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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반월·시화공단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와 남은 과제

이미숙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이 시행되고 6개월여의 시간이 지났다. 여러 가지 법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괴롭힘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는 법이다. 남은 과제는 시행 과정에서 법의 한계를 확인하고 보완해나가는 일이다.

월담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2019년 하반기 동안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법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기업들이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고 괴롭힘 발생 시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를 근거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현장에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보완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다.

실태조사는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8월부터 11월까지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 공단 내 식당 앞에서 진행되었다.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유무를 비롯해 괴롭힘의 방식은 무엇이었는지, 행위자는 누구였으며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대처했을 경우 변화는 있었는지, 법 시행 전후로 회사 차원의 관련 예방 조치가 있었는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한 기대효과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주요 설문 문항으로 구성했다.

   

직장 내 괴롭힘 경험 47.66%,

기업의 57.01%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해

 

설문 응답자는 총 107명이었다. 성별로는 남성이 75.70%이고 여성이 24.30%였는데, 이전 설문조사에 비해 여성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참고로, 시화노동정책연구소의 ‘2018 시흥·안산스마트허브 지역 산업동향’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반월시화공단 총 종사자수는 257,476명이고 이중 남성의 비율은 105,874명으로 78.42%이고, 여성의 비율은 55,553명으로 21.58%이다.

연령대별로는 30대와 40대 응답자가 55.14%로 가장 많았고, 고용형태별로는 정규직이 77.67%로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직종별로는 생산직 39.25%, 사무직 30.25% 순이었으며, 회사 규모별로는 1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가 44.86%, 10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가 41.12%로 주로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47.66%로 절반에 가까웠다. 성별로는 여성 응답자의 42.31%, 남성 응답자의 49.38%로가 괴롭힘을 경험한 바 있으며, 연령대별로는 40대의 55.17%, 60대 이상의 50%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고용형태별로는 기간제 응답자의 60%와 파견제 응답자의 66.67%가 괴롭힘을 경험한 바 있다고 답했고, 정규직 노동자 46.99%도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결과는 지난 2015년 전국 8개 공단과 민주노총이 함께 진행한 전국공단노동자 실태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중 인권침해를 겪었다고 답한 비중은 절반이 넘는 55.7%였다. 고용형태별로 보면 비정규직 중 64.2%가 인권침해를 겪었다고 대답했다. 인권침해의 유형은 주로 폭언, 폭행, 감시, 모욕, 따돌림 등이었는데 공단에서는 여전히 인권침해와 그에 따른 괴롭힘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직장 내 괴롭힘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유형은 ‘다른 직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경우’가 43.14%로 가장 많았다. 다음 유형으로는 ‘부하 직원에게 자기 일을 자꾸 떠넘긴다’(27.45%), ‘사생활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내고 다닌다’(27.45%), ‘원래 맡은 일이 아닌 다른 일을 자꾸 시킨다’(25.49%) 순이었다. ‘회식, 음주, 모임 가입 및 활동 등을 강요한다’(19.61%), ‘욕을 하거나 물건을 던지며 위협한다’(19.61%), ‘휴가 및 병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17.65%) 등의 답변 비율도 적지 않았다. 이 외에도 회사 일이 아닌 개인 심부름을 시키거나, 학력이나 외모 등을 비하하는 경우도 있었다. 괴롭힘 경험이 있다고 한 응답자 대부분이 2~4개씩 복수응답을 했는데, 이는 괴롭힘이 한 가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형태로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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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의 행위자는 주로 ‘직장상사’(52.94%)였고, ‘사장과 직장동료’라는 응답은 각 23.53%였다.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37.25%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답했고, 35.29%는 ‘동료들과 이야기했다’고 답했다. ‘상사에게 알리고 해결을 요청했다’(11.76%), ‘고용노동부 등 공공기관에 신고’(1.96%) 등의 적극적인 대처는 극소수였다. 지난 2015년 실태조사에서도 인권침해 시 어떻게 대응했는가에 대해 응답자의 45.6%가 ‘참거나 모르는 척 했다’고 답했다. 괴롭힘의 가해자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직장상사이거나 사장인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개별 노동자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현재의 법대로라면 괴롭힘의 가해자가 대표이사 등 사장일 경우 신고를 그 가해자에게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사장이 가해자일 경우에 대한 별도의 벌칙규정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법 시행을 알게 된 경위를 묻는 질문에는 대부분 ‘뉴스나 신문 등 언론보도를 통해’(50.47%) 알게 되었다고 답했다. ‘회사를 통해서 알게 됐다’고 답한 비율은 14.95%였고, ‘법 시행 사실을 몰랐다’고 답한 비율도 26.17%로 조사됐다. 법 시행 전후로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회사의 조치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57.01%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전체 교육’을 했다는 답변은 28.98%였고, ‘공고문을 부착’했다고 답한 비율은 11.21%였다.

회사 규모별로 보면 응답자 중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66.67%가,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45.31%가 회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10인 이상 사업장이라면 취업규칙 변경과 신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런데 응답자 중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12.50%만이 취업규칙을 변경했다고 답함으로써 많은 회사들이 괴롭힘 방지를 위한 조치들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법이 실제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홍보와 감독이 필요함이 확인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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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낯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직장 내 괴롭힘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함으로써 괴롭힘 피해자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처음부터 현장에서 실질적인 해결책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괴롭힘의 신고를 사용자에게 해야 한다거나, 괴롭힘 사건의 조사를 비롯해 행위자의 처벌 등 일련의 과정을 사용자에게만 맡겨놓았다는 점도 그렇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조항도 없고, 사용자의 의무를 다하게 할 강제성도 없다.

아직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현장에서 낯설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다수의 노동자들이 법 시행을 알지 못하거나, 절반이 넘는 기업들이 괴롭힘 예방을 위한 조치와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 차원의 점검도 없다.

월담은 실태조사 이후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에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조치를 위한 필수기재 사항이 규정되어 있지 않아 시정지시를 한 건수’와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조치를 위한 취업규칙 변경/신고 의무를 하지 않은 사업장에 대한 조치사항’ 등이 있는지에 대해 질의서를 보냈다. 이에 대해 안산지청은 ‘올해 취업규칙 변경 건이 수만 건이 접수되었는데, 이중에서 직장 내 괴롭힘 관련한 변경 내용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사실상 취업규칙 변경 심사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당연히 사업장 조사도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처벌조항도, 정부 차원의 감독도 부족한 상황에서 기업의 자발적인 변화만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방치에 가깝다.

괴롭힘을 바라보는 인식도 문제다. 공단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을 여타 다른 문제보다 훨씬 더 가볍게 인식하고 있었다. 실태조사 과정에서 “내가 괴롭히는 당사자인데 어쩌죠?”, “부하 직원 괴롭히는 재미로 살았는데 이젠 뭔 재미로 회사 다니나” 등 농담을 하거나 웃어넘기는 경우를 적지 않게 목격했다. 오랜 현장통제 방식과 위계적인 직장문화가 관습처럼 자리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은 ‘회사 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일’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병원의 ‘태움’ 문화로 인해 목숨을 끊은 간호사의 경우처럼, 통제되고 위계적인 직장문화에서 발생하는 괴롭힘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괴롭힘의 피해자는 심각한 고통을 호소하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점점 더 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직장 내 구성원의 인식 변화이다.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관행적으로 해왔던 괴롭힘 행위들이 사실은 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고,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직장문화는 바꿀 수 없고, 직장 내 괴롭힘은 근절될 수 없으며, 비극은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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