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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노동절에 문 여는 해고자‧비정규직‧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쉼터 ‘그린비네’

이호동 (사단법인 디지털노동문화복지센터 이사장, 철폐연대 회원)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전열 재정비 공간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열악하게 생존하는 노동자들이 해고자들이다. 임금노동의 현장에서 비자발적으로 퇴출되고 블랙리스트에 의해 재진입 장벽 앞에서 절규하기도 한다.

고용형태 상의 비정규노동자와 국적이 다른 이주노동자, 차별의 벽과 마주한 장애인노동자 등이 해고되었을 때는 더욱 힘든 조건이 된다. 개인의 해고를 넘어 집단적으로 투쟁이 지속될 때 투쟁사업장으로 분류되고 장기화될 때는 장기투쟁사업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이 투쟁의 현장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겪어야 하는 고초는 이루 열거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이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하루를 마감하고 몸을 누일 곳은 해체 위기의 가정이 아닌 경우가 부지기수다. 고공이 될 수도 있고, 노숙현장이나 이동하는 대중교통 등에서 쪽잠을 자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씻고 먹고 잠들 수 있는 공간은 지친 심신을 잠시나마 회복하고 투쟁을 이어가는 데에 너무나 중요한 근거지가 된다.

이 땅의 노동운동이 시작된 이래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개인적 공간을 내어주고 단체의 사무실을 임시로 내어주는 ‘나눔’은 운동의 일상적 모습이었다. 거리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쉼과 나눔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가뭄에 단비와 같이 귀한 연대의 전통이다.

 

전해투 농성장, 인드라망 사회연대 쉼터,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1992년 전국노동자대회에 “전국 구속·수배·해고노동자 원상회복 투쟁위원회”의 투쟁을 알리며 본격적인 투쟁을 전개해 온 전해투는 전국 곳곳의 현장을 쉼과 거점의 공간으로 활용했다.

투쟁 현장을 농성장화하는 것에서 벗어나 보다 안정적인 거점이 필요했던 전해투는 1996년 3월부터 농성장 기금 마련을 위해서 전국 해고자들의 막노동을 전개했다. 이를 알게 된 수많은 개인과 단체의 후원이 더해져서 당시로서는 거금인 6,200만 원이 모였다. 같은 해 11월 서울 월곡동에 전해투 농성장이 마련됐다. 이 공간은 전국 해고자들과 투쟁을 위해 상경하는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쉼과 투쟁 거점으로 출발해 이후 15년의 역사를 이었다.

2013년에는 남원의 만행산 귀정사에 인드라망 사회연대 쉼터가 개소되어 해고자, 비정규직,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지친 심신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었다. 깊은 산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투쟁의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공간으로 현재까지 귀한 역할이 이어지고 있다.

곧이어 2016년 6월 11일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은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1년여의 노력 끝에 2017년 8월 19일 개소식을 진행했다. 비정규노동자의 조직과 투쟁, 해고자와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상경투쟁에 중요한 근거지가 되었다. 현재 각종 토론회와 행사에도 활용되는 쓰임새 최고의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20여 년의 기간 동안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장단기 ‘쉼’과 ‘치유’를 위한 공간은 그 외에도 다양한 존재형태로 역할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 쉼터 ‘그린비네’

전해투 농성장, 인드라망 사회연대 쉼터,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을 통해 투쟁의 원기를 회복하고 있는 해고노동자들에게 최근 새로운 공간이 추가되었다. 해고자 쉼터 그린비네.

그린비네는 해고자 투쟁의 전국조직 전해투와 이를 후원하는 노동자투쟁연대, 사단법인 디지털노동문화복지센터 등이 해고자, 비정규직,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지친 심신 치유를 위해 개설하는 공간이다. 충주시 소태면 덕은리의 폐교인 덕은분교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경기도 여주, 강원도 원주, 충청북도 충주가 접한 장소이고, 남한강과 섬강 그리고 청미천이 합수되는 삼합지역의 너무나 아름다운 동네이다. 양평에 두물머리와 양수리가 있다면, 이곳은 세물머리와 삼합리가 있다. 2017년 8월 ‘삶이 보이는 창’을 발간하는 사단법인 디지털노동문화복지센터와 덕은학교영농조합법인이 13,000여 평의 폐교 공동이용협약을 맺고 여러 가지 준비를 거쳐 2018년 5월 1일, 해고자 쉼터 그린비네를 개설하게 된다.

20여 년 전 전해투지원대책위부터 해고자, 비정규직, 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함께 하셨던 백기완 선생님께서 쉼터의 이름을 지어주셨다.

노동자의 집 ‘그린비네(그린빚네)’. 노동자들의 세상을 향한 그리움을 빚는 장소라는 뜻이며, 몸과 마음을 밟아도 무지랭이들(노동자)이 지향하는 염원의 세계를 표현하는, 우리말로 지어진 이름이다.

 

5월 1일 출발하는 그린비네

현재 그린비네는 개인과 단체의 후원금과 전해투 농성장 기금 절반(나머지 절반은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 4월 29일 전달)의 재정으로 개설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세탁기 등 물품과 재능기부도 진행되고 있다. 2018년 5월 1일 개설 이후 운영을 위해 필요한 재원도 연대하는 이들의 따뜻한 후원과 단체들의 소중한 연대사업비로 마련하려고 한다.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현재 도서와 해안지역에 공간 제공 등의 의사를 밝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서 다음번 쉼터 개설을 구상하고 있다. 섬마을의 작은 공간과 이름 없는 해안가에서도 쉼과 치유를 위한 공간이 마련된다는 생각만으로도 흐뭇함이 밀려온다.

자본주의 체제가 존속하는 한 절박한 노동자들의 저항은 불가피하게 계속될 것이고, 너무나 당연한 결과로 노동자들의 치유와 쉼을 위한 공간은 절실해질 것이다. 바닷물이 썩지 않는 이유인 3%정도의 염분처럼 거리의 노동자들이 지쳐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쉼과 치유의 공간으로 그린비네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주시기 바란다. 현재까지 함께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함께 만들고 가꾸어갈 것을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요청드리며 글을 맺는다.

 

 

2 그린비네를 준비하는 사람들 [출처 필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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