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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 정책

 

플랫폼 노동의 성격과 특징, 새로운 노동권 제도를 수립하기 위한 방향 모색

장귀연 (철폐연대 부설 노동권연구소장)

 

 

1. 플랫폼 노동의 성격 : 노동 불안정화의 정점

 

플랫폼 노동은 웹사이트나 모바일앱을 통해서 단기적인 일감들을 구하고 일감 건별로 보수를 받는 노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때 ‘단기적’이란 몇 분에서 몇 시간, 또는 며칠까지도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플랫폼 노동자는 사실 항상 구직 상태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극단적인 예로, 한 건에 몇 분 정도 걸리는 음식배달 노동자가 하루 10시간 동안 길거리에 나와 추위나 더위에 시달리며 대기하고 있어도 ‘전투콜’(먼저 호출을 잡기 위한 경쟁을 전투에 빗댄 용어)의 치열한 경쟁에서 매번 실패만 한다면 겨우 한두 건 건져 몇 백 원 벌어가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플랫폼 노동 내에서도 일을 하는 방식에 따라서 보통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하곤 한다. 하나는 플랫폼을 통해 온라인상에서만 고객을 접촉하고 작업의 결과물도 온라인상에서만 전송하는 비대면적 방식(프로그래밍, 웹창작물, 디자인, 편집, 타이핑, 바이럴마케팅, 데이터수집·가공 등)의 일이다. 다른 하나는 플랫폼을 통해 연결된 플랫폼 서비스 이용자(고객)를 직접 대면접촉하여 노동을 제공하는 대면적 방식(배송, 운송, 대리운전, 가사, 돌봄, 레슨 등)이다.

보통 플랫폼 노동을 소위 4차산업혁명과 연결시켜서 얘기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플랫폼 노동으로 주로 하는 일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전에 없었던 일들이 새롭게 생겨난 것이라거나 첨단 기술과 관련된 일은 아니다. 단지 기술 변화에 따라서 일을 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실제로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플랫폼 노동이란 사실 지난 20여 년간 지속되어온 노동 불안정화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현재로서는 그 정점에 달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대체로 1990년대까지는 안정적인 고용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내부노동시장이 형성·확산되고 있는 추세였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그 당시에도 내부노동시장은 대기업 등에 한정되어 있었으며,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자들이 수적으로는 훨씬 많았다. 하지만 고도성장 및 대기업화, 그리고 1987년의 노동자대투쟁으로부터 비롯된 노동권의 발전 등으로, 적어도 내부노동시장에 포함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이 경향은 1990년대 말부터 반전되었다. 나름 안정적인 내부노동시장을 구축하고 있었던 대기업과 공기업, 공공부문 등에서도 비정규직 고용을 통해 내부노동시장을 해체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계약직 같은 기간제 비정규직 고용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기업 구조조정이 상시화되면서 기업 내부에서 처리하던 일을 떼어내어 하청·외주화하는 방법이 기업 전략으로써 애용되기 시작했다. 하청·외주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실제 노동조건은 사실상 원청기업의 결정에 달려있지만 고용관계는 하청·외주기업과 맺게 된다. 노동자들은 결국 간접고용 노동자가 되어 실질적인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원청과 교섭할 수 없다는 점에서 노동권의 행사를 제약받는다. 특수고용은 이러한 외주를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다. 프리랜서나 개인사업자로 불리면서 이들은 고용관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보호에서 전적으로 배제된다.

한 가지 예로 방송사를 들어보자. 1990년대 중반까지 방송사는 안정적인 고용, 고임금, 승진사다리라는 견고한 내부노동시장을 형성하고 있었고, 방송제작을 일자리로 원하는 사람들은 소위 ‘언론고시’라고 불리는 치열한 입사경쟁을 뚫어야 했다(1991년 지상파 방송사의 독점을 막고 시장을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외주제작을 의무화한 방송법이 제정되었고 그 후 외주와 하청 비율이 조금씩 늘어나다가 2000년대 이후에는 큰 비율을 차지하게 되었다. 방송산업의 고용구조에 대해서는 『대기업 비정규직 실태연구』(2018, 민주노총)을 참고.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민주노총 법률원과 함께 연구한 것으로 철폐연대 홈페이지 자료실에 업로드되어 있다.). 지금도 방송사 내에 그런 내부노동시장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훨씬 축소되었고, 외주제작이 오히려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 외주제작사들은 또 나름대로 고용관계를 맺은 인력들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고, 동시에 원청인 방송사와 외주제작사들은 방송제작 노동자들을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방송사 정규직은 가장 안정적인 위치에 있으며, 중충화된 외주제작사와 협력업체라는 이름의 하청업체들이 있고,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일하는 방송제작사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노동권의 박탈을 겪고 있다. 말하자면 비정규직 노동도 기간제-간접고용-특수고용-프리랜서 등으로 위계화되면서 점점 더 불안정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은 많은 부분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 노동이 노동 플랫폼의 등장으로 인하여 일하는 방식의 측면에서 변한 모습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도 거슬러 올라가면 내부노동시장의 고용관계에 포함되어 있던 시기가 있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서 화물운송의 경우, 1990년대까지 보통 노동자들은 운송회사에 고용되어서 일했다. 1997년 경제위기로 인해 회사가 경영난에 빠지자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화물차를 매입할 것을 권유했고, 화물운송 노동자들은 지입차주로서 특수고용 노동자가 되었다. 이 때에도 개인사업자 신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거래처를 가지고 일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플랫폼들이 발전하면서 일회적인 일감을 경쟁적으로 획득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많은 플랫폼 노동 직종들이 비슷한 과정을 밟아왔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일의 질적 측면에서 노동자와 안정적인 관계(고용관계든 사업적 관계든)를 맺어 일을 맡기는 게 분명 더 신뢰할 만하며, 플랫폼을 통해서 그때그때마다 일회적으로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은 위험성을 갖고 있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비용의 측면에서 플랫폼에서의 경쟁에 의해 노동력 단가가 싸지기 때문에 충분히 그러한 위험성을 감소할 만한 유인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일감 건수를 잡기 위해 항상 대기 상태로 있어야 하며 노동과 삶은 더욱 불안정해진다.

결국 플랫폼 노동은 비정규직 노동 중에서도 가장 불안정하고 노동권에서 배제된 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의 나쁜 특성을 더욱 악화시킨 형태이다. 그런 측면에서 적어도 현재로서는 플랫폼 노동이 지난 수십 년간 심화되어온 노동 불안정화의 극단점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2. 플랫폼 노동의 특성 : 가시화된 경쟁과 비가시화된 통제, 그리고 노동권의 박탈

 

그렇다면 플랫폼 노동의 문제, 불안정화의 정점으로서의 문제는 무엇인가?

첫째, 노동자 간 경쟁을 투명하게 가시화한다는 점이다. 물론 노동력을 노동시장에서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끼리의 경쟁은 필연적인 것이다. 내부노동시장 이론은 노동시장에서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할 자본주의의 노동자들이 일단 내부노동시장에 진입하면(즉 위에서 말했듯이 대기업, 공기업 등의 안정적인 정규직으로 취업을 하면) 외부 노동자들과의 경쟁에서 어느 정도 차단된다는 현상이 신기해서 나온 이론이다. 그리고 내부노동시장이 발달했던 시대에도 외부의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의 시장적 경쟁에 노출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더 싸게 일할 수 있는 노동자로 끊임없이 대체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바로 눈에 띄지는 않는다. 노동시장에서 구매자도 판매자도 정보가 제한되어 있고, 더 싸게 대체할 노동자를 찾고 사용하는 데에 드는 거래비용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노동자들끼리의 경쟁이 제한되는 면이 있다.

그런데 플랫폼 노동은 발전된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해서 이러한 거래비용과 진입장벽을 거의 0에 가깝게 줄여버렸다는 특성이 있다. 그리하여 노동자들끼리의 경쟁이 곧바로 한눈에 띄게 된다. 대리운전이나 배달서비스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보다 먼저 호출을 잡기 위해서 매 순간마다 0.5초의 전투를 치르고 있다. 웹 플랫폼에 자신의 노동력을 팔겠다고 게시하는 노동자는 같은 일을 하겠다는 다른 노동자들과 한 게시판에서 병렬되어 한눈에 조건을 비교당하기 때문에 수없이 자기선전을 하고 끝없이 자기 노동력의 대가를 낮춰야 한다. 운송 플랫폼에서 화주가 예전에 비해 터무니없는 단가를 제시해도 누군가 절박한 노동자가 수락을 하고 그럴수록 단가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많으면 알고리즘에 의해 아예 자동적으로 단가가 떨어지게 설정되어 있는 플랫폼도 있다. 노동자들끼리 끝없이 경쟁을 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노동시장의 이상이 드디어 거의 완벽하게 실현되는 모습이다(플랫폼 노동자의 경쟁 구조 및 실태에 대해서는 『플랫폼노동 종사자 인권 실태조사』(국가인권위원회) 3장과 4장을 참고.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연구한 것으로 철폐연대 홈페이지 자료실에 업로드되어 있다.).

둘째,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유로운 프리랜서라고 선전되지만 실제로는 플랫폼에서 강한 통제를 받고 있다. 배달·운송 노동자들은 실시간으로 위치가 추적된다. 호출 노동자들을 비롯하여 플랫폼을 통해 대면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뿐 아니라 대면적 접촉이 없이 온라인상에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도 플랫폼 서비스 이용자(고객)들의 평가가 축적되고, 그 평가에 따라 일감의 제한 등 제재를 받게 된다. 그런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플랫폼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된다. 이와 같은 통제 방식은 정보통신, 위치추적, 데이터 축적과 알고리즘에 의한 자동분류 등 신기술에 힘입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플랫폼의 통제는 대면적인 통제도 아니고 일하는 도중 직접적으로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것도 아니다. 기술에 의해 자동적으로, 그리고 사후적으로 제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어떤 알고리즘으로 통제당하고 어떤 이유로 제재를 당하는지 잘 모르며 심지어 제재를 당하는지도 모를 때도 많다. 통제와 제재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대면적이고 직접적인 통제가 아니라 기술에 의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통제와 제재이기 때문에 오히려 공정하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불만이 있어도 어딘가에 제기하거나 호소할 곳도 없다. 노동자들끼리의 경쟁은 투명하게 가시화되는 반면,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는 어둠 속에 묻혀 비가시화되는 것이다(플랫폼 노동자의 통제 구조 및 실태에 대해서도 『플랫폼노동 종사자 인권 실태조사』(국가인권위원회) 3장과 4장을 참고.).

셋째, 플랫폼 노동자는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간주되어서 제도적인 노동자의 권리와 보호에서 배제된다. 이것은 물론 특수고용 비정규직 때부터 제기되어 온 문제이다. 다만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에는 특수고용보다도 더욱 이른바 ‘노동자성’을 인정받기가 어렵다.

우선 플랫폼 노동자는 동시에 다수의 사용자를 위해 일하고 있다. 실제로 일을 시키는 당사자인 플랫폼 서비스 이용자를 사용자로 보면 말할 것도 없고, 설사 플랫폼을 사용자로 간주해도 보통 플랫폼 노동자는 다수의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누가 사용자이고 어떻게 사용자의 책임성을 지게 해야 하는지 정리하기가 어렵다. 또한 일하는 장소, 도구, 장비, 상품 등도 특정한 사용자의 것을 이용하지 않는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골프장 캐디나 학습지 교사를 예로 들어 보면 특정 기업의 영업장에서 일하거나 특정 기업의 상품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지만, 플랫폼 노동에는 그러한 특성이 없다. 이는 플랫폼이 자신은 중개자일 뿐 사용자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거를 강화시켜준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말한 것처럼 플랫폼의 통제는 직접적인 지시가 아니라 자동적인 데이터 축적과 알고리즘에 의해 사후적인 제재로 나타난다. 지금까지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 판례를 보면, 경제적인 의존성(독점적 관계), 일하기 위한 자산이나 장비의 소유 여부, 직접적인 지시 등이 주요 기준으로 제시되어 왔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제도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것도 별따기처럼 어렵지만, 플랫폼 노동의 경우에는 이런 기준들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불가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의 적용, 고용관계를 기반으로 한 사회보험의 적용, 노동3권의 권리 등에서 거의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다만 노동조합법에서는 근로기준법상의 고용관계를 기반으로 한 노동자 개념을 기반으로 하되 법의 목적상 좀 더 노동자 개념을 넓게 해석해서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는 인정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권 보장의 문제에 대해서는 『플랫폼노동 종사자 인권 실태조사』(국가인권위원회) 6장을 참조.).

 

 

3. 새로운 노동권 제도 수립의 모색

 

플랫폼 노동에 대한 사회적 담론은 최근 1~2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언론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서 앞다투어 다루기 시작했고 각종 연구보고서들도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정책 제도권에서 플랫폼 노동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특수고용 의제의 연장선상에서 플랫폼 노동을 다루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특수고용이 플랫폼 노동 방식으로 변모하거나 플랫폼 노동과 특수고용이 공유하는 특성이 많기 때문에 이 자체는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다만 충분히 고용관계를 인정할 만한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 관련 사례들까지 플랫폼 노동이라는 담론의 유행에 묻혀 후진하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소위 4차산업혁명이라는 담론 내에서 다루어지는 것이다. 기술의 변화가 일자리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플랫폼 노동도 그의 일환으로 얘기되지만, 이 차원에서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기술 변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플랫폼 노동을 비롯한 노동의 성격 변화(주로 불안정화)에 대한 규제를 반대하는 경향을 보인다.

앞서 말했듯이 기업의 외주화 전략과 기술 발전이 얽히면서 특수고용과 프리랜서, 그리고 최근에는 플랫폼을 통해 개인사업자 방식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들을 진짜 개인사업자로 볼 것인가, 종속적인 노동자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세계적으로도 큰 논란거리이다(이와 관련해서는 『플랫폼노동 종사자 인권 실태조사』(국가인권위원회) 5장을 참조.). 이와 관련해서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AB5 법안 통과가 큰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것은 ABC 테스트라고 불리는 세 가지 기준, 즉 a) 기업의 통제나 지배로부터 자유롭고, b) 기업의 통상적인 사업 외부의 노동을 하고, c) 스스로 독립적인 고객층을 갖는 등 독립적인 사업을 하는 경우에만 실질적인 개인사업자로 인정하고, 이 세 가지 기준 중 어느 하나에라도 해당되지 않는 경우에는 형식적인 고용계약의 체결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기업에 종속적인 노동자로 인정하여 노동법과 노동3권 등 노동권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특수고용 노동자가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것과는 반대로, AB5법 하에서는 이들이 종속적 노동자가 아닌 자유로운 개인사업자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을 기업이 지게 된다. 이러한 법은 노동자들이 실제로 기업에 경제적으로 종속되고 통제를 받으면서도 마치 자유롭게 개인사업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취급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대면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 일하는 노동자들도,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찾고 플랫폼의 통제를 사실상 받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종속적인 노동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것은 기존에 수립된 노동권의 제도를 적용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여기까지 가기에도 길은 멀다. AB5법이 현재로서는 가장 강하게 노동자성을 인정해주는 법이지만 미국에서도 자본의 반발이 매우 큰 상황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일 뿐이다. 실제로 노동법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법·제도적 정비가 훨씬 더 정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여러 개의 플랫폼을 이용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용자 책임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플랫폼 노동자는 일하는 시간이 매우 불규칙하고 심지어 일하는 시간과 일상생활 시간이 분리되기 어려운 경우들도 적지 않은데(특히 온라인상에서 일하는 경우) 법정노동시간과 그에 근거한 임금 계산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진입과 퇴출이 완전히 자유롭고 항시 일감을 구하는 상태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의 실업 여부는 어떻게 측정되고 사회보험 적용을 할 수 있을까, 등등. 그래서 사실은 플랫폼 노동을 노동 보호의 제도에 포함시키려면 기존 전일제 고용노동을 전범으로 하고 있는 법과 제도가 거의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법학자들이나 정책입안자들이 고안해 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세밀한 항목들은 그들이 고안해 낼 수 있겠지만, 법과 제도를 새로 만들거나 크게 바꾸는 것은 사회적인 힘에 의해서이다. 따라서 플랫폼 노동자들의 주체적이고 집단적인 세력화, 그리고 플랫폼 노동의 상황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힘이 기반되어야 이러한 변화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보통 플랫폼 노동자들은 개별화되어 일하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조직화되기 어렵다고 얘기된다. 사실은 플랫폼 노동자들뿐 아니라 많은 노동자들이 조직화가 어려운 조건에 있다.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도 그러하고 이주노동자들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집단적인 힘을 모으려는 노동자들은 존재한다. 노동계도 집단적인 조직화가 쉬운 대기업 노동자들에게만 주력한다면 대표성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해외에서나 국내에서나 플랫폼 노동자들의 조직화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플랫폼 노동자의 조직화와 집단화 사례에 대해서는 『플랫폼노동 종사자 인권 실태조사』(국가인권위원회) 6장을 참조.).

플랫폼 노동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행되어온 노동 불안정화의 정점인 형태로서 기업들의 외부화 전략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다. 그리고 지난 시대의 전형적인 노동관계를 전범으로 하여 성립된 노동권 보호 제도들은 이미 수많은 불안정 노동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의 세력화, 그리고 플랫폼 노동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정책 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노동권 제도의 혁신을 위한 노력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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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기관지 <질라라비> 200호가 발간되었습니다. 

<질라라비> 200호에서는 우리가 아프게 떠나보낸 동지들을 기억하고, 지금 우리의 비정규운동에서 중요하게 짚어야 할 정책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비정규 현장을 지키며 투쟁하고 활동하는 동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그간 <질라라비>를 함께 만들어주시고 읽어주신 동지들의 소중한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더불어, 4월 24일에는 <질라라비> 200호 발간을 기념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질라라비>가 200호를 넘어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과 비정규직 철폐운동에 함께하는 동지들의 후원을 요청드립니다.

 

※ 후원계좌 : 하나은행(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824-910011-2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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