영업소가 2019년 6월 1일부터 자회사 시범운영 업소가 되어, 저는 다른 동지들보다 한 달 먼저 해고자가 되었습니다. 매일 5시간이 넘게 달려가 영업소 투쟁을 하였고, 어떻게 구호를 하는지, 어떻게 내 의견을 말하는지, 율동도 하고 노동가도 부르며 적법하게 지루하지 않게 우리의 투쟁을 알리는 방법을 배워갔습니다.

 

‘7월의 1500명 집단 해고는 제발 되지 말아라.’ 아무리 기도해도 동지들의 해고날은 다가왔고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고공농성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노동조합 가입도, 투쟁도, 고공농성도 저에게는 다 처음인 것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올라가지?’ 하는 생각에 짐도 간소하게, 필수품도 하나 없이 올라왔습니다. 허나 내려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동지들은 올 때마다 눈물바람이었고, 처음 뵙는 분들이 연대 오셔서 수납원의 직접고용을 응원하시고 가셨습니다. 기자도 언론도 수납원의 투쟁 내용을 보도하고 기사를 실어주었습니다.

 

처음 겪는 일들이라 생소했지만 캐노피 아래의 저분들은 무슨 감정으로 오셨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캐노피 위가 낭떠러지 위 감옥처럼도 느껴졌습니다. 내 스스로 올라온 곳인데, 다른 노동자들은 더 협소한 곳에서 고공농성도 하던데……. 조금씩 그들이 또는 우리가, 왜 고공농성을 스스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초보 노동자인 저는 몸소 경험을 하고서야 아래에 계신 분들이 우리를 왜 걱정을 하시는지 이해하게 됐습니다.

   

고공농성 중에 고용노동부가 국제노동기구(ILO) 3개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관련법 개정안에 시설관리권과 노동조합 쟁의권의 조화를 위해 사업장 내 생산시설, 주요 업무시설에 대한 점거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접했습니다. 우리의 현실과도 직결되어 그 내용이 먼저 보였습니다.

 

수납원 노동자들은 매일 영업소에서도, 대법원 앞에서도 시위를 해온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투쟁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기사가 나가고 제2의 KTX가 되지 않기 위해 알리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노동자들이 극한 상황에 처해져야만 노동자의 입장을 알릴 수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처음부터 비정규직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몇 십 년 동안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반복되는 투쟁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의 투쟁이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나만 사는 세상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에, 우리들의 투쟁이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으로 저는 오늘도 캐노피 위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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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톨게이트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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