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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노동권의 덫 – 고용허가제

이율도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교육선전국장)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올해로 14년이 되었다. 고용허가제는 국내에 ‘원활한 인력 수급’과 ‘국가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기능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쉽게 말해 인력난을 겪고 있는 산업현장에 이주노동자를 배치해서 중소사업장의 발전을 꾀한다는 말이다. 고용허가제의 존재 자체가 완전히 노동자의 인권을 배제하고 있다. 노동자가 아니라 해외에서 노예를 들여다가 국내 산업현장에 팔고 있다. 판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이유는 이주노동자가 고용허가제로 들어오기 위해서 한국 정부에 응시비, 면접비, 사전 교육비, 출국 비행기 티켓, 유심칩 구매비, 여행객과 구분하기 위해서 입히는 단체복 구매비까지 이주노동자가 부담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주노동자가 이주노동을 위해 들이는 돈은 보통 1백만 원에 육박한다. 이는 이주노동자 자국의 경제 상황을 생각하면 아주 큰돈이다. 그렇게 입국 과정부터 이주노동자를 착취한다.

이주노동자는 본국에서 이미 여러 차례 일종의 ‘정신 교육’을 받는다. 심한 곳의 경우, 한국에서의 노조 활동을 전면 금지한다. 노조 활동이 발각되면 총살을 한다는 말을 한다고도 한다. 이 정도의 강경한 정신 교육은 일부 국가의 일이라고 해도 대부분 국가에서는 ‘한국에 가면 사장님 말 잘 듣고 무조건 열심히 일하라’고 말한다. 이를 지시하고 교육하는 곳 역시 한국 정부이다. 그렇게 젊은 이주노동자의 기를 팍팍 죽인 다음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면 기내에서의 차별과 통제도 무척 심하다고 한다. 화장실에 가려고 해도 허락을 받고 움직이게 하고 물도 마음껏 마시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고용허가제는 도입 시기부터 노동계의 비판을 받아온 제도이다. 이주노동자의 정주를 막기 위해 체류 기간이 제한적이며, 업종을 전환할 수도 없다.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여전히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은 야만적이고 열악하다. 사업장을 변경할 이유가 산더미처럼 많다. 사업장에서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폭력과 임금체불에 시달리고, 여성들의 경우, 일상적인 성폭력에도 노출되어 있다. 그 외에도 자국에서의 자연환경과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질환에 시달린다. 그런데도 이주노동자는 ‘이직’을 선택할 자유가 없다. 최근 들어 이주노동자의 자살 사건이 많은 이유도 신체 활동의 자유가 사용자에게 달려 있는 상황에서, 마음의 병을 얻어 자살하는 노동자가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용허가제의 집행부인 고용노동부에는 이에 대한 예방과 관리 시스템이 없고, 사용자의 눈치를 보면서 점점 더 빡빡하고 교묘한 행정 지침들로 이주노동자가 주체성을 잃게 만들고 있다. 2017년 시행한 숙식비 공제 지침이 대표적인 예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이주노동자에게 숙식비마저 공제하여 실제 이주노동자의 급여는 많이 줄어들었다. 무상으로 제공되던 기숙사에 비용을 책정해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급여기준에서 8~20%까지 공제를 한다.

   

이주노동계에서는 끊임없이 이를 비판해왔지만, 소용이 없었다. 무언가 액션이 필요한 때였다. 이주노조는 이주노동 당사자 운동을 하는 안산 지구인의 정류장, 수원이주민센터와 함께 공동투쟁단을 꾸렸다. 석 달의 기획과정에서 이주노동자 맞춤형 투쟁에 대한 고민에 접어들었다. 한 달에 기껏해야 한두 번의 휴일이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연좌 농성이나 노숙농성의 방식은 효과적이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있는 현장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투쟁을 하자는 결론이 났고 우리는 그렇게 순회 투쟁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주노동자 투쟁 투어 버스, 줄여서 ‘투투버스’를 출정시키고 이주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있는 버섯 농장, 수박 농장, 딸기 농장 앞에서 흙바람을 맞으며 집회를 했다. 우리는 서로의 언어로 ‘투쟁’, ‘노동자’, ‘데모’, ‘차별’이라는 말을 배워가며 큰소리로 항의했다. 또,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방관하며 차별의 온상이 되는 고용센터, 지방고용노동청을 타깃으로 삼고 그 앞에서 집회하고 항의면담을 했다.

 

2 투투버스 사업장 투쟁 [출처 필자].JPG

투투버스 사업장 투쟁 [출처: 필자]

 

사업장 투쟁을 하러 갔을 때는 온 동네 사업주들이 몰려와 깽판을 쳤고 2년 동안 체불한 임금을 주지 않은 사장은 또다시 전화로 곧 주겠다는 공허한 약속만을 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증언보다 그들의 숙소, 작업장 상황은 훨씬 참혹했다. 비닐하우스 안에 공동주방을 만들어 놓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식사하게 함은 물론이고, 수십 명의 이주노동자가 벌판에 설치해놓은 임시화장실을 이용했다. 대부분 컨테이너로 된 숙소에는 냉‧난방기가 없고 깊은 구덩이 위에 위험천만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거기다 임금 체불은 일상적으로 벌어졌고, 노동시간도 제멋대로여서 사업주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일하고 있었다. 일한 시간에 비해 월급이 적다고 하는 노동자에게 숙식비로 공제했다는 돈은 천차만별이었는데, 이 중 70여만 원을 공제한 사례도 있었다.

고용센터는 이주노동자의 민원업무를 원활하게 볼 준비가 안 된 곳이 많았다. 가장 기본적으로 통역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아 민원업무를 보러 온 이주노동자를 범죄자처럼 의심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문제 지적을 하자, 그들은 오래 전의 일일뿐 현재는 그런 일이 없고, 통역시스템에 대해서는 재정상 많은 통역인을 배치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방고용노동청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침해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알고도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고용노동부의 지침대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사업장에서도, 고용센터에서도 그리고 지방관청에서도 모두 최종 책임이 있는 곳은 고용노동부라고 지목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고용노동부를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투투버스 투쟁을 하면서 가장 큰 성과는 이주노동자의 변화였다. 투투버스 기간 중 이주노동자 결의대회에 운집한 이주노동자는 백여 명이 넘었다. 그동안 사업장과 행정관서를 찾아야 했기 때문에 주로 평일에 진행된 투투버스 일정에 참여하지 못했던 이주노동자들이 일요일을 기해 대규모로 모였다. 이 이례적인 투쟁이 이주노동자들의 마음을 들썩이게 했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고용허가제가 자신들을 옥죄어도 그저 참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이 작은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나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자각, 권리를 쟁취하고 싶은 소망, 함께한다는 연대감이 한 달간 투투버스를 함께한 이주노동자들의 가슴에 희열을 안겼다.

 

앞으로도 긴 싸움이 남았다. 투투버스 투쟁을 통해 이주노동자도, 또 이주 사회에서도 각자의 역할과 숙제를 다시 확인했을 것이다. 그들의 가슴에 어렵게 심어진 씨앗이 썩기 전에 우리는 다음 투쟁을 이어 나가려 한다. 야만을 넘어 평등한 세상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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