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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비정규직’이라는 단어 속 함정

- KT 사례를 중심으로

박사영 (KT새노조 자문노무사)

 

 

어느 순간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화두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임금 격차 해소 및 비정규직 투쟁 등은 수많은 노동 현장에서 들리는 말이다. 사회적 현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개념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현재 비정규직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고 있을까?

 

비정규직은 법정 용어가 아니다. 흔히 기간제, 단시간 및 파견 등 세 분야의 노동자들을 일컫는 사회통념 속 언어일 뿐이다. 2년 반째 PC방에서 하루 8시간씩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는 비정규직일까? 현재 우리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이 분은 PC방의 정규직 노동자이지 비정규직으로 보지 않는다. 기간제, 단시간, 파견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기업 집단 그룹으로 시선을 옮겨 보자. 필자는 수년 째 KT그룹 제2노조인 KT새노조의 자문노무사로서 KT스카이라이프 불법파견 사건의 대리인으로 KTIS 소속 노동자들을 KT스카이라이프가 직접고용하도록 지원한 바 있다. 현재는 KT서비스, KTCS 및 S모 파견업체 등에서 이루어진 KT의 불법파견 의혹 사건에 대해 최전선에서 법리와 연대 투쟁 중이다.

KT서비스는 원청과 자회사(또는 계열사) 간 이루어진 불법파견 의혹 사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애초에는 KT 직원들이 수행하던 업무를 계열사 분리 혹은 아웃소싱이라는 경영기법을 통해 KT서비스 직원들이 수행하는 식이다. 이 업무를 담당하는 KT서비스 직원들은 과연 비정규직 노동자일까? 전술한 PC방 노동자와 같은 케이스이다.

이들은 기간제, 단시간, 파견 노동자도 아니다. KT서비스의 ‘정규직’ 직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T 직원들의 업무 지휘를 받아온 수많은 정황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이는 비정규직 문제라기보다는 대기업의 ‘간접고용’ 문제라고 칭하는 것이 올바르다. 원청이 간접적으로 계열사 정규직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KT서비스 소속 정규직 직원들이 그들의 노동조건 향상 혹은, 간접고용이라는 부당한 처우에 대하여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방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 번째로 노동조합 결성을 통한 교섭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KT서비스에서는 이미 제1노조가 예전부터 조직되어 있었고 이들 노조는 사측과 법적 분쟁 한 번 해보지 아니한 것으로 파악되며 심지어 단체협약을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KT서비스 남・북부를 아우르는 통합 제2노조가 출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복수노조에 대한 창구단일화 절차를 합헌으로 보는 우리나라에서 제2노조에게는 교섭권도 파업권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 자명한 현실이다. 복수노조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가 있다면 지면을 할애하여 별도 언급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방안은 불법파견에 따른 직접고용 명령을 받아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불법파견이란 그 종류는 여러 가지로 구분되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도급을 가장하여 실질은 파견, 즉 원청이 하청 소속 노동자에게 직접 지휘명령을 내리는 상황, 일명 ‘위장도급’을 의미한다. 불법파견이 확정되면 원청에게 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우리나라는 과거 제조업 중심으로 불법파견이 만연함에 따라 제조업 실정에 맞는 불법파견 판단 기준이 대법원 판례를 구축하였다. 하청이 사업주로서의 실체성을 지니는지 여부와 실질적 업무의 지휘 명령권이 원청에 있는지 여부 등 두 가지 사안을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의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사용해왔다. 하청 업체가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채, 대기업인 원청 공장 내 사내 하도급 형식으로 업무를 진행해온 경우가 흔했기 때문이다. 하청이 사업주로서의 실체성을 지니고 있지 않고 실질적 업무의 지휘 명령권 또한 원청에 있다면 하청 노동자를 원청의 직접고용명령대상으로 본다는 것이다.

 

다만, 위 두 가지 법리 기준은 4차 산업 혁명이 도래한 현재 시점 기준에서 크나큰 맹점이 있다. 두 가지 요건 중 사업주로서의 실체성과 관련하여, 하청이 그 실체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해당 조건을 중심으로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할 경우, 현장 노동자에게는 불리한 판정이 내려질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사업자등록증, 법인등기부등본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외형상 탁월한 재무제표를 자랑하는 ‘실체 존재 하청’이라는 사용자 측 항변에 수많은 노동자들은 적법도급 판정으로 피눈물을 흘리곤 한다.

KT의 경우 더더욱 제조업 불법파견 판례 기준으로 위장도급 여부를 재단해서는 아니 된다. 마찬가지로 통신이나 유통 및 서비스 업종에 대한 불법파견 여부는 업무의 지휘명령권을 누가 지니고 있는지 여부를 가지고서 판단하면 될 문제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불법파견 여부 판단 기준을 재확립해 나가야만 진정한 의미의 비정규직 문제, 아니 ‘간접고용’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KT와 관련한 불법파견 의혹 사건은 대전고용노동청(KTCS, KT서비스남부), 서울고용노동청 서부지청(KT서비스북부), 서울고용노동청 관악지청(S모 파견업체)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 특히 대전고용노동청의 경우 관련 TFT를 구성하고 잠입수사까지 시행하며 불법파견의 근원을 캐내는 데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파리바게뜨, 아사히글라스 및 KT스카이라이프 불법파견 사건 이후로 고용노동청 또한 단순히 사업주 실체성 여부를 중심으로 불법파견을 판단하기보다는 업무의 지휘명령권이 어디에 속해져 있는지를 기준으로 간접고용 현안을 다루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국 각 고용노동청과 근로감독관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며 관련된 직접 및 정황 증거들을 계속해서 제출할 계획이다.

 

1 같은 조에서 KT 직원과 KTS 직원이 혼재하여 근무한 정황.jpg

 

2 KT 직원이 KT서비스 직원에게 직접적으로 업무 지시한 정황.jpg

 

3 KT 직원이 KT서비스 직원에게 구체적으로 업무 지시한 정황.jpg

1 같은 조에서 KT 직원과 KTS 직원이 혼재하여 근무한 정황

2 KT 직원이 KT서비스 직원에게 직접적으로 업무 지시한 정황

3 KT 직원이 KT서비스 직원에게 구체적으로 업무 지시한 정황

[출처: KT서비스 남․북부 불법파견 진정사건에서 노동자측이 제출한 증빙 자료]

 

세 번째 방안으로는 무엇이 있을지 여러 각도로 고민해 보았다. 노동자의 의식 교육을 강화하고 연대 투쟁력을 증대시키는 방법이나 직접고용 의무 발생 규정을 간주 규정으로 환원시키는 입법론적 방법 등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필자는 세 번째 방안으로 고용형태공시제도의 강화를 제안한다. 우리나라는 재무와 회계에 관한 공시시스템은 금융감독원을 통해 상당히 발달해 있다. 그러나 인사와 노무에 관한 공시시스템은 현재 고용형태공시제가 유일하다. 서울시 등이 임금형태공시제를 실시할 것으로 선언하였는데, 고용과 임금 모두 그 체계와 형태를 공시함으로서 투명한 노무관리 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흔히 ‘자본’ 측에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용형태공시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라고 그것을 폐지해야 한다면, 전세 제도, 권리금, 계모임 문화 등 각종 제도는 물론 한글이라는 고유 언어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성립할 수 있다. ‘노동’ 측에서는 고용형태공시제도를 잘 이용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고용형태공시제도가 ‘자본’ 측에서 투명화시키기 곤란해 하는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위장도급 및 간접고용 문제를 사전에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제도이다. 올해로 시행 6년차를 맞는 고용형태공시제도는 오는 7월 또 한 번 그 내용이 발표되어 세간을 들썩이게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달 고용형태공시제도의 강화 필요성과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시 기고할 계획이다.

 

KT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기업의 간접고용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기업들의 속사정에는 간접고용 문제가 대부분 내재되어 있다. 호사가들은 이번 사태들과 관련하여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니야? 원래 그랬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왜 그래? 바뀔 것 없어”라는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동안 관행처럼 해왔다고 해서 ‘범죄’가 ‘무죄’로 판정되진 않는다. 치밀한 법리와 연대 투쟁으로 지난 관행을 바꾸어 내는 행동만이 우리 사회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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