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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공공부문 민간위탁, 이대로 괜찮을까?

 

장귀연 • 철폐연대 부설 노동권연구소 소장

 

 

 

희망고문과 정부의 배반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찾아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환한 얼굴로 사진을 찍으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2달 후 7월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발표했다. 모두 3단계에서 걸쳐서 진행하기로 했고, 1단계 정부 부처,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2단계는 공공기관 자회사, 출자·출연기관 등을, 3단계는 민간위탁을 대상으로 한다고 방침을 세웠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이전 정부들과 달랐던 것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었다. 이미 직접고용 비정규직은 2005년경부터 2년 계약직으로 일한 후 무기계약직(현 명칭은 ‘공무직’)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2006년 통과된 이른바 ‘비정규직법’ 때문이기도 했다. 사기업들에서는 2년이 되기 직전에 계약해지를 하는 꼼수를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기간제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정을 강화했지만, 적어도 정부기관에서는 이처럼 노골적으로 탈법 행위를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기관이 사용하면서도 사실상 사용자임을 거의 인정하지 않던 파견·용역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정부기관이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직접고용 하겠다고 나선 것은 처음이었고, 그만큼 기대도 적지 않았다.

2017년 1단계 시작, 2018년 2단계 시작, 그리고 2019년 드디어 3단계 민간위탁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이 시작될 차례였다. 그런데 2019년 2월, 손꼽아 기다리던 민간위탁 노동자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정부 지침 발표가 있었다.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은 정부가 지침을 내리지 않고 각 소관 기관의 자율적인 결정에 맡긴다는 지침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정부는 손 놓을 테니 각 기관마다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사실상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포기한 셈이다.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뒤통수를 친 배신이었다.

 5 풀어쓰는 비정규운동01.jpg

2019.8.19.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민간위탁 폐지 및 정규직 전환을 위한 심층논의기구에 노동조합 참여 보장을 음성군에 촉구하는 충북지역 시민사회 기자회견 모습. [출처: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민간위탁이란 무엇인가

 

정부는 2019년 2월 발표한 지침에서 “민간위탁은 ①사무 운영실태가 다양하고, ②대부분 법령 조례에 근거하며, ③자치단체 고유사무가 다수이고, ④대국민공공서비스 관련 사무 중심이며, ⑤수탁기관의 전문성 및 공익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특징”이 있어서 “일률적 기준 설정이나 구속력 있는 지침 시달보다는 소관 부처 등 책임 있는 기관이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의를 거쳐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도대체 민간위탁이란 무엇인가.

민간위탁은 신자유주의의 이른바 ‘작은 정부’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정부는 국가가 책임지던 공공서비스의 제공을 포기하고 사기업들에게 팔아치웠다. 이른바 ‘민영화’가 그것이다. 명분으로는 국가가 맡아서 운영하면 관료제적 경직성으로 인해 효율성이 떨어지고, 시장에 맡기면 시장경쟁으로 말미암아 효율성이 높아지고 서비스의 질도 향상된다는 논리였지만, 사실은 사기업들의 이윤을 위한 시장을 확대해주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교통, 의료, 교육, 에너지 등 사람들의 생활에 필수적인 부문이 민영화될수록 가격은 높아지고 공급은 불안정해지며, 가격이 비싼 사기업 운영과 가격이 낮은 공공 운영의 서비스 질 격차가 심화되어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삶의 수준 자체가 극단적으로 양극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아무리 신자유주의적 정부라 할지라도 시장에 맡기기에는 부담이 되는 것들도 있다. 경제학적인 정의로는 공공재란 비경쟁성과 비배타성을 특징으로 규정되는데, 이런 부문은 사기업이 이윤을 내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에 시장에 맡기는 것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하수 처리를 생각해보자. 하수관과 하수처리 시설을 일단 도시에 갖춰놓으면 돈을 내든 안 내든 이용할 수 있다. 즉 무임승차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돈을 내는 부자들의 집에만 하수관을 설치하고 하수처리를 해 준다면 19세기처럼 도시의 길바닥은 온통 오물로 뒤덮일 것이며, 이제 와서 하수관을 철수할 수도 없는 일이니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또 국가 정책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정부조차 완전히 시장에 맡기면 심각한 정치적 부담을 갖게 되는 부문들도 있다. 예를 들어 육아 지원 서비스를 온전하게 시장에 밀어놓고 각 가정이 알아서 능력껏 돈을 지불하든지 하라고 하면 그렇잖아도 출산률 저하로 골머리를 썩는 한국과 같은 상황에서는 생각도 정책도 없는 정부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런 부문은 오히려 정부의 지원이나 정부가 책임지는 부분을 늘릴 수밖에 없다.

어쨌든 민간위탁은 신자유주의 정부가 완전히 민영화하기는 어려운 부문에 대한 타협책이다. 공공서비스의 최종 공급 책임은 정부가 지되 운영은 사기업에 맡기고,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하면서도 사기업의 적당한 이윤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민간기업이나 단체가 정부보다는 더 효율적이고 전문적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정부 부처,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의 정부기관에서는 민간위탁을 할 업무를 선정하고 업체들이 입찰을 하면 그 중 수탁업체를 선정해서 일정한 기간 동안 위탁계약을 맺는다. 위탁 기간은 보통 짧게는 1년, 길면 5년 정도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재계약을 하든가 다른 수탁업체를 선정해서 맡긴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원청-하청 구조이다. 정부기관의 민간위탁을 수탁 받은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설사 그곳에서는 정규직으로 입사한다 할지라도 위탁기간이 끝나면 원청인 정부기관과 자신이 고용된 업체 간에 다시 재계약이 될지 안 될지 불안에 떨어야 한다. 보통 다시 위탁을 받지 못하면 그 업체는 해체되기 마련이다. 다른 용역·하청 업체들의 경우처럼 고용승계를 하기도 하지만 안 할 수도 있다. 고용승계를 하지 않으면 기업간 계약이 해지된 다른 용역·하청 업체의 노동자들과 똑같이 그냥 직장을 잃는 것이다. 즉 정부기관을 원청으로 하는 전형적인 간접고용 노동자인 것이다.1)

 

1) 2018년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의하면, 전국 민간위탁 업무 건수는 10,095개였고 여기에 종사하는 노동자 수는 195,736명이었다. 이 1만 개의 업무의 92.8%는 상시지속적 업무였고, 또한 조례든 규정이든 입찰공고든 계약서든 어떤 형식으로든 고용승계 조항이 있는 경우는 24.5%에 불과했다. 원하청간 계약이 끝날 때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처지인 것이다.

 

 

 

 

민간위탁은 정당한가

 

정부가 근거로 댄 “민간위탁은 ①사무 운영 실태가 다양하고, ②대부분 법령 조례에 근거하며, ③자치단체 고유사무가 다수이고, ④대국민공공서비스 관련 사무 중심이며, ⑤수탁기관의 전문성 및 공익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특징”이 민간위탁 노동자들을 정규직 전환하라는 구속력 있는 지침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가 되는 것일까?

사무와 운영 실태가 다양하다는 것 자체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당연히 정부기관들은 다양한 일들을 한다. 어떤 것은 정부 기관에서 직접 하고 어떤 것은 민간위탁을 한다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법령이나 조례에 근거한다고 하는데, 그 근거 법령이라는 것은 <정부조직법> 제6조에 근거한 대통령령인 <행정권한의 위임 및 위탁에 관한 규정>이다. 이 대통령령 11조 1항에 “①행정기관은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소관 사무 중 조사·검사·검정·관리 사무 등 국민의 권리·의무와 직접 관계되지 아니하는 다음 각 호의 사무를 민간위탁 할 수 있다. 1. 단순 사실행위인 행정작용 2. 공익성보다 능률성이 현저히 요청되는 사무 3. 특수한 전문지식 및 기술이 필요한 사무 4. 그 밖에 국민 생활과 직결된 단순 행정사무”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지방자치법> 제104조 3항에 “③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조례나 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권한에 속하는 사무 중 조사·검사·검정·관리업무 등 주민의 권리·의무와 직접 관련되지 아니하는 사무를 법인·단체 또는 그 기관이나 개인에게 위탁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실제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3단계인 민간위탁 노동자에 대한 정책 결정을 앞두고 2018년 고용노동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민간위탁 사무의 90% 가까이(87.2%)가 지방자치단체에서 위탁을 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방의회에서 그냥 특정한 업무를 민간위탁한다고 조례를 제정해 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한 번 민간위탁 하는 조례를 제정하고 나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가운데 영원히 민간위탁이고 수탁기관만 바뀌어서 노동자들의 고용만 불안할 따름이다. 단지 그런 조례를 한 번 제정했다고 해서 수정할 수 없는 대단한 게 아니다. 오히려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민간위탁을 재검토하고 직영화를 고려할 수 있는 근거조차 없는 것이 더 문제이다.

또한 민간위탁이 주로 대국민 공공서비스 관련 사무라는 것은 오히려 정부기관에서 직접 맡아서 해야 한다는 근거가 되면 되었지 민간위탁 노동자를 정규직화하기 어려운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말 그대로 정부기관이 해야 할 대국민 공공서비스를 제대로 직접 하지 않고 있다는 자백이다.

마지막으로 수탁기관의 전문성과 공익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보자. 일부 부문에서는 사실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에서 노동권익센터를 만들면서 노동단체에 위탁을 한 것도 그러하고, 사실 장애인이나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서 수십 년 동안 정부가 무관심하게 방치하는 가운데 민간단체들이 이들이 지원하는 시스템을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뒤늦게 정부가 관심을 가졌을 때 이들 민간단체에게 위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10여 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소관 부처가 정해지고 정형화된 매뉴얼과 사업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여성가족부 소관으로 각 지자체마다 만든 다문화가족지원센터나 보건복지부 소관인 지자체의 육아통합지원센터 같은 것도 그러하다. 민간단체의 전문성과 자율성은 오히려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다. 예를 들어 이미 여성가족부가 매뉴얼을 만들고 교육도 하는 다문화가정 방문 지도사를 직접고용하면 안 될 이유는 전혀 없다.

 

 

정부기관에서도 같은 노동, 다른 고용형태

 

실제로 정부가 직접 운영하기 어려울 정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라면 전문기관이나 전문단체에 민간위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부문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용역과 민간위탁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들도 많다.

그리하여 일자리센터를 직영으로 운영하던 지방자치단체 직업상담사들은 일찌감치 공무직으로 전환한 반면, 민간위탁을 한 지방자치단체의 직업상담사들은 여전히 지방자치단체를 원청으로 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콜센터나 CCTV 관제실을 용역으로 계약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노동자들이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 1단계에서 공무직 전환이 되었지만, 똑같이 콜센터나 관제실에서 일해도 민간위탁 계약을 한 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게는 직접고용의 희망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우연한 계약 형식상의 문제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서 용역 노동자들은 직접고용 대상이 되었고 민간위탁 노동자들은 대상에서 배제되어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용역은 1·2단계 대상이고 민간위탁은 3단계였는데 결국 용두사미, 물 건너가게 된 것이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다른 고용형태, 다른 대우. 이것은 사기업에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정부기관이 사용자인 곳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취임하자마자 천명한 정부에서의 일이다. 길 건너편의 지방자치단체 직업상담사들은 고용안정도 되고 복지카드도 받는데 길 하나 건넌 곳의 직업상담사들은 똑같은 일을 하면서 간접고용 비정규직 신세다. 기관이 다르다고 하지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정부가 이것 하나 관철하지 못해서 그냥 손 놓아 버린 것이다.

 

 

투쟁 없이는 정규직 전환도 없다

 

하지만 알다시피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의 1, 2단계도 정부의 선심으로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정부가 공언을 하고 지침을 내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조직되고 투쟁을 해야 겨우 성사되는 곳이 많았으며 그렇게 해도 반쪽짜리 직고용인 자회사 소속으로 가게 되는 경우들도 적지 않았다. 정부의 공언은 하나의 계기를 주긴 했지만 실제로 정규직 전환을 이루는 것은 노동자 투쟁의 몫이었다.

결국 3단계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그나마의 공언도 포기해 버리는 바람에 좀 더 힘들어질 수도 있지만, 사실 결국은 노동자 투쟁으로 판가름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9년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투쟁 때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노조도 열심히 참여했다.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체의 노동자들은 민간위탁으로 분류된 것이 부당하다며 오분류 정정 신청을 했고 이곳저곳에서 투쟁했다2). 일부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콜센터 직원들을 용역으로 간주하여 직고용하였지만 많은 콜센터가 민간위탁으로 분류되어 여전히 인력파견업체 소속으로 남아 있는 가운데, 건강보험관리공단의 콜센터는 노조를 결성하고 정규직 전환을 위해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민간위탁 노동자들이 많이 조직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희망고문을 하다가 뒤통수를 맞는 일은 쉽게 참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은 단지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정부기관의 민간위탁을 제어하여 국가가 공공서비스를 더욱 책임 있게 제공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2) 생활폐기물 수거·운반 업무는 엄밀히 말하면 ‘민간위탁’이 아니라 ‘대행’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통상 민간위탁으로 간주하고 있고 비용도 민간위탁비로 처리하고 있다. 2010년 이후 생활폐기물 수거·운반 업무의 직영과 민간위탁 효율성을 비교하여 분석한 모든 연구들(총 6개 논문)은 민간위탁이 직영보다 효율성이 높지 않으며 서비스의 질은 오히려 낮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이러한 공통적인 분석결과에도 불구하고 다시 직영화한 사례가 매우 드문 것은 한 번 민간위탁하면 영원히 민간위탁으로 고착되어 버리는 현실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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